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촉촉히 비가 내렸다.
그동안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모처럼 만난 비라서 더 반갑다.
우산을 챙겨들고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는 맑은 날의 산행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산에 오르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으레 그렇듯 운동복을 챙겨 입고 바깥 날씨부터 살피는 것이다.
베란다 창문에 어린 빗방울이라도 보는 날이면 오늘처럼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서게 된다.
매일 아침 오르는 마을 뒷산의 초입에 들어설 때면 의식을 치르듯 내 몸의 먼지를 턴다.
사람들은 대부분 산에 다녀온 뒤에 자신의 몸을 씻고 옷의 먼지를 털지만 나는 이와는 반대로 산에 오르기 전에 내 몸의 먼지를 터는 것이다. 우리가 가끔 혼동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자연에서 묻힌 먼지를 더럽게 여기고 인공의 것에서 묻은 먼지나 티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나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집에서 묻은 먼지로 청정한 자연을 더럽힐까 싶어 몸의 구석구석을 털고 산에 오르곤 한다. 그리고 산을 내려오면 내 몸을 씻기는 하지만 운동복의 먼지를 털지는 않는다. 이것은 습관처럼 굳어져 있다.
비 내리는 날의 산은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진한 향기가 각각을 구분할 수 없으리만치 뒤섞여 마치 각각의 악기가 합쳐진 교향곡을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 내 코는 때 아닌 호사를 누린다.
그리고 비오는 날의 산행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내가 산에 오르는 시각에 그렇게 많이 보이던 등산객을 거의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 물러진 산길을 카펫을 밟듯 여유롭게 걸으며 어느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방해받지 않은 채 오롯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들뜬 마음으로 수선스러운 나무들과 아침을 준비하는 새소리도 더욱 또렷하다.
나는 그 속에 녹아들어 한껏 즐기면 되는 것이다.
철학적 사색을 애써 하지 않아도 나 또한 자연의 일부임을 실감하게 된다.
내일 아침에도 비가 내려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