신간평가단 10기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10기 마지막이네요.

 

 

 

1. 10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가장 좋았던 책.

 

 

 

 

 

 

 

 

 

 

 

 

 

 

2. 10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베스트 5.

 

 

 

 

 

 

 

 

 

 

 


 

 

 

 

 

 

 

 

 

 

 

 

 

 

 

 

 

 

왠지 옆에 쓰는 말들이 사족같아서.. 표지만 이렇게 올립니다..

 

라고 했다가 왠지 너무 허전해서 몇 자 끄적거려야겠어요.

 

먼저 나는 가수다 이야기.

시즌 2가 시작되었던데.. 라인업들이 정말 쟁쟁하네요..

이수영, 이수영, 이수영, 이수영... 박완규...

풋, 사실 전 이수영 팬이었거든요, 비록 남자이지만[..] 노래방에서 이수영씨가 부른

휠릴리나 얼마나 좋을까, 를 부르는 만행을 저지른 적도 있구 말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이수영씨가 오래 출연했으면 좋겠지만.. 잘 모르겠네요

휠릴리 편곡도 많이 아쉬웠구.. 중요한 부분을 좀 짤라먹은 기분..

그래도 여전히 이쁘게 나와서 좋았답니다.

 

박완규씨도 정말 좋아하는데 천년의 사랑, 은 꼭 노래방 가면 부르고 시작하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임재범님께서[...]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ㅠㅠ

 

물론 김연우도, 김건모도 다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노래방을 다녀오고는 너무 기분이 좋았답니다.

정말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은 노래를 부르고 싶게 만드는 프로그램이에요

 

요즘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서 괜스레 스트레스를 받는데

소리를 지르고 나면 맘이 좀 편해지고.. 합법적으로, 풋,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곳이

등산을 하거나 노래방 가는 거잖아요, 하하

먹는 것 가지고 스트레스 풀면 힘들기두 하고..

살도 찌고, 풋.

 

사실 예전에는 책 읽으며 음악 듣는 것으로도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예전이라고 해봤자 몇 개월 전이겠지만,

요즘은 받는 책들도 가벼운 책들은 별로 없고, 가볍게 읽히지도 않으니

사실 인문 서적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물론 이렇게 말을 끄적거린다고 해서 가벼운 책들을 추천하지는 않겠지요.

언제나 추천할때는 욕심 아닌 욕심이 앞서니깐..

괜스레 무거운 책들을 읽어보고 싶으니깐, 풋

무엇보다도 읽고 나서 오픈된 공간에 리뷰를 써야 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만약에 혼자서 그냥 읽는 거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괜스레 작정하고 읽게 되고.. 그렇게 되네요

그래도 스트레스는 못풀어도, 푸하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 하는 11기에도 아마 비슷한 마음이겠지요.

리뷰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과 욕심과의 갈등

여전히 노래방에 가서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나 봅니다, 하하

그러나 무거운 책이라고 해서 뭐가 걱정이겠어요, 풋.

세 얼간이, 라는 영화에 알 이즈 웰All is well, 이 일종의 경구던가요,

이 끄적거림의 마무리를 제가 가진 경구로 짓도록 하지요.

 

Why worry? Rather wo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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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5-02 17:33   좋아요 0 | URL
에이...글이 없네요.....에이....(시무룩)

가연 2012-05-02 17:33   좋아요 0 | URL
ㅋㅋㅋ 뒤의 신간 추천에는 글을 썼어요ㅋㅋㅋ 너무 바빠서ㅠㅠㅠ 지금또 나가봐야 되요ㅠㅠㅠ 아놔ㅠㅠㅠㅠㅠㅠ

다락방 2012-05-02 17:35   좋아요 0 | URL
어딜 그렇게 나가봐야 되는거에요. ㅠㅠ

가연 2012-05-02 17:37   좋아요 0 | URL
헉 실시간인데요ㅎㅎ 사실 반은 바쁜척하는거구ㅠㅠ 반은 진짜 바쁜거구ㅠㅠ 주말되면 좀 편해지고 그래요, 풋.ㅠㅠ 사실 위에 저렇게 댓글을 달았다가 좀 지우고 깔끔하게 쓰려고 했는데 그 사이에 덧글을 달아주셔서 수정도 못..

이진 2012-05-03 00:46   좋아요 0 | URL
카프카 평전 표지에 나온 잘생긴 남자에 눈이 더 가는군요.
어려운 인문 책을 척척 읽어내시는 가연님이 문득 부러워집니다.
저는 한국문학도 이해못해서 안달나 있는걸요.

가연 2012-05-03 01:39   좋아요 0 | URL
저 잘생긴 남자가 프란츠 카프카, 젊은 시절의 모습이겠지요. ㅎㅎ부러워하시다뇨,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다 좋아하는 분야가 다르니깐..ㅎㅎ 그리고 음.. 제가 인문 책을 읽는다고 해서 소설을 잘 이해못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닌 것 처럼, 풋, 부끄럽다, 어쨌든 소이진님이 소설을 읽으신다고 하셔도 충분히 인문 분야에서 책들을 이해하실 수 있을거에요. 이런 분야들은 뭐가 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범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풋.

알라딘신간평가단 2012-05-21 22:34   좋아요 0 | URL
가연님. 11기도 잘 부탁드립니다. ㅎㅎㅎ 늦은 댓글 달고 다니는 신간평가단지기입니다.

가연 2012-05-25 01:14   좋아요 0 | URL
ㅎㅎ 네, 저도 잘 부탁드릴께요ㅋ
 

 

 

 

오랜만에 교보문고 나들이.. 날씨가 참 좋아서 어디를 갈까, 하다가

그나마 가까운 교보문고에 잠깐 들렀다왔다.

이제 정말 여름인가? 봄 같지도 않은 봄은 잠깐 흔적만 남겼을 뿐이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서점에서 보다가 키득거렸던 책. 뭔가 있어보이는 책 처럼 제목을 달았지만.. 살펴본 나로서는 그저 오타쿠 보고서다. 좀 더 정제해서 말하자면, 책에서도 저자가 밝혔다시피, 오타쿠의 눈으로 본 일본 문화들이다. 그 문화들은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나 라이트노벨과 애니메이션으로 세분화되고, 또한 서로 경계를 넘나들며 융합하며 일본의 대중 문화의 흐름을 형성한다. 이를 파악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중요하다면 중요한 의미를 차지할 수 있겠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라이트노벨이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이 많으니(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그 영향이 작다고는 여길 수 없으리라. 왜 시드노벨과 같은 출판사가 생겼겠는가? 그런데 이 책은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일종의 오타쿠 보고서라서, 안에 실려있는 예시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평소에 애니나 라이트노벨을 많이 봤던 사람이라면 나처럼 키득거리면서 볼 수 있겠지만 어떤 비평서로 생각하고 집어든 사람들이 '쓰르라미 울적에'나 '월희' 등을 알겠는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또 어떻고? '부기팝' 이 뭔지 알겠는가. 그리고 우리 나라 사정에는 좀 안맞아 보이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이런 오타쿠 문화에 대해서 애니로라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동인지를 사기 위해서 왜 줄을 길게 서는지 등의 경험을 간접적으로라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왜 오타쿠가 일본 대중 문화에 있어서 한 흐름을 차지 할 수 있는가, 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름 진지한 비평을 위해서 준비 작업을 많이 한 모습이 엿보이지만.. 글쎄, 예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고, 예시를 지나치게 잘 아는 사람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상당히 좋은 책이라고 여겨진다. 도발적인 제목이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저런 제목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뭐랄까, 광고효과와 주제의 적절한 담합이라고 말해야 할까? 세상의 진보를 이끌어온 것은 폭력과 성, 그리고 먹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주제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책의 저자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책의 첫 부분에서는 패리스 힐튼의 동영상[..]과 걸프전에서 이용된 무기를 연관시킴으로서 저자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껏 기술을 주도한 것이 위의 세 개라면 자연스레 이는 이런 의문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앞의 세 개가 이끌어낼 미래의 기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라는 의문말이다. 그런데.. 글쎄, 나로서는 상당히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만 들 뿐이다. 이런..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뇌의 쾌락중추를 자극함으로써 섹스를 해결하고 실제로 영양은 수액으로 공급을 하고 맛은 그 맛을 자극하는 신경만 건드리며 사람들은 컴퓨터에 둘러싸여 다시금 전쟁 무기만 개발하는.. 해양 탐사나 우주 탐사와 같은 기술들은 모두 전쟁이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서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고 말야. 오, 신이시여.

 

 

 

마르크스, 아프냐고 묻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좀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은 인문학을 섞는게 대세인 모양이다. 인문학의 위기, 위기 라고들 하지만 이렇게 인문학이 여러 곳에서 감초처럼 쓰이고 있는데 진짜 위기일까? 일단 이 책은 정말 읽기가 쉬운 책이다. 다양한 예시들, 영화나 매체들을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어와서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데도 성공한 책이다. 그리고 적절하게 마르크스의 이야기도 함께 섞어놓았으니 이 책만 읽어도 뭔가 배부른 느낌이 들 것만 같다. 하지만 읽어보면 다른 수많은.. 이런 비슷한 류의 책들이 하는 이야기들과 크게 차이가 또 없는 것 같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 라던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니 등등.. 그리고 소외에 관한 이야기까지.. 이는 그 옛날 중국 고전에서부터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물론 소외에 관한 이야기는 좀 논외일 수도 있겠다.) 인문학적인 사유를 섞을 생각이라면 끝까지 인문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혹은 엄밀하게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야기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엄밀하게 그의 경제론과 사상을 풀어가는게 좋지 않았을까? 물론 전자를 택하면 그다지 특이한 책이 되지는 못할 것이고, 후자를 택하면 선뜻 구매할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지만 두 개가 섞이고 나니 뭐랄까,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앞서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자면, 나는 여전히 인문학이 위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섞이면 섞일수록 우리는 사유의 힘에서 조금씩 멀어질 것이며 감초처럼 곁들어진, 감정을 건드리는 인문학만을 인문학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척추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현대물리학이 답하다.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도 제법 흥미로운 책이다. 사실 번역본의 제목은 정말 맘에 안들지만.. 원제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원제는 영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From eternity to here' 인데,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번역본의 제목 처럼 '시간과 우주의 비밀' 이 답해지지는 않지 않을까. 시간과 우주의 비밀을 답했다면 이 책을 쓴 저자는 지금쯤 노벨 물리학상과 평화상 등 수많은 상을 탔을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이 특히 신경 써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현대 물리학의 난제 중 하나인 '시간의 화살' 인데, 시간의 화살, 이라고 이야기하니 왠지 베르그송이 생각이 난다. 순수지속시간말이다. 이 시간의 화살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화살이다. 우리는 아직 미래로 건너 뛸 수 없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현재라는 화살 위에 실려서 미래로 향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화살은 시간의 일방향성을 드러내주는 좋은 문구라고 하겠다. 그런데 왜 시간은 이렇게 한쪽으로만 흐를까? 그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면으로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 뒤에는 초끈 이론 등도 다루고 있는 듯 하니.. 시간 들여서 읽어볼만하겠다. 그리고 사족 하나. 요즘 물리학자들은 정말 다양한 매체를 접하는 것 같다. 혹은 글을 잘 쓰는 것 같다.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역사적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에서부터, 현대적으로는 영화나 소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시를 들어오고 있다. 흥미롭다.

 

 

 

p. s. 늑대와 향신료, 가 읽고 싶다..ㅠㅠㅠㅠㅠㅠㅠ 도대체 완결까지 언제 나오는 거지?

        이 글을 쓰는 동안 들은 시드 사운드, 여래아, 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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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4-30 12:03   좋아요 0 | URL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는 저도 관심을 두고 있는 책이었는데요, 제가 다 읽을 수 있을지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구입은 미루고 있지만 말이죠.

그런데 저는 [늑대와 향신료]가 뭐지, 해서 부랴부랴 검색을 해봤지 뭡니까. 오, 이것은 만화책이네요. 울 정도로(ㅠㅠㅠㅠㅠ) 보고 싶은 만화라면, 그러니까 이 만화책은 정녕 엄청나게 재미있단 말입니까? 그래요?

가연 2012-04-30 13:39   좋아요 0 | URL
저도 끝까지 못읽어서ㅎㅎ 하지만 괜찮은 책이라 보여집니다. 사실 이 페이퍼는 이 책을 끄적거리려고 쓴 글이라는.. 비하인드 스토리가ㅎㅎ

쓰다보니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에 대해서 더 많이 끄적거렸는데 늑대와 향신료, 는 바로 저 게임적 리얼리즘, 에서 다루는 라이트 노벨로 나온 책이랍니다. 완전 재미있어요. 물론 애니로도 나오고 코믹으로도 나와있지만.. 원본은 역시 책이죠, 풋. 여자분들한테는 그다지 재미없.. 저같은 더, 덕..이 풍부한 사람들이라면 여주인공이 너무 예뻐서[..] 행동이 잔망스러워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
 

 

 

 

아.. 시간이 별로 없네여..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추천을 받은 책이라서..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내용이 상당히 충실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이 2007년에 발간된 점으로 미루어볼때, 5년이나 지난 지금(엄밀히 말하면 영문판은 더 이전에 발간되었을테니.. 약 1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내용이 개정된 부분도 분명있을것이다. 그러나 주제는 어떻게 중력을 다른 세가지 힘에 합치느냐, 이고..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지를 받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바로 초끈이론과 고리양자중력이론이라는 점과, 초끈이론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 계기가 1995년 에드워드 위튼이 M 이론으로 5가지 방향성을 하나로 묶은 점으로 미루어볼때, 중심되는 줄기는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발간된 시기도 1995년보다는 뒤에 발간되었으니.. 그런데 반대로 말하면 우리는 1995년 이후에서 물리학적인 이론이 그리 많이 진보하지는 못했다, 라는 이야기도 될 수 있겠다. 과연 TOE,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은 가능할까?

 

 

 

초끈이론의 진실.

이 책은 상당히 유명한 책인데, 나는 아직 읽어보지를 못했다. 그런데 제목이 좀..ㅋㅋ 당황스럽긴 하다. 초끈이론의 진실, 이라는 말은 초끈이론이 마치 거짓말이었다, 라고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하지만 원제의 뉘앙스는 한 층 더 심하다. Not even wrong, 너무 어이없고 기가차서 틀렸다고도 못하겠다, 라는 말이다. 그러고보면 리처드 파인만도 초끈이론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초끈이론을 검증하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가 너무 크기도 하니.. 실험으로 뒷받침하기가 어려운 이론이라서 어떻게 보면 같은 이론이라도 이름난 교수가 말하면 '오오.. 그럴 수 있겠다' 가 되지만 학생이 말하면 '뭔 소설쓰는거냐' 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초끈이론을 다루는 곳이 있다면.. 서강대의 양자시공간연구센터나 이화여대의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 정도를 들 수 있다고 하는데 잘 모른다. 

 

 

 

물리학의 끝은 어디인가.

이 책은 지금은 절판이겠지만 다시 나와주면 괜찮을 것 같다. 첫 발간이 1996년도이지만, 앞서도 말했지 않은가, 정말 큰 틀은 1995년 이후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그 당시의 이야기가 지금와서 읽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다. 이 책이 그 증인이 되어줄 수 있을 정도로 꼼꼼히 적혀있다. 위의 두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고 들어가면 괜찮을 듯 하지만.. 지금은 절판이라서.. 구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도서관에서 찾아보는 수 밖에.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론의 다양함에 놀라고.. 모르는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물리학은 역시 아름다운 학문이다, 푸하하.

 

 

 

절대지식 세계고전.

반값 행사를 할때,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빠르게 구입한 책이다. 정말 핵심만 뽑아서 기술한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여러 주제로 나뉘어 세계의 고전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다만 이 책을 읽고 '읽은 척'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먼저 느낀 것은 마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사회공부를 하는 기분이었달까. 뭐랄까 핵심 정리 참고서, 같은 기분이었다. 가리고 추려서 정말 옥석이 된 내용만 고르긴 했지만 책이 어떤 분위기인지는 도저히 이 책만 읽고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생각보다 읽기가 쉽지 않다. 서너장에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요약하려니.. 문장 하나 하나에 의미를 넣으려 노력해놓은 모습이 보이고.. 그 의미를 해석하려니 다시금 여러 번 읽게 만들어 놓았다. 책이 800쪽이라고 되어있는데, 생각보다 안두껍고 판형이 조그만해서 들고다니기는 좋다.

 

 

 

 

황금가지.

하지만 위의 책과 다르게 이 책은 크기도 크고 두껍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절대 읽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이 책도 원래 13권이나 되는 책을 줄이고 줄여서 만든 책을 번역한 것이긴 하다. 옥스퍼드판과 맥밀런 판이었나, 이렇게 축약본에도 두 판형이 있는데, 옥스퍼드판은 학자들이 모여서 줄인 책이고, 나머지 하나는 저자가 직접 줄인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그 두가지 판형을 적절히 조합을 해서 번역을 한 것 같은데.. 사실 난 내용을 보면서 어느 판형인지 잘 구분을 못하겠다. 두 판형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니고, 아니 애초에 끝까지 읽어보지를 못하였기에 말이다.. 그러나 기존에 이것 저것 발췌하면서 보았던 부분을 조금씩 통합하면서 읽어나가는 재미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충동구매하게 된 이유는 가격이 저렴해서.. 물론 장식용으로 남기지 않으려면 많이 읽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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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입니다.

 

가장 최근에 올린 신지님의 글(p.s.)을 보고 몇 자 끄적거립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여기고 있으며, 한사람님과의 관계로(물론 현실에서 무슨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서 서재 이웃에 정도며.. 에다가 요즘은 덧글 교류도 거의 없지만..) 인하여 저 스스로가 과연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는가, 에 대한 의문도 계속 가지게 되어 회의감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글이 마음에 걸려서 이 리뷰 말미에 첨언합니다. 원래라면 트랙백으로 혹은 댓글이라도 달아야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길게 적을 것도 아니고, 책의 리뷰글이라서 트랙백달기가 좀 어색했으며, 무엇보다도 사실 이런 문제로 계속 논란이 되고 시끄러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쩌면 이렇게 논쟁 혹은 비판이 오가는 것이 커뮤니티의 본질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옛날에 있었던 곳도 겉은 평화로웠지만 그 수면을 휘저어 끄집어내자 논쟁이 정말 많이 일어났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남과 좀 다투었다고 시끄러워지는가? 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정말 시끄러워지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계속 남네요. 서재를 보고 신지님과 한사람님의 글을 읽은 분들이 저마다 느낌을 받고 영향을 받습니다. 지금 알라딘 서재의 상황은 분명 시끄러워진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신지님은 글에서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의견의 차이를 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딱딱하게 글을 쓰셨고 감정적이라거나 공격을 위한 글은 아니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신지님의 글을 보면 정말 그런가? 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특히나 느끼게 된 부분은 '어디 외국에서 왔는지. 비현실적이고 이상한 피해의식' 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음.. 의견의 차이를 간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저런 표현은 좀 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 뿐만 아닙니다. '~그래서 비겁하다' 와 같은 문장도 있지요. 신지님의 글로만 판단하였을 때 한사람님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 맥거핀님도 글을 몇 자 남겨주셨는데, 피해의식에 가득차고 (이전 신지님의 페이퍼까지 고려한다면) 남이 강한 척 할때는 수그리고 있다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달려들어 쥐어뜯는, 몰염치하고, 자신의 상처만 내세우는 분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진정으로 옳은가요? 현실에서도 이렇게 여기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말 다양한 각도에서 판단했을때만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인터넷 공간에서 제한된 글로는..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좀 부당해보입니다. 제가 빵가게재습격님에게 글을 하나 썼었지요. 긴 글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글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표현에도 분명 어느 정도 선이 있지 않겠는가' 이지요. 신지님의 논리가 모두 옳은지는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근거로 발췌한 한사람님의 글을 모두 다시 읽어야 되고, 왜 저런 말들을 하였나, 도 살펴야 되며, 신지님이 인용한 과거글, 그리고 고종석씨의 글을 찾아서 읽고 그 맥락까지도 판단해야 하는 작업을 거쳐야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논리 이전에 한사람님에 대한 이런 표현의 문제는 분명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신지님께서는 한사람님에게 대화를 요청하시는 것인가요, 아니면 그저 불만만 토로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인가요? 빵가게재습격님은 한사람님에게 '대화'를 요청하셨고, 저는 그래서 대화를 하기 전에는 감정을 일단 안정시켜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 발전적인 대화를 진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만, 신지님의 글에서는 불만을 밝혀둔다고 명시적으로 되어있기에 빵가게재습격님에게 말씀드렸던 것을 그대로 다시 말씀드릴 수 있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대화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그저 불만만 이야기하시는 것이라고 하신다고 할 지라도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친 예이지만 회사에 컴플레인을 할때도 어느 정도 형식을 지켜서 글을 쓰는데.. 말이지요. 물론 신지님께서는 어쩌면 한사람님을 저렇게, 몰염치하고 상처를 내세우는 그런 사람으로 몰아붙일 생각은 안하시고 그저 순수하게 논리만 따지시려고 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한사람님께서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셨다면.. 신지님의 모든 인터넷 공간에서 책임은 먼저 자신에게 있다는 말씀대로 먼저 표현을 좀 수정하셔서 정중하게 불만사항을 이야기하시는 것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이상입니다. 이 글은 물론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논리를 겨루자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사실 일종의 제안에 가까운 글이지요. 좀 더 정중한 방식으로 글을 쓸 수는 없었을까요, 라는. 음.. 제가 잘못 생각했거나, 혹은 제가 유별나게 감수성[..]이 예민해서, 저 정도 표현은 충분히 용납가능한 수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는 저런 표현의 정도는 지나치지 않은가, 라고 생각이 드네요. 진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자 한다면 한 발짝 물러서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좋으리라고 빵가게재습격님이 제언을 해주셨는데.. 저렇게 표현을 들었는데 어찌 한 발짝 물러서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괜한 글을 더하여 죄송합니다.

 

...라는 글을 지난번 리뷰 말미에 적었다가.. 정말로 괜한 글을 더하는 듯 하여 지워버렸지요.

최근에 다시 한사람님께, 라는 글을 올리셨는데.. 이번에는 제가 한 번 한사람님과 신지님의 논쟁에 대해 조금 생각이 든 것이 있어 이렇게 글을 끄적거립니다. 한사람님에 대한 비판은 신지님이 해주셨으니.. (비판이 모두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부분은 맞기도 하고, 여러 분들이 비판이 초점을 잘 맞춘 것 같다고 댓글을 달아주셨으니 말을 더할 필요는 없을 듯 하네요.) 아무래도 이 글의 초점은 신지님에게 맞추어질 듯 합니다. 불쾌하실수도 있을 거라 여겨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신지님의 글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첫 문장부터이지요. '빵가게님이 거듭 사과하고 나서 님이 첨부하신 글을 봤는데' 라고 되어있지요. 그리고 그 후에는 발췌한 글이 나옵니다만.. 저는 처음에 글의 발췌한 부분에서 보라색으로 강조하신 부분이 빵가게님의 사과 후에 첨부된 문장으로 생각했었습니다만.. 다시 훑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발췌하신 부분에는 사과 전에 적힌 문장과 사과 후에 수정하여 덧붙인 문장들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엄밀하게 한사람님을 비판하고 싶으시다면 사과 후의 문장과 사과 전의 문장을 구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그렇게 하셔야만 문장 말미에 적으신 '돌변하신' 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지요. (물론 사과 전의 문장을 가지고도 잔인하다, 라는 평을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나의 리뷰' 라는 글은 일단 한사람님과 빵가게재습격님의 논쟁에 대한 일종의 '책'을 읽고 쓴 독자 리뷰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과연 이런 논쟁이 신지님이 말씀하신 '독자 리뷰'에 바로 해당될 수 있는가, 에 대한 고찰이 부족한 듯 합니다. 사실 신지님 입장에서야 '난 책을 읽고 썼어' 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은 사실 살아있는 책이라서, 혹은 저자가 같은 공간에 위치한 책이지요. 단순히 우리가 비평글을 읽고 저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과는 다른 상황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제가 미흡하나 신간평가단을 하고 있는데, 이 신간평가단 도서 중에 '뿌리깊은 글쓰기' 라는 책이 채택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뿌리깊은 글쓰기'의 저자분께서도 이 알라딘에서 활동하고 계시지요. 그래서 솔직히 글을 쓰는데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괜스레 비판을 하면서 죄송스러운 기분도 들었고 말이지요. 물론 맞는 말을 하는데(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왜 죄송스러워해야 되냐, 라고 여기실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그렇다면 정녕 하나도 죄송스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이는 표현의 수위의 문제가 되겠지요. 제가 뿌리깊은 글쓰기, 를 리뷰하면서 '이건 말도 안돼' 라고 말하는 것과 '이 부분에서는 이러이러한 것이 낫지 않을까요?' 라고 글을 쓰는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날 듯 하니 말입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얼마나 상대방의 마음에 잘 전달될 수 있는가, 도 분명 이런 논쟁을 하는데 있어서 구성 요건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설령 저자가 안보더라도 표현을 과하게 하여 리뷰를 쓴 적은 없긴 합니다만.. 이는 위선이 아닌가? 저자가 안보면 멋대로 욕하고 저자가 보면 좋은 말로 포장하는가? 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습니다만, 이전 글에서 신지님이 언급하셨던가요, 우리는 모두 이 알라딘에서 '실체'를 가진 존재들이라고 말입니다. 이 '실체'가 언급된 부분은 악플러에 관한 이야기를 비판하시던 도중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이는 한편으로는 '실체'가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신지님 본인도 인지하고 계시는 부분입니다. '알라딘에서 조금만 실례를 해도 미안해하곤 한다' 라고 말이지요.  비단 알라딘 뿐만 아닙니다. 다른 커뮤니티도 마찬가지겠지요. 설령 위선이라고 불릴지라도 당장 앞에 있는 '실체'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지요.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면 신지님은 자신의 글에 대해서 반박 혹은 무시, 또는 참고, 라는 세 가지 방법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사실 이 책이, 정말 '책' 이라면 충분히 옳으신 말씀입니다. 같은 책을 읽고 리뷰를 한다면 말이지요. 하지만 이는 .. 거친 비유를 용서하세요, 그러나 사람을 때린 다음에 '야, 너도 때려' 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그리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맞은 다음의 '실체'인 사람이 꼭 같이 때리는 방법만 택할 것 같지는 않네요. 그렇다고 다른 방법인 참고를 하거나 무시를 하는 방법을 꼭 택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말이지요. 내가 이렇게 말했으면 너도 억울하면 반박해봐라, 라는 것..과 크게 차이점이 있을런지요. 반박을 안하겠다면 참고를 하던가 무시를 하던가.. 라는 말씀이신데, 알라딘 서재 메인에 걸려있는 글을 보며, 그리고 그 글의 늘어나는 추천수를 보면서 '실체'인 사람이 참고만 하거나 무시를 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럼 또 반박을 하고 싶은데, 반박을 하자니 또 마음이 내키지 않고..(혹은 반박을 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요) 마음이 내키지 않지만 무시하기는 어렵고.. 뭐, 그런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자, 여기서 표현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신지님은 표현의 자유는 어찌되었던 허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그 내용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고 여겨진다면 표현의 수위는 아무래도 좋다, 적어도 나꼼수, 정도로 말을 해도 좋다, 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신지님 본인의 글이 나꼼수보다는 덜하다, 라고 여기시는 것으로 보아 그 상한선을 나꼼수로 여기고 계신다고 보았습니다.) 일단 제가 글에서 읽기로는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에.. 위의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제가 입장을 잘못 생각한 것이라면 신지님께서 댓글로 달아주셔도 무방합니다.) 사실 저는 고백하자면 나꼼수를 안듣습니다. 그래서 한사람님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7화까지만 듣고 더 들을 수가 없어서.. 네, 표현의 문제때문이었지요. 아무리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까지 희화화를 해야 되는가, 라는 생각을 내심 품었던 터라 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상황은 이정도로 밝혀두고, 하나씩 살펴보면, '나꼼수의 기반은 표현의 자유다', '한사람님은 나꼼수를 자주 옹호했다', '그러므로 한사람님은 나꼼수만큼의 표현을 참아내어야 한다' 라는 상황인 듯 합니다. 아래에 남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 말라거나, 반론의 기회를 주자, 라는 말씀은 사실 그 내부에 표현 수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지요. 너무나 당연한, 그야말로 정론이니깐요. 그런데 그 윗부분까지의 상황은 어쨌든 한사람님이 평소 말했던 것과 지금의 행동은 다르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렇게 질문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평소에 나꼼수를 열심히 옹호했으니 나꼼수 정도의 표현으로 비판을 받아도 좋은가? 라고 말이지요. 저로서는.. 이 정도로 논쟁간에 표현이 허용되어야 할 지 의문이 듭니다. 물론 한사람님의 수정한 글을 제가 제 때 보았다면 (수정을 하셨을거라고 생각을 못했었기에 서재에 들르지 않았었습니다.) 분명 한사람님의 글에도 지금과 비슷한 이야기를 남겼겠지요.. 그리고 나꼼수와 지금 상황이 솔직히 같지는 않다고 여겨집니다. 나꼼수는 개인마다 정의가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전에 직설, 이라는 책에서 읽었듯 고문을 받기 위하여 손과 발을 다 묶어놓았을 때, 정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침'이라도 뱉는.. 그런 프로그램이라고 여겨집니다만, 신지님의 상황이 과연 손 발이 모두 묶여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한사람님이 빵가게재습격님에게 그렇게 '나꼼수'처럼 비판을 했다고 해서 신지님이 한사람님을 '나꼼수'처럼 비판하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못하겠지요.

 

저의 생각은 위의.. 리뷰 말미에 덧붙이려고 했던 말에서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한사람님이 다 잘했다,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만약에 한사람님이 지금 신지님의 입장이라면 저는 지금보다 더 주저없이 한사람님에 대하여 이 부분은 그르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씀을 드리겠지요. 그리고 신지님의 글을 읽으며 한사람님에 대한 비판이 합당한 부분이 분명 있다고 여기기도 했었고 말입니다. 게다가 이후의 한사람님의 행보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지님이 한사람님에게 단순히 불만을 토로하시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것 뿐이라면 굳이 앞서 세 가지 방법인 반박, 무시, 참고, 를 제시하시지는 않았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만약에 어떤 반응을 듣고 싶으신 거라면.. 좀 더 정중한 방법도 분명 택하실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한사람님이 신지님의 불만을 듣고 (단순히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바꾸기를 원하시는 거라면 좀 더 효율적인 수단이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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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2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2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3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3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지 2012-04-26 10:46   좋아요 0 | URL
가연님, 의견 주셨는데 답변이 늦어진 이유는, 말씀에 대해서 크게 불만스러운 부분이 없었고, 생각이 잘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뭔가 해명을 하고 대답을 하다보면 불필요하게 논란이 확산될 수 있어서 답변을 못 드렸습니다. 생각해보니 이제와서 답변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제 잘못도 눈에 들어오고, 저로서도 이번 일이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어서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추천 하나는 접니다^^ 너무 성의있게 말씀해 주셔서요^^)

가연 2012-04-26 15:48   좋아요 0 | URL
음.. 사실 저는 이번 일이 일찍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만, 결국 이렇게 되어서 안타깝습니다. 답변이 늦어진 것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드리고 싶었던 말들은 위 글에 다 적어놓았으니 굳이 더하지 않을 것이나, 다만 앞으로는 이런 논쟁이.. (사실 어느 정도는 논쟁이 불필요하게 과열된 부분이 있다고 보기에) 줄어들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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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에 관한 검은책
에마뉘엘 피에라 외 지음, 권지현 옮김, 김기태 감수 / 알마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검열에 관한 검은책.

 

 

 

 

  이 검은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왜 검열을 하는가?’ 이었습니다. 책에서 나오는 검열의 많은 주체들, 정부나 종교 단체들, 그리고 언론들은 왜 검열을 할까요? 이는 아마 두려움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검열을 하지 않았을 때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검열의 대상이 된 내용이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을 때 예상될 수 있는 전개들에 대해서 말이지요. 물론 단순히 두려움이라고만 해둔다면 너무 두루뭉술하겠지요. 여기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분석을 해봅시다. 우리는 두려움을 언제 느끼게 될까요? 스피노자가 두려움에 대해서, 그리고 여러 감정들에 대해서 분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그에 따르면 자신이 두려워하는 큰 악을 더 작은 악으로 피하려는 욕망을 갖도록 자극되는 슬픔이라고 하지요. 일단 저는 이 스피노자의 분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에 따라 과연 검열이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일단 두려움 때문에 일어난다고 가정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검열은 더 작은 악, 에 해당하며, 검열당하는 주체는 큰 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것이지요. 작은 악이나 큰 악이나 ‘악’ 이니 옳지 않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겠지만, 단순히 악이라고 뭉뚱그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또 의문이 생길 수 있겠지요.

 

 

  책에서는 각 장에서 검열에 대한 사례를 들어가면서 그 결론을 ‘정말 미묘하고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검열은 좋지 않다’ 로 매듭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전반적으로 밝히고 있듯 검열이 정말 필요하지 않은가, 라는 문제에 다다르면 다시금 위의 큰 악과 작은 악의 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열을 하지 않는 게 과연 좋을까요?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허용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도리어 검열을 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맹수를 풀어놓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혹은 애초에 두려움 때문에 검열을 한다는 전제자체가 옳지 않은 것일까요? 하지만 그 검열 대상이 꼭 ‘자유’와 같은 지배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계층의 입맛에 맞지 않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소아성애’와 같은 것은 특히 미국에서는 엄격하게 처벌을 하고, 엄격하게 검열을 시행합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리뷰의 형식을 빌려 책에서 나누어 놓은 검열의 분류에 대해서 그 사례를 될 수 있는 대로 (여간하면 우리나라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찾아서 기입해보려고 합니다.

 

 

1. 자기검열.

 

 

  자기검열의 정의는 ‘아무도 강제하지 않지만 위협을 피할 목적 또는 타인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할 목적’ 으로 자신의 표현을 억제하는 행위입니다. (위키피디아) 이런 자기검열의 예는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중인, 그리고 다른 글들을 써왔던 저 자신만 해도 많은 자기검열을 하니 말입니다. 일단 저의 글을 지금껏 읽어오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저는 책에서 내용을 부분 발췌하는 것도 피하는 편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저작권 위반이 두려워 그렇게 하는 편이지요. 물론 이렇게 부분 발췌한다고 해서 실제로 고소가 들어갔다거나 하는 사례는 본 적은 없지만 말입니다. 또한 넷 상에 올리는 글은 여간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요. 제 글로 인하여 타인의 감정이 상할 가능성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 라고 여기더라도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상처의 감수성이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굳이 상대방을 언급해야 한다면 표현을 최대한 정제하여 쓰려고 노력합니다. 넷에서 글을 올린다는 것은 현실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달리 오직 글 하나로만 상대방에게 대화를 건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 이야기를 나누는 데 있어 조심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자기 검열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조금씩 좀먹고 있다고 말이지요.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그르지는 않습니다. 언론의 예만 들어도 자신들의 기사에 대한 후폭풍이 두려워 검열을 하는 경우가 많을테니 말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생깁니다. 언론과 같은 단체와 개인의 자기검열이 동일하게 취급되어야 하는가? 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동일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넷 상에서 표현해도 옳은가, 라는 의문도 남습니다. 타인의 감정이 두려워 자기검열을 하는 것을 가식이라고 불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가식이 싫다면 활동할 수 있는, 정말 가식 없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지요, 디씨인사이드와 같은 사이트 말입니다. 그렇다면 언론은 자기검열을 하지 않아도 될까요? 광고주나 권력의 눈치를 아예 안 보는 것이 사실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러기가 어렵기도 하니 말입니다.

 

 

2. 인터넷 검열.

 

 

  인터넷에서의 자기검열은 앞서 자기검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어느 정도 적은 듯 하고,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중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중국은 (반어적으로) 정말 대단한 나라입니다. 인터넷을 검열하는 나라이니 말이지요. 물론 중국도 중국 나름대로 청소년들을 유해 정보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이 있겠지만 천안문 사태와 관련된 천안문과 같은 키워드가 중국에서 쓰이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리 설득력이 있지는 못합니다. 인권이라는 말도 필터링된다고 하지요. 이 책에서는 정작 포르노에 관한 규제는 느슨하다고 합니다. 인권은 적어도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포르노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중국에 현재 대항하고 있는 포탈이 구글이긴 합니다만, 결국 구글도 무릎을 꿇게 됩니다. 결국 2010년에 이르러 구글은 검열에 항의하면서 사업 일부를 철수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구글의 회장이 최근의 CeBIT 기조연설에서 밝혔다시피 온라인 검열은 실패할 것입니다. 사실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요, 하하. 그런데 이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라는 말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 마라, 라고 규제를 한다고 해서 꼭 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즉, 규제를 지키는 것은 결과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을 수 있다,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정부의 검열이 앞으로는 주체가 되지 않을 것이며 민간으로 그 검열권들이 넘어갈 것이다, 라는 의미를 내부에 함축적으로 담고 있으니 말입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아마 법이나 어떤 당위성으로 인하여 표현을 자제하는 일은 점차적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검열관이 되는 것이지요. 서로가 자신들이 선택한 행동에 대해서 판단하는 그런 사회가 도래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여겨봅니다. 정말로 책에서 말한 것 처럼 ‘검열자의 역할도 민주화된’ 것이지요.

 

 

3. 경제적 검열.

 

 

  경제적 검열에 대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는 스마트폰 갤럭시 S II에 관한 이야기를 들 수 있겠습니다. 어느 기사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삼성의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은 김 모씨가 리뷰한 갤럭시 S II의 단점 9가지에 관한 글이 명예훼손이라는 사유로 삭제를 요청했다고 되어있지요. 그런데 사실 이 기사만 가지고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김 모씨가 리뷰한 단점 9가지가 과연 객관적인지는 이 기사만 보고 판단하기 어렵지요. 그리고 파워블로거들에 관한 문제들도 빼놓을 수 없고 말이지요. 제 개인적인 사견을 먼저 밝히자면, 사실 저 김 모씨의 글은 잘 이해가 안가는 편입니다. 갤럭시 S II와 아트릭스를 비교하여 갤럭시 S II를 비판하고 있습니다만, 가장 먼저 단점으로 지적되는 디스플레이에서, 갤럭시 S II의 이전 모델인 갤럭시 S가 펜타일 방식을 채택하였을 때 많이 비판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 펜타일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비판을 받고 있지요. 반면 펜타일 방식을 채택한 아트릭스는 상대적으로 뛰어난 것처럼 적혀있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일단 제 사견이며, 본 주제인 경제적 검열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은 성급하게 반응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의견에 대해서 결과적으로 검열한 모습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게 되면 판매량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그 소문의 출처가 소위 말하는 파워블로거라면 더욱 더 주의할 수밖에 없었다, 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앞서도 말했다시피 앞으로의 검열은 개인과 개인간의 판단의 문제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이 되며,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반박하는 의견이 올라오고 논쟁이 일어났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결국 저 사건은 삼성이 파워블로거들을 초대하여 제대로 된 리뷰를 하기로 한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고 합니다.

 

 

4. 미풍양속에 대한 검열 및 청소년 보호와 권력에 의한 검열

 

 

  일전에 G20 정상회담이 있었지요. 그때 그 회담의 홍보포스터에 쥐 그림이 그려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그림을 그려 넣은 대학 강사는 처벌을 받았는데, 검사는 법정에서 ‘우리 국민들과 아이들로부터 청사초롱과 번영에 관한 꿈을 강탈’ 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했지요. G20 방해의도가 숨어있다는 주장도 했었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의문이 남습니다. 쥐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해서 과연 아이들의 번영에 관한 꿈을 뺐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과연 방해의도가 숨어져있었던 것일까요? 과연 쥐, 가 의도하는 상징의 의미가 저렇게 미풍양속을 해치는 의미만 있는지 갸웃거릴 수밖에 없지요. 우리나라 문화권에서 쥐는 일종의 번영의 상징으로도 해석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청소년 보호에 대한 검열이나 미풍양속에 대한 검열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포르노 등과 같은 성인 매체에 청소년들이 무분별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놓아두는 것은 글쎄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지요. 청소년들에게 모든 정보를 열어두고 ‘자, 너희들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해라’ 라고 한다면 과연 적합한 것일까요. 그러지 않아도 성에 대한 관심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사춘기에서 청소년들은 성인의 주민번호를 빌려서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말입니다. 그나마 그 장벽마저도 없어진다고 상상해보면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런데 여기서 또 반대되는 사례가 있으니 이전의 MBC의 게임과 폭력성에 대한 뉴스데스크의 보도입니다. 기자는 PC방에서 컴퓨터의 전원을 모두 내리고는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게임과 폭력성과 상관관계가 있다, 라고 말입니다. 정말 많이 다뤄진 이야기이니 간략하게만 이야기하자면 저 사례만으로는 게임과 청소년 폭력성과는 관계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이를 근거로 청소년들을 위한다는 전제 하에 게임에 대한 검열을 강화할 수는 없지요. 최근 논란이 된 셧다운 제도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5. 종교로 인한 검열과 소수자 집단.

 

 

  고등학교에 재학할 때 어느 친구가 저에게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를 보여주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슬람교에 대하여 상당한 비판을 가하지요. 고교 재학시절에는 이 책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몰랐고, 왠지 제목이 악마의 시, 라기에 무언가 ‘있어 보이는’ 느낌에 조금 읽어내려 갔습니다만 뒤에 이 책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고 한편으로는 섬찟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현재도 사형 선고가 내려져 있지요.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형 선고는 유야무야되어있지만 말입니다. 이는 종교로 인한 검열의 사례로 충분히 볼 수 있겠지요. 또한 이 책에도 제시되어 있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영화와 같은 매체나 방송 매체, 그리고 예술의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대립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전에 이단, 이라는 화가가 자신의 누드와 불교 문화재를 오버랩하여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 때문에 조계종의 항의를 받기도 하였고, 인기 소설이었던 다빈치 코드에 대해서는 기독교계의 항의가 거세었지요. 이전에 텔레비전에서 대형 교회의 세습에 관한 문제를 방송한 적이 있었던가요, 그런 사건에 대해서도 항의가 끊이지 않습니다. 소수자 집단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소수민족에 관한 문제는 Melting pot이라고 불리는 외국의 사례들에 비하면 적겠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에 관한 문제,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문제 등과 같이 소수집단에 연관된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실정입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미묘한 문제라 한 쪽의 검열을 정당화하면 다른 쪽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모든 상황을 고려해보고 다시금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공중 보건으로 인한 검열 부분도 있지만 그 부분은 줄이겠습니다. 담배와 같은 경우가 그런 검열의 사례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검열에 관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어느 문제든지 모두 미묘하고 경계에 걸쳐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이 검열에 대한 생각도 앞으로 자라면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허용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로 넘어가기도 할 것이고 말이지요. 어려운 문제이지만 전혀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없지요. 이런 예들을 볼 때 이 책의 의의는 이런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것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p. s. 솔직히 글을 쓰는 것에 의욕이 좀 없어서 고생했네요.

        신간평가단 마지막 도서였는데 홀가분한 기분이 들어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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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9-22 00:12   좋아요 0 | URL
검열,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때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만 고를 수 없는 일이 많지요
그런데 사람은 다 자기검열 하지 않나요
저는 일기 쓸 때도 그럽니다 언젠가 한번은 안 좋은 마음에 대해 쓸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생각뿐이고 쓰지 못했습니다
그때가 가면 거의 잊어버려서...^^
생각하는 것을 모두 다 글로 쓰기가 쉽지 않기도 하죠

옛날에 억지스러운 해석을 한 것들이 떠오르기도 하는군요
노랫말이나 글에 대해서...
이런 것은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거죠
그런 일이 지금이라고 다 사라진 것은 아니군요

이것은 정말 미묘한 것입니다^^


희선

가연 2013-09-23 17:48   좋아요 0 | URL
와 이 글에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시다니ㅎㅎㅎ 감사합니다. 정말 옛날 글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자기검열을 정말 많이 하는 편이나.. 요즘 읽는 책을 보면 뭐든지 털어놓는게 차라리 나을 수 있다, 라는 말들도 있어서, 풋. 하지만 인터넷 세상인 이상 자기검열은 어쩔 수 없는 것.. 싶네요 말씀하신대로 정말 미묘한 게, 예전엔 외부의 힘이 표현의 자유를 막았었다면 이제는 내부의 검열이 표현을 막아버리는 경우가 많네요. 물론 그 검열의 밑바탕에는 외부의 힘이 깔려있다고 하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