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고요? - 머리가 새하얘지는 당신을 위한 21일 글쓰기 훈련법
조헌주 지음 / 설렘(SEOLREM)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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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와 '훌륭한 글을 쓴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훌륭한'이라는 수식어는 누군가가 쓴 글의 결과물에 대한 찬사 혹은 의례적인 덧붙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곧 글쓴이가 겪어 왔을 분투의 시간과 각고의 노력에 대한 경외 또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바라 마지않는다는 기원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글쓰기 역시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읽는 이의 감동을 자아내는 훌륭한 글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숙련된 글쓰기를 위해서는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과 포기하고픈 순간들을 여러 번 경험해야 한다. 그 지난한 과정을 통과한 자만이 비로소 타인으로부터 '훌륭한 글을 쓴다'는 찬사의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십수 년째 블로그를 유지하고 있는 나로서도 글쓰기 실력을 끌어올리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이 일을 업으로 하겠다는 계획도, 돈벌이로서 이 일을 택했을 때의 장점에 대해서도 일일이 따져보고 미래의 어떤 청사진을 그려본 것은 아니지만, 블로그를 찾는 몇몇 이들로부터 '글이 좋았다'거나 '잘 읽고 간다'는 인사말쯤은 듣고 싶은 게 블로그를 유지하는 나 자신의 솔직한 욕심인지라 글쓰기에 대한 여러 서적을 읽고 도움을 받아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읽었던 글쓰기 서적만도 줄잡아 대여섯 권은 넘지 싶다. 그럼에도 여전히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노력의 부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지라 천성이 게으른 나로서는 영 진전이 없는 것이다.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자유롭게 쓰기가 가능해야 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문장을 말끔하게 다듬거나, 내용을 풍성하게 꾸미거나 하는 작업은 나중에 해도 된다. 솔직한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때 글만큼이나 자신도 자유로울 수 있다. 자유롭게 글쓰기를 하고 나중에 그 글을 다시 보면 한숨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쓸 소재를 발견할 수도 있다."  (p.180)


극작을 전공하고, 수년간 방송작가로도 활동했던 조헌주의 글쓰기 서적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고요?>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세상의 모든 글쓰기 초보들에게 개인의 열정과 실천 방안을 하나로 결합시켜주는 '글쓰기 실천서'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독자는 어쩌면 그동안 미루고 미뤄 왔던 글쓰기 연습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실행에 옮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저자가 운영하는 블로그나 카페 혹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렵게 쓴 자신의 글을 저자로부터 평가받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고요?」는 글쓰기를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나를 알고 싶은 사람,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책 한 권을 완성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글쓰기 습관을 만들어서 더 행복한 인생을 산다는 초점에 맞춰 구성되어 있다. 하루 10분을 내서 쓸 수 있도록 짧은 미션을 담았다. 글을 쓰면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매일 하루 10분, 21일을 꾸준히 한다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글쓰기로 여러 도전을 할 수 있다."  (p.7 '프롤로그' 중에서)


프롤로그에 이어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 '글쓰기 습관으로 삶이 바뀐다고?', 2장 '하루 10분, 글쓰기가 쉬워진다', 3장 '21일 만에 완성하는 글쓰기 전략', 4장 '완벽한 글이 되는 처방전'이라는 소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각자의 삶에서 글쓰기가 꼭 필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처방전인 셈이다. 저자의 설명을 듣고 책에서 저자가 내준 미션을 군말 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글쓰기 달인'으로 변모한 자신의 모습에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나처럼 어린 시절부터 숙제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켰던 사람은 예외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볼품없는 글 솜씨를 천연덕스럽게 내보이는 데는 하나의 이유가 있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곤 하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그렇다.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게 삶을 바꿀 만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풀썩 무릎이 꺾일 정도로 좌절하거나 기운이 없을 때, 넋두리를 하듯 한참 동안 글을 휘갈겨 쓰고 나면 다시 또 살아갈 힘이 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멀리 있는 누군가의 고단한 삶을 생각하게도 된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알지 못했던 나와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당신들을 생각할 줄 아는 품 넓은 인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얼굴을 마주한다면 차마 하지 못했을 그런 말들을 글을 통해 용기를 내보는 것이다. 일기를 쓰듯 혹은 한 통의 편지를 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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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도둑비가 내렸는지 새벽 공기는 적당히 서늘했고, 메말라 풀석풀석 흙먼지만 일던 등산로도 촉촉한 습기를 머금고 부드러워졌다. 등산로 초입의 나무 계단을 오르자마자 달콤한 아카시아꽃 향기가 취할 만큼 전해오고, 깊어진 솔향이 남았던 졸음을 말끔히 씻어내는 듯했다. 공기는 더없이 맑았다. 이따금 들려오는 낮은 톤의 멧비둘기 울음소리가 어두운 하늘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새벽 정적을 깨는 꿩의 새된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징검다리 연휴가 있었던 지난 주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겹쳐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겠다는 헛된 희망은 애시당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들과 함께 이천 호국원에 들러 부모님을 참배하고, 장인어른이 계시는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 들르기도 했다. 주말에 어버이날이 겹친 까닭인지 참배객은 생각보다 많았다. 장인어른이 떠나신 후 넓은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장모님을 뵙고 잠시 말벗이 되어 드린 게 고작인데 연휴는 금세 사라졌고, 일로 쌓인 피로를 풀기는커녕 장거리 운전으로 누적된 피로가 더해져 몸은 천근만근 녹초가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친구의 호출을 받고 나가 듣기도 싫은 정치 얘기를 두 시간 남짓 듣기도 했다.

 

서울의 모 사립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친구는 한때 보수 여당의 국회의원 연설문을 대필해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여러 선거판을 경험한 베테랑 선거꾼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인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지방 광역시의 구청장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고 했다. 나는 딱히 관심도 없었고, 그들이 어떤 이력을 가진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의 말은 귓등으로 흘러가게 두었다. 단 하나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들이 선거에 임하는 자세 혹은 전략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이념 지형을 진보와 보수 양쪽이 절반 대 절반으로 나뉜다고 보았을 때, 굳이 상대 쪽의 표를 가져오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열성 지지층을 위한 정책과 선거운동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지지자들을 통한 중도층의 포섭에 공을 들인다는 전략이었다. 많은 중도층을 포섭할 필요도 없이 선거에 이길 만큼의 표, 이를테면 0.7%의 중도층만 있어도 족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까닭에 진보 세력은 국민으로 보지도 않고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이러한 선거전략 때문인지 보수 여권의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뻔뻔함'을 장착한 채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였다. 당선인은 지방선거 후보자를 대동한 채 선거운동에 앞장섰고, 청와대의 용산 이전과 대통령 관저의 외교부 공관 이전을 밀어붙이고, 자신들과 견해가 다른 입법에 대해서는 국회의장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거나 국회의장에 대한 성희롱성 발언도 서슴지 않고, 성상납 의혹을 받는 당대표도 별것 아니라는 듯 행동하고, 아무리 많은 흠결이 있는 장관 후보자라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인물이면 철저히 옹호하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언론사가 있으면 항의 방문 및 협박이나 고소 고발도 불사하고, 무시해도 될 만한 사람들(이를테면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등)에 대해서는 상대도 하지 않는 것 등은 어쩌면 그들의 선거 전략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정치학 서적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에 비하면 진보 세력은 너무 순하거나 샌님처럼 조용한 사람들만 있는 듯하다. 물론 어떤 못된 짓도 묵인하고 찬양 일색의 기사를 써주는 언론이 있기 때문에 보수 여당의 정치인들이 뻔뻔함으로 무장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서양 정치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있다고 하면 동양에는 이종오의 <후흑학>이 있다고들 한다. 이를테면 이종오의 <후흑학>이 동양 정치인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셈인데 사실 이것은 저자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것으로 보인다. 비록 나는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한 <후흑학>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몇 년 전에 겨우 읽어보았던 터라 '후흑학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자신 있게 평할 입장은 아니지만 말이다. '후흑'이라는 말은 낯이 두껍다는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마음을 뜻하는 심흑(心黑)이 합쳐진 것으로 얼굴은 철면피처럼 두껍게, 마음은 음흉하게 하여 철저히 자신을 숨겨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의 정치 처세술을 담은 일종의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군자는 그 자신이 늘 낯가죽이 두껍지 않을까 경계하고 속마음이 시꺼멓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얇은 것같이 위험한 게 없고 흰 것같이 위태로운 것이 없다. 이로 인해 군자는 반드시 뻔뻔하고 음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후'라고 하고 한 번 터지면 거리낌이 없는 것을 일컬어 '흑'이라 한다. 뻔뻔한 것은 천하의 대본(大本)이며 음흉한 것은 천하의 달도達道이다. 지극한 후흑의 단계에 이르면 천하가 두려워하고 귀신도 무서워한다."

 

간첩 조작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를 공직 기강 비서관으로 앉히는 등 말도 안 되는 일련의 행위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공직자 모두가 그들의 정책에 반기를 들기만 하면 조작을 해서라도 감옥에 보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이리라. 밤새 도둑비가 내려 한결 깨끗해진 대기가 불결한 인간들의 탐욕과 아귀다툼으로 더럽혀지는 오늘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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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2-05-09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려워요 ㅜ

꼼쥐 2022-05-14 17:59   좋아요 0 | URL
5년이 너무나 긴 시간일 듯합니다.ㅜㅜ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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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 건 어쩌면 마음만 분주한 상태, 혹은 마음이 어수선하여 집중할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 말일지도 모른다. 최근 며칠이 그랬다. 나는 어느 한 곳에 진득하니 앉아 하나의 일을 마무리 짓고 이어서 해야 할 다른 일로 넘어가는 평범한 과정을 잊은 채 이 일에 조금 손을 대다가 또 다른 일에 잠깐 손을 보태고, 그러다가 갈팡질팡 목표를 잃고 헤매기를 반복하면서 성과도 없는 나날을 보냈었다. 지나고 나면 '왜 그런 멍청한 짓을 반복했을까' 하는 때 늦은 후회가 밀려오게 마련이지만 사람의 일이란 늘 '지금'보다는 지난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더 관심이 있는 까닭에 자신이 뭔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지나고 나면 곧바로 후회 모드로 돌입하면서도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무엇 하나 유쾌한 일이 없었다. 아무것도. 아름답지도 푸근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늘 생각나는 것은, 그 여름날의 일이다. 유난히 날씨가 좋았고, 내가 침울한 여자아이였다는 것. 정육점에서 일했던 기와무라 히로토. 보라색 립스틱. 엉뚱한 것만 믿는 열일곱 살짜리 여자애였다는 것."  (p.39 '뒤죽박죽 비스킷' 중에서)

 

후회와 그리움이 뒤섞인 평범한 삶의 한 순간을 포착하여 한 컷의 스냅사진처럼 보여주는 작가가 있다. 물론 단편소설을 쓰는 수많은 작가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쿠니 가오리만큼 작가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순간순간의 감정과 표정을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표현함으로써 삶의 덧없음과 비애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가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던 어느 가을날, 감기에 걸린 가족 누군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마치 내가 좋아하는 어느 재즈 가수의 구슬픈 목소리를 닮아 있다고 느꼈던 것도 목소리에 담긴 약간의 습기마저 걷어냈을 때 우리가 느끼는 슬픔의 강도는 더욱 증가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는 나츠키를 데리고 언젠가 파리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오늘처럼 추운 겨울밤, 파리에서 걸쭉하고 뜨거운 생선 수프를 먹여 주고 싶다. 바닷속 생물들의 생명 같은 맛이 나고 온갖 향신료의 맛이 섞인, 뼈까지 영양이 녹아드는 생선 수프다. 나는 그 풍요롭고 행복한 음식을 다카시가 아닌 남자에게 배웠다."  (p.190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중에서)

 

표제작인 '울 준비는 되어 있다'를 포함하여 12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 소설집 <울 준비는 되어 있다>는 작가가 선별한 12컷의 스냅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의 얇은 책이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이 흘려보낸 수없이 많은 '보통의 순간'들을 떠올리고, 그것들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소중했던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잔잔한 슬픔과 그리움 속에 한동안 휩싸인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애잔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이기도 하다.

 

"가령 슬픔을 통과할 때, 그 슬픔이 아무리 갑작스러운 것이라도 그 사람은 이미 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잃기 위해서는 소유가 필요하고, 적어도 거기에 분명하게 있었다는 의심 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거기에 있었겠죠. 과거에 있었던 것과, 그 후에도 죽 있어야 하는 것들의 단편집이 되기를 바랍니다."  (p.210 '작가의 말' 중에서)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라고 작가는 이 책에 실린 한 단편소설에 쓰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홀로 계시던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보내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었지만, 어머니를 묻고 나자 이제 자유, 란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을 꿈꾸는 어떤 대상을 가슴에 품고 있는 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관계의 영속성과 영원한 사랑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이별과 그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게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임을 작가는 이 짧고 건조한 이야기들을 통해 주지시킨다.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게 더러 있는 법이라고 나는 작가에게 반박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 서러운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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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인 <논어>는 전 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만 현실에서 <논어>를 언급하는 자체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는 어려울 듯 보입니다. 물론 <논어>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가슴에 새길 만한 명문장이고 책으로서의 가치 역시 현대인이 반드시 읽어야 할 명작 고전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고리타분하고 앞뒤가 꽉꽉 막힌 '꼰대'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용의 방대함으로 인해 앞의 열 편을 상론(上論), 뒤의 열 편을 하론(下論)으로 구분하기도 하는 <논어>는 한 편 한 편이 각각 저마다의 특색이 있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각자의 가슴에 새길 명구들로 가득합니다. <논어> 제15장 위령공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자공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子'曰, 其恕乎, 己所不慾 勿施於人(자왈,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해설: 자공이 공자께 질문하여 말씀드리기를 "평생 귀감으로 삼고 실천해야 할 말 한마디가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마도 그것은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말이다."


또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子貢問爲仁. 子曰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居是邦也, 事其大夫之賢者, 友其士之仁者.(자공이 공자에게 어떻게 인을 행할 수 있는지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장인이 자신의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연장을 날카롭게 해야 하는 법이다. 한 나라에 살면서 어진 관리를 섬기며, 그 나라의 어진 사람을 벗으로 삼아야 한다.")


차기 정부를 책임질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을 뉴스에서 듣고 있노라면 어느 한 사람도 제대로 살아온 사람이 없는 듯합니다. 그들의 축재 과정도 그렇고, 자식을 돌보고 가정을 이끄는 과정 역시 정상적이지는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장관 후보자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곧바로 수사의 대상이 되었겠지요. 대통령 선거 내내 줄기차게 주장하던 공정과 상식은 바로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지껄인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는 검찰의 조사도 없을 테고, 준엄한 법의 심판도 피해 갈 수 있을 테니 그들은 아마도 자신을 지켜줄 어진 관리(?)를 섬기며, 어진 사람(?)을 벗으로 삼아 온 모양입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역시 어진 사람들인 까닭에 천인공노할 그들의 불법행위를 보고도 여전히 그들을 지지하고 차기 선거에서도 그들을 위해 투표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까닭에 그들의 불법행위는 나날이 대범해질 듯합니다.


한 차례 봄비가 지나간 후 무덥던 날씨는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이자 근로자 날. 취임도 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인은 벌써부터 자신의 공약을 하나둘 폐기하고 있고, 느닷없는 정치 풍경에 다소 뜨악할지라도 우리는 이 봄을 의지하여 새로운 희망을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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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한 장처럼 -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을 위한 이해인 수녀의 시 편지
이해인 지음, 오리여인 그림 / 샘터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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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들 한 번쯤 자신의 인생에서 그런 낭만적인 시절이 없을까만은 내가 유독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시를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이다. 없는 형편임에도 다달이 시집을 사들이는 것은 물론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밤새워 외우기도 하고, 번잡한 일상에서 낙서처럼 시를 써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속절없는 시의 매력에 빠져들어 헤어나질 못했다. 그러는 사이 한여름의 오후처럼 한없이 무료했던 시간들이 빠르게 흘러갔고, 현실에 쌓인 산적한 일들을 보며 자책과 후회만 가득 안은 채 시의 밝음으로부터 차츰 멀어져 갔다.

 

내 삶의 끝은/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까/밤새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또 한 번 내가

살아 있는 세상!

 

 

아침이 열어준 문을 열고/사랑할 준비를 한다

죽음보다 강한/사랑의 승리자가 되어

다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용기를 구하면서

지혜를 청하면서/나는 크게 웃어본다

밝게 노래하는 새처럼/가벼워진다

 

-이해인의 시 <어느 날의 단상 1>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꽃잎 한 장처럼>을 기꺼운 마음으로 읽었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듯 읽는다면 퇴근 후 하룻밤이면 족한 분량이지만 나는 꼭꼭 곱씹듯 한 글자 한 글자 눌러가며 읽었다. 그렇게 느려진 시간의 갈피마다 시를 사랑했던 옛 시절의 추억들이 조롱조롱 되살아났다.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기록해 온 수녀님의 시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향수와 그리움을 더하는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오늘 이 시간 속의

하느님과 이웃이/자연과 사물이

내게 말을 걸어오네

 

 

시로 수필로/소설로 동화로

빛나는 새 얼굴의/첫 페이지를 열며

읽어달라 재촉하네

-이해인의 시 <오늘의 행복> 중에서

 

첫 서원을 한 지 54년이자 희수라고 칭하는 만 77세를 맞았다는 수녀님은 우리가 읽는 수녀님의 시에서 만큼은 여전히 젊고 파릇파릇하다. 그러므로 시인인 수녀님의 계절은 언제나 봄이다. 이제 막 꽃을 피운 행복의 언어들이 화려하게 수놓아지고 연녹색 희망의 언어들이 시의 구석구석을 채운다.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기쁨을 노래하기도 하고, 팬데믹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과 우정을 통해 이전과 다름없는 관계를 지켜주는 소중한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상기시켜주기도 한다. 이해인 수녀님이 일상생활을 기록하고 있는 일기 노트 가운데 2021년에 적었던 글들을 골라 실었다는 4부의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수녀님의 투명한 마음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하다.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우리 그냥

오래오래/ 고맙다는 말만 하고 살자

이 말 속에 들어 있는/ 사랑과 우정/ 평화와 기도를

시들지 않는/ 꽃으로 만들자

죽어서도 지지 않는/ 별로 뜨게 하자

사랑하는 친구야

- 이해인의 시 〈고맙다는 말〉 중에서

 

소설가 이외수 씨의 별세 소식을 들었던 오늘, 내가 좋아했던 작가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뜨는구나, 하는 생각에 흐린 하늘을 보며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한 세대를 살아낸다는 게 이렇듯 고되고 질긴 것임을 나는 봄비에 지는 꽃잎을 보며 깨닫는다. 시나브로 잊히는 이름들. 천상병 시인, 소설가 박경리, 법정 스님, 소설가 박완서, 소설가 이외수... 나는 그들로 인해 삶의 덧없음을 조금씩 지울 수 있었고, 봄꽃처럼 환한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벚꽃이 지는 계절에 이해인 수녀님의 <꽃잎 한 장처럼>을 희망처럼 꾹꾹 눌러가며 읽는 나는 왠지 모를 설움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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