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법정스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마음이 불편하다.
제 잘못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처럼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로 우리를 일깨우는 스님의 말씀에 괜한 딴지를 걸게 되고, 한바탕 심술이라도 부리고 싶은 마음이다.
알면서도 실천이 어려운 사부대중의 마음을 향해 죽비를 내려치시는 듯 스님의 말씀에는 한치의 태만에도 용서가 없다.  그야말로 서릿발이다.
때로는 남들도 다 그러는데 하는 심정으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으나 스님의 글을 읽노라면 스님의 매서운 눈길이 금방이라도 내리꽂힐 듯싶다.  적당히 눈감아 주고, 보고도 못본체 알고도 모르는 체할 수도 있으련만 그러지 않으니 야속타 싶다가도 금세 마음을 다잡게 한다.  스님의 말씀처럼 시공간을 떠나 보이지 않는 끈이 우리들 서로서로와 이어져 있는 까닭이리라.

"제가 좋아하는 영어 문장에 `One for All, All for One’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의미로 <화엄경> 법성게에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가르침입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진정한 깨달음이고 진리의 세계입니다." (P.154)

며칠 전 나는 내 숙소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중 고등학생들만 따로 모아 `배려'라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속내는 아이들이 토론을 통하여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짧게는 `논술' 시험에 조금의 보탬이 될테고 나아가서 각자의 삶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한 일인데, 내 의중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결국 글쓰기의 대상은 자신의 마음인데 단 한번도 자세히 관찰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글을 잘 쓰게 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나도 여전히 마음을 관찰하는데는 서툴기 그지없고, 그러므로 겉도는 이야기만 끄적거린다는 것도 부인하고 싶지 않다.
하릴없이 시간만 보낼 수는 없었기에 침묵만 지키는 아이들을 대신해 내가 말을 꺼냈고 나의 질문에 억지춘향식의 대화는 이어졌지만 결국 나의 일방적 일장훈시로 끝이 났다.

"참다운 스승은 말로써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학에서 말로 가르치지만 참다운 스승은 말로써 가르치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행동으로 몸소 그렇게 보여줍니다.  일상적인 삶으로써 열어 보입니다.  제자는 그 곁에서 항상 새롭게 배우면서 깨닫습니다.  스승은 제자가 스스로 알아차리도록 도울 뿐입니다.  스승은 입벌려 가르치지 않습니다.  좋은 스승은, 제자 내부의 본질이 꽃피어 나도록 도울 뿐입니다." (P.220)

나는 여전히 마음 공부가 미진한 범부에 지나지 않기에 스님의 말씀은 항상 먼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매일 아침 산으로 오르며 내 자신에게 되묻곤 한다.  내 능력으로 이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일곱 대천사 중 라파엘을 생각한다.  ‘치유하는 빛나는 자’, ‘사람의 영혼을 지키는 자’, ‘생명의 나무 수호자’라는 칭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라파엘은 치유력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나의 세례명은 라파엘이다.  이름에 걸맞지 않게 살아가는 내 삶이 때로는 부담스럽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동장군의 기세가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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