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어릴수록 기후 적응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조금만 더워도, 조금만 추워도, '죽겠다.'는 말이 거침없이 튀어 나오니 말이다.
이것은 비단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겨울이면 옷을 껴입고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여름이면 혀를 길게 빼고 헉헉대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매일 아침 마주치는 외국인 아가씨가 있다.
내가 운동을 마치고 산을 다 내려올 때쯤이면 배낭을 매고 산을 오르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간단한 인사와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인데 캐나다 출신인 그녀가 우리나라의 여름을 견디는 것이 조금 신기하다 느낄 때가 가끔 있었다.
"Good morning." 하고 인사를 건네자 늘 그렇듯 그녀는 서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하고 말한다.  그리고 웃는다.
"It's so hot and sticky. isn't it?" 하고 말하자 그녀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Ya, but I like summer.  I've never experienced hot weather like this in Canada.  So I enjoy the summer now."
나는 순간 그녀의 긍정적인 인생관이 좋았고, 새로운 것을 즐기는 그녀의 젊음이 부러웠다.
"Have a good day."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산을 내려왔다.
약한 바람이 등에 흐르는 땀을 걷어가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의 더위는 훨씬 옅어졌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더위도, 추위도,  순간일 뿐이다.
지나간 젊음을 한없이 그리워 하듯, 계절의 순환도 그런 게 아니겠는가.
내게 허락된 짧은 시간을 헛된 불평으로 허비하며 지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고 또 반성해 볼 일이다. 
비가 한바탕 쏟아지다가 그쳤다.
후끈한 열기와 눅눅한 습기가 온 방안을 휘감고 있다.
나는 그녀처럼 오롯이 여름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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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뉴스를 보면 교육부와 얼마 전 당선된 진보 교육감 사이에 불미스런 문제가 심심찮게 불거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교육의 문제가 어찌 그뿐일까마는 학생을 둔 학부형의 입장에서 아이의 교육을 생각할 때마다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기업 프렌들리를 정책 기조로 삼는 현정부와 학생의 자율이나 인권을 강조하는 진보 교육감의 시각에서 사뭇 이데올로기의 대립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계은행이 공개한 2009년 세계 경제 규모 순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8325억달러로 세계 15위에 이른다.  2003년에 11위를 기록했지만, 해마다 뒷걸음질쳐 현재에 이른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러한 추세는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암울한 전망을 낳게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960년 6.0명에서 2008년 1.19명으로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고 가정할 때 2020년이면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여, 2050년에 이르면 현재 인구보다 600만명 정도가 줄어들고, 2300년에 이르면 전체 인구가 5만명이 된다고 한다.  알다시피 한 국가의 전체 인구는 기업의 입장에서 노동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한 것이다.  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비의 감소는 기업과 소수 자본가에게 있어 사활의 문제이자 생존이 달린 문제이므로 어떠한 방식으로든 소비의 확대 재생산을 유도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이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각각의 소비자로 하여금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남보다 더 좋은 차, 더 좋은 가구, 더 좋은 집, 더 좋은 휴대폰, 더 좋은 옷 등을 갖고 싶어 하는 욕구와 경쟁의식을 부추김으로써 제품의 교체 주기를 더욱 짧게 만들 수만 있다면 제품의 소비는 인구의 감소에 따른 소비의 감소를 대체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어릴 때부터 경쟁을 학습시키는 일련의 교육은 기업의 입장에서 필수적이다.
경쟁은 본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이기에 교육을 통하여 끝없이 경쟁의식을 주입함으로써 제품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의 완성이나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진정한 교육의 의미는 퇴색되고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유능한 인재 육성이라는 미사여구도 마찬가지다.
기업에 필요한 인재는 입사와 동시에 기업의 문화와 용도에 맞도록 육성되는 것이지 발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의 전문인력은 발굴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좋은(?) 소비자로 길러지고 있다는 자괴감은 나만의 생각일까?  구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휴대폰을 바꾸려 하고, 친구네집의 평수가 궁금하고, 다른 집의 차종을 궁금해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교육계내에 존재하는 작금의 문제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아니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도구로 보느냐 아니면 삶의 고귀한 가치를 지닌 인격체로 보느냐 하는 관점의 문제인 것이다.  기업의 이익을 최상의 가치로 인식하는 한 우리나라 아이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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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랫만에 흘러간 옛노래를 들었다.
최근에 나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살고 있기에 이런 여유마저 잊고 있었다.  어쩌면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업무와 건강을 신경쓰느라 그밖의 다른 것에는 일체 눈을 돌리지 않았었다.  그렇게 즐기던 책도, 음악도, 다른 사람과의 교제도 손을 놓은 지 꽤나 오래 된 느낌이다.  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데 나만 홀로 외딴 섬에 따로 떨어진 것 같은 그런 생활을 해 왔던 것인데, 때로는 이런 생활이 오래 지속되면 좋은 점도 더러 있으나 벗어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오늘은 작정을 하고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유독 내 귀를 사로잡는 노래가 있었다.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섹스폰 소릴 들어보렴

샛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섹스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 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를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그렇다.  허스키한 보이스가 매력적이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란 노래이다.
낭만의 사전적 의미는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 또는 그런 심리 상태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라고 적혀 있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낭만을 말할 때 묘한 설레임을 느끼게 된다.
희망과 절망의 중간쯤에 사랑이 있다면 사랑과 이별의 중간쯤에 낭만이 있다고 할까.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거나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할 때에도 낭만은 먼 거리에서 우리와 동행하고 있음이다.  작은 내의 징검다리를 건너듯 알맞은 보폭에 놓인 낭만의 징검다리는 꿈결 같은 사랑의 미로를 안내하는 안내인이자, 사랑을 보호하는 파수꾼이다.
정열과 낭만이 넘치던 학창 시절, 우리는 저마다의 사랑을 찾아 낭만에 젖었었다.
그 즈음에는 비 오는 날의 우수도, 눈보라 몰아치는 추위도 한편의 아름다운 시가 되고 언젠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라진 간이역에 남겨진 무성한 잡초처럼 덧없고 쓸쓸한 것일지언정 언젠가 그 추억만으로도 다시 찾을 기약을 하게 되듯, 낭만이 있는한 언제든 추억은 되살아나는 것이다.
열병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낭만은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사랑의 청량제 역할을 하는가 하면, 서로가 데면데면한 사람들에게 낭만은 서로의 가슴에 회오리 바람처럼 빨려들어가는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낭만은 과거와 현재에 다리를 놓아 준다.
고즈넉한 어느 여름날의 저녁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지난 시절의 한토막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우리네 가슴에 낭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 며칠 건조한 삶을 살았던 탓인지 딱딱하게 굳어 있는 내 머리와 감성은 글을 쓰기 어렵게 한다.   머리와 손이 제각각 노는 느낌이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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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촉촉히 비가 내렸다.
그동안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모처럼 만난 비라서 더 반갑다.
우산을 챙겨들고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는 맑은 날의 산행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산에 오르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으레 그렇듯 운동복을 챙겨 입고 바깥 날씨부터 살피는 것이다.
베란다 창문에 어린 빗방울이라도 보는 날이면 오늘처럼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서게 된다.
매일 아침 오르는 마을 뒷산의 초입에 들어설 때면 의식을 치르듯 내 몸의 먼지를 턴다.
사람들은 대부분 산에 다녀온 뒤에 자신의 몸을 씻고 옷의 먼지를 털지만 나는 이와는 반대로 산에 오르기 전에 내 몸의 먼지를 터는 것이다.  우리가 가끔 혼동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자연에서 묻힌 먼지를 더럽게 여기고 인공의 것에서 묻은 먼지나 티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나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집에서 묻은 먼지로 청정한 자연을 더럽힐까 싶어 몸의 구석구석을 털고 산에 오르곤 한다.  그리고 산을 내려오면 내 몸을 씻기는 하지만 운동복의 먼지를 털지는 않는다.  이것은 습관처럼 굳어져 있다.
비 내리는 날의 산은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진한 향기가 각각을 구분할 수 없으리만치 뒤섞여 마치 각각의 악기가 합쳐진 교향곡을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 내 코는 때 아닌 호사를 누린다.
그리고 비오는 날의 산행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내가 산에 오르는 시각에 그렇게 많이 보이던 등산객을 거의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 물러진 산길을 카펫을 밟듯 여유롭게 걸으며 어느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방해받지 않은 채 오롯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들뜬 마음으로 수선스러운 나무들과 아침을 준비하는 새소리도 더욱 또렷하다.
나는 그 속에 녹아들어 한껏 즐기면 되는 것이다.
철학적 사색을 애써 하지 않아도 나 또한 자연의 일부임을 실감하게 된다.
내일 아침에도 비가 내려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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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콘서트 - 복잡한 세상을 지배하는 경영학의 힘
장영재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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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방선거가 끝났다.
일반 국민들은 자신을 대신해 지방자치단체를 운영할 사람을 뽑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는 종결된 것이지만 정치인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그것은 이번에 당선된 사람이나 중앙정부의 정치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투표 결과를 놓고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분석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여러 미디어에서 자주 보게 되니 말이다.
이 책의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선거의 결과를 내가 굳이 꺼내는 이유는 따로 있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전체 국민의 안녕과 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가들이 낡은 사고의 틀과 켸켸묵은 이론으로 국민들 위에서 거만한 표정과 몸짓으로 군림하려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한심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기업 경영의 첨단 이론과 과학적 모델로도 기업의 최상 목표인 이윤 극대화를 이룩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그 규모와 인원에서 일개 기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국가의 의사 결정권자라는 정치가들이 그렇게 무지하고 한심한 말로 국민들을 설득하려는 모습을 볼 때 답답함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와 야를 가리지 않고 동일하다.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하는 정치가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이 책에서 간략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는 여러 이론 중에 하나의 예를 들어 우리 나라 국가 경영의 낙후성을 점검해 보자.
미국의 ’AT&T’사가 도입했다는 큐잉 이론이다.  전화 회선의 연결 직원의 수에 따라 송신자의 대기 시간이 결정되는 기업의 특성상 그들은 이 이론을 통해 직원수를 결정하고, 고객 예상 대기 시간을 산정하여 운영에 참조했다고 한다.  국가의 생산물이 행정 서비스라고 할 때 다양한 종류의 행정 서비스를 기다리고 있는 국민들의 대기 인원과 그 내용을 처리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행정 기구와 공무원의 적정 인원을 수학적 모델이나 컴퓨터 공학의 방법론으로 계산이나 해본 것일까?  자신들의 취향이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무시해버리거나 자신들의 이익과 기호에 맞는 기구만 새로 만들거나 공무원의 확충을 꾀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국민들 대다수가 이념적 편향이나 지역적 연고에 의해 이번 선거의 후보자에게 표를 던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 행정 서비스의 최종 소비자인 국민들이 세금을 내고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기에 그 불만의 표시를 투표로 행사했을 뿐이다.  그것은 내가 상점에서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받지 못한 것과 다르지 않다.
상점에서는 그 판매자와 대면하고 조목조목 따질 수나 있지만 실체가 없는 국가 경영의 주체에게는 그마저도 통제당하거나 외면당하기 일쑤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국민들을 대신하여 의사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이념 이데올로기와 지역 연고의 고루한 틀 속에서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1%의 수익을 더 얻기 위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기업 구조를 최적화 하려 노력하는 기업 경영인의 노력과 그 첨단 이론들을 우리 정치인들이 배웠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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