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가 이바람을 막을수 있을까
아름다운세상 편집부 엮음 / 아름다운세상 / 1992년 12월
평점 :
절판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괜스레 상념에 젖게되는 그런 오후.
오래 전부터 미뤄왔던 서재를 정리했다.
나의 시선을 머물게 했던 빛바랜 시집 한 권.
대학 시절 대학로의 어느 곳에서 내게 전해 주었던 그녀의 시집.
지금은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된 책장이 내 기억 만큼이나 희미하다.
그녀의 시를 옮겨 적으며 나는 시간이 멈춘 추억의 저편을 더듬었다.
사랑이야
네 눈빛은 그냥 그렇게 나에게로 오고
내 눈빛은 그냥 그렇게 너에게로 가서
우리 둘이 가운데서 그저 만나는 거다
오다가 돌부리에 채이고 바람에 흔들릴 수 있겠지만
상처 닦아 줄 넉넉한 마음 뒷짐지고 따라오다
눈물 흘린 그 자리 닦아 널 앉히고
기다리는 너에게로 마침내 도착하여
우리 둘이 가운데서 그저 만나는 거다
가다가 어두운 밤 강 건너며 서러울 때 있겠지만
가슴속 눈물 꺼내 말갛게 씻은 빨래로 널어 놓고
젖은 옷 말리며 기다리고 있는 너와
조용한 웃음으로 만나는 것
우리 둘이 가운데서 그저 만나는 것
아, 다만 그렇게 만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