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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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그 시대에 속했던 인간 군상을 초라하게 하거나 무시한다. 그러나 역사에 묻힌 한 인물을 조망하는 예술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 영화가 그렇고, 소설이 그렇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는다는 건 인간의 위대함을 탐구하고자 함이지 역사가 놓친 인간의 비열함이나 속수무책의 허약함을 재확인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었던 어느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하는 인간성 제로의 인간에 눈길이 가곤 한다. 그리고 분노하게 된다. '어떻게 사람이...'


요즘 들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룬 소설을 자주 읽게 된다. 자주라고 해봐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지만 다독가도 아닌 내가 하나의 주제로 묶을 수 있는 소설을 한 달에 서너 권씩이나 읽는다는 건 꽤나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남북 분단 및 한국전쟁, 군부 독재와 민주화 과정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그야말로 수난과 질곡의 세월이었지만 그 과정을 견뎌 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가슴이 아프다. 같은 인간으로서 연민과 동정을 안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녀가 나를 보고 윙크했다. 윙크라기보다 눈꺼풀 근육이 씰룩인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럼 어르신의 여덟 단어는 뭘까요?" 내가 물었고, 그녀의 얼굴에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 장난스러운 미소가 다시금 떠오른 것을 알아차렸다. "노예, 탈출 전문가, 살인자, 테러리스트, 스파이, 연인, 그리고 어머니." 나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였다. 그녀는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에 신이 나고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듣고 싶어 죽을 지경인 얼굴이었다."  (p.31)


이미리내의 소설<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은 요양원에서 일하는 '나'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부고 쓰기 프로그램'을 기획한 '나'는 부고를 쓰기 위한 전 단계로 노인들로부터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한 독특한 캐릭터의 묵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일본 사람으로 태어나서 북한 사람으로 살았고 이제 남한 사람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묵 할머니. 소설은 시간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마치 여러 사람의 삶을 단편적으로 옮겨놓은 듯 뒤죽박죽이지만 그래서 더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장구한 세월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읽어 내려간다는 건 얼마나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시간인가. 그러나 시간적 순서에 상관없이 누군가가 들려주는 짧은 에피소드를 여러 편 읽는다는 건 오히려 관심이 동하지 않던가.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초래해야 했던 물리적인 죽음 자체는 혐오스러웠지만, 배경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은 내게 쉬운 일이었다. 나중에 살면서 나는 혹시 나의 그런 뻔뻔함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엄마를 그렇게 멍하게 만든 건 아닌지, 자신의 사랑스러운 어린 딸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런 교묘한 속임수를 쓸 수 있었다는 충격 때문에 엄마가 그렇게 된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p.133)


소설은 주인공인 묵 할머니의 출생에서부터 그와 같은 삶이 비롯된 기원에 대한 적확한 논리를 제공한다. 서울에서 유명한 한의사였던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것을 계기로 자신의 딸마저 잃을까 염려한 나머지 북쪽 지방에 사는 시골 농부에게 시집을 보낸 것이 묵 할머니가 탄생하게 된 시발점이었다. 말하자면 부잣집에서 자란 엘리트 여성과 시골 촌부의 부조리한 결합으로 태어난 게 묵 할머니였다는 이야기이다. 묵 할머니는 어머니의 배려로 캐나다 선교사 밑에서 영어 회화를 배우는 등 적극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견디지 못한 묵 할머니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자작나무 숲에 묻는다. 그리고 가정 폭력에 의해 시력을 잃은 엄마를 치료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묵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종군 위안부로 끌려가게 된다. 인도네시아 스마랑으로 끌려갔던 비슷한 또래의 위안부 여성들이 겪었던 그곳에서의 삶과 죽음은 책을 덮고 싶을 정도로 참혹하지만 그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과 이따금 나누었던 고향 이야기 등은 못내 가슴 아프다.


미군의 개입으로 위안소를 가까스로 탈출한 묵 할머니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다시 겪게 된다.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묵 할머니는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군 부대 근처의 '낙검자' 수용소(성병 관리소)인 멍키하우스에서 일하게 되지만 결국 하우스를 불태우고 만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주인공은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어 잠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10년 동안 실종되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와 일본어는 물론 영어까지 유창하게 하는 묵 할머니의 모습을 본 누군가가 국가에 신고하고 만다. 묵 할머니의 국가였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묵 할머니를 남한 공작원으로 파견한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우리가 앉아 있는 손기정 공원의 벤치 주변을 둘러본다. 키 큰 플라타너스나무들이 어디에나 그늘을 드리워서 땅에는 살며시 흔들리는 빛의 조각들이 여기저기 조금씩 보일 뿐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본다. 오렌지색 황혼이 하늘 전체에 번지고 있다. 한때 여름 매미의 시끄러운 울음소리로 가득했던 대기가 이제 귀뚜라미의 쓸쓸한 찌르륵찌르륵 소리에 점령당했다. 가을이 왔다."  (p.337)


끝내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가을이 왔다. 그리고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현 정권의 고위 공직자들의 망언을 마치 우리 선조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소리인 양 반복적으로 듣고 있다. '한일관계'가 언제나 '일한관계'라고 말하는 주일대사, 광복절은 미국에 감사하는 날이라고 하는 뉴욕 총영사, 일제 점령기의 우리나라 국민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주장하는 어느 장관, 위안부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부인했던 UN 일본 대표의 말에 단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관료 등을 보면서 우리는 대한민국 역사가 갈가리 흩어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끝내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가을이 도래하는 것처럼 마음대로 역사를 왜곡하고 짓밟으며 기고만장했던 그들도 권력의 상실과 함께 스러지지 않겠나.


갑작스러운 기온 저하로 가을 햇살이 마냥 그리워지게 하더니 오늘은 한낮 기온이 제법 올라 따사롭기만 하다. 자연은 이렇듯 한없이 순환하는 계절을 따라 천변만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시간의 산물인 역사도 순환하는 계절의 아름다움처럼 그렇게 다음 세대에게 아름다운 것만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역사는 비록 그 시대에 속했던 인간 군상을 초라하게 하지만 소설 속에 드러난 한 여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보다 더 위대한 한 인간의 분투를 엿보게 된다. 휘몰아치는 역사의 흐름도 어찌하지 못했던 불굴의 인간정신을. 우리가 소설을 읽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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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산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달빛의 위험성을 깨닫게 된다. '캄캄한 어둠보다는 아쉽지만 달빛이라도 있는 게 더 낫지 않아?'라고 묻는 사람은 뭘 모르고 하는 얘기다. 달빛이 그려내는 그림자로 인해 눈앞의 장애물을 구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슴푸레한 달빛은 나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숫제 앗아가 버린다. 달빛으로 인해 눈 뜬 장님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른거리는 나무 그림자 탓에 지면의 고저를 가늠할 수도 없고, 한 발짝 앞의 나무등걸이나 튀어나온 작은 돌부리, 땅에 드러난 나무뿌리 등을 미처 보지 못해 수시로 걸려 넘어지게 된다. 게다가 달빛이 훤한 곳만 따라가다 보면 아무리 자주 다니던 길에서도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러므로 손전등 없이 산길을 걸을 때는 차라리 달빛이 없는 캄캄한 어둠이 더 좋다. 물론 밤에 산길을 걸을 때는 개인의 안전을 위해 손전등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우리의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어설픈 정보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 그것은 마치 밤길에서 길을 잃게 하는 달빛과 같다. 우리에게 어떤 정보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손끝의 촉감으로 더듬어가며, 나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최대한 버티다가 조심조심 걸음을 뗄 테니까 말이다.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어설픈 정보가 난무하는 까닭에 지금보다 정보를 얻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과거의 사람들보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는 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길을 어찌어찌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제 앞에 놓인 돌부리를 보지 못해 수시로 넘어지거나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것은 잘못된 정보로 인해 실패를 경험하거나 그림자와 같은 정보에 현혹되어 길을 잃는 경우이지만 우리는 주변에서 그보다 더 큰 낭패를 경험하는 사례를 수시로 보곤 한다.


젊은 시절에 한 번쯤 길을 잃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리 큰 문제도 되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회사나 정부에서 직위가 높아질수록 그 위험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최고 기업이라고 하는 삼성의 주가가 연일 곤두박질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가 지껄이는 잘못된 정보에 의존하여 나라를 이끌고 있다면 그 위험성은 어떠할까.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는 멍청한 말을 지껄이면서도 가오를 잡는 폼이 참으로 가관이다. 정말로 돌을 맞고 갈 것인지 국민들이 돌멩이 하나씩을 들고 용산 대로에 서서 기다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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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4-10-24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 가 아니라, ˝돌 맞을 짓을 했으면 죄값을 받겠다!˝ 가 여기서 해야 할 말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꼼쥐 2024-10-26 15:32   좋아요 0 | URL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 하지요.

초란공 2024-10-2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던질 돌 크기에 제한은 없군요! 그렇다면!!!

꼼쥐 2024-10-26 15:33   좋아요 1 | URL
크기는 말한 바 없으니 보도블록을 던져도 무방할 것 같긴 한데...
 
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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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꿈을 꿉니다. 아주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할 기나긴 꿈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꿈을 꾸는 동안 많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 세월은 마치 내가 아닌, 나를 대신했던 어느 유령의 삶이었던 듯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나의 삶이라고 말할 수 없는 '유령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뜻에 따라, 나의 의지대로 살지 못했다고 누구에게 항변하거나 반환을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삶은 대체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1925년에 태어나 1975년에 생을 마감한 그의 이름은 '김이섭'입니다.


그렇습니다. 김이정의 소설 <유령의 시간>은 주인공 이섭의 육십 평생을 더듬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의 절반을 일제 치하에서 살았고 나머지 30년을 해방된 조국에서 살았'던 이섭. 그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라는 게 대부분 거기서 거기일 뿐 한국전쟁 이후에 출생한 우리들의 삶과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시대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었던 이섭의 파란만장한 삶을 당연하다는 듯 그저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환갑 이전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던 이섭이었기에 그 정도의 대가는 마땅하다는 듯 말입니다.


"갑자기 60년이라는 시간이 한없이 멀고 아득해 보였다. 가슴이 아릿해졌다. 언젠가 아버지가 저 자서전을 완성하고 읽어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속엔 지형이 모르는 아버지의 45년 삶이 들어 있을까. 아니 나머지 15년에 대해서도 지형이 아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주 일부분일 것이다. 지형은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원고지 한 권을 사서 아버지에게 선물했다."  (p.265)


일제강점기 시절 제법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던 이섭은 일본으로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입신양명의 의지를 버리고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합니다. 해방 후 그가 속한 조직과 그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오히려 그의 부인과 젖먹이 막내딸이 끌려가게 됩니다. 그 틈을 타 이섭은 월북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실상을 직접 확인한 이섭은 크게 실망하여 다시 돌아오지만 부인과 아이들은 이미 이섭을 찾아 북으로 떠난 뒤였습니다.


5년간의 교도소 생활 후 옛집에서 시체처럼 가족을 기다리던 이섭. 자신에게 헌신했던 부인 진과 세 자녀를 그리워하며 잊지 못하던 이섭은 혹여라도 그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헛된 시간만 흘려보냅니다. 그러나 전쟁통에 형님이 죽는 바람에 집안의 장남 역할을 해야 했던 이섭은 그보다 열일곱 살이나 어린 미자와 반강제로 재혼을 하게 됩니다. 미자 역시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된 처지였습니다. 소설은 그렇게 두 사람의 기구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신원조회 때문에 직업을 구할 수 없었던 이섭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사람은 전처인 진의 아버지, 말하자면 이섭의 전 장인이었습니다. 맏딸이었던 진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장인은 이섭을 사위가 아닌 맏아들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인의 도움으로 서해안의 한 마을에서 새우 양식을 하며 살아가게 된 이섭의 가족. 거실에 가족사진도 한 장 없고, 가까운 친척도 없는 이상한 가족의 맏딸로 태어난 지형은 누구보다도 아는 게 많고, 가족에게는 더없이 다정한 자신의 아버지가 새우 양식이나 하며 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간척지를 임대하여 새우 양식을 하며 서해안 바닷가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이섭의 가족. 지형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어머니 미자로부터 전쟁통에 가족을 잃은 이섭의 사정과 재혼의 내막을 듣게 됩니다.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지형은 자신을 비롯한 사 남매에게 언제나 따뜻하고 신뢰를 잃지 않았던 아버지를 보면서 '저렇게 모든 걸 잃고도 여전히 인간을 사랑한다는 게 가능할까?' 생각합니다. 새우 양식장이 사라지면서 이섭과 그의 가족은 결국 서울로 이사합니다. 이섭에게는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던 전 부인과 삼 남매에 대한 회한과 추억이 어린 곳이라 결코 다시 오고 싶지 않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전 장인의 도움으로 가구점 영업사원이 된 이섭은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도 가족을 위해 헌신합니다.


"결국 사회안전법이 공포되고 말았다. 법조계와 학계에서 논란이 거세게 일었지만 누구도 그들의 힘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정권은 남북 화해라는 유화의 제스처를 보이더니 바로 얼굴을 바꾸고 시퍼런 총칼을 드러냈다. 아니 화해의 제스처야말로 총칼을 꺼내기 위한 명분이었는지도 몰랐다."  (p.251)


작가와 아버지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유령의 시간>은 맏딸 지형과 아버지 이섭의 시선이 번갈아 교차하면서 전개됩니다. 게다가 소설을 여는 프롤로그와 소설을 닫는 에필로그에서는 남북작가대회에 참석한 지형이 평양의 한 대학에 교수로 있다는 이복 오빠 지용에게 쓴 편지가 등장합니다.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던 이섭이 자신의 육체를 떠나 유령이 되었던, 호흡이 멈춘 유령의 시간을 지형은 가만가만 들려줍니다. 소설에서 이섭이 평생을 이기적으로 살았던 동창 최와 만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입니다. 어쩌면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결국 몽상가였을 뿐이라고 고백하는 이섭에게 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지만 모든 변화는 자네 같은 몽상가들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 나 같은 자들은 자기 자신 하나도 변화시키지 못하잖는가. 자네는 늘 어딘가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있지만 나는 결코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네.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생각만 하지. 무엇보다 안전한 곳이거든."  (p.215~p.216)


환갑이란 나이가 무척이나 아득하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루가 일 년 같고, 일 년이 마치 십 년처럼 느껴지던 고단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시기에는 30년, 40년 전의 일도 마치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지겠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그 시절의 우리는 환갑이란 나이는 아무나 기대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이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지금처럼 환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흔하디흔한 나이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부모 세대 혹은 조부모 세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햇수로는 불과 4,50년 전의 일이니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쉽게 변하고 있는지요.


어느 누구나 꿈을 꿉니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돌이켜보면 그 꿈의 향배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어쩌면 실체가 없는 유령의 시간을 좇느라 지금 이 순간의 아까운 시간들을 허투루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순간순간 실재하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어느 날 그렇게 불쑥 환갑이 찾아오고, 생의 마지막 순간이 도래하는 까닭입니다. 소설 속 이섭이 깨어난다면 꿈이 아닌 실재하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고 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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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메리 파이퍼 지음, 안진희 옮김 / 위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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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나는 '고통을 다루는 방식'이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블로그에 업데이트했었다. 부끄럽지만 많은 이들이 나의 글에 공감을 표했다. 정제되거나 잘 쓴 글도 아닌데 말이다. 의외의 반응에 나조차도 놀란 게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나의 글이 아닌 나의 생각에 공감을 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었다.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직업군에 대한 나의 생각, 그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도덕적 책무나 소명의식은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일차적으로 인간의 고통을 대하는 자세는 더없이 진지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에 의견 일치를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책을 쓰면서 저는 심리치료사로 일하는 것이 제게 있어서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을 넘어서 저 자신의 삶을 일구어나가는 것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심리상담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하나의 방식,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죠."  (p.248)


저명한 임상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메리 파이퍼의 저서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어디에나 있는 인류 보편의 고통, 그 고통을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심리치료사가 갖추어야 할 자세를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책의 저자인 메리 파이퍼가 30여 년 동안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얻은 심리치료의 본질,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삶의 진실을 젊은 심리치료사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책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유지하고 삶을 지속하는 한 우리 모두는 삶에서 비롯되는 숱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그와 같은 고통에 대해 경중을 가린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같은 인간으로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연민과 아픔을 함께 느껴야 함은 물론이다.


"저는 특정 연령이 지나고 나면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삶에 책임이 있다고 믿습니다(만성적인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중증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것은 오만한 태도입니다. 저는 내담자들에게 과거를 복잡한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라고 권유합니다. 그러고선 과거를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하라고 권고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슬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슬픔이 자신의 의무들로부터 달아날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p.16)


저자인 메리 파이퍼는 이 책에서 '작가와 심리치료사는 모두 줄타기곡예를 한다'고 썼다. 자신의 일에 전부를 쏟아부어야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초연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분야에서 고통을 다루는 방식은 확연하게 다르다. 글쓰기에서 타인의 고통은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오히려 개인의 특정 고통을 통해 인류 보편의 고통을 추출하는 한편 심리상담에서 개인의 고통은 인류 공통의 보편적인 고통 중 일부로서가 아니라 상담이나 치료 과정의 전부로 다루어질 뿐이다. 결국 우리는 특정 개인의 고통을 다룬 책을 통해 인류 보편의 고통을 깨닫게 되고, 심리치료사와의 상담을 통해서는 오직 나만의 고통에 천착하게 된다.


"글쓰기와 심리치료에서 마음에 드는 안내인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빌 모이어스 메리 올리버, 몰리 이빈스와 함께라면 재활용 센터에 구경을 가도 즐겁기만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따분하고 아무 매력 없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파리 여행을 간다 해도 끔찍하기만 하겠죠. 훌륭한 안내인들은 겸손하고, 유능하고, 친절하고, 차분합니다. 이들은 천진함과 세련미가 조화된 특별한 아우라를 내뿜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안내인들은 신뢰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p.189)


우리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그 의미나 대상이 다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권력자나 극우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나 '행복'은 절대적으로 개인의 자유나 행복을 의미할 뿐 공동체의 자유나 행복은 아니다. 자유는 누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누리는 권리이지 그럴 만한 자격이나 위치에 있지 않는 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면 그는 곧 반국가세력이거나 반자유·반통일세력일 뿐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그 대상이나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의미가 한없이 축소되기도 하고 왜곡되거나 변형되기도 한다. '고통'도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향해 조롱과 악담을 퍼붓는 이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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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이 내려앉은 들판엔 바람이 일렁입니다. 어제와 확연히 달라진 오늘은 비단 날씨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제보다 몇 배 더 높아져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은 누군가의 꿈을 닮은 듯했습니다. 부쩍 쌀쌀해진 아침을 맞는 우리는 여전한 가을을 보며 안심하는 한편 가까워지는 겨울을 걱정합니다. 살아간다는 건 그렇게 크고 작은 걱정을 끝없이 소비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에 자신이 없어 주눅이 들고 같은 실수를 끝없이 반복하는 까닭에 우리의 걱정 또한 나날이 커져만 가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의 불안과 걱정은 오래된 습관처럼 익숙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걱정이 많은 우리는 매사에 조심하고 경거망동을 경계하지만, 그럼에도 이따금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우리는 항상 리셋 버튼을 눌러 그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꿈을 꾸곤 합니다. 그러나 자비가 없는 시간은 우리의 실수와 어설픔을 끌어안은 채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갑니다.


거리에는 바람에 떨어진 나무 이파리들과 비닐봉지, 종이 쪼가리들이 뒤섞입니다. 그 출처도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두툼한 외투를 걸쳐 입은 사람들이 저마다 애완견의 목줄을 잡고 걸어갑니다. 외로움 때문인지 갑자기 찾아온 추위 때문인지 옹송그린 어깨가 펴질 줄을 모릅니다. 아무런 걱정이 없는 애완견은 발걸음마저 가볍습니다. 제 주인의 사정도 모르는 채 말입니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방침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다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범죄를 수사하고 범죄자를 잡아야 할 검찰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못 본 척 눈을 감아버린다면 대한민국은 철저히 계급 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하는 중대 기로에 섰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권력기관은 모두 권력에 기생하는 하부 구조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권력에서 제외된 대다수 국민들은 더이상 공권력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일 테지요.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읽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따위 책을 읽은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열패감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나를 붙들고 소리칩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말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미국을 사랑한다는 말은 미국이 민주주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사실, 즉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를 너무도 오랫동안 실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포괄적인 다인종 민주주의를 건설함으로써 그 이상을 실현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중에서)


바람이 차갑습니다. 유난히 길었던 올해 여름 탓인지 가을을 건너뛰고 여름에서 훌쩍 겨울로 건너온 느낌입니다. 민주주의는 어쩌면 느리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원칙을 지키고 정해진 절차를 밟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나아가듯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을에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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