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교보문고 나들이.. 날씨가 참 좋아서 어디를 갈까, 하다가

그나마 가까운 교보문고에 잠깐 들렀다왔다.

이제 정말 여름인가? 봄 같지도 않은 봄은 잠깐 흔적만 남겼을 뿐이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서점에서 보다가 키득거렸던 책. 뭔가 있어보이는 책 처럼 제목을 달았지만.. 살펴본 나로서는 그저 오타쿠 보고서다. 좀 더 정제해서 말하자면, 책에서도 저자가 밝혔다시피, 오타쿠의 눈으로 본 일본 문화들이다. 그 문화들은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나 라이트노벨과 애니메이션으로 세분화되고, 또한 서로 경계를 넘나들며 융합하며 일본의 대중 문화의 흐름을 형성한다. 이를 파악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중요하다면 중요한 의미를 차지할 수 있겠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라이트노벨이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이 많으니(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그 영향이 작다고는 여길 수 없으리라. 왜 시드노벨과 같은 출판사가 생겼겠는가? 그런데 이 책은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일종의 오타쿠 보고서라서, 안에 실려있는 예시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평소에 애니나 라이트노벨을 많이 봤던 사람이라면 나처럼 키득거리면서 볼 수 있겠지만 어떤 비평서로 생각하고 집어든 사람들이 '쓰르라미 울적에'나 '월희' 등을 알겠는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또 어떻고? '부기팝' 이 뭔지 알겠는가. 그리고 우리 나라 사정에는 좀 안맞아 보이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이런 오타쿠 문화에 대해서 애니로라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동인지를 사기 위해서 왜 줄을 길게 서는지 등의 경험을 간접적으로라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왜 오타쿠가 일본 대중 문화에 있어서 한 흐름을 차지 할 수 있는가, 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름 진지한 비평을 위해서 준비 작업을 많이 한 모습이 엿보이지만.. 글쎄, 예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고, 예시를 지나치게 잘 아는 사람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상당히 좋은 책이라고 여겨진다. 도발적인 제목이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저런 제목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뭐랄까, 광고효과와 주제의 적절한 담합이라고 말해야 할까? 세상의 진보를 이끌어온 것은 폭력과 성, 그리고 먹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주제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책의 저자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책의 첫 부분에서는 패리스 힐튼의 동영상[..]과 걸프전에서 이용된 무기를 연관시킴으로서 저자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껏 기술을 주도한 것이 위의 세 개라면 자연스레 이는 이런 의문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앞의 세 개가 이끌어낼 미래의 기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라는 의문말이다. 그런데.. 글쎄, 나로서는 상당히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만 들 뿐이다. 이런..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뇌의 쾌락중추를 자극함으로써 섹스를 해결하고 실제로 영양은 수액으로 공급을 하고 맛은 그 맛을 자극하는 신경만 건드리며 사람들은 컴퓨터에 둘러싸여 다시금 전쟁 무기만 개발하는.. 해양 탐사나 우주 탐사와 같은 기술들은 모두 전쟁이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서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고 말야. 오, 신이시여.

 

 

 

마르크스, 아프냐고 묻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좀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은 인문학을 섞는게 대세인 모양이다. 인문학의 위기, 위기 라고들 하지만 이렇게 인문학이 여러 곳에서 감초처럼 쓰이고 있는데 진짜 위기일까? 일단 이 책은 정말 읽기가 쉬운 책이다. 다양한 예시들, 영화나 매체들을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어와서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데도 성공한 책이다. 그리고 적절하게 마르크스의 이야기도 함께 섞어놓았으니 이 책만 읽어도 뭔가 배부른 느낌이 들 것만 같다. 하지만 읽어보면 다른 수많은.. 이런 비슷한 류의 책들이 하는 이야기들과 크게 차이가 또 없는 것 같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 라던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니 등등.. 그리고 소외에 관한 이야기까지.. 이는 그 옛날 중국 고전에서부터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물론 소외에 관한 이야기는 좀 논외일 수도 있겠다.) 인문학적인 사유를 섞을 생각이라면 끝까지 인문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혹은 엄밀하게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야기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엄밀하게 그의 경제론과 사상을 풀어가는게 좋지 않았을까? 물론 전자를 택하면 그다지 특이한 책이 되지는 못할 것이고, 후자를 택하면 선뜻 구매할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지만 두 개가 섞이고 나니 뭐랄까,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앞서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자면, 나는 여전히 인문학이 위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섞이면 섞일수록 우리는 사유의 힘에서 조금씩 멀어질 것이며 감초처럼 곁들어진, 감정을 건드리는 인문학만을 인문학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척추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현대물리학이 답하다.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도 제법 흥미로운 책이다. 사실 번역본의 제목은 정말 맘에 안들지만.. 원제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원제는 영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From eternity to here' 인데,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번역본의 제목 처럼 '시간과 우주의 비밀' 이 답해지지는 않지 않을까. 시간과 우주의 비밀을 답했다면 이 책을 쓴 저자는 지금쯤 노벨 물리학상과 평화상 등 수많은 상을 탔을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이 특히 신경 써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현대 물리학의 난제 중 하나인 '시간의 화살' 인데, 시간의 화살, 이라고 이야기하니 왠지 베르그송이 생각이 난다. 순수지속시간말이다. 이 시간의 화살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화살이다. 우리는 아직 미래로 건너 뛸 수 없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현재라는 화살 위에 실려서 미래로 향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화살은 시간의 일방향성을 드러내주는 좋은 문구라고 하겠다. 그런데 왜 시간은 이렇게 한쪽으로만 흐를까? 그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면으로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 뒤에는 초끈 이론 등도 다루고 있는 듯 하니.. 시간 들여서 읽어볼만하겠다. 그리고 사족 하나. 요즘 물리학자들은 정말 다양한 매체를 접하는 것 같다. 혹은 글을 잘 쓰는 것 같다.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역사적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에서부터, 현대적으로는 영화나 소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시를 들어오고 있다. 흥미롭다.

 

 

 

p. s. 늑대와 향신료, 가 읽고 싶다..ㅠㅠㅠㅠㅠㅠㅠ 도대체 완결까지 언제 나오는 거지?

        이 글을 쓰는 동안 들은 시드 사운드, 여래아, 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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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4-30 12:03   좋아요 0 | URL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는 저도 관심을 두고 있는 책이었는데요, 제가 다 읽을 수 있을지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구입은 미루고 있지만 말이죠.

그런데 저는 [늑대와 향신료]가 뭐지, 해서 부랴부랴 검색을 해봤지 뭡니까. 오, 이것은 만화책이네요. 울 정도로(ㅠㅠㅠㅠㅠ) 보고 싶은 만화라면, 그러니까 이 만화책은 정녕 엄청나게 재미있단 말입니까? 그래요?

가연 2012-04-30 13:39   좋아요 0 | URL
저도 끝까지 못읽어서ㅎㅎ 하지만 괜찮은 책이라 보여집니다. 사실 이 페이퍼는 이 책을 끄적거리려고 쓴 글이라는.. 비하인드 스토리가ㅎㅎ

쓰다보니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에 대해서 더 많이 끄적거렸는데 늑대와 향신료, 는 바로 저 게임적 리얼리즘, 에서 다루는 라이트 노벨로 나온 책이랍니다. 완전 재미있어요. 물론 애니로도 나오고 코믹으로도 나와있지만.. 원본은 역시 책이죠, 풋. 여자분들한테는 그다지 재미없.. 저같은 더, 덕..이 풍부한 사람들이라면 여주인공이 너무 예뻐서[..] 행동이 잔망스러워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