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이 책은 그냥 묻히기 아깝다, 라고 생각되는 책들을 다섯 권 꼽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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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서 특이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보통 그 물리학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지점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블랙홀같은 경우를 물리학에서는 특이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무한히 수축한 점과 같지만 동시에 중력이 무한대에 달하여, 그 어떤 물리학 이론도 그 지점에서는 갈기갈기 찢기고 만다. 또다른 특이점이라면 역시 태초에 있었으리라 짐작되는 빅뱅의 시초점을 들 수 있으리라. 물론 스티븐 호킹은 우주에는 시작도 없었다, 라는 주장과 함께 허수시간을 도입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빅뱅의 이미지는 하나의 무한하게 작고 무한한 에너지를 가진 점이다. 이 시초점에서도 우리는 어떠한 이론도 적용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이론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현실을 기술하고, 그 기술한 모델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예측을 가져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저런 특이점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내 이론은 완벽하다, 라고 눈을 돌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실제로 현실에는 블랙홀이 존재하고, 거의 확실히 빅뱅이 일어났으리라고 높은 확률로 예측되어지고 있다. 이런 모순으로 가득찬 것도 현실의 일부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물리학에서는 이런 특이점들을 기술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섭동의 방법을 쓰기도 하고,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통합을 통하여 어떻게든 돌파구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물리학에서는 특이점이 일종의 해소해야만 하는, 현실에 존재하는 모순덩어리이다. 눈을 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눈을 돌리지 않을 수도 없는. 그런데 이런 특성은 기술사학에서 쓰이는 특이점, 이라는 용어가 가진 특성과 매우 흡사하다. 기술사학과 물리학의 특이점은 그 쓰이는 용도 자체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성은 비슷하다는 이야기이다. 기술사학에서의 특이점은 인간의 기술이 너무나 발전하여, 이윽고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경지에 이른 상태를 가리킨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만, 이 스마트폰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작동을 하게 되는지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직업적으로 스마트폰을 만들지 않는 한 말이다. 아니, 설령 만들더라도 분업화된 현재 산업체계에서는 그 기술의 산물에 대한 완전한 이해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특이점을 모른체 넘어가고 싶고, 특이점에 대하여 신경도 쓰지 않지만, 어느새 우리는 그 특이점에 둘러싸여 있고, 따라서 어디에 눈을 두더라도 우리는 그 산물을 만나게 된다. 이런 특이점은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위의 특이점이 온다, 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의 경우 긍정적으로 특이점을 여긴다. '미래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노기술들과 인공지능은 스스로를 보수하고 더 발전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긍정적인 전망을 물리학자인 미치오 카쿠도 이어받아, 자신의 저서 미래의 물리학에서 마음껏 그 전망을 펼친다. 심지어 마지막에 이르면 소설까지도 쓰고 만다. (문자 그대로의 이야기이다. 마지막에 아직 다가오지 않은, 하지만 자신의 예측에 따라 찾아오리라 짐작되는 일상에 대한 소설을 썼다.)

 

하지만 미래는 정말 이렇게 장미빛일까? 두려움은 없다, 에 나오는 수많은 미래학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은 위기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식으로든 여기서 노력을 해나가야만 한다, 라고 말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이들이 말하는 위기나 파국은 '이런, 위기에 빠졌어, 파국을 맞이했으니 우리는 멸망할거야' 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어원 그대로 (파국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시절의 전차경주에서 가장 위험한 주로를 가리킬때 쓰이는 용어에서 왔다고 한다.) 운동상태에서 어떤식으로든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들도 완전히 부정적으로 미래를 보지는 않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에 따라, 그리고 우리의 노력에 따라 미래는 장미빛이 될 수도, 우중충한 구름에 뒤덮힐 수도 있다는 것이 저 책의 미래학자들의 요지이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 미래학자들은 우리가 지금 노력해야 한다, 올해가 변곡점의 해이다, 등의 이야기를 하는데 구체적으로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만다. 만약에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됩니까?' 라고 묻는다면 이들은 추상적인 이야기를 할 것이다. 협력을 늘리고, 자연을 생각하라, 라고. 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하지만 어떻게 협력을 하고, 어떻게 자연을 생각하라고 하는지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거기에 대해서 미래학자들은 너희가 스스로 알아서 생각해야만 한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또 똑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이들은 환원적 방법을 비판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환원적 방법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야 만다. 이럴바에야 그냥 특이점이 찾아오더라도 그 산물을 그대로 즐기고 머리아픈것은 잊어버리는게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말하자면 두려움은 없다, 에 나오는 미래학자들은 이런 상황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고, 정답을 이야기하지만, 그 정답이 받아들여질만한 때가 아니다. 환원적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왜 그런 비판을 받으면서도 의학이나 생리학 등의 과학에서 그 방법을 사용하겠는가? 왜 구조의 특성을 밝히고 새로운 단백질, 유전자 등을 조사하겠는가? 그냥 아,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고 유기체이다, 전체를 살펴보아야한다, 라고 말하면 과학자들도 얼마나 편하겠는가?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왜 그럴 수가 없겠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전체를 다 살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쁜 꼬마선충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저 꼬마선충을 해부하고 유전자 서열 분석을 한다고 해서 그게 꼬마선충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다다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꼬마선충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냥 선충이네, 길쭉하네, 눈에 안보이니 신경쓰지 말자, 라는 지식만 얻고 싶은가? 

 

아직 환원적 사고방식을 비판할때가 아니다. 감히 말하건대 환원적 사고방식이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를 경우 전체적 사고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아직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아직은 답지를 미리 넘겨볼때가 아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없다, 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적어도 우리가 현재 서 있는 위치에 당면한 두 가지 큰 문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을만하다. 하나는 빈부격차이고, 하나는 지구환경문제이다. 그 어느 것도 미래의 물리학, 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자각이 없으면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자각은 어떤 식으로든 특이점을 맞이하였을때, 에라 모르겠다, 그냥 살자, 와 같은 태도가 아니라, 그 특이점에서 이것은 무엇일까, 저것은 무엇일까, 와 같은 관심에서 시작될 것이다. 특이점에서 발전된 기술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은 환원적 사고방식으로 계속 과학 지식을 쌓아올리도록 놓아두자.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 인간의 감성, 존엄과 관련된 - 제대로 주장하고 요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다고 던져버린다면 우리는 기술에 사로잡힌 망령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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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실 거의 알라딘 서재에는 안들어온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개인적인 일때문에 안들어오게 되니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기가 힘들어졌다. 개인적인 일을 드러내고 싶지 않지만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그런 개인적인 일들인데, 그 일들을 빼놓고 글을 쓰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 서재는 내 일상생활의 배출구가 아니다. 여기에서는 다만 책 이야기만 하고 싶을 뿐이다. 서재에서 내가 무슨 일을 겪었다, 등을 시시콜콜하게 늘어놓는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로잡고 있는 그 일은 너무 커서 나를 놓아주지를 않는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책을 최근에 그럭저럭 읽고 있는데, 너무나도 내가 모르는 것이 많기에 글을 쓰기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예전에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책을 쓰고 대중이 그것을 읽었지만, 지금은 대중이 책을 쓰고 그 책은 아무에게도 안읽힌다. 이걸 오늘날에 적용시키자면 지금은 정보가 난무하지만 정작 제대로 읽'힐'만한 글은 별로 없다.

 

내 글도 그런 수준의 글에 그친다면, 과연 그런 글을 끄적거려서 인터넷공간의 바이트수나 차지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정말 글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책은 무한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모르는게 많다.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현실에는 정말 내가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다. 겉만 슬쩍 찔러보는 수준으로 아는 지식에 지나지 않는 것들도 많기에 항상 부끄럽다. 그래도 정말 가끔씩 이 책에 관한 내용은 조금 적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좋아하는 책이 항상 리뷰를 쓸만한 책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에, 아마도 이런 내용은 그나마 공익적인 - 위의 '누구나 게임을 한다'에서 분석했듯 더 큰 목표를 위해서 쓰여지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이 책을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읽어보았으면 한다는 그런 주제넘는 바람.

 

마크 트웨인이 인구에 정말 많이 회자되는 - 누구나 이름은 알지만 읽지는 않는 - 명언으로 고전을 정의한 바 있지만, 나는 고전에 있어서 좀 더 일반적인 정의를 적용하고자 한다. 고전, classic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읽힐만한 가치가 있고, 시대가 지나도 그 향이 변하지 않으며 각종 생각의 기초가 되는 그런 책으로 말이다. (classic이 내 기억으로는 언어학적으로 그 기원을 따져볼때 선박, 이라는 classis에서 온 말이었던 것 같다. 이 선박이 왜 고전이 되었는가, 를 살펴보려면 당시 로마 시대의 시대상과 따져보아야 되는데, 자신의 돈으로 선박을 구입해 국가에 쾌척할 수 있는 사람을 classicus라고 부르고, 이들이 일종의 국가의 기초를 마련한다고 보아서 고전, 이라는 의미가 붙었던 것으로 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근대의 가장 뛰어난 고전을 네 가지 들어보자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의 특수이론과 일반이론(논문을 말하는게 아니라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에 대하여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쓴 책을 말한다), 그리고 다윈의 종의 기원을 들 수 있고, 마르크스의 자본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이 바로 그런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위의 호모 루덴스 또한 고전이라고 부를만한 위치에 놓인 책이다. 부제를 보면 놀이와 문화에 대한 한 연구, 라고 적혀져 있는데, 보통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문화의 부분이 놀이같은데 이 책에서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놀이'와' 문화다. 놀이와 문화가 서로 동등한 위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위징아는 자신의 주장, 놀이와 문화는 동등하며, 문화에 종속된 것이 아닌 한 형상이 바로 놀이다, 라는 것을 저 책 전반을 통하여 밝혀내고 있다. 그 접근법은 역사학적일수도 있고, 언어학적일수도 있으며, 그 둘다 일수도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책의 진가는 바로 머릿말에서 저자가 한 마지막 문장이다.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 쓰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쓰지를 말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쓰기로 결정하였다.' 이 책에서 하위징아가 자신이 과감한 추론을 펼치는 것에 대하여 변명조로 이야기한 말이지만, 젠장, 너무 멋진 말이 아닌가? 

 

그런데 하위징아는 스스로가 과감한 추론을 펼쳤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반향은 현대에 이르러 크게 울리게 되었다. 그 반향에는 몰입, 과 같은 긍정심리학이 있지만, 가장 크게 울리게 된 것은 바로 저 책, '누구나 게임을 한다' 에 이르었을때다.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은 분명 현대의 고전이라고 불릴만한 책이다. 고전의 의미가 기초, 의 의미에 가깝다고 아까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이 책은 게임화Gamification에 대한 가장 뛰어난 책이며, 저자 스스로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우리 사회의 변혁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현대의 고전과 과거의 고전 - 호모 루덴스 - 사이의 연결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놀이는 문화의 한 형상이고 문화 그 자체이며 인간 본질에 닿은 활동이다. 따라서 누구나 게임을 할 수 밖에 없으며, 이 게임을 통하여 우리는 문화, 더 나아가 인간의 삶 자체를 바꾸고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감명깊은 것은 현재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가지 경제체제에 있어서, 게임을 통한 제 3의 길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의 종말보다도 자본주의의 종말을 떠올리기가 더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렇게 생명력이 강하면서도 그 자신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끝끝내 대립항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과연 안티테제로서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치열한 대립들 - 인간의 생존과 자본주의의 생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 은 게임, 이라는 우리 본유의 활동에 의하여 해소된다. 피드백과 자발성이라는 게임의 요소를 통하여 말이다.

 

두 책에서 게임, 혹은 놀이를 정의하는 (편의상 게임과 놀이를 동일선상에 두겠다. 물론 여기에 반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만약 하위징아가 컴퓨터 세대에 살게 되었다면 주저없이 컴퓨터로 즐기는 것들도 놀이에 넣었으리라는 것을 확신함에 있어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내용은 조금 차이가 있다. 루덴스에서는 고정된 시공간에서 일상의 제약에서 벗어나 이해득실이 없이 특별한 규칙에 따라 자발적으로 행하는 것을 놀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게임을 한다, 에서는 목표, 규칙, 피드백, 자발성, 이라는 네 가지 특징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공통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규칙과 자발성이다.

 

규칙은 놀이의 요소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 인간의 존재양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여러 제약과 규칙에 얽매여 살게 된다. 그런데 하나 현실에서 모자란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저 제약과 규칙들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자신의 힘을 제약하는 슈퍼맨에서 보통 샐러리맨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영영 슈퍼맨이 될 수 없는가? 아니다. 어떻게든 샐러리맨에서 슈퍼맨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현실에 자발성을 도입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위의 두 고전, 현대와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 공명하며 밝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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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유일, 아니 유이한 취미는 책을 사는 것과 롤LOL 중계를 보는 것이다. 책을 사는 것은 조금 뒤에 이야기를 하고, 롤 중계 시청에 대해서 먼저 푸념을 할건데, 요즘 롤 계의 축제라는 롤드컵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사실 기분이 시큰둥하다. 그 이유는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이 롤드컵에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1년 전만 해도 이 팀을 누가 이기겠는가, 하는 그런 느낌을 모두에게 줄 정도로 멋진 모습이었는데, 어떻게 1년만에 이렇게 폼이 떨어질 수가 있지, 하는 생각도 들고, 좀 많이 슬프다. 다시 예전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아마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미천한 언랭인 나로서는 저들의 수준을 평가할 수가 없고, 다만 그때부터 팀이 하락세에 접어든 것 같다. 예전에 그러니까 팀 전체가 일종의 조작의혹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무고하다는 결론이 났지만 이미 욕은 먹을대로 먹었고, 결국 그 시즌은 최악의 성적으로 마감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분명 그 이후다. 저 팀이 도저히 수렁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기 시작했던 때는. 마음의 상처가 정말 너무 깊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물론 이렇게 말하면, 그게 벌써 몇 개월 전인데,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마음의 상처가 고작 몇 개월만에 가라앉겠는가? 그것도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무고한 일로 받은 것인데.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비판할때는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된다.. 그냥 무작정 의혹만 가지고 싫다고 비판, 아니 보통 이런 경우는 비난이 되는 경우가 많던데, 하고 욕하면, 그건 정말 어이없는 짓이다... 자기는 그냥 돌 던지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맞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 팀의 경우가 딱 그런 경우인데, 만약에 저런 일이 없이 그냥 성적이 나빠졌다면 아, 다른 팀들이 잘했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저런 일 이후에 저렇게 성적이 나빠져가니 계속 아쉬운 것이다. 물론 게임 내적으로는 수많은 고랭크들이 (꼭 분석글을 쓰는 사람들은 최소 골드 이상이다, 풋) 텔포 메타에 부적응했다, 다른 선수들의 라인전이 강화되었다 등 이야기하지만 말이다.

 

그다음에 취미가 바로 책을 구매하는건데, 사실 집에 책이 너무 많이 쌓였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태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이 책이 반값이야, 하면 괜히 귀가 솔깃해.. 아니 눈이 솔깃해져서 5만원씩 끊어서 구매하게 된다. 이번에 구매한 책이 바로 위의 뇌, 인데, 그전부터 사실 노리고 있던 책이다. 그리고 반값할인되었다고 득달같이 주문을 넣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혹시 이달의 반값도서에 선정될까봐 이틀 기다렸다, 풋) 아니, 글쎄 저 책에 걸려있는 이벤트가 있지 않은가? 나는 저 책을 구매한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상품페이지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다른 책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들어갔더니.. 저 출판사의 할인 책들을 구입하면 적립금을 주는거였다. 그것도 3만원 구매시부터. 저 책이 2만 5천원이니 5천원만 더 합쳐서 구매했다면 적립금도 받고 반값할인책도 사고 기분이 최고였을텐데, 나중에 저 이벤트를 알게 되니 하늘이 노래지더라.

 

이미 출고완료에 배송까지 되어있는 책을 두고 이것을 반송할것인가, 한참동안 고민했다. 사실 밖에서 보면 웃기고 어이없는 모습이리라. 기껏해야 적립금 이천원, 비싼 아이스크림이면 하나 사먹을 돈 정도인데, 이 이천원이 아까워서 발발거리며 떠는 모습이란.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천원만 손해본 것은 아니고, 이달의 쿠폰을 합쳐서 - 이 쿠폰을 저 주문에 썼으니 - 삼천원 손해일테고, 이천원이 저렇게 보면 작은 돈이지만 적립금으로 보면 큰 돈이기에 - 5만원 채워서 주문하면 보너스 마일리지가 이천원이다 - 이렇게 떠는 것도 아주 이해를 못할 일은 아니리라.

 

아니, 이해를 못할 일은 아니리라, 라는 말은 왠지 애처롭다. 나는 이해할 수 있지만 아마 이해못할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하지만 절차를 밟아 물품을 다시 돌려보내려니 추석도 다가오고 너무 번거롭기에 결국 포기했다. 아깝다, 내 이천원. 그리고는 기필코 적립금을 받아내려는 일념하에 책들을 골라놓았다. 근데 머릿속에서 못받은 적립금 생각이 계속 떠나지를 않는다. 여기서 심리학적 실험이 떠오른다. 처음부터 오만원을 줬다가 사만원을 뺏는것과 그냥 만원을 주는 것은 다르다고. 그러고보면 이번도 마찬가지인데 사실 지금껏 주문할때 상품페이지에 꼭 들어가서 적용되는 쿠폰들 모조리 받아서 알뜰하게 주문해왔는데, 단 한번 방심이 이렇게 슬픈 결과를 낳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상품 창에 이벤트 팝업이라도 띄어줬으면 놓치지 않았으련만, 풋, 그래서 괜히 궁시렁거리고 있다.

 

김수영의 시 중에 고궁에서, 였던가? 국밥집인지 설렁탕집인지 기억안나는 가게 주인장에게 짜증을 내던 시가. 지금 심정이 딱 그런 심정이다. 사실 이렇게 째째하게 안살아도 되는데, 한편으로는 이천원에 발발거리는 모습에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금 오만원씩 끊고 적용되는 쿠폰을 모조리 다 다운받고, 이벤트까지 챙긴다음에 구입하게 된다. 읽지도 않은 책들이 그렇게 많은데 또 책을 구입하려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안사면 절판되고 품절될거같은데. 그래서 놓친 책이 바로 저 위의 크라카토아다. 글쎄, 나중에 돈이 많으면 아, 이 책들 모조리 한번에 사서 내 창고에 쌓아두자,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그때가서 생각할 일이고, 지금은 별 수 없이 천원이라도 아끼려고 잘라서 주문할 수 밖에 없다. 

 

 

p.s. 책은 안읽고 책만 주문하고 있다. 사실 이게 진짜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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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위의 세 권은 재미있는 책들이었다. 아니, 재미있는 정도롤 떠나서 추천하고 싶은 정도의 책들이랄까. 경제학 강의는 읽고 있는 중이고, 사랑하지 말자, 는 쓱 훑어본 정도이지만 어떤 책이 좋은지 나쁜지를 붙잡고 열시간동안 읽어내려가야 아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도올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었지만 저 책을 읽고 상당부분 생각이 바뀌었다. 비판적이었던 부분이 사실 도올 선생의 너무나 자신감 넘치는 태도때문이었기도 한데, 저 책을 읽고보니 그렇게 자랑할만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대선을 겨냥한 것 처럼 책이 팔렸던 것 같은데, 꼭 대선이 아니더라도 도올 선생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를 알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 강의도 마찬가지인데 또한 개인적으로 장하준 교수에 대해서 그렇게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지는 않았으나 (물론 내가 좋은 평가를 내리든 말든 눈도 하나 깜짝안하겠지만) 저 책을 읽고 상당히 생각이 바뀌었다. 과연 교수할만하구나. 개인적으로 경제사에 대해서 정리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읽고 나면 새롭게 글을 묶어서 써볼생각이다.

 

 

 

 

 

 

 

 

 

 

 

 

 

 

이 두권은 그럭저럭 읽을만한 책들. 사실 왼쪽의 의산문답, 을 먼저 읽고 다른 책들을 찾아 읽게 되었다. 도올 선생의 책인데, 마지막에 도올 선생이 왜 이 책을 썼는지 이야기한다. 들어오는 인세가 없어서 쓰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기 책은 잘 안팔린다고 강조한다. 난 도올 선생의 책이 잘 안팔리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이 책도 아마 팔리기 어려웠지 않을까? 오른쪽의 할도 그럭저럭 다 읽을만 하지만.. 어딘가 아쉽다.

 

여기 밑에는 별로 마음에 안들었던 책들이 위치하겠지만..

요즘은 별로 누구를 비판하고 싶지가 않다.

 

업무때문에 밖에 나가서 대학생이랑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요즘 20대는 내 어린 시절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좋게 말하면 벌써부터 철이 든 거구.. 한편으로는 벌써 세상의 엄혹함을 알고 있다니 좀 씁쓸한 맛이 입안을 맴돈다. 어려서부터 학점관리, 면허따고, 스펙쌓고 그런 것들을 쳇바퀴처럼 굴러다니다가 20대를 넘어 30대가 되니까..

 

요즘은 사는게 많이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역시 전문직이 최고인걸까,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다. 그런데 아직 사는게 힘들다, 라고 투정부릴수 있다면 그나마 좀 나은 상태인거구 사실 정말 걱정되는건 곧 이런 말조차 입에서 제대로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삼포세대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닌것 같다. 똑똑한 사람은 똑똑하기 때문에 똑똑하지 않은 대다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은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의지가 강하지 않은 대다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각종 책들은 왜 이렇게 못하냐 이야기하고, 또 다른 각종 책들은 힘내지 말고 그냥 거기 있어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회의가 다시금 닥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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