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랫만에 흘러간 옛노래를 들었다.
최근에 나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살고 있기에 이런 여유마저 잊고 있었다.  어쩌면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업무와 건강을 신경쓰느라 그밖의 다른 것에는 일체 눈을 돌리지 않았었다.  그렇게 즐기던 책도, 음악도, 다른 사람과의 교제도 손을 놓은 지 꽤나 오래 된 느낌이다.  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데 나만 홀로 외딴 섬에 따로 떨어진 것 같은 그런 생활을 해 왔던 것인데, 때로는 이런 생활이 오래 지속되면 좋은 점도 더러 있으나 벗어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오늘은 작정을 하고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유독 내 귀를 사로잡는 노래가 있었다.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섹스폰 소릴 들어보렴

샛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섹스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 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를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그렇다.  허스키한 보이스가 매력적이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란 노래이다.
낭만의 사전적 의미는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 또는 그런 심리 상태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라고 적혀 있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낭만을 말할 때 묘한 설레임을 느끼게 된다.
희망과 절망의 중간쯤에 사랑이 있다면 사랑과 이별의 중간쯤에 낭만이 있다고 할까.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거나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할 때에도 낭만은 먼 거리에서 우리와 동행하고 있음이다.  작은 내의 징검다리를 건너듯 알맞은 보폭에 놓인 낭만의 징검다리는 꿈결 같은 사랑의 미로를 안내하는 안내인이자, 사랑을 보호하는 파수꾼이다.
정열과 낭만이 넘치던 학창 시절, 우리는 저마다의 사랑을 찾아 낭만에 젖었었다.
그 즈음에는 비 오는 날의 우수도, 눈보라 몰아치는 추위도 한편의 아름다운 시가 되고 언젠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라진 간이역에 남겨진 무성한 잡초처럼 덧없고 쓸쓸한 것일지언정 언젠가 그 추억만으로도 다시 찾을 기약을 하게 되듯, 낭만이 있는한 언제든 추억은 되살아나는 것이다.
열병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낭만은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사랑의 청량제 역할을 하는가 하면, 서로가 데면데면한 사람들에게 낭만은 서로의 가슴에 회오리 바람처럼 빨려들어가는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낭만은 과거와 현재에 다리를 놓아 준다.
고즈넉한 어느 여름날의 저녁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지난 시절의 한토막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우리네 가슴에 낭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 며칠 건조한 삶을 살았던 탓인지 딱딱하게 굳어 있는 내 머리와 감성은 글을 쓰기 어렵게 한다.   머리와 손이 제각각 노는 느낌이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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