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가 두려운 날엔 - 흔들리던 날들의 스피치, 나를 다시 세운 목소리의 기록
신유아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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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하면 나를 꼰대 취급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웅변대회가 자주 열렸다. 그래서인지 학교 근처 상가에서는 웅변 학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주산 학원이나 서예 학원도 많았지만 말이다. 웅변대회는 주로 행정구역상 작은 단위에서 시작하여 큰 범위로 나아가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읍 단위에서 수상한 학생이 군 단위에 진출하고, 군 단위에서 수상한 학생이 도 단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전국 단위에 진출하여 실력을 겨루는 방식이었다. 물론 주제는 그때마다 달라지곤 했으나, '반공'을 주제로 한 웅변대회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만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소심한 학생이었다. 오늘 학습할 부분을 읽어보라는 선생님의 지시가 혹여라도 나를 향하지나 않을까 나는 늘 노심초사하였고, 지목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나는 언제나 선생님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럼에도 어쩌다 지목을 받는 날이면 그리 길지도 않은 교과서 문장을 읽는 동안 목소리는 물론 몸 전체가 덜덜 떨렸고, 손에는 땀이 흥건하게 고였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선생님과 반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거나 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긴장과 불안 속에서 보내는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학교에 가는 일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몸의 위생상태를 점검하는 용의검사나 손톱검사 등 선생님으로부터 지적을 받을 일들이 공부 외에도 꽤나 많았고, 선생님의 권위가 하느님만큼 높았던 시기였던 까닭에 체벌은 언제나 일상적인 일이었다.


"스피치는 교감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의 소통이다. 면접장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선택을 받고 프레젠테이션 발표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울려야 한다. 말은 진심과 진정성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진정성은 참된, 거짓 없는 진실된 마음이다. 스피치를 하는 상황이니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두려움을 떨치고 스피치를 하면 쉽고 재미있다."  (p.9 '프롤로그' 중에서)


내 삶에 반전이 찾아온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에는 전교 어린이회장을 학생들이 투표를 통하여 선출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지명하는 구조였고, 전교 어린이회장에 지명되는 학생은 당연히 성적이 좋은 학생이었다. 모든 게 성적순으로 이루어지던, 말하자면 철저하게 권위와 서열이 지켜지던 비민주적인 사회였다. 소심하지만 그럭저럭 성적은 좋았던 나는 운이 좋게도(?) 전교 어린이회장으로 지명되었고, 매주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진행되던 아침 조례 행사에서 전체 학생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것도 마이크도 없이 말이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각종 웅변대회에 학교를 대표하여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역할도 함께 부여받았다. 대중 앞에 나서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사시나무 떨듯 긴장하던 모습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신유아 아나운서의 신작 <말하기가 두려운 날엔>을 읽으면서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말하기는 결국 경험에서 비롯되는, 훈련을 통한 하나의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스피치 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눈치는 보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 끌려다니는 삶을 살게 된다. 삶은 내가 끌고 가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기준대로 사람들의 평가대로 남들이 어떻게 나를 볼까 하는 생각으로 살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다. 나로 살아야 한다."  (p.147)


SBS 공채 개그맨 출신 아나운서로 SBS와 KBS에서 리포터로 활약했고, 기상캐스터로도 활약했던 저자는 현재 U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을 운영하며 말하기 지도에 힘을 쏟고 있는 듯하다. 신유아 아나운서의 신작 <말하기 두려운 날엔>의 목차를 살펴보면 이 책의 실용성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제1장 '세상의 모든 스피치는 내가 만든다', 제2장 '스피치를 잘하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제3장 '스피치를 잘하면 인정받는 사람이 된다', 제4장 '스피치를 잘하면 대우가 달라진다', 제5장 '스피치를 잘하면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의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전적으로 스피치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말은 곧 그 사람이다. 과거의 당신이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힘없이 얘기하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부터 당신은 바뀌어야 한다. 과거의 당신의 말이 굉장히 빨라 사람들이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는 당신의 말에 대한 나쁜 습관을 고쳐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자. 멋지게 스피치 실력을 키워 과거의 당신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p.252 '에필로그' 중에서)


온라인상의 간접대화가 늘고 오프라인에서의 직접 대화나 음성 통화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지만, 말하기는 여전히 중요하다. 인류가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대화를 이어가는 한 말하기의 중요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나는 요즘 말끝을 흐리는 것은 물론 말을 하는 내내 쑥스러움에 몸을 배배 꼬는 모습의 젊은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조금이라도 소음이 심한 장소에서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였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을 끝까지 또박또박 말한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원활한 소통이란 정확한 의사전달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이 뭔 말을 하였는지 알 수 없는데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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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당신의 인생서에서 한쪽 모서리에 삼각형으로 접힌 몇몇 페이지를 들춰 읽으면 당신 인생의 전반을 짐작할 수 있을까요? 세세하게는 아니지만 대충이라도 말이지요. '삶은 우리가 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는 것, 우리가 이야기하기 위해 기억하는 것'이라고 남미 출신의 어느 작가는 말했습니다. 나는 이따금 삶에 대한 그의 표현이 더없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불끈 저항하고픈 마음이 들곤 합니다. 우리들 각자가 쓴 인생서에서 누군가에게 말해주기 위해 접어 둔 몇몇 페이지가 겨우 우리 인생의 전부라고 말한다는 건 지나친 비약이자 우리의 삶을 비하하는 듯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어제오늘 볼이 얼얼할 정도로 추웠습니다. 나의 어릴 적 기억으로는 겨울은 언제나 이와 같은 극한의 추위가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고양이 세수를 한 젖은 손으로 방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으면 손에 쩍쩍 달라붙는 일은 다반사, 방의 아랫목에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 앉아 '후' 하고 입김을 내뿜으면 공기 중으로 하얀 입김이 멀리까지 뻗어가곤 했습니다. 10월 말부터 시작된 겨울은 늦게는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테지요. 낮이 되자 기온은 조금 올라 냉랭했던 바람결이 조금 부드러워진 듯 느껴집니다. 성탄절 당일에 휴가를 나온 아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만 뜨면 밖으로만 나돌고 있습니다. 나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그해 봄의 불확실성>을 읽고 있습니다. 팬데믹 시기에 앵무새 유레카를 돌보는 화자의 일상이 조금 지루하리만치 이어지는 이 소설은 묘한 매력으로 책을 손에서 떼어내지 못하게 합니다.


"아무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 유레카가 느낀 고마움이 아무리 커도 나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그 기이하고 불안했던 시기의 나에겐 유레카와 함께 있을 때 시간이 제일 빨리 지나갔다. 매일 아침 기대에 부풀어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기괴하리만큼 인적 없는 거리를 몇 블록 걸어가서 나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깃털 달린 친구를 만나는 이 단순한 허드렛일 덕이었다. 그건 스스로에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해낼 자신이 잇는 몇 가지 안 되는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  (p.104~p.105)


시그리드 누네즈의 문체는 무심한 듯 건조한 문장을 이어가면서 때로는 독자를 무시하는 양 불친절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작가는 자신의 소설 곳곳에 독자들이 각자의 삶에서 깊이 생각해볼 거리를 툭툭 던져 놓음으로써, 우리는 지금 지루하게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소설 속으로 소풍을 떠난 어린아이가 작가가 숨겨 놓은 삶의 비밀을 찾아 이곳저곳을 뒤져보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고 있는 듯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나절의 보물찾기 놀이에 심취하는 것은 물론 책을 덮은 후에도 긴 여운으로 인해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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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양장)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Memory of Sentences Series 4
다자이 오사무 원작, 박예진 편역 / 리텍콘텐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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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닮고 싶은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오늘처럼 쨍한 추위가 내려앉은 오후의 여린 햇살만큼이나 소중하지 않은가. 그것이 꼭 인간일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한 그루 나무일 수도 있고, 바다를 유영하는 한 마리 고래일 수도 있겠다. 다만 닮고 싶은 대상과 나 사이의 간극이 지나치게 넓거나 좁으면 약간의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것이 비단 나와 종이 다르다는 이유에서 비롯된 물리적 간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애초에 나는 '닮고 싶었'을 뿐이지 기필코 '그것이 되겠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나무와 같은 부동심일 수도 있고, 고래와 같은 자유로움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되고 싶다는 희망이랄까, 아니면 꿈이랄까 뭐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에 필요한 열정이 펄펄 끓어 넘칠 듯 뜨거울 필요는 없겠다. 미지근한 온기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박예진 작가가 엮은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을 읽는 동안 여러 생각들이 두서없이 쌓였다.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인 동시에 내가 가장 멀리하고 싶은 소설 중 하나인 까닭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요조는 성인이 된 후에도 어떤 순간, 어떤 사람 앞에서도 무방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킬 어떤 자세나 의지도 없이 타인 앞에 무방비로 등장한다는 것은 삶에 무책임하다고 비난받을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동시에 만나는 여자들로부터 극도의 모성애를 유발할 수 있는 유인책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조는 생각하기에 따라 가장 이기적인 인간으로 비칠 수 있다. 인간 삶의 근원적인 고독과 허무에 휩싸인, 그럼에도 타인의 헌신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누구보다도 잘 유도할 수 있는, 극과 극의 이중적인 인간이 바로 요조라고 이해된다.


"sentence 025

나는 사람들을 몹시 두려워했고, 이상하게도 두려워할수록 더 많은 호의를 받았다. 그리고 호의를 받을수록, 나는 더 깊은 공포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사람들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p.48)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말해지는 <인간 실격>은 인간의 나약함과 위선을 매우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사실 작가는 유복한 집안의 11남매 중 열 번째이자 여섯째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성장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고, 거듭된 자살 시도와 마약 중독, 불안정한 연애와 결혼 생활은 그의 삶을 파국으로 몰았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이 소설 <인간 실격>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인간이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데 최소한의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고 작가 스스로가 생각했다면 그것은 지극히 오만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다자이의 문장들은 차가운 고독으로 독자를 껴안습니다. 그러나 그 고독은 무너지지 않는 의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달려라 메로스>의 메로스처럼, 그는 인간의 신뢰와 가능성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아무리 삶이 비극적이라 해도, "사람은 믿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작가. 그의 삶과 문학은 절망을 가로지르며 희망을 말하는 인문학입니다."  (p.16 '프롤로그' 중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들에서 발췌되어 그의 사상 전반을 훑어볼 수 있는 이 책은 설령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한 편도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색깔이 다양한 그의 소설 속 여러 문장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박예진 작가의 설명을 읽다 보면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한 편쯤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지도 모르겠다. Part.1 '부서진 마음의 언어들', Part.2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깨지기 쉽다', Part.3 '나를 만든,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Part.4 '희망은 때론 가장 잔인한 거짓말이 된다' 등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듯하다.


"<사랑과 미에 대하여>는 다섯 남매가 즉흥적으로 창작한 이야기와 현실이 교차하는 순간을 통해 허구와 진실, 가족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본격적인 전개는 노수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가상의 이야기 짓기에서 시작되는데, 남매들은 각자의 개성과 시각을 반영하여 수학자라는 인물을 세밀하게 구축해 나갑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끝난 순간,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며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p.187)


유독 겨울에 어울리는 작가가 있다. 다자이 오사무도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창밖에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뱃속이 헛헛하여 어제 먹다 남긴 찐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면 다자이 오사무가 쓴 슬픈 문장 때문인지, 물기 없는 고구마의 퍽퍽함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목이 멘다. 이가 시리도록 찬물 한 사발을 들이켜고 우리는 또 자리에 앉아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고 목이 메도록 고구마를 먹는다. 겨울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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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린 겨울비 탓인지 새벽의 등산로는 흠뻑 젖어 있었다. 비에 젖은 낙엽이 손전등 불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났다. 나뭇가지에 고여 있던 빗물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것이 마치 빗소리처럼 들렸다. 등산로에 드러난 나무뿌리는 물에 젖어 몹시 미끄러웠다. 기온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산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들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피해 빠르게 달아났다. 온 산이 비에 젖어 축축한데 고양이는 도대체 어디서 잠을 잤던 것일까.


매년 이맘때쯤이면 늘 고민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내 삶에 영향을 줄 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블로그의 유지 문제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매년 연말이면 이 문제를 두고 씨름을 한다. 내년부터 블로그를 접을 것인지 말 것인지 자본주의 논리로 저울질을 해보는 것이다. 블로그를 유지하는 것의 이점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하는 독서이지만 이따금 리뷰를 쓰는 바람에(때로는 출판사에서 책을 기증받은 까닭에 의무적으로 리뷰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뜩이나 게으른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한 기록을 종종 남길 수 있다는 것과 마음이 심란할 때 짧게나마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반면에 블로그를 유지함으로써 얻는 불이익은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는 게 가장 크고, 일이 바쁠 때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의 리뷰를 기한 내에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꽤나 크다. sns에서 일체의 상업적 영리 활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에 결심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언제나 블로그를 유지하는 것이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결론에 이르고 마는데 그럼에도 10년 넘게 블로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다른 데 그 원인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다. 나는 매년 연말이 다가올 때마다 '올해로 블로그는 끝내고 내년부터는 일기장이나 한 권 쓰자'는 생각을 늘 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를 붙잡았던 건 시답잖은 나의 글을 꼼꼼히 읽고 따뜻한 댓글을 남겨주는 이웃 때문이었다. 나는 사실 나와 가까운 이에게는 내가 블로그를 한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함구하고 있다. 친분이 있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작 내가 쓰고 싶은 말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걸림돌을 나는 애시당초 원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내 블로그는 나만의 놀이터인 동시에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정신적 분출구였던 셈이다. 말하자면 내 블로그의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는 사람은 모두 나와는 친분이 없는,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익명의 제삼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내 글을 읽었던 어떤 이웃은 내가 만약 책을 출간한다면 가족 열 분을 제외하고 열한 번째 독자가 되겠노라 약속하신 적도 있었고, 비밀 댓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온 이웃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사실 책을 낼 정도로 글재주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 정도의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진심을 담은 그런 댓글을 읽을 때마다 블로그를 1년만 더 유지하자는 쪽으로 못 이기는 척 기울었던 것이다.

오늘은 성탄절 이브. 하늘은 종일 어둡고 칙칙했지만 만났던 사람들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가 툭툭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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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 2025-12-24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역시 저와 한번이라도 얼굴을 대면했던 사람들은 제가 올리는 글을 못 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꾸준히 글을 남기는 것은, 나 자신에게 “당신 아직 살아있어. 아직 숨 잘 쉬고 있어.”하는 격려이자 메시지입니다. 때로 출판사 증정도서 의무방어전에 힘들 때도 있지만, 그것 역시 감사할 따름이지요. 새해에도 꼼쥐님의 글을 계속 만날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몸과 마음 늘 강건하시고 평안하셔요.

꼼쥐 2025-12-26 15:02   좋아요 1 | URL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전업작가나 작가지망생이 아니라면 블로그를 유지하는 일도 꽤나 힘든 일이지요. 게다가 매일매일은 아닐지라도 너무 오래지 않게 글을 올리려면 그것도 부담이 되고 말이지요. 쎄인트 님의 댓글을 읽고 나니 조금은 힘이 나는 듯합니다. 2025년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기를~~

차트랑 2025-12-24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탄사가 절로나오는 꼼쥐님의 글을 읽을때마다
작가가 빙의했구나 싶어 무척이나 경도되었습니다.
글 솜씨가 빛을 발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봅니다!

그나저나,
PC 버전으로 보니 금메달이 주렁주렁 열렸군요 꼼쥐님!!
이정도면 알라딘 은퇴하시기 쉽지 않으실듯요~

꼼쥐 2025-12-26 15:05   좋아요 0 | URL
칭찬 댓글 감사합니다.^^ 어쩌다 보니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금메달을 여러 개 달게 되었네요. 시간이 만들어준 선물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죠. 차트랑 님의 블로그 글을 열심히 읽고 있는 저로서는 덕분에 늘 배우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잉크냄새 2025-12-24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글을 읽고 시답잖은 댓글을 남기는 1인입니다. ㅎㅎ
시간을 쪼개어 쓰시는 이 글들이 누군가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연대와 응원의 표시겠지요.

꼼쥐 2025-12-26 15:08   좋아요 0 | URL
어쩌면 마음에도 없는 빈말일지라도 그와 같은 칭찬 댓글을 읽다 보면 섣불리 블로그를 접을 수 없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저의 글이 누군가의 가슴에 닿고 있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뭉클해지곤 합니다. 잉크냄새 님의 응원 감사합니다.^^

호시우행 2025-12-24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한 이웃합니다. 건강한 2026년도 응원합니다.

꼼쥐 2025-12-26 15:10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 님은 예전에 인터파크에서 자주 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다시 알라딘에서 뵐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저 역시 2026년 호시우행 님의 건투를 빌어 봅니다.

닷슈 2025-12-25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써주십시오

꼼쥐 2025-12-26 15:11   좋아요 0 | URL
닷슈 님의 응원 감사합니다.^^
건강한 연말연시 되시길~~
 
작별 너머 -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
다비드 디옵 지음, 목수정 옮김 / 희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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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을 때 더욱 애틋해진다. 순탄하고 무난한 사랑이 당사자들에게는 물론 그것을 전해 듣는 사람들에게도 더불어 행복을 안겨줄 텐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이야기는 오히려 부러움이나 질투의 대상이 되고 마니 말이다. 그런 까닭에 무난한 사랑 이야기는 귀를 쫑긋 세우고 빠져들 만한 대상은 되지 못한다. 사람 심리가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죄다 나쁜 마음의 소유자들로만 구성된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나 역시 무난한 사랑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어찌어찌 만나서 연애를 하고, 날 잡아 결혼을 하고, 원하는 만큼 자식을 낳아 평생 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이에게 더없이 큰 기쁨과 행복을 안겨줄 만도 한데 인간의 심성은 다소 표독스러운 데가 있어서 그런 이야기에는 도무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다비드 디옵의 소설 <작별 너머>를 읽게 된 동기 이면에는 어쩌면 그런 이유가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의 주인공인 미셸 아당송과 마람의 사랑 이야기를 읽는 독자는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비극적인 사랑을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종교적 원칙과 이토록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부터 멀찌감치 거리를 두어온 나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벗은 몸으로 빗물이 가득 채워졌는지 보려 모든 항아리를 하나하나 살피느라 여념이 없는 마람을, 그녀를 향한 내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그녀는 비에 젖어 움직임을 방해하는 옷을 던져 놓고, 마치 신이 아직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지 않은 검은 이브처럼, 완전한 나신으로 자유롭고 아름답게 움직이고 있었다."  (p.177~p.178)


유럽 절대왕정 시대인 1700년대 세네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을 접한 독자는 책을 읽기도 전에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세네갈의 고레 섬을 문득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식물학자였던 미셸 아당송은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던 <자연백과사전>을 저술하고, 그 저작을 통하여 식물학계 최고봉에 오르는 꿈을 지닌 야망가였다. 그는 새로운 식물을 발견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를 떠나 세네갈의 생루이 섬으로 향했다. 그의 나이 스물세 살 때였다. 그렇게 세네갈에서 연구를 이어가던 아당송은 노예로 팔려갔다가 기적적으로 돌아온 한 여인에 대한 소문을 우연히 듣게 된다.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던 아당송은 '돌아온 여인'을 반드시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길을 떠났고, 천신만고 끝에 마람을 만난다. 사막을 건너면서 낙마사고를 당하여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던 아당송이 결국 늙은 치유사에게 맡겨졌던 것, 그리고 아당송을 맡았 치유사가 바로 '돌아온 여인' 마람이었다. 마람은 소문만 듣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백인 아당송을 처음엔 무척이나 경계했지만, 그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싹튼다.


"마람이 이 빛을 발하는 소금물을 가져다, 밤에 그녀의 오두막을 밝히는 불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녀에 대한 나의 애틋함을 더욱 증폭시켰다. 나는 그녀가 표현하는 방식의 세계관을 갖지 않았고, 그녀가 말하는 수호천사의 존재도,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다는 고대 종교의 반인 반수의 존재도 믿지 않았지만, 그것들이 쓸모없는 것일지라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같은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바닷물로 채워진 물 단지로부터 번지는 빛은 촛불보다 밝지 않았고, 기름 램프보다 약했지만, 그것은 감동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p.205~p.206)


마람은 아당송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삼촌에게 맡겨져 온갖 학대를 당하며 성장했던 마람은 결국 노예로 팔려갔었지만, 가까스로 도망쳐서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늙은 치유사의 모습으로 변장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야생의 아프리카처럼 원시의 아름다움을 지닌 마람이 아당송에게 들려준 고난의 인생사는 당시 유럽 열강들이 세네갈을 수탈했던 수난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람을 깊이 이해하게 된 아당송은 마람에게 점차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 형벌을 방관하기에는 그녀를 향한 나의 사랑이 너무 커졌고, 혹여 그녀가 나와 헤어져 멀리 떨어져 산다고 해도 그녀가 어딘가에 살아있기를 바랄 만큼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우리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취한 행동 때문에 그녀가 나를 증오하게 된다고 해도, 나는 그녀의 가족의 명예보다 마람이 살아있는 것을 원한다고 은디악에게 답했다."  (p.269~p.270)


다시 붙잡혀 흑인 노예로 팔려갈 위기에 처한 마람을 구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던 아당송은 결국 자신의 눈앞에서 연인의 죽음으로 목도하고 만다. 연인을 잃은 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던 아당송은 결국 프랑스로 귀국하여 식물 연구에만 몰두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초대한 어느 파티에서 마람을 닮은 초상화를 보게 되고,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한 대목이 연주되는데...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는 누가 높고 누가 낮은 곳에 위치하는 위계질서나 서열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사랑이 파탄에 이를 듯한 위기에 처한 순간 둘 사이의 서열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잃더라도 사랑을 선택하는 반면 우위에 있는 사람은 대개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은 결국 연인을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에 시달리겠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대개 사랑보다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아당송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마치 참회록처럼 기록하여 자신의 딸에게 남겼다.


한낮에도 바람이 어찌나 차던지 도통 외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고,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의 코는 마치 루돌프의 코처럼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인간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그 끝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속이 빈 것에 대해,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리는 막연한 기대를 품곤 한다. 그것이 때로는 아름다움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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