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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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의욕이 앞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기다림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면 대개는 자신의 의지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하자면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맛보게 된다. 예컨대 투자자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의욕이, 학생은 뛰어난 성적을 얻겠다는 의욕이, 스포츠인이라면 자신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반드시 우승을 거머쥐겠다는 의욕이 앞선 까닭에 다른 제반 사항을 고려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고, 이는 곧 부상이나 과로, 투자 실패와 같은 좋지 않은 결과와 직결되기도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자신이 추구하던 문학 스타일과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거나, 꾸준히 추구하던 성향의 작품에서 대작을 쓰고야 말겠다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전보다 못한 작품을 선보이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국내에서는 익숙지 않은 고딕 호러 장르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강화길 작가의 신작 <대불호텔의 유령>을 읽고 들었던 생각이다.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6·25 전쟁의 비극적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의 인천 대불호텔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생활하던 네 사람의 심령 체험을 이야기의 주된 테마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액자 소설 형식을 취하는 까닭에 프롤로그와 1부에서는 강화길 작가를 연상시키는 화자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가인 '나'는 <니꼴라 유치원>이라는 소설을 쓰려고 할 때마다 악의에 찬 목소리의 방해를 받았으며, 그 목소리는 '나'가 모언가를 성취하려 할 때마다, 소중한 누군가와 관계를 진전시키려 할 때마다 저주를 퍼붓는 등 자신 역시 악령에 씌었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자꾸만 위축되어가는 삶에 고통스러워하던 '나'는 점차 악의에 전염되고, 보란 듯이 더 깊은 악의로 점철된 소설을 써내 저주를 짓뭉개주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니꼴라 유치원>의 풍경이 인천에 실존했던 대불호텔과 비슷하다는 엄마 친구 아들의 말을 듣고 1호선에 몸을 싣는데...

 

"그래서 나는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족 안에 비집고 들어가는 일은 말이다. 그 어처구니없는 소설을 쓰겠다며 진을 흔드는 일은 그만둬야겠다 싶었다. 그래, 무슨 소용이 있겠어. 다 의미 없는 일이야. 그런데 그 순간, 진이 뭔가를 결심했다는 듯 다부진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떤 예감에 사로잡혔다. 인천에 오기 전에 나를 휘감았던 바로 그 감정. 그를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될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깊은 불안."  (p.70)

 

소설의 2부에서는 이제 1955년 인천의 대불호텔이 배경이다. 더불어 이야기의 화자도 '나'(지영현)로 바뀐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 병사들의 군복을 담당하던 '나'의 부모는 폭격으로 사망하고, 홀로 살아남은 '나'는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당숙모에게 의탁한다. 그렇게 가까스로 성장한 '나'는 돈을 벌어 당숙모에게 갖다 바치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나'는 호텔 3층을 임차하여 숙박업소로 운영한 뒤 수익금으로 건물 주인에게 임차료를 내고 있는 고연주에게 고용된 몸으로, 손님 한 명을 호텔로 데려올 때마다 인센티브를 받는 호객꾼이다. 호텔에는 영어에 능통하고 장사 수완이 있는 고연주와 중식당에서 일하며 부엌방에 얹혀사는 화교 뢰이한이 있다. 어느 날, 한 미국인이 대불호텔에 장기 투숙하게 되자 고연주는 '나'에게 자신을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었고, 당숙모와의 갈등도 갈등이지만 고연주를 동경하던 '나'는 제안을 수락함과 동시에 짐을 옮겨 그녀와 호텔에서 함께 거주하며 호텔 일을 본격적으로 거들기 시작한다. 그 미국인의 이름은 '셜리 잭슨'으로 귀신 들린 집 이야기를 쓰기 위해 흉가를 찾아온 소설가이다.

 

젊은 여자의 몸으로 다 쓰러져가는 호텔을 임차하여 능숙하게 운영하는 고연주에 대해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녀에게 귀신이 들러붙었다 둥, 드센 팔자라는 둥 이상한 소문과 억측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떻게든 셜리 잭슨을 더 오래 붙들어두기 위해 대불호텔에서의 자신이 겪은 공포 체험을 들려주며 환심을 사려 애쓴다. 연주와 셜리 잭슨이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호텔의 잡다한 일은 언제나 '나'의 몫으로 남게 되고 연주에 대한 '나'의 불만은 점점 깊어만 간다. 한편 대불호텔에서 거주하는 셜리와 고연주, 심지어 화교 뢰이한까지 유령의 소행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환각에 시달리며 그 건물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게 되는데, '나'에게만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대불호텔에 자리 잡고 싶어하는 '나' 지영현에게는...

 

"당신들은 모두 웃고 싶어해요. 행복하기를 원해요. 하지만 서로를 믿지 못해요. 믿을 생각이 없어요. 믿으면 배신당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니까요. 그게 당신들의 삶이었으니까요. 아, 그건 나의 삶이기도 해요. 네, 그래요. 왜 이토록 어려울까요. 불안함으로만 가득할까요.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우리에게는 왜 이토록 고통스러울까요. 우리에게 사랑이란 덧없는 기억이고, 불행은 오래 남는 이야기죠."  (p.207)

 

소외감을 느끼던 '나'(지영현)는 결국 함께 지내던 사람들에게 원한을 터뜨린다. 광기에 휩싸인 대불호텔의 악의 속에서 사람들에게 내재된 원한이 분출된다. 좌익과 우익 간의 증오, 화교에 대한 미움, 젊은 여성을 향한 알 수 없는 적개심 등 쌓인 분노가 더 이상 누를 수 없는 악의로 터져 나온 것이다. 소설의 뒷이야기는 이제 3부로 이어진다.

 

"그들의 목소리가 호텔에 둥둥 울린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로 가득했던 커다란 홀. 뜨거운 닭 국물과 향긋한 고수 냄새로 가득했던 오래된 벽돌 건물. 그들의 대답이 피아노 음처럼 건물 안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어디선가 또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지나간 시간, 역사,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기억으로 남아 건물 자체가 된 모든 이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의 목소리."  (p.298)

 

극한의 공포와 오싹한 느낌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약간의 실망감으로 이 책을 덮을 수도 있겠다. 사람들에게 고딕 호러 장르는 여전히 낯선 어떤 것이며, 셜리 잭슨과 에밀리 브론테, 장화 홍련 등 우리 귀에도 익숙한 이름들의 차용은 왠지 소설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킨다. 우리는 언제나 소설을 구성하는 익숙한 테마와 플롯, 가상이지만 각각의 인물에 걸맞은 적당한 이름들을 상상하며 책을 읽는 까닭에 우리의 상상을 뒤집는 새로운 것들이 등장할 때마다 소설에 대한 흥미와 가독력을 조금씩 잃게 된다. 작가라는 직업이 자신의 창의력과 욕구에 반할지라도 독자의 수요와 관심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작품만 쓰는 것은 아니겠지만, 강화길 작가도 언젠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고딕 호러 소설의 장르와 대중의 관심이 한 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리라고 믿는다. 안방극장을 차지하는 드라마는 언제나 막장 드라마가 최고라고 확고하게 믿는 당신의 기대가 언젠가 깨지고야 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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