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자맥질을 하듯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던 비는 새벽이 되어서야 멈췄다. 하염없는 빗소리와 함께 까무룩 선잠이 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하던 나도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렇게 잠을 설친 다음날이면 오랫동안 방치한 낡은 기계를 돌리듯 이곳저곳이 끽끽 소리를 내며 성치 않은 티를 내는 것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빗발이 잦아든 휴일 오전의 대기는 텁텁하다.



백수린 작가의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을 어제 받았다. 작가의 소설을 두어 권쯤 읽어본 게 다인 나로서는 백수린 작가에 대한 이렇다 할 정보를 가진 게 없다. 책을 펼쳐서 한두 꼭지의 산문을 읽어보았다. 길지 않은 각각의 글들은 작가의 일상과 음식, 과거에 읽었던 한 권의 책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글에서 언뜻언듯 드러나는 다정함의 온기들. 글이란 어쩌면 자신의 생각을 문자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통해 자신의 체온 속으로 누군가의 느낌이 스며들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눅눅했던 대기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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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결. 나는 그 공기 알갱이 사이사이로 스며든 물 알갱이들을 하나하나 다 헤아릴 수 있을 듯합니다. 평소 같았으면 그러려니 흘려보냈을 일이지만 오늘 남쪽에서 불어와 볼을 스쳐가는 바람은 그 습습한 기운으로 인해 장맛비에 대한 걱정을 한껏 끌어올렸던 것입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가 쓴 <해변의 묘지> 마지막 연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로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역시 바람이 불고 장맛비가 세차게 내린다고 할지라도 '살아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시 세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에 58만 명 이상의 국민이 동의한 듯합니다. 오죽하면 대기인원이 몰리는 바람에 접속지연 사태까지 벌어졌겠습니까.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지만 넋 놓고 앉아있기보다는 다시 한번 힘을 내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국민들이 적어도 58만 명 이상이나 된다는 의미일 테지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에 등장한 윤 대통령의 말이 언론의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5일 윤 대통령과의 국가조찬기도회 독대 상황에서 대통령이 10.29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정권은 무능함을 넘어 사악하기까지 한, 정말로 더이상 존재해서는 안 될 무도한 정권임을 증명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채 해병 사망 원인을 밝히는 것에도 소극적이거나 앞장서서 방해하려는 행태를 보면 현 정권이 결코 국민 편에 있지 않다는 걸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현 정권의 조세정책만 보더라도 그 뻔뻔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일말의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일부 계층에게만 해당이 되는 상속세율 인하를 말하기 전에 전 국민에게 혜택이 가는 소득세 조정을 먼저 말했을 듯합니다. 예컨대 소득세율을  이만큼 인하할 테니 상속세도 이 정도로 조정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묻는 게 순서 아닐까요? 금투세도 다르지 않습니다. 금투세 대상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세금입니다. 그렇다면 주식투자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혜택을 입는 거래세를 없앨 테니 금투세도 없애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는 게 마땅한 순서이겠지요. 그러나 국민을 개, 돼지로 취급하는 현 정부는 그와 같은 말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정부 재정의 원천인 세금이 하나의 세목에서 줄어든다면 반드시 다른 세목에서 늘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속세가 줄어들면 소득세든 부가세든 조세 저항이 심하지 않은 세목에서 늘려야 하는 게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부가세 인상을 들먹이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다 알다시피 부가세는 간접세인 까닭에 조세저항이 심하지 않으니까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나는 그 공기 알갱이들에 스며든 아주 작은 물방울들의 개수를 모두 헤아릴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장마와 맞서 싸우고, 뒤이어 다가오는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위를 이겨내면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소슬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의 입구에 서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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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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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경과를 무시하거나, 건너뛰거나, 사건의 순서를 뒤바꾸기만 해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게 마련이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의 순리를 우리는 단 한 번도 거스르거나 의심해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주어진 삶에서 시간만큼 익숙한 것도 다시없을 터, 시간은 그만큼 우리의 삶을 강한 힘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 저편에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듯 하찮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욘 포세가 쓴 <아침 그리고 저녁>은 빽빽한 시간의 경과를 가볍게 무시하는 소설이다. 익숙했던 흐름에서 한 발 물러선 이 소설을 대하는 태도 혹은 책을 읽는 독자의 첫 번째 반응은 어쩌면 '낯섦'이라는 단어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이제 막 시간의 도약대에 선 요한네스가 번지점프를 하듯 기척도 없이 삶의 이쪽 편에서 죽음의 저쪽 편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렇다. 소설의 1부에서 어부인 올라이와 그의 아내 마르타를 부모로 정한 채 산파인 안나의 도움을 받아 이제 막 삶을 시작한 요한네스. 올라이 부부에게는 둘째인 동시에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아 요한네스로 불렸던 그가 아니었던가.


"아가 요한네스, 다 잘될 거다, 올라이가 말한다 요한네스라고 부를 거란 말이지요, 늙은 안나가 말한다 그리고 더이상 고요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이 그저 날카로운 울림을 지닌 움직임이 되어 열리고 닫힌다 그리고 그래 그래야 한다 그리고 느리고 빠른 움직임들은 맞서고 합쳐지고 그리고 확실히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다 아무것도 모든 것은 움직임일 뿐이며 색도 규칙적인 박동도 없이 더이상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고요히 고요히 앞으로 모든 것이 그저 나아간다 그리고 더이상 그 무엇도 구별할 수 없고 어린 요한네스는 큰 소리로 운다 그리고 아이의 목소리는 우렁차게 울린다 그리고 아이는 목소리 안에 있고 목소리 밖에 있어 홀로 색깔도 소리도 빛도 없이 아픈 것은 그의 팔 다리 배가 아니라 이 빛 이것 이 움직임들 이것 저 숨 이것들이 아픈 것이다"  (p.25~p.26)


시간의 경과를 무시하는 작가는 문장의 순서를 결정하는 마침표나 쉼표, 느낌표 등 거추장스러운 문장부호를 가볍게 생략한다. 오직 자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 채, 그 감각을 통해 인지되는 모든 것들을 문자 텍스트로 전환하기 위해 분투할 뿐이다. 그와 같은 과정은 마치 빅뱅 직후 플라스마 상태의 우주처럼 모든 게 뒤섞이고 혼란스러운, 물질과 시간마저 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원시 우주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작가는 어쩌면 우리의 모든 삶과 죽음이 시간을 무시해도 좋은 빅뱅의 순간과 무척이나 닮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1부가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삶을 시작한 요한네스의 탄생의 순간을 묘사했다면 2부는 노인이 된 요한네스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옮겨간다. 찌뿌둥한 몸으로 누워 있던 그는 담배 생각이 간절하여 몸을 일으킨다. 젊음은 이미 먼 옛날 이야기가 된 지 오래인 그의 유일한 낙은 결혼하여 근처에 사는 딸 싱네가 이따금 찾아오는 것이다. 작가의 시선은 요한네스의 동선을 따라간다. 요한네스는 친구인 페테르를 만나 낚시를 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편지를 건넸었던 여인과 마주치기도 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에르나까지 만난다. 너무나 쉽게 말이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요한네스의 탄생 장면과 죽음 이후의 모습을 한 권의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맞닿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  (p.132)


작가가 묘사하는 사후의 세계는 삶에서의 일상이 단지 시공간을 확장한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하다. 육체를 벗고 자유로워진 영혼이 어떤 구속이나 장애도 없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연스레 이어가는 것이다. 비록 서로가 서로를 만질 수도 없고 육체를 통한 삶의 온기를 나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책에서 작가는 요한네스가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오는 장면을 그리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그만큼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요한네스 자신의 장례식 장면, 구체적으로 자신의 관에 흙이 덮이고 딸 싱네의 생각이 흰 구름처럼 떠간다.


삶에 대한 집착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지나치게 키운다. 돌이킬 수 없는 진행이라는 건 세상 사람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작가는 묻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다 제쳐두고 오직 나 한 사람만 죽는 일도 아니라는 걸 작가는 새삼 일깨우고 싶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왔던 누구나가 겪는 일, 삶과 죽음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임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것처럼. 곧 장마가 시작된다는데 이 또한 걱정이 된다. 그러나 삶에서의 이러한 고비들 역시 자연스레 지나갈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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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4주년이 되었던 날. 나의 선친 역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6.25 참전 용사 중 한 사람으로서 현충원에 안장된 까닭에 이날만큼은 각별한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다소 풀어졌던 남북 관계는 현 정부 들어서면서 긴장의 강도가 최대치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내일 당장 전쟁이 터져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살아볼 만큼 살아본 우리와 같은 기성세대들이야 전쟁이 발발하여 내일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크게 아쉬울 게 없겠으나,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유산으로 물려준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크나큰 비극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의 희생자가 60세 이상의 나이 든 사람으로 한정되지 않는 까닭에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일은 작금의 기성세대에게 주어진 가장 큰 책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며칠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화성의 리튬전지 공장에서 일을 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화재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고, 탈북인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보복으로 수백 개의 대남 오물 풍선이 날아들었습니다. 게다가 북한의 김정은과 러시아의 푸틴이 만나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과거의 냉전체제로 복귀한 듯한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와 같은 변화에 속수무책 먼 산만 바라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굵직굵직한 뉴스에도 불구하고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지난 16일 전북의 한 제지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19살 노동자의 죽음이었습니다.


전북 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숨진 19세 노동자의 생전 메모장 내용. 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전북 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숨진 19세 노동자의 생전 메모장 내용. 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을 거쳐 6개월 전 정직원으로 입사했다는 A군의 메모장에는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여러 계획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가 정한 2024년 목표는 '남에 대한 얘기 함부로 하지 않기', '하기 전에 겁먹지 않기', '기록하는 습관 들이기', '구체적인 목표 세우기', '친구들에게 돈 아끼지 않기' 등이었습니다. A군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메모지를 읽는 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심성 곱고 아름다웠던 청년이 자신의 꿈도 펼쳐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뻘 되는 나이의 나 역시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와 같은 계획은 단 한 번도 세워보지 못했던 까닭에 슬픔과 함께 가슴 한편으론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박태균 교수가 쓴 <버치문서와 해방정국>을 읽고 있습니다. 미군정 시기에 한국에 배치되어 주로 한국의 정치인들을 담당하는 미군정 정치고문단 소속으로 활동했던 레너드 버치(Leonard Bertsch) 중위. 그가 남긴 자료에 의하면 그 당시의 어른이자 기성세대였던 정치인들은 참으로 어리석고, 오직 자신의 출세밖에 모르던 한심한 작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은 1945년 10월 귀국한 이래로 통합의 아이콘이라기보다는 분열의 상징이었다. "덮어놓고 뭉치자."라고 했지만, 실상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빼고' 덮어놓고 뭉치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로 비난했다."  (p.72)


통합을 주장하지만 실상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은 철저히 배격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 어리석은 정치인들이 있었던 까닭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어리석은 정치인들만 있는데 이 나라의 꼴이 어떻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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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날 대신해 소설, 잇다 5
김명순.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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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뜬구름 잡기식의 정의를 걷어내면 소설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소설가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소설가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상호 간의 관계를 설정하고 조율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계를 설정하고 조율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사람 사이의 관계란 그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그 깊이가 결정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무리 자유분방한 연애관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리학적 예의식이 강했던 조선시대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더라면 예법을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과감히 행하기는 어려웠을 테고, 유교적 예법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작금의 유럽 사회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간다는 건 무리가 있을 터이다. 소설은 주로 시대에 반항하는 인물을 내세워 시대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시대와 동떨어진 허무맹랑한 인물을 창조하기는 어렵고 독자가 허용할 수 잇는 분명한 한계와 테두리가 주어지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소설 속 인물 상호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조율하느냐에 따라 소설을 쓰는 작가의 인생관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소설에는 작가가 자연인으로서 듣고 보고 겪은 모든 것들이 각색되어 펼쳐지고 초점 화자는 아무래도 작가 자신을 가장 많이 닮는다. 초점 화자를 의도적으로 적역으로 설정한다고 해도 결국 평자는 가장 작가와 닮아 보이는 인물을 찾아낸다. 그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어도 기어이 끌고 나온다. 나는 지금도 나와 가장 닮았다고 믿거나 내가 경멸하는 인간상을 뒤섞어 화자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내가 쓴 산문이나 작가 노트나 심지어 비공개 SNS에 올린 게시물까지 포함해서, 누군가가 어떤 소설이 얼마나 자전적인 이야기인지 재단한다고 해도 그 역시 사실은 평자의 자유다. 작가의 자존심을 걸고 이런 모든 과정에서 개인인 내가 받는 상처 따위는 당연히 무시한다는 전제에서다."  (p.305 '때가 이르면 굳은 바위도 가슴을 열어' 중에서)


1917년에 '의심의 소녀'로 문단에 데뷔하여 작품활동을 했던 김명순과 2009년 등단하여 지금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박민정 작가는 두 사람 모두 소설가라는 점에서, 여성 작가라는 점에서 서로 닮은 듯 보이지만 100여 년이라는 시대의 격차와 달라진 가치관과 상이한 성장 배경에 의해 그들이 쓴 소설은 사뭇 다른 양상이다.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한 권에 담아 함께 읽는 시리즈로 기획된 '소설, 잇다'의 다섯 번째 작품인 <천사가 날 대신해>에는 김명순의 소설 세 편과 박민정의 소설 한 편과 한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방탕한 남편으로 인해 고생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여인의 딸과 그녀의 할아버지가 남편과 첩의 눈을 피해 세상 사람들의 눈을 피해 떠도는 모습을 그린 <의심의 소녀>, 평양에 강연을 하러 온 젊은 이학자 효순을 사랑하게 된 소련은 미혼의 신여성이었으나 효순은 이미 은순이라는 처를 둔 유부남이었다. 둘 사이를 눈치챈 은순은 소련의 고모 류애덕 여사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고모는 최병서와의 결혼을 서두른다. 최병서의 학대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로 소련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지만 소련은 꿋꿋이 결혼생활을 이어가며 효순과의 영적 연애를 그리게 된다는 내용의 <돌아다볼 때>, 최 씨 가문의 네 남매인 순희, 순철, 상철, 금희를 중심으로 그 시대의 도발적이거나 비극적인 연애사를 다룬 <외로운 사람들>이 김명순의 작품이고, 친구 세윤의 죽음을 '나'의 시선으로 훑어보는 <천사가 날 대신해>는 박민정의 작품이다. 그리고 박민정의 에세이 <때가 이르면 굳은 바위도 가슴을 열어>는 소설가로서 박민정 작가의 솔직한 시선이 담겨 있다.


"살아내려고 이혼을 선택한 세윤에게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줄, 자꾸만 불행이 갱신될 줄은 세윤도 나도 미처 몰랐다. 만약 내 충고대로 로사를 멀리했다거나, 그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일도 어느새 지겨워졌다. 세윤은 로사가 괴롭히기 시작한 후에도 자기는 더는 어떤 실패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은 가정법원에서 나오는 길에 다른 여자를 차에 태우고 가는 전남편을 보고 우두커니 섰던 자기가 이겨내지 못할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p.296 '천사가 날 대신해' 중에서)


김명순은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소설가, 시인이자 평론가, 언론인, 번역가 등 다양한 재주를 지닌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인 조선 사회에서 '첩의 딸'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었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언뜻언뜻 가부장적인 결혼 풍습의 폐해가 그려지지만 그녀 또한 아무런 잘못도 없이 공격을 당한 시대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비겁한 조리돌림은 과거에만 존재했던 시대의 산물은 아니었던가 보다. 박민정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세윤 역시 약자라는 이유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이혼을 한 세윤은 이미 '약자'라는 핸디캡을 안고 로사와 그 무리 속에서 어떠한 수모도 견딜 각오로 뛰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리 속의 인간은 누군가의 상처를 살뜰히 보살필 만큼 선한 본성의 동물은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세윤은 자신의 약점을 지우기 위해 더 철저히 비굴해지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필경 육신과 영혼을 양편으로 가진 사람들은 약함을 끝끝내 이기진 못하고 운명에게 틈을 엿보여서 나라를 깨트리기도 하고 경우를 잃기도 해서 동서에 울고 웃게 되며 남북에 헤매게 되는 것이다. 여기 이르러 소련의 운명은 그 갈 곳을 확실히 작정했다."  (p.75 '돌아다볼 때' 중에서)


낮고 우울했던 하늘이 점차 밝아지고 있다. 인생의 8할은 인간관계에 있는 것처럼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상호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조율하느냐에 따라 소설가로서의 성패가 결정되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잇다' 시리즈는 시대를 초월한 두 소설가의 만남인 동시에 한 세기를 비껴간 두 소설의 만남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100여 년 전 소설 속 주인공 소련과 현대의 주인공 세윤을 하나의 소설에서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혼재된 시간 속에서 옳고 그름이 뒤섞인 상상의 시공간 그 어디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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