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인 <논어>는 전 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만 현실에서 <논어>를 언급하는 자체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는 어려울 듯 보입니다. 물론 <논어>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가슴에 새길 만한 명문장이고 책으로서의 가치 역시 현대인이 반드시 읽어야 할 명작 고전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고리타분하고 앞뒤가 꽉꽉 막힌 '꼰대'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용의 방대함으로 인해 앞의 열 편을 상론(上論), 뒤의 열 편을 하론(下論)으로 구분하기도 하는 <논어>는 한 편 한 편이 각각 저마다의 특색이 있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각자의 가슴에 새길 명구들로 가득합니다. <논어> 제15장 위령공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자공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子'曰, 其恕乎, 己所不慾 勿施於人(자왈,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해설: 자공이 공자께 질문하여 말씀드리기를 "평생 귀감으로 삼고 실천해야 할 말 한마디가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마도 그것은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말이다."
또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子貢問爲仁. 子曰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居是邦也, 事其大夫之賢者, 友其士之仁者.(자공이 공자에게 어떻게 인을 행할 수 있는지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장인이 자신의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연장을 날카롭게 해야 하는 법이다. 한 나라에 살면서 어진 관리를 섬기며, 그 나라의 어진 사람을 벗으로 삼아야 한다.")
차기 정부를 책임질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을 뉴스에서 듣고 있노라면 어느 한 사람도 제대로 살아온 사람이 없는 듯합니다. 그들의 축재 과정도 그렇고, 자식을 돌보고 가정을 이끄는 과정 역시 정상적이지는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장관 후보자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곧바로 수사의 대상이 되었겠지요. 대통령 선거 내내 줄기차게 주장하던 공정과 상식은 바로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지껄인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는 검찰의 조사도 없을 테고, 준엄한 법의 심판도 피해 갈 수 있을 테니 그들은 아마도 자신을 지켜줄 어진 관리(?)를 섬기며, 어진 사람(?)을 벗으로 삼아 온 모양입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역시 어진 사람들인 까닭에 천인공노할 그들의 불법행위를 보고도 여전히 그들을 지지하고 차기 선거에서도 그들을 위해 투표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까닭에 그들의 불법행위는 나날이 대범해질 듯합니다.
한 차례 봄비가 지나간 후 무덥던 날씨는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이자 근로자 날. 취임도 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인은 벌써부터 자신의 공약을 하나둘 폐기하고 있고, 느닷없는 정치 풍경에 다소 뜨악할지라도 우리는 이 봄을 의지하여 새로운 희망을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