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수업 - 이별이 가르쳐주는 삶의 의미
폴라 다시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누구에게나 이별과 상실의 경험은 아픔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에는 언제 다가올지 모를 이별의 순간이 항시 도사리고 있다.
결코 대면하기 싫은 그 경험을 신은 잔인하리만치 우리의 손을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고통과 상처와 발버둥질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밝은 태양 아래 서서 기억의 저편에 묻어둔 아픔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마치 남의 일인 양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걸어갈 때, 우리의 곁에서 희미한 등불이 되어준 것은 누군가의 ’사랑’이었음을 다 지난 후에야 알게 된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작은 깨달음에 감사하며 미소짓게 된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로 유명한 모리 교수가 죽음을 앞두고 매주 금요일에 자신의 치료와 관계없이 인간대 인간의 만남으로 선택했던 폴라 다시.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랑하는 딸을 잃고 다시 한 결혼도 남편의 학대로 5년만에 헤어져야 했던 그녀는 누구보다 상실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생의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면, 그 일은 굳이 좋게 끝나지 않아도 된다."고 갈파한 에델 퍼슨(Ethel Person)의  말처럼 저자가 겪었던 상실의 고통과 치유 과정은 깨달음을 얻는 축복의 길이었다.

저자가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게 된 계기와 경험 그리고 교도소의 재소자들과 만남을 통하여 저자와 재소인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기술하면서 책은 시작된다.
이혼한 지 5년째 접어들어서도, 전쟁 같은 생활 속에서도, 치유는 계속되었다.  나 자신이 눈앞에 전과 기록이 펼쳐진 죄수처럼 느껴졌다.  내게는 자신을 내팽겨쳤던 과거가 있었다.  그러기를 반복해 왔었다.  이제 와 달라지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어떤 사람이 믿을 만한가 아닌가를 알아내는 건 차리리 쉬운 일이다.  보다 중대한 사안은 내가 날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이다.  만약 신뢰할 수 있다면, 내가 언제 위험한 길을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알까? 내면의 목소리가 내게 경고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리에 주의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것에 주의하고 있어야 했다.(P.31)  
교도소에서 재소자들과의 만남, 그리고 대학원 시절 심리 치료의 실습과정에서 만났던 어린 스콧이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저자 자신을 찾았을 때 저자 폴라 다시는 이 세상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줄리아를 비롯한 담장 안의 그녀들.  그녀들은 내게 중요한 교훈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인생에서 정말로 귀중한 것은, 황량한 방에 발가벗고 서 있을 때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P.57)
루게릭병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던 모리 교수와의 만남.  지적 오만과 무신론적 고집으로 똘똘 뭉쳐진 모리 교수.  그의 신체가 하나씩 그 기능을 서서히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팔과 다리와 눈을 통하여 우리가 경험했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기억하고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그를 설득함으로써, 어쩌면 좌절과 분노로 생의 마지막을 보냈을지 모를 짧고 소중한 시간을 감사와 사랑의 시간으로 되돌려 놓았다.  죽음을 잘 맞겠다는 강한 의지가 모리를 바꾸기 시작하면서 저자 또한 자신에게 상실의 고통을 안겨준 음주운전자와 상대방을 인정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 매우 서툴렀던 자신의 친아버지에 대한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랑할 수 있는데도 사랑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하는 모리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리는 전 인생에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무수히 많았음에도 사랑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저자 자신의 체험과 성찰이 주는 잔잔한 메시지가 잔물결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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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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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두려움에 마주보기 힘든, 어쩌면 피하고 싶은 대상이나 사건이 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옆자리의 누군가가 다 끝났노라고 알려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처럼, 나 아닌 누군가가 나의 불행을 대신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행운도 불행도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오직 어느 멜로 드라마의 끝장면처럼 평온하고 안락한,  웃음이 가득한 삶이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포근한 봄날이 계속될 것이라 믿고 싶은, 자연의 순리도 거부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죽음,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영원한 단절.  작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누구에게나 삶의 시작과 함께 죽음은 예정된 것이지만 , 아득히 멀게만 느끼며 사는 까닭에 죽음은 언제나 막연한 그 무엇이고 상상 속의 실재로 남는 것이다.  어느 날 그 죽음이 자신의 곁으로 선뜻 다가왔을 때, 나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담담할 수 있을까?
48세의 나이를 마감하는 겨울, 고등학생 딸과 대학생 아들을 둔 후지야마는 폐암 말기라는 진단과 함께 자신의 삶이 6개월을 넘지 못하리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인간은 정말로 혼자 있고 싶을 때, 아무도 없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 많은 곳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그의 고백처럼 자신에게 다가올 절대고독의 순간을 두려워했다.
연명치료를 거부한 후지야마는 남은 기간에 자신의 인생에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기로 결심한다.  이루지 못했던 첫사랑의 여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고등학교 때 사소한 말다툼으로 헤어졌던 친구와 화해하고, 자신이 배신했던 거래처의 사장에게 용서를 빌었다.
인생은 연필로 그리는 데생 같은 것이다.  연필로 몇 개의 선을 그리면서 조금씩 전체의 모습을 포착한다.  개중에는 아무리 봐도 실제보다 많이 삐져나온 선이 있다.  현실을 왜곡한 선이다.  지우개로 지울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면 이렇게 그릴 텐데......"라는 선을 남기고 싶다.  남은 날들 안에서 인생을 수정하고 싶었다.(P.135)
그에게는 5년 동안 사귀어 온 15년 연하의 연인이 있다.
주인공은 아내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자신의 죽음을 털어놓는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죽음과 마주한 주인공과 자신의 사랑을 누구에게도 떳떳이 주장할 수 없는 여인은 그렇게 동질적이다.  작가는 죽음이라는 애절한 이야기를 그들 둘에 의지하여 풀어나간다.  죽음이란 삶에서 중요하다고 느꼈던 그 모든 것에서의 해방이다.  명예도, 부도, 사치도, 체면도...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아들에게 자신의 연인을 소개한다.  살아 남을 사람에게 자신이 심판받기를 바라는 것은 죽는 자의 두려움을 얼마만큼 희석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사치란 '꺼림칙함'을 가리킨다.  '이렇게 하면 언젠가 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꺼림칙함이 사치의 정체이다.  나는 아일레이 섬 싱글몰트를 다시 입 속에 머금었다.  맛있지만 사치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의 나에게는 이 술에 대한 꺼림칙함이 없으니까.(P.238)
17살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작사가로, 영화감독으로, 프로듀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주인공도 모르던 딸의 등장이었다.  주인공이 결혼 전 입사 동기와의 짧은 교제에서 태어난 딸의 등장과 그녀의 결혼식은 전체적 구성에서 군더더기와 같았다.  다양한 인물과 삶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다고는 생각되지만 작가의 지나친 욕심으로 전체의 통일성과 주제의 집중도가 희석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알고 죽음을 맞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한 것일까?  나는 오랫 동안 치매를 앓아 온 아버지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죽음을 예감하고 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당신은 직감하지 못하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남을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 전에 자신이 형성한 모든 관계를 갈등없이 풀어야 하나 보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늙은 코끼리가 담담히 무리를 떠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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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부모님을 뵙고 온 뒤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13년째 병원에 계셨던 아버지가 최근에 퇴원을 하고 집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되면서 어머니의 외출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치매로 자식들 얼굴마저 알아보지 못하시는 아버지.
그 모습을 옆에서 지키셔야 하는 어머니의 부담감은 꽤나 크실 것이다.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이모댁에 다녀왔다.
한시도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아버지의 곁에는 큰누나가 남아있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모처럼만의 외출이 싫지 않으셨는지 어머니의 표정은 내내 밝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자식들은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모실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데 어머니는 운명이려니 하며 체념하신다.  어쩌면 가끔 들르는 요양 봉사자들이 자식보다 낫다고 여기실지 모르겠다.
이제는 어머니의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어머니를 다시 아버지 곁에 모셔다 드리고 헤어져 오는 길.  잊었던 편두통에 시달렸다.

오늘은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여러 사람들이 건네는 축하 인사와 부산스러움 속에서 정신없이 세례성사를 마쳤다.  신부님과 사진을 찍고 돌아서 나올 때 다시 편두통이 왔다.
쉬고 싶었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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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에 부모님을 뵙지 못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는 얄팍한 속셈을 안고 서울에 갔었다.  승용차를 타고 가지 않은 탓에 고속버스와 지하철, 마을버스를 번갈아 갈아 타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주눅들게 한다.  과거에 익숙했던 그 방식은 세월의 경과와 함께 나를 낯선 곳으로 데려다 놓은 듯하다.   지하철의 승강장과 선로부를 구분짓는 스크린 도어를 통해 그 느낌은 더욱 생생해졌다.  '남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울이 아닌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승강장으로 진입하며 지하철이 일으키던 바람에 머릿결이 흩날리던 기억과 덜커덩거리는 소음의 기억은 스크린 도어라는 낯선 구조물이 과거와 현재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림 맞추기를 하는 것처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를 연결할 적당한 그림을 찾지 못한 채 답답한 마음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마을버스 승강장에서 줄을 지어 기다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 속에 섞였을 때 그 어색함.
영영 변하지 않을 듯하던 거리의 풍경은 건물의 높이 만큼이나 위압적인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갑작스런 나의 방문에 어머니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세월의 무게는 당신의 키도 낮추어 놓는 듯했다.
우리는 언젠가 그렇게 차츰 낮아지다가 결국 땅속에 묻히는 날을 수동적으로 맞이하는 게 아닐까?  집사람과 아들녀석을 대동하지 않고 노부모를 찾아 뵙는 일이 나에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처럼 느껴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께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호스를 통하여 소변을 받아내는 탓에 진한 지린내가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아들을 위해 늦은 점심을 차리시는 어머니.
어색한 침묵을 멈추려는 어머니의 노력은 항상 과거에 머문다.
모자 사이의 대화도 어느 순간부터 과거의 창을 통하지 않고는 이어가기 어려워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런 대화마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늙으신 어머니는 현재를 붙들 기운마저 소진한듯 오롯이 과거에만 머문다.  나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선다.
딱히 정한 곳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짧았던 봄이 여름의 중간에 위치한듯 무덥다.
나는 그런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다 오늘에서야 업무에 복귀했다.
무거운 마음만큼 하늘도 무겁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려 기운 없는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오늘처럼 긴 하루를 또 언제 맞게 될런지...
일찍 자려고 해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서성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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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네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편지로 남겼었지.
사람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고 좋은 생각은 무시로 떠오르니 그때마다 잊지않고 종이쪽에 적고 시간을 내어 다듬는 것이 쉽지만은 않더구나.  
게다가 나의 게으름이 수시로 훼방을 놓아 한동안 손을 놓는 일이 다반사란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네게 대화로 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단다. 
나의 말을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삶의 고비를 한번도 겪지 않은 네가 지금 꼭 들어야 할 말도 아니기 때문이지.  
먼 훗날 나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때, 지금 쓰는 나의 편지가 네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뿐이란다.

아들아

알고있니?
그동안 너를 보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단다.
그것이 비단 여기에서 그칠 일은 아닐테지만, 그간의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너는 내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이 되어 주었단다.
그뿐이겠니.  
나의 잘못된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바로잡아 준 것도 실로 너의 도움이라고 말할 수 있단다.
너의 행동이 내게는 무언의 스승이었던 셈이지.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구나.

아들아

너와 떨어져 살면서부터 너의 하루하루가 늘 궁금했단다.
저녁에 주고받는 전화통화에서 나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해결해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걸 알고 있니?  어제 일어난 일이나 몇시간전에 있었던 일도 너는 까맣게 잊고 있었지.
너의 말투를 빌리자면 이랬단다.  "글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한없이 좋았단다.  지금 사는 이 순간에 집중할뿐 흘러간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 모습은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꿈꾸던 삶이었단다.
어제의 통화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오는구나.
학교에서 남들은 이미 다 받은 어린이날 선물을 너만 못 받고 있다가 어제서야 받았다고 내게 말했었지.  나는 속으로 한참을 웃었단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네게 줄 선물을 받으러 오라는 것을 너는 까맣게 잊고 있지는 않았니?  너의 관심을 끄는 다른 일에 너는 넋을 놓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단다.  너 혼자 뒤늦게 받은 선물이 다른 아이들보다 몇배의 기쁨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니?  그렇게 잘 잊는 네가 필요한 것들은 너무도 자세히 기억하는 것을 볼때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단다.  어쩌면 그리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구별하는지...

아들아

지금의 네 모습을 앞으로도 잘 간직하렴.
지난 일들 중에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단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 여행에 올라 타렴.  그리고 네가 맞는그 순간을 맘껏 즐기렴.
지난 일을 되새기고, 다가올 미래를 염려하며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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