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이 내려앉은 들판엔 바람이 일렁입니다. 어제와 확연히 달라진 오늘은 비단 날씨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제보다 몇 배 더 높아져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은 누군가의 꿈을 닮은 듯했습니다. 부쩍 쌀쌀해진 아침을 맞는 우리는 여전한 가을을 보며 안심하는 한편 가까워지는 겨울을 걱정합니다. 살아간다는 건 그렇게 크고 작은 걱정을 끝없이 소비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에 자신이 없어 주눅이 들고 같은 실수를 끝없이 반복하는 까닭에 우리의 걱정 또한 나날이 커져만 가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의 불안과 걱정은 오래된 습관처럼 익숙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걱정이 많은 우리는 매사에 조심하고 경거망동을 경계하지만, 그럼에도 이따금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우리는 항상 리셋 버튼을 눌러 그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꿈을 꾸곤 합니다. 그러나 자비가 없는 시간은 우리의 실수와 어설픔을 끌어안은 채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갑니다.


거리에는 바람에 떨어진 나무 이파리들과 비닐봉지, 종이 쪼가리들이 뒤섞입니다. 그 출처도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두툼한 외투를 걸쳐 입은 사람들이 저마다 애완견의 목줄을 잡고 걸어갑니다. 외로움 때문인지 갑자기 찾아온 추위 때문인지 옹송그린 어깨가 펴질 줄을 모릅니다. 아무런 걱정이 없는 애완견은 발걸음마저 가볍습니다. 제 주인의 사정도 모르는 채 말입니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방침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다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범죄를 수사하고 범죄자를 잡아야 할 검찰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못 본 척 눈을 감아버린다면 대한민국은 철저히 계급 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하는 중대 기로에 섰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권력기관은 모두 권력에 기생하는 하부 구조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권력에서 제외된 대다수 국민들은 더이상 공권력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일 테지요.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읽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따위 책을 읽은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열패감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나를 붙들고 소리칩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말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미국을 사랑한다는 말은 미국이 민주주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사실, 즉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를 너무도 오랫동안 실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포괄적인 다인종 민주주의를 건설함으로써 그 이상을 실현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중에서)


바람이 차갑습니다. 유난히 길었던 올해 여름 탓인지 가을을 건너뛰고 여름에서 훌쩍 겨울로 건너온 느낌입니다. 민주주의는 어쩌면 느리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원칙을 지키고 정해진 절차를 밟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나아가듯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을에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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