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기온은 종일 뜨겁다 못해 금방이라도 바삭바삭한 숯가루가 메마른 대기 속으로 퍼져 나갈 듯한 폭염. 전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더위가 이제는 무서운 수준을 넘어 두려운 단계로 진화한 느낌이다. 한껏 높아진 습도에 기온까지 오르니 그야말로 '살인적인 더위'를 실감하게 된다. 게다가 코로나19의 확진자가 연일 네 자릿수를 기록하며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최고조로 올려놓고 있는 상황이니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기뻐할 일은 도통 찾을 길이 없는 듯 보인다. 이런 가운데 우리를 더욱 화나게 하는 건 방역 지침을 어기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그릇된 행동이 아닐까.

 

지난 3일 있었던 민주노총의 대규모 전국 노동자대회를 비롯하여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 개최된 ‘내일은 미스터 트롯 TOP6’ 콘서트, 그리고 원로 트로트 가수의 콘서트 공연 등 이런 시국에 집회나 공연을 주최하는 자들도, 여기에 동조하여 좋다고 참가하는 관객도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지 없는 사람들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국민들의 걱정이야 안중에도 없고 나만 즐거우면 된다는 생각이라면 그들에게 반드시 구상권을 청구해야 옳지 않을까. 참가자들 중에서 확진자가 나온다면 말이다. 이런 몰지각한 행위는 비단 집회나 공연에 그치지 않는다. 프로 야구 선수들의 외부인 접촉으로 인한 확진자 속출로 프로야구 리그가 중단되었고, 방송가에서도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현실화하면서 방송 제작에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런 와중에 극우 성향의 전 모 목사 역시 대면 예배를 강행한다고 하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아닌가.

 

사적 모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키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술을 먹고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2차로 들른 노래방에서 도우미까지 불러 질펀하게 놀다가 확진자가 된 사람도 있고, 야영을 핑계로 야외에서 술파티를 벌이다가 확진된 사람들도 있다. 그 이면에는 언제나 술이 존재했다. 이슬람 국가들처럼 음주 자체를 막을 수도 없고...

 

고3인 아들은 21일에 화이자 백신을 맞는다고 한다. 10대 청소년들에 대한 접종은 처음인지라 조금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지만 어쩌겠는가, 코로나 시국에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종종 코로나 시국이 장기화되면서 타인에 대한 혐오가 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규칙에서 훌훌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지만 나로 인해 여러 명의 주변 사람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 그것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숨죽인 채 견디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방역지침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누군가를 향해 때로는 비난의 말을 내뱉기도 하고, 자제를 요청하는 것 역시 우리의 권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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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8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3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7-1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아드님이 고3이군요~ 파이팅입니다!!

꼼쥐 2021-07-23 20:3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3 학생들은 8월까지 2차 접종을 마칠 계획이라고 하니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 듯합니다. 내년에 대학생이 되면 캠퍼스에서 대학생활을 만끽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집 떠난 뒤 맑음 상.하 + 다이어리 세트 - 전2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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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이라는 게 본디 자신의 시공간을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몸만 겨우 누일 수 있는,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가 되어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는 허무맹랑한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따금 드는 것이다. 자신에 의해 파괴된 시공간으로 인해 스스로 GG 치고야 마는 어불성설의 과정, 그게 우리네 삶이라는 생각. '두 번의 암 겪어보니 모든 게 덧없더라'라고 했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사카모토 류이치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주말의 오후, 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집 떠난 뒤 맑음>을 마저 읽었다.

 

"여행을 하노라면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과거가 된다고 이츠카는 생각한다. 물론 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온갖 일들은 어차피 과거가 되는 것이니, 이상한 감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예를 들어 여기 이렇게 있는 건 현재인데 조금씩 파르께하게 밝아져 가는 겨울 공기도, 하얀 싸구려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도, 이미 반쯤 과거가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츠카 자신이 이 풍경째 미래의 자신의 기억 속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하권 p.221~p.222)

 

사람을 좋아하고 자신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14살 레이나와 '예스'보다는 '노'가 더 많은 17살의 사촌 언니 이츠카는 어느 날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두 사람만의 여행길에 나선다. 뉴욕에 있는 레이나의 부모와 일본에 있는 이츠카의 부모에게 한 줄의 메모만 남긴 채. 그러나 "가출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여행이 끝나면 돌아올 거예요."라는 메모만으로는 부모들을 설득하기에도,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릴 수 있도록 안심시키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소설은 레이나와 이츠카의 여정을 따라 전개된다. 그리고 아주 간간이 딸의 가출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두 집안을 조명한다. 레이나의 아빠 우루우는 자신의 일상이 타인에 의해 변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딸인 레오나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벌어진 일상의 모든 변화와 이를 사전에 막지 못한 레오나의 엄마 리오나에 대한 분노가 곳곳에서 표출된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반면 이츠카의 아빠인 신타로는 자신의 딸 이츠카를 여동생인 리오나에게 맡겼지만 가출에 대한 책임을 리오나에게 지우지 않고 오히려 무작정 떠난 이츠카와 레이나의 여행을 응원하는 한편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가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그런 까닭에 이츠카가 들고 있는 자신의 신용카드에 대한 사용을 정지하지 않는다. 레이나의 아빠 우루우는 신타로의 태도가 영 못마땅하다. 결국 신타로는 카드를 정지하기에 이르는데...

 

두 아이는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난다. 뜨개질을 하는 순진한 남자에게 마음이 기울기도 하고, 불의의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어느 할머니의 강아지를 돌봐주기도 하고, 카드가 정지된 후에는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나이를 속인 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히치하이크를 하다가 기사의 변태적 행위를 목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스쳐가는 낯선 곳이지만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다정한 눈빛과 따뜻한 온기가 여행을 멈출 수 없게 했는지도 모른다.

 

"지나쳐 가 버리기 때문이다, 하고 문득 깨달았다. 이 장소도, 여기 있는 사람들도, 나는 이제 곧 지나쳐 가 버린다. 지나쳐 가 버려서, 아마도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과 사물과 장소를, 싫어하게 되기란 어렵다."  (하권 p.254)

 

레이나는 여행 도중에 열다섯 살 생일을 맞는다.  여행을 하면서도 사소한 것들을 기록하기에 바빴던 레이나는 어느 날 '또 일기를 쓰는 거야?'라고 묻는 이츠카에게 '써 두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었다. 그 말에 이츠카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고, 레이나는 그 말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이츠카는 레이나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깜짝 인사를 주선했고, 호텔의 조식실에서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여행 경비를 들고 마지막 여행지를 향해 떠나는데...

 

"시간의 바깥쪽으로 밀려나 버린 듯한 기분은, '앞으로 한 도시'라고 결정한 것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가 그곳이고, 그러니 이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과."  (하권 p.312)

 

한낮의 불볕 더위를 뚫고 말매미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지금은 바야흐로 성하(盛夏). 인간은 스스로의 경험과 기억의 총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할 때, 낯선 곳으로의 여행보다 더 크게 개인을 성장시킬 방법은 달리 찾기 어려울 듯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여행은 막혀 있고, 사람들 간의 교류도 원활하지 않은 요즘, 독서가 그나마 막힌 숨통을 틔워주는 듯하다. 동심원으로 퍼지는 물동그라미의 잔상처럼 작가의 생각이 누군가에게로, 바통을 이어받듯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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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걱정해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불끈 힘이 날 때가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우연히 알게 된 어느 한 사람의 안부 전화로 인해 어둡고 우울하게만 보이던 세상이 불현듯 밝아진 듯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한 사람의 작은 관심이 다른 누군가의 세상을 밝히는 전등 스위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걸 우리는 경험칙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에 갇힌 주변의 한 사람을 위해 소소한 관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과한 관심은 불필요한 오지랖이 될 수도 있지만...

 

엊그제 한동안 잊고 지내던 지인 한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몇 년 전 세종시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숙소 근처의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두어 번씩 얼굴을 보곤 했었는데, 이사를 한 후에는 일 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어려운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연배로 치면 20여 세 위인 그분은 몸도 마음도 항상 젊게 사는지라 만나서 대화를 할 때면 전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까닭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면 자판기 커피를 앞에 놓고 책과 인생에 대해 두서없는 대화를 이어가곤 했었다. 두어 달 전 이곳에 사는 친구분들을 만나기 위해 왔다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잠깐 얼굴이나 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나갔더니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그러나 마냥 건강한 줄로만 알았던 그분도 이런저런 병으로 인해 여러 종류의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털어놓았을 때 나는 얼마나 놀랐던가. 자신의 사정을 밝히시던 그분은 문득 나의 안부를 물었었다. 나 역시 이따금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하자 깊은 숨을 내뱉으며 크게 걱정을 하셨었다.

 

그때의 일이 내내 가슴에 남으셨었나 보다. 나의 건강이 걱정되어 안부 전화를 한 것이라며 그 이후 차도가 없는지 진지하게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에 만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자 한숨을 쉬며 어찌나 걱정을 하던지... 내가 도리어 미안할 지경이었다. 자신의 아픔에 비추어 타인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아픔이 커질수록 타인으로의 관심을 끊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죽음이 가까울수록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할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소소한 관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마무리가 아닐까. 한껏 습도만 높아진 날씨에 밖으로 나가는 일이 점점 힘겹기만 하다. 내일 모레가 초복, 해가 갈수록 무더위를 견디는 일이 종종 힘에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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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대하여 - 나를 살리고, 내 세계를 넓히는 지적 여정
에바 홀랜드 지음, 강순이 옮김 / 홍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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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까닭 없이 잠이 깨었다. 장맛비가 내리는지 옥상으로 연결된 베란다의 배수구에서 '툭 툭 후드득' 하는 물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베란다의 바깥 창을 열자 그것은 흔한 빗소리라기보다 어둠 속으로 퍼지는 균질한 압력이 소리로 변한 것인 양 가슴을 짓누르며 훅 하고 끼쳐왔다. 다시 잠들기는 어렵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전등도 켜지 않은 희끄무레한 거실 공간을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까무룩 잠이 들 때의 어둠은 더없이 안온한 느낌이지만, 오늘처럼 한밤중에 잠이 깨어 맨송맨송한 눈으로 어둠을 응시할 때면 낯설고 두려운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 유령의 집이라든가 나를 겁주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들어 있을 만한 그 무엇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재미로 하는 것이고, 비명을 이내 웃음으로 바뀌게 하는 그런 것도 싫었다. 뇌전증 진단을 받기 전에도 그런 것을 싫어했지만, 악몽과 발작을 연관시키게 되면서 그 혐오는 더욱 강해졌다. 공포 영화는 아예 보지 않았고, 무서운 책도 조심해서 읽었다."  (p.324)

 

잠에서 깬 나는 에바 홀랜드가 쓴 <두려움에 대하여>를 마저 읽었다. 논픽션 작가인 저자가 자신의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맞서 극복하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이 책은 기원전 400년경 히포크라테스가 공포증의 원인으로 짚은 흑담즙부터 시작하여 중세, 근대 등 각 시대가 공포와 두려움의 근원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살펴본다. 이처럼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하게 된 것은 여행 도중 발생한 하나의 사건 때문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저자는 두려움의 뿌리를 탐구하고 일상에서의 두려움에 맞서기로 결심하였는 바,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내 인생의 주된 두려움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듯한 높은 곳에 대한 공포, 자동차 사고를 여러 번 겪고 나서 최근에 생긴 운전공포증 그리고 정도는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마지막 두려움과는 당분간 일종의 화해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공포증과 나의 관계를 치유하거나, 정복 또는 극복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재조정하는 것도 가능할까? 이제 그것을 알아볼 시간이었다."  (p.103)

 

저자는 세 살 무렵 자신이 겪었던 공포스러운 경험담을 말한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의 꼭대기에서 계단에 한 발을 올려놓았던 저자는 감자기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고, 한 발은 에스컬레이터에 다른 한 발은 바닥에 둔 채 얼어붙었던 저자는 결국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에스컬레이터에서의 공포감은 다른 장소와 시간에서도 재연됐다. 이후 잇단 교통사고는 운전에 대한 트라우마도 남겼다. 접지력을 잃은 찰나의 느낌은 저자에게 사고 당시의 생생한 고통을 되살리기도 했다.

 

"20대 초반에 몇 번 정도 운전할 때는, 커브를 돌거나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던 중에 내가 자갈길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 사고 순간의 감정과 기억이 맹렬하게 밀려온 적이 있었다. 그 둔중하고 사나운 흔들림, 바퀴를 돌렸을 때의 공포와 당혹감, 사고 후 앞유리와 교감을 나누던 차갑고도 차분한 순간들. 대학을 마칠 때쯤에는 그때의 장면이 떠오르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수년 뒤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치유되는 트라우마의 아주 흔한 예였다."  (p.174)

 

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어머니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사건으로 남았다는 걸 알았던 저자는 그런 어머니에게 상처를 줄까 봐, 그런 어머니를 잃을까 봐, 어머니를 잃게 되면 자신도 어머니처럼 살게 될까 봐 오랫동안 불안했다고 한다. 그것은 두려움에 대한 일종의 개인적인 역사이지만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자신의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야말로 두려움을 정복하는 열쇠라고 믿고 개인적인 두려움에 하나하나 맞서게 된다. 스카이다이빙을 시도하고, 암벽 등반에 도전하고, 프로프라놀롤 알약 하나로 여러 특정 공포증을 치료해 온 임상심리학자 메럴 킨트를 만나기 위해 킨트 클리닉을 방문하기도 하고, 운전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EMDR 같은 의학적으로 인정된 치료를 받기도 했다

 

"내 기억 속 무서운 경험의 서랍을 뒤지면서 나는 드 베커의 이론을 수용하고 싶었다. 그가 쓴 대로 믿고 싶었다. "당신의 직관이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 제때 위험 신호가 울릴 것이다. 이 사실을 믿게 되면 더 안전할 뿐만 아니라 거의 두려움 없이 사는 삶도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드 베커의 조언대로 할 수 없었고, 나 자신의 공포 반응을 완전히 신뢰하는 게 꺼려지는 마음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p.314)

 

누구에게나 두려움은 있다. 그러나 자신의 두려움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이 전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우리가 자신의 두려움을 직시하고 극복하고자 노력할 때,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는 걸 저자는 체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논픽션 작가답게 '두려움'이라는 막연한 느낌을 자신의 경험과 과학적 자료를 통해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이 책은 어느 심리학 서적만큼이나 치밀하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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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도가 높아진 탓인지 조금만 걸어도 덜 마른 옷을 입었을 때처럼 바지가 허벅지에 척척 감긴다. 장마철의 아침 산책은 고도의 인내심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상쾌함이나 뿌듯한 느낌에 대한 기대는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라지고, 빨리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픈 마음만 간절해진다. 게다가 내가 오르는 산의 능선에 설치된 운동기구에서 몸을 풀다 보면 웬 모기가 그리도 많은지... 장마철에 반소매 차림으로 나선 초보 등산객들은 드러난 피부가 산모기의 습격으로 인해  멍게로 돌변하기 십상이다. 수년째 산을 오르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불상사에 대비하여 한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입고 모기 퇴치용 부채를 손에 든 채 산길을 오르지만 말이다. 그 바람에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의 자취가 또렷이 느껴지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집 떠난 뒤 맑음>을 읽고 있다. 단문 위주의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 때문인지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스토리 위주의 빠른 전개가 장마철에 읽기에는 딱이다 싶은 소설이다. 묘사 위주의 끈적끈적한 소설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지금처럼 습하고 불쾌지수가 높은 계절에는 어쩐지 꺼려지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의 수가 천 명대로 증가했다. 뉴스를 보고 나 역시 깜놀. 그럼에도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 겁이 없어진 건지 아니면 다들 인내심에 한계가 와서 그러려니 넘어가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도망치듯 후다닥 빠져나오는데 여전히 찝찝한 기분. 백신이라도 맞아야 조금 안심이 될 텐데 그마저도 아직 순서가 되지 않았으니 모든 게 조심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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