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결. 나는 그 공기 알갱이 사이사이로 스며든 물 알갱이들을 하나하나 다 헤아릴 수 있을 듯합니다. 평소 같았으면 그러려니 흘려보냈을 일이지만 오늘 남쪽에서 불어와 볼을 스쳐가는 바람은 그 습습한 기운으로 인해 장맛비에 대한 걱정을 한껏 끌어올렸던 것입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가 쓴 <해변의 묘지> 마지막 연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로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역시 바람이 불고 장맛비가 세차게 내린다고 할지라도 '살아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시 세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에 58만 명 이상의 국민이 동의한 듯합니다. 오죽하면 대기인원이 몰리는 바람에 접속지연 사태까지 벌어졌겠습니까.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지만 넋 놓고 앉아있기보다는 다시 한번 힘을 내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국민들이 적어도 58만 명 이상이나 된다는 의미일 테지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에 등장한 윤 대통령의 말이 언론의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5일 윤 대통령과의 국가조찬기도회 독대 상황에서 대통령이 10.29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정권은 무능함을 넘어 사악하기까지 한, 정말로 더이상 존재해서는 안 될 무도한 정권임을 증명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채 해병 사망 원인을 밝히는 것에도 소극적이거나 앞장서서 방해하려는 행태를 보면 현 정권이 결코 국민 편에 있지 않다는 걸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현 정권의 조세정책만 보더라도 그 뻔뻔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일말의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일부 계층에게만 해당이 되는 상속세율 인하를 말하기 전에 전 국민에게 혜택이 가는 소득세 조정을 먼저 말했을 듯합니다. 예컨대 소득세율을 이만큼 인하할 테니 상속세도 이 정도로 조정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묻는 게 순서 아닐까요? 금투세도 다르지 않습니다. 금투세 대상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세금입니다. 그렇다면 주식투자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혜택을 입는 거래세를 없앨 테니 금투세도 없애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는 게 마땅한 순서이겠지요. 그러나 국민을 개, 돼지로 취급하는 현 정부는 그와 같은 말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정부 재정의 원천인 세금이 하나의 세목에서 줄어든다면 반드시 다른 세목에서 늘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속세가 줄어들면 소득세든 부가세든 조세 저항이 심하지 않은 세목에서 늘려야 하는 게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부가세 인상을 들먹이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다 알다시피 부가세는 간접세인 까닭에 조세저항이 심하지 않으니까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나는 그 공기 알갱이들에 스며든 아주 작은 물방울들의 개수를 모두 헤아릴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장마와 맞서 싸우고, 뒤이어 다가오는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위를 이겨내면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소슬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의 입구에 서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