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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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흔히 "한 편의 소설 같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실재하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끔찍하며, 때로는 더 잔인하고, 소설가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에서는 버젓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말입니다. 그것은 소설가도 역시 작가인 동시에 인간의 선의를 지닌 한 사람의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이 인간의 보편성을 뛰어넘어 어둠의 저편까지 들여다보기에는 그 끔찍함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되는 경우도 많으며, 때로는 자신이 보았던 것을 날것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적당히 순화하고 윤색하여 사회의 보편적인 윤리에서 조금쯤 엇나간 정도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향해 관성처럼 되돌아오곤 합니다.

 

"많은 노동자가 노동의 대가를 중간업체에게 빼앗기는 현실에 분노했지만 그 분노를 압도하는 게 있었죠. 어차피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체념, 행여 인터뷰 사실이 밝혀져 일자리마저 잃지 않을까 하는 불안, 원청과 용역·파견업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는 거대하고 교묘한 착취 구조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계약 해지'라는 말로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악랄한 구조는 노동자들의 연대를 원천 차단하고 있고요."  (p.5 '머리말' 중에서)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반년 넘게 취재해 온 기획 기사를 책으로 엮어 출간한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노동자들이 업체로부터 임금을 빼앗기는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노동자 100명을 인터뷰한 기록, 1부 '합법적인 착취, 용역'과 이들이 떼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추적한 2부 '떼인 돈이 흘러가는 곳', 파견법의 제정으로 진화하고 있는 노동 착취를 다룬 3부 '진화하는 착취, '지옥도'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간접고용 세계에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내보려 국회, 고용노동부, 지방자치단체를 찾아갔던 기록과 중간착취를 막을 법과 제도를 생각해보고자 하는 4부 '법을 바꾸는 여정'으로 구성된 르포 형식의 책입니다.

 

책을 읽는 독자라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울분이 치솟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책에 소개된 인터뷰이들의 태도는 오히려 담담하기만 합니다. 인터뷰 내용을 조작했거나 순치했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이야' 하는 내재화된 체념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인터뷰 역시 어쩌다 있는 하나의 이벤트처럼 대했는지도 모릅니다.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 지금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그것이 가능하리라는 일말의 희망이 보일 때에나 하는 것이지 간접고용이 공고화된 체계 속에서, 게다가 코로나 시국의 장기화와 플랫폼 기업의 성장으로 인해 나날이 일자리가 부족해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려는 의지는 차츰 희미해지게 마련일지도 모릅니다. 당연하게도 말입니다.

 

"이런 중간착취를 알아차리고도 뗀씨와 동료들은 공장과 파견 업체 측에 바로 항의하지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가 그나마 하는 일마저 그만둬야 하는, 보복성 해고가 무서워서였다. 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공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월급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뗀씨를 비롯한 이주노동자 전원은 해고당했다. 일감이 없다는 핑계로 이들을 내보내면서도 '우리는 파견업체에 제대로 된 임금을 보냈으니 책임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p.221)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구의역 김군 사건이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 씨의 사례는 그 현상과 결과만을 보도한 단발성 기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도, 갈수록 교묘해지는 용역업체의 중간착취 사례도, 그리고 파견 근로자에 대한 원청 업체의 부당한 대우도 결국 그 원인을 파고들어 보면 기업의 이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까닭에 입법을 통한 제재에는 한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제력이나 정보력의 차원에서 노동자측이 사측을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이익 측면에서 용역업체를 통한 노동자의 수급이 비용도 절약되고 책임 소재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데, 해고도 쉽지 않고, 임금도 높은 정규직을 고용하여 굳이 자신들의 이익을 감쇄시킬 이유는 없겠지요.

 

"국회와 정부가 23년간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에 등 돌린 탓에 근로기준법은 아직도 1958년 제정 당시, 과거의 노동 시장에 머물러 있다. 용역업체도 파견업체도 없던 그때, 간접고용이라는 말조차 없었던 당시의 법은 당연히 오늘날 실재하는 346만 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를 한 명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낡은 법을 도대체 언제까지 방치하려는 걸까."  (p.252)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죽음은 마치 일상처럼 가볍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는 언제나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다만 울림으로만 존재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거북이보다 느린 걸음으로 아주 천천히 변해가는 까닭에, 변화에 목마른 사람들은 저마다의 애끓는 심정으로 국회로 국회로 꾸역꾸역 모여들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아주 미약하고, 기업을 대표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우렁우렁 크기만 합니다. 길게 이어지는 코로나 시국에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향한 자발적인 발걸음은 오늘도 끊이지 않고, 다만 오늘의 노동자가 내일의 다른 노동자로 대체될 뿐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싸움은 처서도 지난 올해의 가을장마처럼 서글프기만 합니다. 비가 내리려는지 오늘도 하늘은 끄물끄물 어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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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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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의욕이 앞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기다림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면 대개는 자신의 의지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하자면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맛보게 된다. 예컨대 투자자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의욕이, 학생은 뛰어난 성적을 얻겠다는 의욕이, 스포츠인이라면 자신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반드시 우승을 거머쥐겠다는 의욕이 앞선 까닭에 다른 제반 사항을 고려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고, 이는 곧 부상이나 과로, 투자 실패와 같은 좋지 않은 결과와 직결되기도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자신이 추구하던 문학 스타일과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거나, 꾸준히 추구하던 성향의 작품에서 대작을 쓰고야 말겠다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전보다 못한 작품을 선보이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국내에서는 익숙지 않은 고딕 호러 장르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강화길 작가의 신작 <대불호텔의 유령>을 읽고 들었던 생각이다.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6·25 전쟁의 비극적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의 인천 대불호텔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생활하던 네 사람의 심령 체험을 이야기의 주된 테마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액자 소설 형식을 취하는 까닭에 프롤로그와 1부에서는 강화길 작가를 연상시키는 화자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가인 '나'는 <니꼴라 유치원>이라는 소설을 쓰려고 할 때마다 악의에 찬 목소리의 방해를 받았으며, 그 목소리는 '나'가 모언가를 성취하려 할 때마다, 소중한 누군가와 관계를 진전시키려 할 때마다 저주를 퍼붓는 등 자신 역시 악령에 씌었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자꾸만 위축되어가는 삶에 고통스러워하던 '나'는 점차 악의에 전염되고, 보란 듯이 더 깊은 악의로 점철된 소설을 써내 저주를 짓뭉개주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니꼴라 유치원>의 풍경이 인천에 실존했던 대불호텔과 비슷하다는 엄마 친구 아들의 말을 듣고 1호선에 몸을 싣는데...

 

"그래서 나는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족 안에 비집고 들어가는 일은 말이다. 그 어처구니없는 소설을 쓰겠다며 진을 흔드는 일은 그만둬야겠다 싶었다. 그래, 무슨 소용이 있겠어. 다 의미 없는 일이야. 그런데 그 순간, 진이 뭔가를 결심했다는 듯 다부진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떤 예감에 사로잡혔다. 인천에 오기 전에 나를 휘감았던 바로 그 감정. 그를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될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깊은 불안."  (p.70)

 

소설의 2부에서는 이제 1955년 인천의 대불호텔이 배경이다. 더불어 이야기의 화자도 '나'(지영현)로 바뀐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 병사들의 군복을 담당하던 '나'의 부모는 폭격으로 사망하고, 홀로 살아남은 '나'는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당숙모에게 의탁한다. 그렇게 가까스로 성장한 '나'는 돈을 벌어 당숙모에게 갖다 바치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나'는 호텔 3층을 임차하여 숙박업소로 운영한 뒤 수익금으로 건물 주인에게 임차료를 내고 있는 고연주에게 고용된 몸으로, 손님 한 명을 호텔로 데려올 때마다 인센티브를 받는 호객꾼이다. 호텔에는 영어에 능통하고 장사 수완이 있는 고연주와 중식당에서 일하며 부엌방에 얹혀사는 화교 뢰이한이 있다. 어느 날, 한 미국인이 대불호텔에 장기 투숙하게 되자 고연주는 '나'에게 자신을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었고, 당숙모와의 갈등도 갈등이지만 고연주를 동경하던 '나'는 제안을 수락함과 동시에 짐을 옮겨 그녀와 호텔에서 함께 거주하며 호텔 일을 본격적으로 거들기 시작한다. 그 미국인의 이름은 '셜리 잭슨'으로 귀신 들린 집 이야기를 쓰기 위해 흉가를 찾아온 소설가이다.

 

젊은 여자의 몸으로 다 쓰러져가는 호텔을 임차하여 능숙하게 운영하는 고연주에 대해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녀에게 귀신이 들러붙었다 둥, 드센 팔자라는 둥 이상한 소문과 억측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떻게든 셜리 잭슨을 더 오래 붙들어두기 위해 대불호텔에서의 자신이 겪은 공포 체험을 들려주며 환심을 사려 애쓴다. 연주와 셜리 잭슨이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호텔의 잡다한 일은 언제나 '나'의 몫으로 남게 되고 연주에 대한 '나'의 불만은 점점 깊어만 간다. 한편 대불호텔에서 거주하는 셜리와 고연주, 심지어 화교 뢰이한까지 유령의 소행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환각에 시달리며 그 건물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게 되는데, '나'에게만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대불호텔에 자리 잡고 싶어하는 '나' 지영현에게는...

 

"당신들은 모두 웃고 싶어해요. 행복하기를 원해요. 하지만 서로를 믿지 못해요. 믿을 생각이 없어요. 믿으면 배신당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니까요. 그게 당신들의 삶이었으니까요. 아, 그건 나의 삶이기도 해요. 네, 그래요. 왜 이토록 어려울까요. 불안함으로만 가득할까요.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우리에게는 왜 이토록 고통스러울까요. 우리에게 사랑이란 덧없는 기억이고, 불행은 오래 남는 이야기죠."  (p.207)

 

소외감을 느끼던 '나'(지영현)는 결국 함께 지내던 사람들에게 원한을 터뜨린다. 광기에 휩싸인 대불호텔의 악의 속에서 사람들에게 내재된 원한이 분출된다. 좌익과 우익 간의 증오, 화교에 대한 미움, 젊은 여성을 향한 알 수 없는 적개심 등 쌓인 분노가 더 이상 누를 수 없는 악의로 터져 나온 것이다. 소설의 뒷이야기는 이제 3부로 이어진다.

 

"그들의 목소리가 호텔에 둥둥 울린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로 가득했던 커다란 홀. 뜨거운 닭 국물과 향긋한 고수 냄새로 가득했던 오래된 벽돌 건물. 그들의 대답이 피아노 음처럼 건물 안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어디선가 또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지나간 시간, 역사,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기억으로 남아 건물 자체가 된 모든 이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의 목소리."  (p.298)

 

극한의 공포와 오싹한 느낌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약간의 실망감으로 이 책을 덮을 수도 있겠다. 사람들에게 고딕 호러 장르는 여전히 낯선 어떤 것이며, 셜리 잭슨과 에밀리 브론테, 장화 홍련 등 우리 귀에도 익숙한 이름들의 차용은 왠지 소설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킨다. 우리는 언제나 소설을 구성하는 익숙한 테마와 플롯, 가상이지만 각각의 인물에 걸맞은 적당한 이름들을 상상하며 책을 읽는 까닭에 우리의 상상을 뒤집는 새로운 것들이 등장할 때마다 소설에 대한 흥미와 가독력을 조금씩 잃게 된다. 작가라는 직업이 자신의 창의력과 욕구에 반할지라도 독자의 수요와 관심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작품만 쓰는 것은 아니겠지만, 강화길 작가도 언젠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고딕 호러 소설의 장르와 대중의 관심이 한 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리라고 믿는다. 안방극장을 차지하는 드라마는 언제나 막장 드라마가 최고라고 확고하게 믿는 당신의 기대가 언젠가 깨지고야 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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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짓 눈물을 비유적으로 일컬어 '악어의 눈물(crocodile tears)'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곤 합니다. 악어는 사실 장기간 물 밖에 나와 있을 때 눈이 건조해져 상하지 않도록 눈물을 흘리며, 눈물샘을 관장하는 신경과 턱의 저작행위를 관장하는 신경이 동일하기 때문에 먹이를 씹어 삼킬 때에도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14세기 초 존 맨더빌의 여행기에 의하여 처음으로 소개되었다는 이 말은 셰익스피어에 의하여 널리 사용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애먼 악어는 억울한 면이 있겠습니다만 말이죠.


얼마 전에도 우리나라 굴지의 우유 업체 회장 한 분이 '악어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하여 회사의 주가가 바닥을 치던 시기였습니다. 자신의 회사를 모 사모펀드에게 매각하고 자신은 즉시 회장직에서 물러남은 물론 아들들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 발표 이후 주가는 수직 상승했습니다. 회장의 눈물 어린 호소를 투자자들은 진심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회사의 매각은 물론 회장직에서 사퇴하는 것도 없었던 일이 되었고,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아들들 역시 승진까지 했다고 하니 그는 어쩌면 '악어의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 회장은 정계에 많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걸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회사의 고문으로 있는 그의 부인이 자택에서 단체 모임을 가졌다고 합니다. 열네 명이나 모였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물들이었겠지요. 그중에는 부산 시장도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5인 이상의 모임이 금지된 방역 4단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은 권력의 상층부에 있었던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게다가 방역 4단계에도 불구하고 정무에 바쁜(?) 부산 시장이 불원천리하고 달려왔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방역은 개나 돼지만 지키는 것이지 자신들은 방역 단계를 결정하고 지도하는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부산 시장과 같은 당에 있는 윤 모 의원이 최근에 또 '악어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언론사의 카메라 앞에서 젊은 당 대표와 손을 잡고 제대로 폼을 잡고 말입니다. 아마도 그 의원님은 자신의 비리가 영영 들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너무도 빨리 밝혀진 것이 분해서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지만 당 대표의 눈물은 좀 볼썽사나웠던 게 사실입니다. 물론 당 대표도 머쓱했겠지요.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그 의원과 동조하자니 그도 역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정황상 말입니다. 단지 정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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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8-26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정황이 악어의 눈물이라는 팩트를 지목합니다! 그러면 악어의 눈물이 맞다고 해야할 것 같아요!ㅎ

꼼쥐 2021-08-28 18:16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 님을 포함한 다수의 분들이 팩트라고 믿으신다면 아마도 그렇겠지요. ㅎ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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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실재하는 현실이 아닌 우리의 상상이나 '이럴 것이다' 하는 추정 속에 존재한다고 믿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보이지 않는 사실을 진실로서 받아들인다는 게 어쩌면 아이러니일 수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현실은 인간의 온갖 탐욕과 위선으로 인해 보잘것없는 거짓이 영원불멸의 진실인 양 포장되는 경우가 하도 많아서 나는 오히려 우리의 상상 혹은 추정이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고 지금도 여전히 믿게 되는 것이다. 김연수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역시 우리가 아는 시인 '백석'을 주인공으로 삼아 한국전쟁 이후 그가 걸었던(혹은 그러했으리라 추정되는) 삶을 복원함으로써 새롭게 구축된 사회주의 이념과 독재 정치가 자유를 갈구하던 한 시인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하였는지 독자들에게 그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줌은 물론 잊혀가던 한 시인을 다시 그리워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행은 지난가을, 옥심과 함께 바라보던 불을 떠올렸다. 얼마 전까지 누군가 살았던 집으로 번지던 불. 문짝을 태우고 기둥을 태우고 지붕을 태우던 불. 그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알던 세계가 그렇게 불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바이러스와 병원균이 불타겠지만, 곧 그 불은 종파주의와 낡은 사상으로 옮겨붙을 것이고, 종내에는 서너 줄의 시구를 얻기 위해 공들여 문장을 고치는 시인이, 맥고모자를 쓰고 맥주를 마시고 짠물 냄새 나는 바닷가를 홀로 걸어가도 좋을 밤이, 높은 시름이 있고 높은 슬픔이 있는 외로운 사람을 위한 마음이 불타오를 것이다. 그렇게 한번 불타고 나면, 불타기 전의 세상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p.165)

 

전쟁이 있었고, 하루아침에 세상은 바뀌었다. 북한 문단은 기행에게 당의 이념을 인민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문학만을 강요했다. 당이 요구하는 시를 쓰지 않으면 평양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기행은 차마 마음에도 없는 시를 쓰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시를 쓰지 않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자신이 더이상 시인이 아니라고, 당과 인민이 원하는 시를 쓸 수 없노라고 고백한다.

 

"저 역시 시를 썼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제 안에서 점점 지워지고 있습니다. 음식 이름들, 옛 지명들, 사투리들...... 폐허에 굴러다니는 벽돌 조각들처럼 단어들은 점점 부서지고 있어요."  (p.162)

 

기행이 '혼자서 사랑하고 몰두했던' 세계,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언어의 세계, 하루에 일만 톤에 가까운 네이팜탄과 칠백 톤이 넘는 폭탄이 떨어지는 등 종일토록 불비가 쏟아져 평양 곳곳이 불타오르던 순간에도,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게 했던 전쟁의 광기로 가득한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을 구원했던 언어와 문자들. 문학에서 낡은 사상 잔재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라는 교시가 내려진 뒤, 반당 반혁명 작가의 책들을 회수해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러므로 책 한 권이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과 수령, 그리고 그들의 충실한 대리인인 병도는 자신들이 조립한 언어의 세계만이 리얼하다고 말하지만, 수많은 세계를 불태우고 남은 단 하나의 세계라는 점에서 그들의 세계는 한없이 쪼그라들다가 스스로 멸망하리라. 언어와 문자는 언어와 문자 자신의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리얼리즘이란, 그런 언어와 문자가 스스로 실현되는 현실을 말한다. 거기에는 당과 수령은 물론이거니와 기행의 자리마저도 없는 것이다."  (p.191)

 

소설가 김연수의 진실은, 그가 창조한 시인 기행의 세계는, 천불에 휩싸여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이어진다. 나는 소설가 김연수가 지어낸 허구가 아닌, 그가 창조한 리얼리즘의 세계를, 그가 엮은 진실의 꾸러미들을 찬찬히 읽어갔던 것이다. 1930~40년대에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던 기행이 전쟁 후 현실의 무게에 눌려 '희망과 꿈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했던, 그럼에도 어떻게든 시인의 삶을 되찾으려 했던 그의 빛바랜 희망이 한 권의 소설 속에서 무지개처럼 되살아나는 진실. 나는 그렇게 김연수의 진실을 읽어내려갔다.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만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  (p.165)

 

무거운 현실의 벽 앞에서 한 시인이 겪었을 절망의 푸른 멍자국이 이 소설의 진실이라면, 소설가 김연수의 진실은 시인 기행이 '죽는 순간까지도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였으리라. 소설을 읽는 우리는 어쩌면 소설가 김연수의 진실을, 혹은 한국전쟁 이후 드러나지 않은 시인 '백석'의 삶과 그의 발자취에 얽힌 절망을 각자의 가슴속에 진실인 양 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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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려나 봅니다. 계절의 변화를 처음 목격한 돌쟁이 간난 아가도 아닌데 계절의 변화가 뭐 그리 새삼스러울 게 있을까마는 비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한동안 강더위가 이어지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오늘처럼 서늘바람이 부는 날씨가 새삼 반가웠던 것입니다. 물론 계절이 바뀌고 선뜻한 냉기가 도는 만추를 기약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날들이 흘러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오늘은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거나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나날이 더워지는 날씨 탓인지 그 정도는 기대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온종일 비가 내렸고 12호 태풍 '오마이스'의 상륙마저 예보된 처서의 풍경은 위기를 앞둔 팽팽한 긴장감이 넘쳤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에 곡식이 준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이맘때의 비는 그닥 반가운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은 에어컨 없이 밖에서 부는 바람만으로도 견딜 수 있는 이런 변화가 마냥 반가울 따름입니다.


이렇게 맥락도 없는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것은 계절을 오가는 불필요한 소모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처서에 내린 비로 한결 차분해진 나는 왠지 전에는 없던 기운이 불끈 솟아난 듯 퇴근하는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처서에 비가 내리면 독 안에 곡식이 준다는 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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