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쓴 글을 블로그에 올릴까 말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
그러다 이제야 올린다.

이른 퇴근이었다.
내일부터는 길지만 바쁜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
퇴근 전에 아이들에게 공부할 시간을 미리 알려주고는 근처의 마트에 들렀다.
설 선물을 고르는 많은 인파 속에서 잠시 망설였다.  뭐가 좋을까?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기웃거리던 나는 결국 아이들 명수대로 양말 한 켤레씩과 문화상품권을 사는 것으로 쇼핑을 마쳤다.
설이 코앞인데 아이들은 누군가를 위한 선물 준비도, 누구가로부터의 선물에 대한 기대도 없는 듯했다.  나는 비록 한정된 용돈으로 아이들에게 기억이 될만한 선물을 준비하려 했으나 선물을 고르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어려서는 물론이고 성인이 된 뒤에도 내 스스로 다른 사람의 선물을 골라본 적이 거의 없고,  결혼 후에는 그 역할도 자연스레 아내의 몫으로 돌아갔기에 매장에 쌓인 형형색색의 선물세트 앞에만 서면 왠지 주눅이 들곤 한다.

선물 고르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다.
서둘러 숙소로 향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들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부지런한 아이들은 벌써 잠겨진 내 숙소의 문 앞에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가 풀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이들의 미소가 맑은 하늘처럼 해맑다.
아이들은 저마다 누구는 설 쇠러 어디로 갔고, 또 누구는 오늘 오지 못한다고 하더라며 소식을 전하느라 여념이 없다.

오늘 올 수 있는 아이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준비한 선물을 각자의 손에 들려 주었다.
그들도 나처럼 사랑 표현에는 어색하다.  미안한 듯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떠듬떠듬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그리고 서로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는다.

내가 퇴근 후의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만나게 된 아이들.
불과 서너 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금씩 정이 든 아이들.
가난으로 세상에 대한 믿음보다는 불신과 원망을 먼저 배운 아이들.
실수 연발의 초보강사를 미소로 감싸주던 아이들.
나는 그들에게 영어, 수학을 가르쳐 주겠노라 약속했지만 준 것보다는 받은 게 더 많아 늘 미안했던 내 마음을 알고 있을까?

나는 언제부턴가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찾아오는 짧은 공허감을 견디지 못했고, 그 잊혀짐이 싫었다.
아이들의 환한 얼굴과 재잘거림을 들으며 갑자기 두려워졌다.
짧은 소설의 잘려나간 이야기처럼 언젠가 지금 곁에 있는 이 아이들과도 이별을 하겠구나.
내가 떠나든, 아이들이 떠나든...

나는 그 두려운 순간을 위해 간간이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했다.
언젠가 이 기록은 나의 공허감을 달래줄 자장가가 될 것이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고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라고 읊었던 만해 한용운의 시가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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