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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빛의 공학과 마지막 Trinity가 선정되면 아주 좋을 것 같지만..

잡담을 조금 끄적거리면,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불경과

제자백가 시리즈, 강신주가 쓴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아직까지도 덜읽었다.

최근에 유튜브로 본 강연이 있는데 Who am I 라는 제목을 달고 시연되는

그런 인문학 강연이었다. 최진석 교수 등의 강연자가 나와서 이야기들을

진행하는데 아무래도 강연자마다 다 스타일이 다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법 흥미롭게 봤던 강연은 슬라보예 지젝의 강연이었다.

지젝에 대해서는 늘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여담이지만 지젝의 발음이 음.. 나랑 비슷하구나.. 풋.

 

경희대에서 진행한 강연같던데 역시 한 번 가볼걸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은 갈수록 쌓여가고.. 읽는 속도는 갈수록 더뎌진다.

아직도 사고 싶은 책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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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4-01-04 12:34   좋아요 0 | URL
오 ~ 저도요, 가연님 ㅎㅎㅎ
책은 쌓여만 가는데, 읽는 속도는 갈수록 느려지고, 글쓰기도 조금씩 무뎌지네요 ~ 하하 ~
시인을 체포하라 !! 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ㅎㅎ
강신주의 제자백가 시리즈, 3권이 아직 안나왔지요? 아마....3권을 2년째 기다리고 있는 .....ㅎㅎ
주말이라 외출하기 전, 알라딘에 간만에 들렸더니
반가운 가연님의 댓글이 있네요 ^^
새해 인사를 , 저도 이제서야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새해에는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시는, 푸르른 말의 정기를 받아,,, ㅋㅋㅋ
소원성취하시옵소서 ~!!!


가연 2014-01-18 22:10   좋아요 0 | URL
3권은 정말 깜깜무소식이지요.. 저는 답글을 이제서야 남깁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프레이야 2014-01-04 19:28   좋아요 0 | URL
가연님, 새해에는 더욱 가열차게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느낌 나누며 살아요 우리.ㅎㅎ 소망하는 것에도 훨씬 다가가는 한 해가 되면 좋겠어요^^

가연 2014-01-18 22:09   좋아요 0 | URL
ㅎㅎ 프레이야님 감사합니다.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지길 바라요ㅎ

노이에자이트 2014-01-05 11:06   좋아요 0 | URL
맨하탄 프로젝트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니 관련 도서를 읽으시려 하는군요.원폭 투하 과정도 중요하지만 원폭 투하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더라고요.우리나라는 반일정서가 강해서인지 정당성을 주장하는 게 대세입니다만...

가연 2014-01-18 22:12   좋아요 0 | URL
너무 늦었습니다ㅠㅠ 옳습니다,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도 참 생각을 안할 수 없지요.. 파인만같은 경우에는 원폭을 만들고 난 뒤 아예 그것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는 태도를 취했었지만 말입니다. 아마 정신건강에는 그런 태도가 나을런지도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파인만의 동료 과학자들이 취한 '우리는 모두 삐-야' 라는 태도에 더 정감이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맥거핀 2014-01-05 14:45   좋아요 0 | URL
저도 빛의 공학과 트리니티는 마지막까지 후보군에 들어있던 책인데..그 두 권이 되도 저는 아무런 불만이 없을 듯 하군요. 빛의 공학은 조금 빡빡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가연 2014-01-18 22:05   좋아요 0 | URL
ㅎㅎ 결국 단턴의 책이 되었더군요. 된 책들에 대하여 그다지 불만은 없지만..

희선 2014-01-05 23:07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 어떤 사람이 ‘저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니, 지나가던 나이 많으신 분이 ‘학문을 해라’ 하더군요 어떤 일이 있어서 저런 말을 했을까를 말해야 하지만, 그것은... 나이 많은 분은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어서 그것은 대체 왜일까 하면서 학문에서 찾으려고 했던가봅니다 사람이 학문이라는 정밀한 체계를 만든 까닭은 바로 모호함과 깊은 혼돈 때문이라는군요 그 말을 생각하고 학문은 어떻게 하지 했습니다 그러다 학문을 거꾸로 읽으면 문학이 되는구나 하고 문학을 더 잘 볼까 하는 생각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깨닫기 위한 공부도 하고 싶군요 문학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겉만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좀더 깊이 보려면 다른 것도 알면 좋을 텐데...

아직 읽고 싶은 책도 사고 싶은 책도 많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살아있고 살아가고 싶다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희선

가연 2014-01-18 22:04   좋아요 0 | URL
학문을 거꾸로 하면 문학이 되는군요. 정말 묘합니다, 묘해요, 풋. 살아있고 살아가고 싶다는 것과 마찬가지긴 하지만 동시에 살아가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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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의 철학.

11월에 출간된 책 중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책은 바로 이 책이다.  

 

 

 

 

 

 

 

 

 

 

 

 

 

 

 

과학의 새로운..

 

 

 

 

 

 

 

 

 

 

 

 

 

 

지구의 정복자.

 

 

 

 

 

 

 

 

 

 

 

 

 

 

 

인문학 지도.

 

 

 

 

 

 

 

 

 

 

 

 

 

 

 

 

강신주의 감정수업.

시몬 베유의 책과 이 책 사이에서 좀 고민을 했는데, 에티카가 있는 김에 한 번 같이 읽어볼까, 해서 이 목록에 넣어둔다..

 

 

 

 

 

 

 

 

 

 

 

 

 

 

 

 

추천하지는 않았지만 눈에 띄는.. 아쉬운 책들을 조금 언급하자면, 서울대철학사상연구소에서 마음과 철학 시리즈... 는 추천할만하고, 시몬 베유의 뿌리내림, 도 눈여겨볼만한 책이다. 

어헝헝.. 죄송합니다. 요즘은 다른 것에 신경쓰고 있는 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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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2-04 14:14   좋아요 0 | URL
다른 거 뭐에 신경쓰고 있는데요?

가연 2013-12-04 23:4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일단 확실해지면...

맥거핀 2013-12-05 00:25   좋아요 0 | URL
저도 <신경 과학의 철학>에 한 표 보탰습니다. 근데 추천해놓고 보니 살짝 겁이 나기는 하네요. 쪽수를 지금 봤어요. 944페이지..

가연 2013-12-05 08:34   좋아요 0 | URL
ㅎㅎㅎ 되면 좋겠는데.. 왠지 느낌상 이번에도 과학분야는 우수수 썰려나갈 것 같은 기분이...

희선 2013-12-05 00:26   좋아요 0 | URL
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람이 지구를 정복했다는 걸까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군요 우리 사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군요 이 책 제목 본 적 있군요 얼마전에 보고 저런 제목이라니 했던 듯... 가연 님 눈에 띈 책은 <신경과학의 철학>이라니, 이것이 되기를...^^ 제가 바란다고 될지 모르겠지만요

십이월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5일입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어떤 책을 보면 좋을까 생각하고 보고 싶기도 한데 그게 쉽지 않군요

저한테도 가르쳐주세요^^


희선

가연 2013-12-05 08:38   좋아요 0 | URL
ㅎㅎ 에드워드 윌슨의 책이니 아마 통섭관련이야기가 아닐까.. 책을 읽어보아야 확실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제 확실히 통섭의 방향을 잡아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디어도 너무 좋고...

신경과학의 철학은 계속 눈여겨보고 있고..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좀... 익혀나갈까 생각중이에요, 허허허...

벌써ㅠㅠㅠ 정말 빠른 것 같아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아

2013-12-05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5 0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2-05 13:13   좋아요 0 | URL
문과 이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서취향! 멋집니다. 혹시 자연 과학자들의 전기에도 관심이 있나요?

가연 2013-12-05 18:33   좋아요 0 | URL
당연히 관심이 많지요.. ㅎㅎ 파인만을 다룬 퀀텀맨 정도가 최근에 들여다본 전기 같은데...

아하하.. 멋지게 봐주시면 저야 감사합니다만... 한편으로는 난잡스러운(?) 독서취향이 아닐까 스스로 걱정됩니다.

yamoo 2013-12-09 21:34   좋아요 0 | URL
저도..궁금...다른 뭐에 신경쓰고 있으신지...ㅎㅎ^^

가연 2014-01-03 22:24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제 신경이 덜쓰이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13-12-12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3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알라딘을 평정한 뒤 이를 쑤시고 있던 마태우스 씨는

빨려들어갈 만한 글을 하루에 몇편씩 쓰던 한 알라디너를 넋을 놓고 바라본다.

그러면서 마태우스는 지도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앞으로는 저 친구가 알라딘을 평정할 거야."

알라딘이 뭔지도 몰랐던 지도학생들은 뭔 소리냐고 두런거렸지만,

그의 말은 맞았다.

 

마태우스님이 알라딘의 헤게모니를 틀어쥐고 이를 쑤시고 있을 때 음지에서 은밀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알라딘에 둥지를 틀게 된 '가연'. 

 

인터넷상의 별별 커뮤니티에서 눈팅족으로 살면서 정말 가끔가다가 뻘글을 올리며 지내던 가연은 어느 날, 알라딘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치 집어삼킬 외계를 발견한 갤럭투스 - 마블 코믹스의 - 를 닮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가연(이때는 가연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었겠지만)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여기를 집어삼키는거야'

 

목표를 세운 이 존재는 닉을 지금의 가연, 이라는 들어도 위화감없고 '해치지 않아요, 아하하' 같은 느낌을 주는 선량해보이는 닉으로 세탁하고 알라딘에 숨어들어왔다. 하지만 알라딘은 앞서 본대로 마태우스, 라는 사람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고, 그 세력에 눌려 도저히 기를 펼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가연은 방법을 달리 할 수 밖에 없었다.

 

'쳇, 신간평가단을 하는 척하면서 어둠의 다크한 그림자를 뻗어야겠어.'   

 

하지만 신간평가단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알라딘을 정복하려면 페이지뷰라던가, 이웃수라던가, 서재지수를 갱신하여야하는데, 굳건한 마태우스님의 헤게모니는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마태우스님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맹렬한 기세로 글을 올리고 있는게 아닌가! 기껏해야 두세번 글을 올리는 정도로는 그 사람들을 물리칠 수 없었고, 역시 알라딘을 정복하려면 이런 낡은 수법으로는 안되는 것인가, 절망하던 가연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방법을 바꿔보기로 결심한다. 그래, 헤게모니를 뺏어올 수 없다면, 헤게모니를 쥔 사람들과 연합을 하는거야!

 

기회는 정말 어렵게 찾아왔다. 저 마태우스님이 주목한 다락방, 통칭 다락님이라는 알라디너가 내 신간평가단 추천글에 댓글을 달아온 것이다. 그것도 '와, 정말 멋진 글이에요.' 라는 말까지 적으면서 말이다. 가연은 그 댓글을 보고 음흉한 미소를 모니터 너머로 띄웠다. 역시, 내 계획은 완벽해, 라고 중얼거리면서.

 

하지만 왠걸, 그 뒤에 더이상 다락방님은 댓글을 달지 않는게 아닌가! 이대로는 내 계획에 무리가 생긴다. 거대 세력과의 연합은 내 계획에서 천하삼분지계에 맞먹는 계책이거늘!! 조급해진 가연은 다른 서재에 거의 댓글을 남기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다락방님의 서재를 찾아가서 댓글을 남겼다. 아마 바이런에 관련된 글로 기억한다. 기회다, 가연은 그가 아는 바이런에 관한 토막 상식을 끄적거렸고, 자신의 지식에 다락방님이 감동받아 서재로 다시 찾아주기를 바랬다.

 

그, 바이런은 정말 유명한 일화가 있습죠, 무슨 시험때 바이런이 포도주에 관한 시를 쓸때 말입죠,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져버렸다네 하고 한 게 아닙죠, 아하하하핳하하핳핳

 

하지만 그 글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며칠이 지나도 가연의 댓글에는 답글이 달리지 않았다. 가연은 그 사실에 슬슬 절망하고, 이 계획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그때!

 

다락방님이 다시 댓글을 달아온 것이 아닌가! 후후후훟훗 그래, 이대로 직행하면 내 이름도 겸사겸사 알릴겸 알라딘을 집어삼킬수 있겠어, 음흉하게 웃으며 착한 척 가연은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계획을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너무 그 계획을 오래 끌어서는 안된다. 너무 오랫동안 알라딘 서재 정복 계획을 끌어온 탓일까, 이렇게 친분을 만드는 것은 성공했는데, 이 다음 단계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스스로의 독기도 점차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다락방님의 글들을 읽어나가면서 말이다. 권력을 쟁취하는게 목표였었던 가연은 이런 감성도 있는 것인가! 절규하면서 글들을 읽어났다. 그에게는 사실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그가 거쳐온 것은 상상도 못할 말들이 난무하는 수많은 수라장. 친해도 비난하고 친하지 않아도 비난하는 그런 곳들을 뚫고 진성 악플러로서의 자신을 갈고 닦아왔던, 그러다보니 주기적으로 과거를 지우려 닉세탁마저 했어야만 했던, 가연은 점차 스스로가 착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니, 난 사실 음흉하고 캡쳐질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머리를 흔들며 착해져가는 스스로를 바로잡고는 다시 알라딘 정복 계획을 시행하려고 했지만, 시간은 흐르고, 때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알라딘 정복은 물거품이 되고, 듣보잡 서재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하지만 뭐, 그래도 나쁘지 않다, 고 여겼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 한 악플러를 갱생시킨 그 다락방님이 책을 출간했다. 모두가 하는 말들, 다락방님의 글솜씨를 생각하면 너무 늦게 나왔다 등등, 은 모두 빼겠다. 아직 나는 저 책을 읽지 못했다. 오늘 주문했는데 내일 올 것이다. 그리고 리뷰도 아마 쓸 것이다. 나는 이 서재를 운영하면서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이 서재에 올려져 있는 책들은 거의 대개 내가 읽은 책들이다. 물론 내가 읽지 않은 책들도 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간하면 읽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서재에 올려놓고는 읽지 않은 책이라면 어떻게든 그 이후에 구해서 읽는다.

 

그래서 말인데, 이 책도 아직 읽지 않았지만 내일이면 읽을 것이다. 그러면 내일 글을 쓰면 되잖아, 싶겠지만 나는 사실 다른 말이 하고 싶다. 옛날에 다락방님이 책을 한 번 나눈 적 있었다. 그때 내가 받은 책은 가스라기였다. 그날 밤 나는 책을 받자마자, 술약속 시간이 되기전까지 거침없이 읽어나갔다. 빠른 속도로 1권을 읽어내려가고, 다음 권 말미에 이르던 내 눈동자는 책의 어느 여백 한 가운데 멈췄다. 그 여백에는 다락방님이 볼펜으로 휘갈겨 써놓은 짧은 문장이 있었고, 나는 그 문장을 보고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답답하다, 대략 그런 내용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보는 나도 이유는 모르지만 답답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흰 건 종이이고 검은 건 글자인데, 그 글자 너머로 떠오르는 이 둥근 액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밤은 어둡고, 거리의 전봇대는 깜빡거리고, 차소리마저 안들리는 정적사이로 나는 순간 울것만 같았다. 나는 그때 헤어지던 날 밤을 무심코 떠올렸다. 문을 등지고 돌아서던 그 순간, 그녀가 보는 내 마지막 얼굴이 웃는 얼굴이었으면, 내가 보는 그녀의 얼굴이 웃는 얼굴이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괜찮다고 중얼거리며 돌아서던 그 순간, 그리고 문 너머로 느껴지던 그녀가 무너지던 기척까지도.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던 그 때를. 그 다음부터는 겨우겨우 가스라기를 다 읽었지만, 가스라기보다도 내가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 문장이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이 책을, 마음을 후벼파는 이 문장을 포함해서 돌려줘야겠다, 고 마음먹었지만 결국에는 내가 여전히 가지고 있게 되었다. 

 

책을 출간했다는 말을 소식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저런 이야기이다. 그녀의 서재의 글들은 저렇게 때로는 볼펜으로 여백에, 때로는 포스트잇에 끄적거리던 그런 그녀의 감성이 정리되어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답답하다, 라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울릴 수 있을 정도라면, 그런 감성이 책으로 정제된다면 얼마나 웃고 울리게 만들까? 그런 생각에 나는 저 책을 내일 배송받기가 두렵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물론 지금은 저렇게 간단히 울지는 않을 것이다. 감정도 많이 무뎌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전이 왜 고전인가? 시대를 지나도 여전히 보편적으로 통하는 감성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고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주요한 것은 보편적으로 통한다는 말이다. 다락방님의 글들에게는 그런 것이 있고, 그 감성은 싸운 커플을 화해시키기도 하며 - 다락방님의 어느 글에 달린 비로그인 댓글로 미루어 짐작해볼때 - 직장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듬어주기도 한다. 혹은 어떤 글은 - 최근에 읽은 모던 하트에 관한 포스팅은 - 이렇게 무뎌진 나의 감정을 다시금 움직이기조차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성을 전달하면서도 전혀 젠체하지 않고 변함없이 활동을 하고 있는 다락방님의 글들이 묶인 위 책이 부디.. 고전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울음의 전달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추신 : 사실 전혀 친분이 없는 마태우스님...을 함부로 글에 등장시켜서 죄송합니다만.. 용서해주세요ㅠㅠㅠ 혹시나 불쾌하셨다면 말씀해주세요. 마태우스님의 추천사를 보자마자 이렇게 한 번 써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바로 들어서 그만...

 

추추신신 : 이 글은 사실에 아주 약간 기반한 꽁트입니... 저 저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닉세탁은 했지만요, 아흐한함느히ㅏㅁ흐ㅏ흐........

 

추추추신신신 : 아 손발이 오그라드네요, 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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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3-11-25 21:01   좋아요 0 | URL
이 시점에서 '마지막'을 눌러 가연님의 첫글을 보러가고 싶어진 호기심 천국 웬디씨...하지만 결과는....

신간평가단 이전의 과거도 깨끗히 세탁하셨네요 ㅠ_ㅠ

저도 한때 알라딘 서재에서 껌좀 씹었는데... ㅠㅠ
이제 미존웬디양... (미미한 존재감 ㅠㅠㅠ)

가연 2013-11-25 23:26   좋아요 0 | URL
훗, 이전글 세탁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지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 랄까, 애초에 이 서재는 신간평가단때문에 시작한거라..ㅎㅎ 신간평가단 추천글이 첫글입니다. 본문은 그냥 재미로 끄적거린거구.. 저도 다 잊어버렸으니깐요ㅋㅋㅋㅋㅋㅋ 과거는 물흐르듯 흘려보내고.. 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어쨌든 알라딘의 가연입니당, 풋.

마태우스 2013-11-25 22:13   좋아요 0 | URL
호호 재밌으면서도 마지막엔 심금을 울리는 멋진 글이네요. 친분이 전혀없진 않은 거 아닌가요...가연님 존함을 제가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암튼 마지막이 아주 멋졌어요. 책의 메모를 바탕으로 책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셨네요. 지금 전 원고마감을 5시간 가량 지나친 상태라 매우 초조한데요, 일하기 싫어 죽겠답니다. 이를 어째야 할까... 괜히 청탁을 수락했다는 후회는 너무 늦겠지요 ㅠㅠ 암튼 잘 읽었어요.

가연 2013-11-25 23:34   좋아요 0 | URL
뭐랄까, 댓글 딱 한번 주고받은것으로, 게다가 저도 물론 마태우스의 존함과 심지어 실명까지도 알고 있지만 그걸로 친분이 있다고는...ㅋㅋㅋ 부끄러워서 차마 적을 수가 없더군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무사히 멋진 원고를 작성하시길ㅎㅎ 저도 할 일이 있는데 이렇게 빈둥거리며...ㅠㅠㅠ

감은빛 2013-11-26 14:05   좋아요 0 | URL
와! 기발한데요!
마태우스님의 글을 보고 이런 재밌는 글을 떠올리시다니!

때를 놓쳐 알라딘 정복을 이루지 못한 가연님,
지금이라도 마태우스님과 손 잡으심이?
혹은 떠오르는 신진세력 감은빛은 어떤가요? ^^
(죄송합니다! 감히 마태우스님과 다락방님에 견줘 신진세력 운운하다니!)

가연 2013-11-27 12:40   좋아요 0 | URL
ㅎㅎ 생각해보면 마태우스님의 글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끄적거렸으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주말에 멀리 갔다오니깐 시간이 없더군요. 타이밍이 생명일텐데. 지금이라도 손을 내밀어볼까 생각해봤지만.. 이렇게 듣보잡 서재로 전락한터라 제가 감히 손을 뻗기조차 두렵습니다, 풋.

오.. 신진세력(?) 감은빛님, 연합할 마음은 있으나 제가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는데요, 하하하. 그러고보니 이 서재에서는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ㅎㅎㅎ

yamoo 2013-11-26 17:58   좋아요 0 | URL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와~ 가연님도 책 한 권 쓰셔야 겠는걸요!
마태우스 님의 글도 재밌었지만 가연님의 글도 정말 재밌습니다.

알라딘 정복은 제가 보기에...글빨이 좌우합니다. 많이 않써도 이런 정도의 글을 꾸준히 올리신다면 알라딘 서재 정보는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뭐, 마태우스님과 다락방님의 친분을 활용한다면 훨씬더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ㅎ


가연 2013-11-27 12:4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책이라뇨, 이렇게 서재에 끄적거리는 정도의 부끄러운 글들로는 책을 내면 안될 것 같아요, 풋.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알라딘 정복의 마음은 버렸...ㅠㅠㅠ 글빨만큼이나 중요한게 꾸준히 쓰는 것인것 같아요, 풋. 누구더라, 거대 블로그 운영하시던 분이 있는데, 그 분이 파워 블로거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반드시 글을 쓴다, 는 이야기를 하던데.. 저는 도저히 꾸준하게는 못쓰겠더군요. 이 알라딘만 해도 정말 좋은 리뷰같아서 닉네임을 클릭해서 서재에 들어가보면 2009년이 마지막으로 글 올린 때..라던가 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에휴.

드림모노로그 2013-11-27 18:16   좋아요 0 | URL
하하하 ! 가연님의 센스 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가연님은 그 자체로 존재감 ~ 최고 !! (전 가연님밖에 몰라서 ^^;; ㅎㅎㅎ )
좋은 하루 되십시요 !

가연 2013-12-01 22: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러고보니 드림님께서는 다락방님과는 잘 모르시겠다. 다락방님도 글잘쓰시는데ㅎㅎㅎ 드림님이랑 좋은 서재이웃이 될 것 같은뎅..

2013-11-27 23:3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가연님은 이렇게 재밌는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었죠. ㅎㅎㅎ

가연 2013-12-01 22:5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좀 더 센스폭발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11-28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1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13-11-29 00:39   좋아요 0 | URL
좋아요, 좋아
ㅂㄹㄱㄷ...^^

시작과 뒤가 다른...
그럴 수도 있죠 처음에 시작했을 때 감정이 나중에는 바뀔 수도 있는 거죠 저는 그런 때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연 님 감정에 빠졌군요^^)
사람을 웃고 울리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이제 다 읽으셨나요


희선

가연 2013-12-01 22:53   좋아요 0 | URL
ㅂㄹㄱㄷ 는 어떤 뜻인가욤??ㅎㅎ 다 읽긴 했는데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 지..ㅎㅎㅎ

희선 2013-11-29 01:57   좋아요 0 | URL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글, 이라고 써야 했는데, 아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맞는 말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고전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울음의 전달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는 말 좋군요 언제나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이잖아요


희선

가연 2013-12-01 22:54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맞아요. 희선님께서 제 의도를 정확히 알아보셨네요

저 책이 그렇게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싶네요, 풋.

희선 2013-11-30 01:53   좋아요 0 | URL
책 읽는데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이 글 앞과 뒤 분위기가 다른 까닭, 사람이 달라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이 글 속에서, 여기에는 가짜와 진짜가 섞여 있다 해도) 하지만 역시 뒤에서 감정이... 옛 일을 생각하고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더했을 테지만, 지금은 덜하면 좋겠군요 이거 쓰면서 잠깐 생각했을 것 같군요

쓸데없는 말이었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희선

가연 2013-12-01 22:55   좋아요 0 | URL
에이, 예전의 키워도 저랍니다아.. 지금의 저도 저구...ㅋㅋㅋㅋㅋ 달라진 것은 마땅히.. 음...ㅋㅋㅋ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ㅋㅋㅋㅋㅋ
 

 

 

 

 

 

 

 

 

 

 

 

 

 

 

 

사실 이 미셸 옹프레의 '비판적' 평전은 반쪽자리이다. 이 책만으로는 평전이라고 말할 수 없고, 평, 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 그런가? 이 책에서는 매 쪽마다 프로이트의 이름이 빠지지 않지만, 동시에 매 쪽마다 프로이트를 비판하는데 공간을 할애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편지들을 주고받았는지는 전혀 나와있지 않다. 물론 미셸 옹프레는 이야기한다. '내가 이 사람이 쓴 편지를 읽어보았는데, 이런 내용이더라구' 하지만 그런 편지들에 대하여 제대로 미주를 쓰지 않는다. 그러면 미셸 옹프레는 그저 자신의 비판을 위하여 자료를 가공해내고, 심지어 지어내는 것인가? 그런데 또 그건 아니다. 그가 언급한 편지는 다른 책들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언급되는 것이다.같은 자료를 두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바로 이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이 책만이 아니라 다른 책들과 겹쳐 읽어야만 그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리뷰를 쓰기에 앞서서 이 책과 같이 읽었던 책들, 그리고 같이 읽으면 좋을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그러니 이 글은 일종의 서지정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른 책은 못읽어도 좋은데 피터 게이, 의 이 프로이트 평전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미셸 옹프레가 위의 우상의 추락, 본문에서 프로이트를 미화한 전기작가의 예로 가장 많이 드는 사람이 바로 피터 게이와 프로이트의 제자인 어니스트 존스, 다. 어니스트 존스, 의 책은 번역된 것이 없다. 하지만 피터 게이의 책은 위와 같이 번역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 우상의 추락, 을 읽으면 어떻게 같은 증거를 가지고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우상의 추락, 에서 부족한 프로이트의 전기적 요소를 채워주기에 그 중요성이 아래에 소개할 다른 책들에 비하여 (심지어 프로이트 전집보다도) 매우 높다.

 

 

 

 

 

 

 

 

 

 

 

 

 

 

 

미셸 옹프레는 이야기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일종의 종교와 마찬가지라고. 종교라면 경전이 있어야 한다. 프로이트학에서의 경전은 그가 쓴 전집들이다. 물론 전집을 다 읽으면 우리가 저 책을 읽어나가는데 도움이 될테지만, 그런 작업을 하기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개의 저작을 골라서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저작을 골라야 할까? 유대교 카발리스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물론 카발라에서의 조하르, 등의 위상도 높지만, 그래도 카발라 연구중 가장 읽어야 할 책은 토라, 모세 5경이라고 말이다. 위에 꼽은 세 가지 책, 은 그에 상응할만한 책이다. 프로이트학의 토라, 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꿈의 해석,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정확히 말하자면 이 중에서도 자아와 이드, 이리라.) 그리고 굳이 다섯 권을 채우자면 여기에 토템과 터부, 예술 문학 정신분석, 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집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도 괜찮다. 이 책과 피터 게이, 의 프로이트 평전을 겹쳐 읽는다면 프로이트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프로이트의 환자들, 은 프로이트 전집의 목차를 제공한다. 연대순으로도 정리해놓기도 하였으니 부록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사실 읽어도 좋고, 읽지 않아도 좋다. 의외로 피터 게이의 평전에서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도라, 안나 O, 늑대인간, 쥐인간 등과 같은 사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저 책은 프로이트에게 신경병자의 생각 구조를 통찰할 수 있는 기회였었다. 미셸 옹프레는 우상의 추락, 에서 프로이트가 환자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자신의 이론을 짜맞춘다는 근거로 프로이트가 이 사례를 다룬 것을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프로이트에게 귀중한 재료가 되어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볼때에는 미셸 옹프레의 이야기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왜 갑자기 가스통 바슐라르, 를 참고 저서에 넣어두었을까? 첫번째 이유는 우상의 추락, 의 서문에서 미셸 옹프레가 가스통 바슐라르의 저서도 읽어보았다, 라고 적어두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런 이유라면 그가 읽은 모든 철학자들의 저서를 이 글에 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두번째 이유가 필요하다. 위의 우상의 추락, 을 읽어나가다보면 미셸 옹프레는 은연중에 의식에 대한 현상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어려운 이야기를 제외하면,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본 전제들에 반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기본 전제 중 하나가 인간의 모든 현상들에는 무의식적인 동기가 작용한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셸 옹프레는 바로 이 전제에 맹렬한 비판을 가한다. 바로 그 부분에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몽상의 의식, 이라 명명된 그 개념을 행간에 넣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개념 자체는 가스통 바슐라르, 본인이 고백하듯이 현상학적인 접근의 도움을 받아서 나온 것이다. 바로 이 부분때문에 정신분석학적 무의식과 현상학적인 의식의 관계에 있어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 프로이트학의 기본 전제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무의식의 부인은 끝끝내 하지 않는 미셸 옹프레의 태도로 미루어 볼 때 떠올릴수있다. 왼쪽의 살림 출판사에서 나온 책만 읽어도 충분하지만, 좀 더 깊게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른쪽의 책들을 구입하면서 읽어나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여담이지만 가스통 바슐라르만큼 현대 철학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이 바슐라르를 많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라캉이나 라캉이나.. 라캉이나... 이런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란다.

 

 

 

 

 

 

 

 

 

 

 

 

 

 

 

이 책은 아주 뛰어난 책이다. 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시켰다, 라는 미셸 옹프레의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적용할 수도 있으나, 그런 비판은 놓아두고서라도 이 책은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적어도 프로이트와 종교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에 대하여 이만큼 뛰어난 통찰을 가지고 있는 책은 찾아보기 드물것이다.

 

 

이정도 읽어보았다면 이제 미셸 옹프레, 의 우상의 추락, 을 읽어볼 준비가 된 것 같다. 우상의 추락, 이 이렇게 많은 책들을 읽어야만 접할 수 있는 책인가? 그렇지는 않다. 내가 이렇게 참고도서들을 목록화한 것은 저 책은 앞서도 말하였지만 반쪽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쪽자리라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정보가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왕이면 제대로 확인해보자는 의미에서 이런 책들로 배경지식을 쌓는게 좋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프로이트를 옹호하는 입장과, 프로이트를 반대하는 입장의 한가운데에 서서 스스로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추가 : 나는 솔직히 저 미셸 옹프레, 의 우상의 추락, 의 번역에 대하여 의문점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하나만 지적하겠다. 책의 688페이지를 보면 이런 문장이 있다.

 

여기서 짧게 돌직구로 다시 질문을 해보겠다.

 

이 부분의 프랑스어 원문이 궁금하다. 이 부분은 직설적으로, 와 같은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번역자가 돌직구, 라는 단어가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인가? 돌직구, 는 인터넷 은어다. 돌직구녀, 돌직구 질문을 하다, 등으로 많이 퍼지긴 하였었지만, 그 근본을 따지자면 야구에서 제대로 치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던지는 직구, 에서 파생되어서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어 나온 단어로 기억을 하고 있다. 인터넷 은어를 번역물에 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이 부분은 나의 편견에 가깝긴 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사실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정말 프랑스어 원문도 DOL ZIK KU라고 적혀있었던 것일까? 한류의 영향을 받아 미셸 옹프레가 우리나라의 인터넷 은어를 알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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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11-17 00:54   좋아요 0 | URL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언제 저런 책을 다 봤을까 입니다 이렇게 다른 책을 봤기에 <우상의 추락>이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책을 보기 전에 그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으면 그 책을 좀 더 잘 볼 수 있겠습니다 가스통 바슐라르 관심 가져보고 싶군요

DOL ZIK KU라고 쓰여 있지 않았을 거예요^^


희선

가연 2013-11-17 19:59   좋아요 0 | URL
애인이 없기 때문에... (응?) 혹시 무한도전 보시나요, 풋,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씨가 한강에 뛰어들면서 자신은 처도 자식도 없다고 부르짖던 장면이 계속 떠오르네요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
 

 

 

 

  사실 가장 먼저 당황스러운게, 리뷰 http://blog.aladin.co.kr/760670127/6629638 를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그다지 칸트와 러셀에 대해서 옹호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저에게 답을 요구하시면 별 수 없이 저는 칸트와 러셀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글을 쓸 수 밖에 없지요. 졸지에 악마의 변호인이 된 기분인데, 그다지 좋아하는 역할은 아닙니다. 제 리뷰를 통해서 칸트와 러셀을 판단하시는 것 보다는 직접 칸트와 러셀의 저작을 읽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립간님께서 올리신 글들을 다 읽긴 했지만 답변을 해야될까, 말아야될까, 고민을 좀 했습니다. 제가 그다지 옹호하지도 않는 입장에 대하여 논쟁이 일어나는 것은 사양하고 싶거든요. 게다가 여기서부터는 반 농담, 반 푸념입니다만 오늘은 빼빼로 데이입니다. 결혼하신 분은 모르시겠지만 저같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기분이 안좋은 날입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이런 철학이나 과학나부랭이에 정신적으로 신경을 쏟을 때가 아니라 더욱더 답변을 하기가 꺼려졌습니다. 그리고 이 글이 사실 마지막 답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직접 저에게 답을 요구하시지 않으셨으면 답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물에 독을 뿌리는 소리같지만.. 저같은 솔로는 이런 인터넷보다도 신경써야 될 게 훨씬 많거든요. 논쟁같은걸로, 그것도 제가 그다지 옹호하지도 않는 입장을 옹호하는 척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사양입니다. 농담같지만 진심입니다ㅠㅠㅠ

 

그러나 아무래도 계속 오해가 커져가실까 두려워 제가 아는 범위안에서 간단히 답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애초에 칸트의 철학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서 몇마디 끄적거리는 것보다 직접 칸트의 철학을 읽어나가시는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글들을 읽어봤는데, 제가 볼때는 오해라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고, 논리적으로 오류도 좀 보이고 있습니다. 댓글을 달아서 조용히 말씀드리는게 훨씬 좋을 것 같지만 길어질테구.. 저도 생각을 가다듬는 의미에서 이렇게 새로 글을 씁니다. 

 

가장 첫번째 글입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78492 인데요, 여기서 마립간님의 태도를 보시면 사실 비과학적이고 철학적이다, 라고 보는게 옳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마립간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거의 모든 학문을 철학으로 본다. 사람이 궁금증, 호기심을 갖는 것 자체가 철학이며, 나름의 가설을 제안한 것이 철학이다. 이런 문제에 시간이 가면서 자료가 축적되면, 그 자료를 바탕으로 좀 더 타당한 가설이 되면 (자료가 충분하면 가설은 이론이 된다.) 과학이 된다.

 

문장들 자체가 사실 옳은지조차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첫번째 문장, 본인이 모든 학문을 철학으로 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본인의 모든 학문에 대한 태도는 당연히 철학적이어야 맞겠지요. 마립간님의 말씀으로는 철학에서 자료가 모여져 타당해지면 이론이 되고 과학으로 일컫어진다고 하셨는데, 위의 글의 마립간님의 친구분께서는 그 타당한 이론을 자연과학으로 보고 계시는 겁니다. 그런 그분의 말씀으로는 철학적이신 마립간님이 비과학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잘 이해가 안가신다면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아래에 의문을 남겨주셨는데 다음입니다.

 

의문 1 ; 비과학의 분야, 예를 들어 종교적 의문까지도 과학으로 생각하는 나는 과학적인가 비과학적인가?

 

본인이 종교적 의문을 비과학의 분야, 라고 이미 규정하고 계시는데 그 이상 어떤 답을 원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립간님의 과학에 대한 규정을 가져와봅시다. 마립간님께서는 철학에 자료가 축적되어야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마립간님에 따르면 철학으로 불릴 수 있는 종교 - 마립간님은 모든 학문을 철학이라고 방금 규정하셨지요 - 는 과연 과학으로 불릴만큼 자료가 많이 축적되었습니까? 그렇다면 그 근거는 어디있습니까? 어느 논문과 어느 책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본인은 종교도 과학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조금 오해하시는 부분이 바로 이부분입니다.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는 분야를 모두 과학으로 판단하고 계시고 있습니다. 과학적 방법론, 소위말하는 가설설정으로부터 이어지는 그런 절차가 반드시 그 내용물이 과학이라는 것을 도출해내지는 않습니다. 이는 지식을 산출해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지요. 쉽게 말해서 소시지 기계가 있다고 합시다. 그 소시지 기계에는 보통 소시지의 재료를 넣지만, 굳이 소시지의 재료를 넣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무엇인가를 넣으면 소시지처럼 생긴 무엇인가가 나오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걸 두고 소시지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물론 마립간님께서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적설계론들도 과연 과학적 방법론을 거치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도리어 더 철저하게 과학적 방법론을 거쳐서 도출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지적설계론들도 과학일까요?

 

사실 이런 논리적인 이야기보다도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해서 그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 친구분이 비과학적이라고 하셨을때 받아들이지 못하셨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비과학적이라는 말이 반과학적이라는 말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런 이야기를 모두 놔두고 그냥 난 종교와 윤리, 도덕에도 모두 과학이라는 말을 쓰겠다, 라고 하셔도 사실 상관없습니다. 그런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깐요. 하지만 과학이라는 말에 미묘한 우월감을 부여하고 계시다면 그건 정말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글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79724 은 사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 리뷰와 말씀하시는게 어떤 연관이 있는지조차도 잘 이해가 가지않습니다. 신이 없다, 라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것과 수학과 생명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지 제가 더 궁금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세 번째 글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81487 인데요. 사실 칸트의 사상을 해설한 책을 직접읽어보시기를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 제가 어설프게 설명했다가 도리어 의문만 증폭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들은 모두 어설픈 설명이라고 판단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크게 본령에서 어긋나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빈 서판, 과 스피노자의 뇌, 인데.. 저는 이 두 권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대과학에서 감정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는지 대략 짐작만 할 뿐입니다. 사실 빈 서판과 스피노자의 뇌, 의 저자를 보면 무슨 말이 대략 쓰여져 있을지 짐작이 되긴 하거든요. 그러나 그런 과학적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칸트를 비판하는게 과연 옳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제 리뷰에서 인용하신 부분만 잘라서 보면 제가 마치 칸트와 러셀의 사상을 설명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 부분을 가지고 러셀이나 칸트를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비판하시려면 제 글을 기초로 삼지 말고, 직접 러셀과 칸트의 저작을 읽어보셔야 합니다. 제가 저 부분에 불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썼을지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당장 저 자신만해도 제가 칸트의 철학과 러셀의 철학을 모조리 이해했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할테니 말입니다.

 

이제 칸트 철학에 대해서 조금 이해를 하셔야될 것 같은데요, 저 또한 순수이성비판조차 제대로 읽지 못한 주제에 감히 뭐라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이 문장부터 일단 살펴보겠습니다.

 

칸트의 자유의지에 관한 가치관은 7. 자유의지, 도덕적 자유, 실존적 자유로 판단된다. 하지만 그 판단이 옳은가? 깨닫다. 후회, 양심의 가책이 의지에 속한 것인지, 단지 사고와 감정의 현상인지 내게는 불명확하다.

 

일단 7번 범주자체가 사실 잘 이해가 안가는데, 자유의지와 도덕적 자유, 실존적 자유 자체는 사실 한 범주로 묶일만한 성질의 것들이 아닙니다. 칸트에 따르면 자유의지가 도덕적 자유를 담보하고, 칸트에서의 자유는 실존적 자유의 의미와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자유의지에 대한 가치 판단이라면서 - 자유의지에 대한 가치 판단이 연속선(spectrum)위에 있다. 나는 이 8가지 가능성을 모두 수용한다. - 자유의지를 범주에 넣어놓은 것 자체도 이해가 안갑니다만, 어쨌든 범주 자체가 조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칸트의 자유의지에 대한 가치관은 저기에 나오는 범주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자유의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초월, 초월적 이라는 말부터 먼저 하도록 합시다. 마립간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십니다.

 

초월에 대한 심상은 경우에 따라 신神, 영靈, 성性, 도道로 표현되나 실제적으로는 원형原型에 대한 동경과 창발에 대한 동경이라고 생각한다. 내 판단이 맞다면, 즉 내 판단 외에 다른 근거가 없다면 초월 역시 인위적이고 허상에 불과하다. 이렇게 묻는다. “일반 정신을 넘어선 초월적 세계, 있기나 한 거야?”

 

이 문장이 바로 마립간님의 초월에 대한 인상을 말해줍니다. 신, 영, 성이라고 말입니다. (참고로 性이 아니라 聖을 의도하신 거겠죠..) 하지만 칸트의 초월은 이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칸트의 전기 연구를 검색해보시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칸트는 뉴턴의 물리학을 공부했었습니다. 당시의 뉴턴 물리학은 철학자들에게 이성의 믿음을 가져와주었습니다. 그런 칸트에게  신, 영, 성이라는 말은 당황스럽지요. 그렇기때문에 초월이라는 말은 마립간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일반적 정신을 넘어선 세계, 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정말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해를 정확히 못했다, 라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초월과 초월론적, 이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별 수 없이 철학 용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으리라고 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칸트 관련된 철학서를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초월이라고 번역되는 transzendent는 상당히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칸트에서의 이 초월은 일종의 존재론적인 의미입니다. 물론 존재론적인 의미가 칸트에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현상학적인 계보를 이어 후설, 하이데거에 이르게 되면 더 정립이 확실히 됩니다. 초월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주관으로부터 독립된 대상을 가정했을때, 그 대상의 인식론적, 그리고 구조적 요건이 우리 자신의 주관성이 된 경우 우리 자신의 주관성이 그 대상에 선행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주체에 대한 객체의 초월성 획득이지요. 결국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두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물에 대한 자신의 발화가 그 사물의 가능한 경험을 넘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험을 넘어서고 있는가? 혹은 넘어서고 있지 않는가? 의 여부가 사물에 대하여 있어서 중요한 일이 됩니다. 만약에 경험을 넘어서 있다면, 우리는 그 것을 초월적이라고 부릅니다. 경험의 한계 안에 있다면? 당연히 내재적이라고 부르겠지요.

 

초월에 대해서는 사실 칸트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칸트 철학에 있어서 진실로 중요한 것은 초월론적, 이라는 말입니다. 초월론적이라는 말은 transzendental을 번역한 말로 알고 있는데, 아마 입에 와닿지 않으실겁니다. 보통 오늘날의 번역서들은 이를 선험적이라고 번역하거든요. 이는 존재론적인 의미를 가진 초월, 과는 달리 일종의 인식론적의 의미로 해석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작업을 보면 인식론적인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 맞습니다. 칸트의 제 1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천착하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라는 질문말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이는 근대철학사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는 데카르트는 자아를 근대철학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얼마 뒤 나타난 데이비드 흄은 경험과 인과론에 대한 연구로 근대철학을 뒤집어 엎습니다. 이 흄 뒤에 바로 칸트가 나타난 것입니다. 흄은 인과론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태양이 동쪽에서 뜨지만, 내일은 서쪽에서 뜰 수도 있지 않겠냐고. 그런데 우리는 지금껏 태양이 동에서 떠왔다 라는 경험에 의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 경험을 우리는 어떻게 믿지? 라는 것이 흄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칸트가 이야기합니다. 경험이지만, 그 경험을 분석하면 실제적으로 선험적인 부분들이 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 선험적인 부분 - 아 프리오리 - 이 있다면 경험이라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인식을 쌓아나갈 수 있다. 라는 겁니다. 여기서 지성, 이성, 감성의 구분을 지어야겠습니다만, 이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선험적인 부분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가? 여기서 칸트의 유명한 범주가 나옵니다. 공간, 시간 범주, 그리고 사고형식의 범주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범주를 적용하는데 우리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모두 작용합니다. 서로의 협동을 통하여 우리 인간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인식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바탕에서 제가 쓴 글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칸트에 대한 러셀의 말도 (중략) '실천 이성에 따르면 의지는 자유로운 것이다. 이러저러한 행위를 할 능력이 내가 없다면 당신은 그런 행위를 해야 한다, 라는 명령이 그릇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만큼만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능력만큼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칸트가 원하는 것은 정언 명령을 우리가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자유의지의 표상이라고 우리가 깨닫는 것이다. 후회감, 등으로 말이다. 우리가 거짓말하면 후회를 느낀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우리가 그런 것을 느낀다는 것이 초월적 자유의 편린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사실 칸트 전공자들이 보시면 웃을 내용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참조한 내용은 살림출판사의 칸트, 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글을 통하여 의도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유의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라는 겁니다 - 칸트의 비판서들을 번역한 백종현 교수님의 논문을 참조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 그리고 러셀은 단순히 자유를 할 수 있다, 그러니 해야 한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실은 그게 아니다, 후회, 양심 등과 같은 것은 바로 부정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라는 말입니다. 물론 칸트의 어구 중에 할 수 있으니 하여야 된다, 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적어도 칸트가 의도한 것은 이런 자유의지에 부정할 수 있는 능력, 에 무게를 더 두었다는 겁니다. 그런 사고와 감정의 현상이 바로 칸트 철학의 큰 틀에서 포용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사고와 감정 둘다 사물을 인식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위에 적힌 초월적 자유, 라는 말은 붕 떠버립니다. 이 초월적 자유라는 말은 왜 나온 것일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은 바로 실천이성비판 - 저도 아직 읽지 않은 - 에 있습니다. 앞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우리는 선험적, 초월론적인 범주를 통하여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천이성비판에 따르면 순수이성을 실천적 사용을 할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기존에 초월적, 우리의 경험을 벗어났다고 여겨졌었던 객체들이 바로 주체의 영역으로 넘어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초월적 자유, 라는 말을 사용하였었습니다.

 

물론 신, 영성, 과 같은 것을 칸트적으로 초월적이다,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칸트적으로 초월적이다, 라는 이야기는 그런 것들만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초월적인 부분을 다루게 되면 필연적으로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모순은 어떻게 해결할까요? 여기서 칸트는 초월론적 변증법을 가져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마립간님이 생각하는 그런 초월적과는 다른, 순수하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로서의 초월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글입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6686116 이 글을 잘 읽어보시면 마립간님께서는 논리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책의 예화를 빌면 ; 브레이크가 망가진 기차에서 그대로 달리면 10명의 사람이 사망한다. 방향을 틀면 한 명의 사람이 사망한다. 인도주의 입장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나? 다른 예로 폭풍이 치는 바다에 요트를 타고 있는 사람이 조난을 당했다. 그를 구조하기 위해 구조대를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10명 사망했다. 이 구조는 인도주의에 입각해서 어떤 가치판단을 내려야 하나?

 

부연설명을 하자면, 러셀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눈 앞의 비교적 확실한 악을 내버려두고 미래의 비교적 불확실한 미덕을 택해서는 안된다

 

이 러셀의 말과 마립간님이 예시로 든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생략된 부분을 넣어보겠습니다.

 

브레이크가 망가진 기차에서 그대로 달리면 10명의 사람이 (100퍼센트) 사망한다. 방향을 틀면 한 명의 사람이 (100퍼센트) 사망한다.

 

넣은 말은 100퍼센트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제가 러셀의 말에 맞게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브레이크가 망가진 기차에서 그대로 달리면 10명의 사람이 (50퍼센트의 확률로) 사망한다. 방향을 틀면 (100퍼센트) 한 명의 사람이 사망한다.

 

자, 이해가 가십니까? 물론 이 예는 잘못된 예이긴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만든 예입니다. 이해가 어느 정도 가셨으리라고 여기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보겠습니다. 어디가 잘못되었느냐면 바로 이부분입니다. 방향을 틀어서 구해지는 10명이 미래의 불확실한 미덕입니까? 그대로 달려서 구해지는 1명이 눈앞의 확실한 악입니까? 애초에 이 사례자체를 러셀의 말에 적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작왕의 딜레마도 마찬가지입니다.

 

1) 눈앞의 확실한 악덕을 행했다면 미래의 나타냈던 더 큰 악덕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확실한 악덕을 피했더니, 미래의 가능성의 더 큰 악덕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2) 눈앞의 확실한 악덕을 피했다. 그런데 이로 인해 발생할 미래의 더 큰 악덕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1번을 봅시다. 눈앞의 확실한 악덕을 피했더니.. 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데, 러셀의 저 문장을 다시 읽어봅시다. 눈앞의 확실한 악덕을 내버려두지 말라고 되어있습니다. 애초에 말자체가 잘못된 것이지요.

 

눈앞의 확실한 악덕을 막았더니, 미래의 더 큰 악덕이 현실로 나타났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 거라면 이 또한 러셀의 저 말에 그다지 맞지는 않다고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마립간님께서 직접 인기 없는 에세이, 를 읽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러셀은 자신의 책에서 눈앞의 확실한 악덕과 미래의 더 큰 악덕을 저울질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지도 않구요. 그가 저울질하는 것은 눈앞의 확실한 악덕과 미래의 불확실한 미덕입니다.

 

전체적으로 볼때, 결론적으로 러셀과 칸트의 책들을 직접 읽지 않으시고 제 글을 바탕으로 비판을 하고 계시기에 저런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졸지에 러셀과 칸트를 옹호하는 쪽으로 이렇게 글들을 쓰게 되었는데, 사실 저는 그다지 옹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칸트나 러셀을 오늘날의 과학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비판하는 것은 그들에게 온당치 못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제 글로 판단하지 마시고 그들의 책을 직접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늘 빼빼로데이인데 왜 이런 글을 제가 쓰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철학이나 과학나부랭이가 뭐가 중요합니까.. 라는 말씀을 진심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껏 길게 써놓은게 아까워서 지우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커플따위는 모두... 여하튼 사실 이렇게 길게 써놓았습니다만 몇 번이고 말씀드리지만 직접 칸트와 러셀의 글들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더 의문가는 게 분명 많으실테지만, 제가 아는 것 또한 당장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이상 더 답변할 정신적 여유가 없습니다.  회피하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만 사실 애초에 답변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칸트나 러셀인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이런 게 저한테 지금 눈에 들어오는게 아니라서... ㅠㅠㅠ 당장은 평가단 글도 써야되기는 하지만...

 

 

 

참고로 이 글은 즐겨찾는 서재브리핑에만 노출됩니다. 불필요한 일들을 막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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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11-12 07:48   좋아요 0 | URL
우선 이 글을 숙고하지는 못했지만, 제 글이 가연님의 정신 에너지를 극도로 소진시킨 것에 대한 사과를 드립니다. 그리고 미래 양해를 구했지만, 가연님에 대한 반론보다는 제 생각과 그에 대한 오류를 집어달라고 부탁드린 것입니다.

지난 번 지운신 댓글을 슬쩍 보았습니다. '비과학적'인 것이나 칸트, 러셀, 가연의 각각의 의견에 대해 해명을 하려했습니다.

어째거나 오늘까지 올리려고 했던 글은 올리고, 댓글에 보았던 내용에 대한 해명 글은 가연님의 댓글에 따라 올리지 말지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가연님의 글 중 일부는 제가 동감하는 내용입니다.

가연 2013-11-12 17:50   좋아요 0 | URL
어제는 좀 멘붕상태라서..ㅎㅎㅎ 푸념을 많이 늘어놓았네요. 제가 오류를 집어낼만큼 당장 학식이 풍부한 상태가 아니라 사실 이런 글을 쓰기가 저어되었네요.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답변을 쓰는게 옳았었는지조차도 잘 모르겠네요.

마립간 2013-11-13 07:27   좋아요 0 | URL
반론이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5일간의 글에서 지적하신 내용에 대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면 내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가연 2013-11-13 08:45   좋아요 0 | URL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다 드렸습니다. 더 말씀드릴게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저와의 대화보다는.. 당장 제가 아는게 별로 없기에... 책에서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실 거라고 여겨집니다.

2013-11-12 08: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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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2 1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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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3 07: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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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3 08: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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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3 15: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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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5 17: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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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5 0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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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5 17: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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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5 0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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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5 17: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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