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감기가 오려는지 목이 칼칼하고 식욕이 없다.
몸이 욱신욱신 쑤신다.
무겁게 짓누르는 피로감에 시간이 몇 배는 천천히 흐르는 듯하다.
얼굴이 화끈거려 찬물에 세수를 했다.  그래도 여전히 머리는 무겁고 가슴은 답답하다.
명절 연휴 동안 평소의 규칙적인 리듬이 깨진 탓인지 온 몸의 에너지가 방출된 느낌이다.
마치 태엽이 풀린 장난감처럼 금방이라도 작동을 멈추고 `푸르륵’ 꺼져버릴 것만 같다.

나의 감각이 예민하게 되살아나기만을 기다리며 멍한 시선으로 한동안 창밖을 응시했다.
잔뜩 찌푸린 하늘과 어깨를 웅크린 채 종종걸음을 치는 행인들. 
어디 아프냐며 걱정스레 묻는 동료에게 약간의 감기 기운이 있나보다고 대답하며 별것 아니라는 듯 멋적게 웃었다.  물 묻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간신히 추스리며 자리에 앉았다.
금방이라도 내 몸은 땅을 뚫고 가라앉을 것만 같다.

`조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병원에라도 다녀와야 할까?’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업무시간에 나의 시간만 홀로 유리방에 갇힌 듯 꼼짝을 하지 않는다.
하릴없이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참 오랫만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내 성격상 꾀를 부리거나 엄살을 떠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퇴근 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곱지 않은 시선인 듯한데 그 일로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말까지 듣는다면 그도 견디기 힘든 노릇이었다.

임시변통으로 사무실 근처의 약국에 들렀다.
알약과 함께 쌍화탕 한 병을 들이켰다.
빈속에 삼킨 약이 위벽을 훑고 지날 때마다 헛구역질이 났다.
`퇴근 시간까지는 좋아져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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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디에 있든 너와 함께할 거야 내인생의책 그림책 12
낸시 틸먼 글.그림, 신현림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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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녀석이 세 살 무렵이었나보다.
몸이 약했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유치원 종일반에 보냈었다.
유치원은 집으로부터 꽤나 먼 거리에 있었고,  아침에 유치원 차에 아들을 태워 보내면 오후 네 시는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때 아들은 유치원에서 가장 어렸고, 배변훈련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침마다 기저귀며, 간식이며, 여벌의 옷가지 등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그때 우리 부부는 이틀마다 번갈아가며 아이를 재웠다.  한 사람이라도 편하게 자게 하려는 방책이었다.  내가 아들녀석을 재울 때면 밤이 늦도록 책을 읽어달라는 통에 피곤함을 억지로 참으며 아이가 잠들 때까지 반복해서 읽어주던 책이 있었다.

 그 책은 샘 맥브래트니가 지은『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GUESS HOW MUCH I LOVE YOU)였다. 나는 지금도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읽어달라고 조르던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다.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아? 이 마~안큼" 그리고는 두팔을 활짝 벌립니다. 그러자 아빠토끼도 기다란 두 팔을 활짝 벌리면서 말하죠 "나는 이 마~안큼 너를 사랑해"
아기토끼는 아빠토끼의 벌린 두 팔이 자기 것 보다 훨씬 넓은 것을 보고는, "내가 두손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최대한의 높이 만큼, 내가 가장 높이 뛸 수 있는 만큼, 물구나무 서서 두발을 들어 올릴 수 있는 만큼, 저 길 끝의 강에 다달을 만큼 아빠를 사랑해"라고 말하지만 그 때마다 아빠토끼는 아기토끼 보다 더 높고, 더 길고, 더 넓은 것을 보여 주면서 작은 토끼를 사랑한다고 말하죠. 아기토끼는 피곤해서 아빠토끼의 품에 안겨 잠이 들죠. 그러면서 말합니다. "나는 저 하늘의 달까지 거리만큼 아빠를 사랑해"
아빠토끼는 "달까지는 정말 정말 먼 거리야"라고 말합니다. 아기토끼는 잠이 들죠.
아빠토끼는 잠이 든 작은 토끼 이마에 키스를 하고는 속삭입니다. "나는 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거리만큼 너를 사랑한단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며 아랫동서의 딸에게 줄 생일 선물을 고르다 이 책을 만났다.

책을 펼치는 순간 깔깔거리던 아들의 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신현림 시인의 번역은 마치 한편의 동요처럼 감미롭다.

아이에게 그림 동화를 읽어주는 것은 아이의 순수한 영혼을 화폭삼아 내 사랑의 마음을 그리는 것이리라.  


 



 
 
저자의 고운 감성이 그림과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는 훗날 자신의 마음 한켠에서 이 고운 동화를 꿈처럼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지 않을까?
나는 낸시 틸먼의 동화에 흠뻑 취해 옛추억의 아들과 한나절을 놀았다.
 
"너는 나의 천사, 나의 사랑,
 나의 별이야...
 네가 어디에 있든
 나는 너와 함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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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당신이 그립습니다 -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이야기
KBS <김수환추기경이 남긴사랑> 제작팀.최기록 지음 / 지식파수꾼(경향미디어)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대로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수없이 절망하고 좌절하면서 한 고비 한 고비 넘다 보니 `아!  그렇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운명론자로 변하게 마련인가 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걷고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화.  인생의 후반기에 서면 삶 앞에 그만큼 겸손해진다.

설 연휴 마지막 날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랑법에 관한 책을 읽었다.
가난한 순교자의 집에서 태어난 시골 소년.  신부가 되기 싫어 꾀병을 부리던 그 소년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리라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곧 있으면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2주기를 맞게 된다.  
2009년 2월 16일에 선종하셨으니 벌써 만 2년이 지난 셈이다.
추기경님을 조문하기 위해 끝없이 이어졌던 수십만의 인파.  아마 추기경님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말씀하셨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랑하십시오."

"참사랑은 감정적 느낌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호감을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참사랑은 상대방의 기쁨은 물론 서러움, 번민, 고통까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잘못이나 단점까지 다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그의 마음 속 어둠까지 받아들이고 끝내는 그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가치 기준은 그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워집니다.  그리스도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으나 그 누구보다도 부유했습니다.  그것은 참사랑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은 이웃을 위해 바치는 나눔의 삶입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P.43)

이 책은 KBS가 2009년 성탄특집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그리고 인생의 관점에서 인간 김수환의 사랑법을 시청자에게 보여주고자 제작했던 것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오랜 시간의 갈등과 방황 끝에 도달한 사제의 길, 안동성당의 주임 신부를 시작으로 추기경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당신이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한 인간의 진심어린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것은 비단 종교가 같아서도 아니요, 같은 나라의 울타리 안에 살기 때문만도 아니며 종교와 국경을 넘어 동시대에 우리와 같이 살았던 한 인간의 참사랑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의 표시일 뿐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저 모하마드 아자즈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당신은 제 생명을 구해주셨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요.  제 소원이에요.  한 번만이라도 당신을 뵙게 해주세요.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P.210-파키스탄 노동자 모하마드 아자즈) 

종파와 신분을 떠나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어려움을 감수했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서지 못함을 한탄하셨던 추기경님은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야 이 시대의 참스승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사람의 아름다움은 완벽해지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것, 하기에 자신을 스스로 `바보'라 칭하셨던 분. 
자신의 부족함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진짜 바보들은 오늘도 당신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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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 쪽 식구들과 2박 3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약속이 있어 장인어른은 참석하지 못하셨지만, 장모님을 비롯해 손윗동서 두 분과 그 가족들, 아랫 동서와 가족들, 그리고 나와 아내 및 아들녀석이 모처럼 다 모였다.
설 명절 당일이라서 그런지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온천으로는 유명하지만 다른 볼거리가 없는 수안보.  숙박 시설과 음식점의 휘황한 불빛이 없다면 시골의 조용한 마을일 듯한 그곳에 도착한 것은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H콘도에 여장을 풀고 서둘러 저녁을 해 먹었다.
딸만 넷인 아내의 형제들은 모두 딸만 낳았고, 내 아들녀석이 유일한 사내이니 아랫동서의 딸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이제 네 살이 된 아랫동서의 딸이 밤이 늦도록 재롱을 떨었다.
큰동서의 식구들은 다음 날 합류하겠노라 했다.
아랫동서가 설거지를 자청하였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날 아침 설거지는 내가 하겠노라 약속했다.
객실 두 개를 잡은 탓에 남자들과 여자들이 나뉘어 잠을 잤다.
아들녀석은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좀체 자려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약속대로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근처의 눈썰매장으로 향했다.  전날과는 달리 눈썰매장은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로 왁자했다.
점심을 숙소 가까운 음식점에서 해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동서의 식구들이 도착했다.
올해 숙명여대와 한동대학 두 곳에 합격한 큰동서의 큰딸에게 다들 축하 인사를 건넸다.
시험 부담을 털어낸 외조카의 환한 웃음이 싱그러웠다.

오후에 다시 찾은 눈썰매장에서 아들녀석은 도통 떠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저녁이 되자 봄 날씨 같던 기온이 제법 쌀쌀해졌다.
`조금만 더'를 연발하던 아들녀석을 간신히 달래어 숙소로 돌아왔다.
객실 하나를 더 추가하여 큰동서의 식구들이 그곳을 사용했다.
올해 네 살의 아랫동서 딸과 이제 스무 살이 된 큰동서의 딸까지 아이들은 늘어난 식구들과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제와 장모님 그리고 큰동서는 온천 사우나를 다녀왔다.
저녁을 먹자마자 아이들과 같이 눈썰매를 타느라 피곤해진 어른들은 서둘러 잠자리를 폈다.

토스트와 우유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체크아웃을 하자 벌써 정오가 넘었다.
귀경차량으로 곳곳이 정체라는 소식에 동서들 모두는 운전할 걱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고속도로에 오르자 차들은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집에 도착하자 나른한 피곤이 몰려왔다.
아들녀석도 피곤했는지 정신없이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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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글을 블로그에 올릴까 말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
그러다 이제야 올린다.

이른 퇴근이었다.
내일부터는 길지만 바쁜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
퇴근 전에 아이들에게 공부할 시간을 미리 알려주고는 근처의 마트에 들렀다.
설 선물을 고르는 많은 인파 속에서 잠시 망설였다.  뭐가 좋을까?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기웃거리던 나는 결국 아이들 명수대로 양말 한 켤레씩과 문화상품권을 사는 것으로 쇼핑을 마쳤다.
설이 코앞인데 아이들은 누군가를 위한 선물 준비도, 누구가로부터의 선물에 대한 기대도 없는 듯했다.  나는 비록 한정된 용돈으로 아이들에게 기억이 될만한 선물을 준비하려 했으나 선물을 고르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어려서는 물론이고 성인이 된 뒤에도 내 스스로 다른 사람의 선물을 골라본 적이 거의 없고,  결혼 후에는 그 역할도 자연스레 아내의 몫으로 돌아갔기에 매장에 쌓인 형형색색의 선물세트 앞에만 서면 왠지 주눅이 들곤 한다.

선물 고르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다.
서둘러 숙소로 향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들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부지런한 아이들은 벌써 잠겨진 내 숙소의 문 앞에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가 풀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이들의 미소가 맑은 하늘처럼 해맑다.
아이들은 저마다 누구는 설 쇠러 어디로 갔고, 또 누구는 오늘 오지 못한다고 하더라며 소식을 전하느라 여념이 없다.

오늘 올 수 있는 아이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준비한 선물을 각자의 손에 들려 주었다.
그들도 나처럼 사랑 표현에는 어색하다.  미안한 듯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떠듬떠듬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그리고 서로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는다.

내가 퇴근 후의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만나게 된 아이들.
불과 서너 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금씩 정이 든 아이들.
가난으로 세상에 대한 믿음보다는 불신과 원망을 먼저 배운 아이들.
실수 연발의 초보강사를 미소로 감싸주던 아이들.
나는 그들에게 영어, 수학을 가르쳐 주겠노라 약속했지만 준 것보다는 받은 게 더 많아 늘 미안했던 내 마음을 알고 있을까?

나는 언제부턴가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찾아오는 짧은 공허감을 견디지 못했고, 그 잊혀짐이 싫었다.
아이들의 환한 얼굴과 재잘거림을 들으며 갑자기 두려워졌다.
짧은 소설의 잘려나간 이야기처럼 언젠가 지금 곁에 있는 이 아이들과도 이별을 하겠구나.
내가 떠나든, 아이들이 떠나든...

나는 그 두려운 순간을 위해 간간이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했다.
언젠가 이 기록은 나의 공허감을 달래줄 자장가가 될 것이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고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라고 읊었던 만해 한용운의 시가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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