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의 시 154
신현림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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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현림에게 시란 무엇일까?

이혼의 상처를 안고,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그녀가 사랑하는 엄마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 그 깊은 가라앉음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 그녀의 슬픔은 가둬두기엔 이미 차고 넘쳤던 까닭일까?  쉰을 눈 앞에 둔 그녀가 자신이 살아가야 할, 그녀가 죽어가야 할 내밀한 침대에서 그녀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일까?

세상에 질긴 것이 슬픔이다.

혹자는 숨이 멎을 듯한 행복에 지난 슬픔을 그리워 하고, 혹자는 지나친 슬픔으로 습관처럼 그곳에 빠져드는데....침대를 타고 죽음을 향해 달리는 그 여정에 시인은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글빚 갚으며 딸과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다.

  "엄마, 화나고 슬프고 외로우면 나한테 말해.  내가 도와줄게 내가 웃겨줄게 내가 얼마나 웃기는데."

  그렇게 적은 딸의 일기를 보며, "너도 사랑을 누려라"라고 말한 엄마의 유언에서 시인은 '만성적인 절망과 희망의 시소타기'를 한다.

내가 그랬듯 시인은, 스캇펙 박사의<아직도 가야할 길>을 읽으며, 유통기한의 세계가 낯설어 적응 못하는 자신의 내면을 향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슬퍼하는 자는 깨달음이 있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그녀.

인도의 순례기에서, 이스탄불의 어느 거리에서, 캄보디아의 빈민촌에서, 카자흐스탄의 어느 공동묘지에서 그녀는 슬픔도 7분만 씹고 버리자고 말한다.

아직도 다 못한 그녀의 이야기가 있기에 그녀의 침대에는 무성한 사과나무가 피어난다.

 

 

침대를 타고 달렸어

 

누구나 꿈속에서 살다 가는 게 아닐까

누구나 자기 꿈속에서 앓다 가는 거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누에가 고치를 잣듯

포기 못할 꿈으로 아름다움을 얻는 거

 

 

슬프고, 아프지 않고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찌 회오리 같은 인생을 알며

어찌 사랑의 비단을 얻고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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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푸념이나 넋두리를 하는 것보다 더 손쉬운 일을 찾기도 어려울 듯싶다.

앞으로의 굳은 맹세나 결심을 듣기는 어렵지만, 푸념이나 넋두리는 익숙하게 들려온다.

내가 우선 그렇고, 아내도 별반 다를 바 없고, 주위의 사람들도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약속이나 한 듯 그렇게 비슷한 행위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푸념이나 넋두리는 습관이요, 일종의 배설행위이다.

우리의 육체가 음식을 먹고 배변행위를 통하여 그 잔여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듯이, 우리의 마음도 불필요한 찌꺼기를 일정한 시점에서 푸념이나 넋두리를 통하여 밀어낼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해득실이 존재하고, 우리의 잘못된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다.

먼저 우리가 범하는 일반적 오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음식의 섭취보다는 배변행위가 더 사적이고 은밀한 행위로 인식한다.

실상은 정반대이다.  음식의 섭취는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경제적 여건과 같은 외부적 환경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배변행위는 모든 생물체가 취하는 공통의 행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유아기 이후로 배변행위를 자연스러운 인체활동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마음의 문제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맹세나 결심을 음식의 섭취로 본다면 이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러므로 자신만의 결심은 남에게 내보이기 어렵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는 에너지원으로서 그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겪는 실패와 좌절은 소화과정을 거친 음식의 찌꺼기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배설행위를 통하여 마음의 밖으로 나가게 된다.  이는 우리 육체의 배변행위와 너무나 닮아있다.  그러나 육체의 배변행위나 마음의 배설행위에는 모두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적당한 에너지의 소비를 통한 배변행위는 육체의 건강을 도모하지만 설사와 같은 지나친 배변행위는 에너지의 고갈로 이어지듯, 마음의 배설행위도 그 정도가 적당할 때는 나와 듣는 상대방에게 실보다는 득이 크다.

즉, 적당한 푸념이나 넋두리는 듣는 상대방에게 나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며,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고, 나 또한 스트레스 해소를 통한 기분의 전환을 맛볼 수 있다.

반면에 지나친 넋두리나 푸념은 나와 상대방의 에너지를 고갈시켜 지치고 피곤하게 한다.  여기서 보듯이 마음의 배설행위는 육체와 달리 상호의존적이다.

즉, 내가 그 정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나와 상대방의 에너지가 동시에 고갈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푸념이나 넋두리의 정도를 잘 조절할 필요가 있다.

나와 너의 기분 전환에 알맞은 푸념은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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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모른다

너도 나를 모른다

모르는 나와

모르는 너는

백지처럼 하얀 인연에

그렇게 편지를 쓴다.

 

네가 있는 자리에

또는 내가 있는 자리에

낯선 언어가 배달되던 날

평면의 일상에

숨죽인 메아리로 살아있느냐

 

오늘이 그리운 이에게

어제의 흔적은

습관처럼 메마른 자판을 스치운다.

 

모르던 사람들은

모르는 우리들로 남아있다.

 

 

 

<나의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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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사람에게

잊혀질 과거를 덧씌우는 일은

얼마나 잔인합니까

당신,

나는 빈 전화에 나의 목소리를 전하며

고목처럼 질긴 이 잔인함에

한없이 자책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떠난 후에 알게 되는 것,

그 미래형의 단어를

남들은 다 알고 있는 그 의미를

첫닭이 울기 전에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세 번을 부정하는 못난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세수도 거른 아침은

또 다시 바쁜 저녁을 맞을 테지만

현재형의 사랑은 영영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진실과 마주할 밤이 너무 두렵습니다.

 

 

 

아주 오래된 노트를 뒤적이다 낙서처럼 끄적인 시 한 편을 발견했다.

사랑의 경험도 많지 않은 나로서는 선명하게 그 기억이 떠오를만 하건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시 경제학' 노트에 적힌 이 시의 말미에는 이어 쓰기 위해서 적어 놓은 여러 단어들만 난무할 뿐 제대로 이어진 문장은 없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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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바람을 막을수 있을까
아름다운세상 편집부 엮음 / 아름다운세상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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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괜스레 상념에 젖게되는 그런 오후. 

오래 전부터 미뤄왔던 서재를 정리했다. 

나의 시선을 머물게 했던 빛바랜 시집 한 권.





 

 

 

 

 

 

 

 

 

 

대학 시절 대학로의 어느 곳에서 내게 전해 주었던 그녀의 시집. 

지금은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된 책장이 내 기억 만큼이나 희미하다. 

그녀의 시를 옮겨 적으며 나는 시간이 멈춘 추억의 저편을 더듬었다. 

 

사랑이야 

네 눈빛은 그냥 그렇게 나에게로 오고 

내 눈빛은 그냥 그렇게 너에게로 가서 

우리 둘이 가운데서 그저 만나는 거다 

 

오다가 돌부리에 채이고 바람에 흔들릴 수 있겠지만 

상처 닦아 줄 넉넉한 마음 뒷짐지고 따라오다 

눈물 흘린 그 자리 닦아 널 앉히고 

기다리는 너에게로 마침내 도착하여 

우리 둘이 가운데서 그저 만나는 거다 

 

가다가 어두운 밤 강 건너며 서러울 때 있겠지만 

가슴속 눈물 꺼내 말갛게 씻은 빨래로 널어 놓고 

젖은 옷 말리며 기다리고 있는 너와 

조용한 웃음으로 만나는 것 

우리 둘이 가운데서 그저 만나는 것 

 

아, 다만 그렇게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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