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푸어 -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김재영 지음 / 더팩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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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동산의 가격은 부동산의 소유에서 발생되는 장래이익에 대한 현재의 가치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동산가격은 장래의 이익을 현재가치로 전환하여야 하며, 부동산의 가격과 소유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소유권의 가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부동산의 가격은 미래의 가치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우리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애널리스트들이 주가  예측에 있어 원숭이보다 그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이 예측에 목말라 한다.  그 원인은 남들보다 앞선 정보를 취득하여 이익을 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도 무관하지 않다.

경제학에서
한 재화의 수요량이 가격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변하면 그 재화의 수요는 탄력적이라고 하고, 가격이 변할 때 수요량이 약간 변하면 수요는 비탄력적이라고 말한다.  가격 비탄력적인 재화는 일반적으로 가격에 대한 반응도가 둔감한 편인데 주택 가격은 가격의 변동에 대해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일반 공산품에 비해 심하게 불안정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주택 가격의 등락은 서민경제나 우리나라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므로 정부정책과 언론 등 외부적인 변수에 의해 결정되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것은 주택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몹시 불평등한 구조이다.  왜냐하면 주택 공급자, 즉 건설업자는 정부(또는 언론)와 상호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반면, 수요자는 전혀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주택 수요자에게 정부정책의 변화는 그야말로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돌발변수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수요자가 떠안게 된다.

이 책은 사실과 통계에 근거하여 하우스 푸어라는 거대한 희생자 집단을 양산하는 부동산 시장을 분석하고,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욕망의 끝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도덕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독자에게 아파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돌이켜보라고 권고한다. 
<PD수첩>에서 이슈가 되는 다수의 프로그램을 연출했고 "남극의 눈물"을 제작하고 있는 TV프로그램 연출자인 저자는 향후 집값이 떨어지면 하우스 푸어로 전락할 위험성에 놓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투기를 조장한다는 도덕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대열에 기꺼이 동참했던 대한민국의 하우스 푸어들.  우리가 그들을 비난할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바로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자, 정부와 언론, 그리고 은행을 비롯한 수많은 아파트 이해 당사자들이 쳐놓은 환상의 덫에 걸린 피해자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집이라는 콧대 높은 연인을 마음에 품고 있는가?  쉽게 내 품에 다가오지 않고 콧방귀만 뀌고 있는 그녀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가?  앙큼한 그녀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당신, 이제 그만 그녀를 놓고 평화롭게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 그만 그녀 없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P.197)

  지난해 4분기 강남3구를 중심으로 크게 늘었던 서울지역 주택거래 건수가 올 들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서울시 부동산거래정보망인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작년 4월 이후 2200~2800건대이던 아파트 거래량이 10월부터 크게 늘어 매달 5000건 안팎 거래됐으나 이달 들어선 1555건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는 서울시가 실거래가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해 2월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부동산 회복기라며 우리를 유혹하는 말들이 곳곳에 난무한다.  겨울철은 부동산 비수기이기 때문이라며 애써 위로하는 그들의 달콤한 말이 봄의 유혹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다.  가격 비탄력적 재화의 대표 유형인 아파트와 마약은 서로 많이 닮아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지만 우리나라 안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파트를 통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는 검은 욕망을 버리지 않는한 우리 스스로 내 이웃을 선량한 피해자로 확대 재생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부메랑으로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파트라는 매개체로 검은 욕망을 사고 파는 그런 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것은 아파트를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본래의 가치로, 사랑과 정이 넘치는 따뜻한 공간으로 되돌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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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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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마음이 불편하다.
제 잘못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처럼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로 우리를 일깨우는 스님의 말씀에 괜한 딴지를 걸게 되고, 한바탕 심술이라도 부리고 싶은 마음이다.
알면서도 실천이 어려운 사부대중의 마음을 향해 죽비를 내려치시는 듯 스님의 말씀에는 한치의 태만에도 용서가 없다.  그야말로 서릿발이다.
때로는 남들도 다 그러는데 하는 심정으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으나 스님의 글을 읽노라면 스님의 매서운 눈길이 금방이라도 내리꽂힐 듯싶다.  적당히 눈감아 주고, 보고도 못본체 알고도 모르는 체할 수도 있으련만 그러지 않으니 야속타 싶다가도 금세 마음을 다잡게 한다.  스님의 말씀처럼 시공간을 떠나 보이지 않는 끈이 우리들 서로서로와 이어져 있는 까닭이리라.

"제가 좋아하는 영어 문장에 `One for All, All for One’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의미로 <화엄경> 법성게에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가르침입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진정한 깨달음이고 진리의 세계입니다." (P.154)

며칠 전 나는 내 숙소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중 고등학생들만 따로 모아 `배려'라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속내는 아이들이 토론을 통하여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짧게는 `논술' 시험에 조금의 보탬이 될테고 나아가서 각자의 삶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한 일인데, 내 의중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결국 글쓰기의 대상은 자신의 마음인데 단 한번도 자세히 관찰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글을 잘 쓰게 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나도 여전히 마음을 관찰하는데는 서툴기 그지없고, 그러므로 겉도는 이야기만 끄적거린다는 것도 부인하고 싶지 않다.
하릴없이 시간만 보낼 수는 없었기에 침묵만 지키는 아이들을 대신해 내가 말을 꺼냈고 나의 질문에 억지춘향식의 대화는 이어졌지만 결국 나의 일방적 일장훈시로 끝이 났다.

"참다운 스승은 말로써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학에서 말로 가르치지만 참다운 스승은 말로써 가르치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행동으로 몸소 그렇게 보여줍니다.  일상적인 삶으로써 열어 보입니다.  제자는 그 곁에서 항상 새롭게 배우면서 깨닫습니다.  스승은 제자가 스스로 알아차리도록 도울 뿐입니다.  스승은 입벌려 가르치지 않습니다.  좋은 스승은, 제자 내부의 본질이 꽃피어 나도록 도울 뿐입니다." (P.220)

나는 여전히 마음 공부가 미진한 범부에 지나지 않기에 스님의 말씀은 항상 먼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매일 아침 산으로 오르며 내 자신에게 되묻곤 한다.  내 능력으로 이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일곱 대천사 중 라파엘을 생각한다.  ‘치유하는 빛나는 자’, ‘사람의 영혼을 지키는 자’, ‘생명의 나무 수호자’라는 칭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라파엘은 치유력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나의 세례명은 라파엘이다.  이름에 걸맞지 않게 살아가는 내 삶이 때로는 부담스럽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동장군의 기세가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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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 내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 밥상머리 교육의 비밀
S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 리더스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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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는다는 것’과  ’식구(食口)’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어찌 보면 일상에서 가장 흔하디 흔한 식사의 행위와 그 환경이 가장 훌륭한 교육의 장(場)이라니!  나는 책을 읽으며 ’아차!’ 싶었다.
채근담에서 이르듯이 진리는 언제나 평범함 속에 있고 쉬운 일일수록 정성을 다해야 함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여건상 하나있는 아들 녀석과 밥을 같이 먹는 경우는 주말 이틀이 고작이다.
이러한 까닭에 밥은커녕 하루에 한번 전화하는 것도 가끔 잊을 때가 있다.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내와 아들의 밥상머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처럼 내가 지키지 못하는 아들의 밥상머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위임한 처지임에도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역설적이게도 ’나도 이만큼 아들의 교육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는 항변의 의미가 컸다.  

어려서부터 아토피를 앓았던 아들 녀석은 우리 부부에게, 특히 아내에게는 커다란 짐이었고 먹거리 하나하나가  스트레스였다.  자주 들르는 소아과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쥐어 주는 사탕도 아들 녀석은 그것이 달고 맛있는 먹거리임을 알지 못할 정도였으니 오죽했을까. 
가끔 아들과 산에 오를 때에도 지나치는 등산객들이 귀엽다며 건네주는 초콜릿을 받아 든 아들 녀석은 선뜻 먹는 법이 없고, 망설이며 내 눈치를 보다가 먹어도 되냐 묻곤 했었다.
지금도 아들 녀석은 자신이 판단하여 안좋다 싶은 것은 스스로 절제하곤 한다.
아내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지금은 건성 피부를 가진 일반인과 비슷할 정도로 좋아졌지만 좋아하는 것을 맘껏 먹지 못했던 아들에게 식사는 그닥 유쾌한 행위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주말에 아들과 식사를 할 때면 쉴 새 없이 종알대는 아들의 목소리가 나는 그저 즐겁다.

이 책은   Part 1 인생 최고의 교실 밥상머리, Part 2 뇌를 키우는 밥상 대화의 모든 것, Part 3 성공적인 가족식사의 7가지 열쇠 - 실전편, Part 4 잃어버린 밥상머리 되찾기 4주 프로젝트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빠들이 그렇겠지만, 온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식사하는 것이 아무리 교육 효과가 좋고 아이들의 정신적, 육체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할지라도 정작 그 시간을 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막상 모두 모여 식사를 할 때에도 서로간의 대화는 생각처럼 술술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족식사가 아이의 정서 안정과 삶의 만족감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정서 안정은 아이들의 성적에도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 전국 중고등학교 100개 학교의 전교 1등 학생들과 중간성적의 학생들을 비교해보면 1등 학생의 주당 가족식사 횟수가 월등히 높다.  1등 학생 중, 가족식사가 없는 경우는 중간성적 학생의 1/4 수준으로 적었고, 주당 6~10회 이상인 경우가 무려 73%에 이르렀다." (P.142)

이러한 결과를 수치로 확인하지 않는다 해도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하루 일과를 궁금해 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아이의 미래를 응원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가족의 사랑을 몸으로 느끼고, 서로간에 믿음을 공고히 할 것임을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현재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실상을 보면 그 아이들이 그런 환경에서도 공부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경제적 여건상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가 하면 ,외부모 가정의 아이도 있으니 가족식사는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다.  혼자 먹는 밥이 즐거울리 만무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그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함이었다.  내가 비록 식사를 같이 할 수는 없지만 식사 중에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런 이야기를 그들 부모의 귀를 대신하여 내가 들어줄 수는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은 식사와 더불어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변한 것이 있다면 아들과의 전화 내용이 그것이다.  그저 하루 일과를 보고받는 형식에서 이제는 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나 궁금한 점을 때로는 묻기도 하고,  정성을 다해 아들의 말을 들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내 아들과 전화를 하듯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의 말을 정성껏 들어주고 싶다.
비록 사랑이 부족하고,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그들을 위해 기꺼이 변하겠다 각오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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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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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 권을 들고 꼬박 일주일을 읽었다.
보통 책 한 권을 잡으면 하루만에 후다닥 읽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마른 성격의 나에게는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처럼 가볍게 대할 수 없는 진지함이 텍스트 전체를 관통하는 경우도 그리 흔치 않은 듯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낸 성과이니 마땅히 그래야만 하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위대함과 연구진의 인내심에 새삼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인간의 기억과 추측으로 이루어진 심리학 이론이 결코 가볍다거나 오류 투성이라고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믿음과 신뢰의 측면에서 이러한 실증적 연구는 그 대상이 비록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결여한다고 평할지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게 된다.

지금까지 인간의 삶을 조망함에 있어 특정 연령대를 실증적으로 추적하고 관찰하여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인간의 삶 전반을 전향적으로 추적하고 관찰하는 연구는 막대한 연구비용도 문제려니와 연구원의 인내심과 관찰대상자의 적극적 참여가 관건이다.  저자가 밝히듯 그것은 행운에 가깝다. 
이 책에서 밝히는 관찰 대상자 집단은 1930년대 말에 입학한 하버드대 2학년생 268명(그랜트 연구 대상자 - 하버드졸업생 집단)과 보스턴 이너시티 소년원에 수감되었던 청소년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전과과 없는 평범한 소년들의 집단(글루엑 연구 대상자 - 이너시티 집단) 그리고 전설적인 천재아 연구인 ’스탠포드 터먼 연구’에서 90명을 선정하였다.

1990년대 말에 크게 유행했던 ’긍정심리학’의 대부로 올라섰던 저자의 연구가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총체적 인자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는 그가 제시하는 행복의 조건들(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교육, 안정된 결혼 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만 충족하면 행복한 노년은 저절로 보장되리라는 믿음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하는 물음에 그 방향성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행복한 삶에도 공식이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기자 조슈아 울프 솅크의 들어가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저자를 평하고 있다.

"베일런트의 담담한 고백을 들으면서 마음에 사무치는 교훈 한 가지가 떠올랐다.  방어기제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방어기제를 관찰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다.  오직 인내와 유연함만을 통해서만 가시 돋은 갑옷을 좀 더 부드러운 방어막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  생각건대, 바로 여기에 행복한 삶의 핵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원칙을 따라가거나 문제를 피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고통과 전제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의 열쇠라는 생각이 든다." (P.28)
  
저자는 행복한 노년의 조건에 덧붙여 미래지향성(미래의 예견과 희망), 감사와 관용,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사랑과 이해), 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일을 해나가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꼽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꼈던 점은 복잡했다.
한 권의 소설이 아닌 인간의 전 생애를 파노라마를 펼쳐보듯 논픽션으로 접할 수 있었다는 흥분과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상식에 대한 수정(이를테면 행복한 노년과 종교는 그다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과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낸 것이 행복한 노년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 더해졌으며, 인간의 삶이 자연의 섭리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에 배웠던 암석의 순환 과정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퇴적물이 쌓여 단단해지면 안석이 되고 이것이 지구 내부의 열과 압력을 받아 성질이 변하고 다시 마그마로 녹아 지표(地表)로 분출되었다가 풍화와 침식 및 운반을 거쳐 다시 암석으로 변하는 ...
어쩌면 우리가 성인에 이르는 시기는 자신의 목표나 욕심을 향해 단단해지는 과정일 것이다.  이 시기에는 누구나 욕심을 부리는 것이 당연하며 그래야 할 필요성도 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나이가 들고 세파에 씻기면 서서히 부서져 다음 세대를 위한 밑거름으로 잘게 부숴져야만 한다.  부드러운 흙 알갱이와도 같이 부드럽게 변한 모습이 노년의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다음 세대의 씨앗이 자신을 거름 삼아 깊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 마땅하며, 그것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행복한 노년을 맞는 비결이 될 것이다. 
늙어간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끝까지 자신의 것을 움켜 쥐려는 것은 얼마나 추하고 안타까운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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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오늘은 너의 아홉 번째 생일!
2011년이 시작될 때,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한해를 시작하고 싶었단다.
그런데 20여일이나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네게 편지를 쓰게 되었구나. 
네게 생일 축하 메일을 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단다.  
너와 함께 보냈던 소중한 추억들, 그리고 너와 떨어져 살고 있는 현실의 안타까움 등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구나.
평일에 너와 함께 지내지 못하는 미안함을 이 한통의 편지로 상쇄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너를 늘 가슴 한켠에 두고 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이라도 내보이면 내게는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듯도 싶었단다.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제 초등 2학년이 되는 네게는 아마 어려운 일이겠지?

아들아

2주 전 일요일이었지.
습관처럼 분당의 한 대형서점에 들러 책을 읽는데 너의 엄마가 내게 밖에서 차 한 잔 하자고 하더구나.  네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는 서점 밖으로 나갔었지.  바람도 불고 몹시 추운 날이었잖니?  서점 안에 혼자 남은 너도 걱정되고 날씨도 추웠던지라 우리는 근처의 커피숍으로 향했단다.  너의 엄마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나는 무슨 말을 듣게 될지 은근히 불안하더구나.  차마 너 앞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눈물을 보이던 네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가슴이 아팠단다.  떨어져 살며 육아의 책임을 전적으로 너의 엄마에게 일임했던 나는 참 무책임한 가장이었단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네게 다시 돌아왔을 때 너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해요>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더구나.

아들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사치품이 시간이라는 말을 그렇게 절절히 느꼈던 적이 없었단다.
너와 함께 보내지 못한 많은 시간들, 그리고 공유할 수 없는 추억들...
나는 너를 통하여 지금껏 배우지 못했던 사랑을 뒤늦은 나이에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헤어질 때마다 번번이 눈물을 흘리던 네 모습을 생각하면 그 순수한 마음이 저리도록 느껴지곤 한단다. 
그리고 약한 몸으로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네 엄마의 고충을 들었을 때 그간 공감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보듬지 못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아들아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렴.
나도 하지 못하는 것을 네게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그래서 더욱 너는 그렇게 살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네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으면 좋겠구나.
어려서부터 나는 그 소중한 것을 배우지 못하며 자랐었단다.
살아가면서 정작 필요한 것은 네 나이 때에 모두 배우는 것인데도 말이지.
나이가 들어서는 어색하고 쑥스러워 자신을 변화시키기 어려운 법이란다.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에,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을 꼭 기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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