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메리 파이퍼 지음, 안진희 옮김 / 위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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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나는 '고통을 다루는 방식'이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블로그에 업데이트했었다. 부끄럽지만 많은 이들이 나의 글에 공감을 표했다. 정제되거나 잘 쓴 글도 아닌데 말이다. 의외의 반응에 나조차도 놀란 게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나의 글이 아닌 나의 생각에 공감을 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었다.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직업군에 대한 나의 생각, 그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도덕적 책무나 소명의식은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일차적으로 인간의 고통을 대하는 자세는 더없이 진지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에 의견 일치를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책을 쓰면서 저는 심리치료사로 일하는 것이 제게 있어서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을 넘어서 저 자신의 삶을 일구어나가는 것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심리상담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하나의 방식,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죠."  (p.248)


저명한 임상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메리 파이퍼의 저서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어디에나 있는 인류 보편의 고통, 그 고통을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심리치료사가 갖추어야 할 자세를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책의 저자인 메리 파이퍼가 30여 년 동안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얻은 심리치료의 본질,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삶의 진실을 젊은 심리치료사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책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유지하고 삶을 지속하는 한 우리 모두는 삶에서 비롯되는 숱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그와 같은 고통에 대해 경중을 가린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같은 인간으로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연민과 아픔을 함께 느껴야 함은 물론이다.


"저는 특정 연령이 지나고 나면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삶에 책임이 있다고 믿습니다(만성적인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중증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것은 오만한 태도입니다. 저는 내담자들에게 과거를 복잡한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라고 권유합니다. 그러고선 과거를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하라고 권고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슬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슬픔이 자신의 의무들로부터 달아날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p.16)


저자인 메리 파이퍼는 이 책에서 '작가와 심리치료사는 모두 줄타기곡예를 한다'고 썼다. 자신의 일에 전부를 쏟아부어야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초연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분야에서 고통을 다루는 방식은 확연하게 다르다. 글쓰기에서 타인의 고통은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오히려 개인의 특정 고통을 통해 인류 보편의 고통을 추출하는 한편 심리상담에서 개인의 고통은 인류 공통의 보편적인 고통 중 일부로서가 아니라 상담이나 치료 과정의 전부로 다루어질 뿐이다. 결국 우리는 특정 개인의 고통을 다룬 책을 통해 인류 보편의 고통을 깨닫게 되고, 심리치료사와의 상담을 통해서는 오직 나만의 고통에 천착하게 된다.


"글쓰기와 심리치료에서 마음에 드는 안내인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빌 모이어스 메리 올리버, 몰리 이빈스와 함께라면 재활용 센터에 구경을 가도 즐겁기만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따분하고 아무 매력 없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파리 여행을 간다 해도 끔찍하기만 하겠죠. 훌륭한 안내인들은 겸손하고, 유능하고, 친절하고, 차분합니다. 이들은 천진함과 세련미가 조화된 특별한 아우라를 내뿜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안내인들은 신뢰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p.189)


우리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그 의미나 대상이 다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권력자나 극우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나 '행복'은 절대적으로 개인의 자유나 행복을 의미할 뿐 공동체의 자유나 행복은 아니다. 자유는 누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누리는 권리이지 그럴 만한 자격이나 위치에 있지 않는 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면 그는 곧 반국가세력이거나 반자유·반통일세력일 뿐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그 대상이나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의미가 한없이 축소되기도 하고 왜곡되거나 변형되기도 한다. '고통'도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향해 조롱과 악담을 퍼붓는 이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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