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인생공부 - 인간의 마음을 해부한, 67가지 철학수업
김태현 지음, 블레즈 파스칼 원작 / PASCAL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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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팡세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지만 그들 중 책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책의 두께도 상당하지만 경구와 같은 그의 문장이 마치 성경을 본뜬 것처럼 빼곡하게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61-95 정의. 유행이 매력을 만드는 것처럼 정의도 만들어 낸다.'는 식으로 그의 생각이 숫자와 함께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문장이 비록 짧다고는 하나 문장에 담긴 확실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깊은 사유와 철학적 사고가 필요한 까닭에 책을 끝까지 읽고 그 대강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난관 때문인지 과감하게 책을 펼쳤던 사람들도 완독은커녕 책의 반도 채 읽지 못하고 GG를 선언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인문학자 김태현이 쓴 <파스칼 인생 공부>와 같은 책은 『팡세를 완독하지 못한, 혹은 완독을 목전에 두고 GG를 선언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재도전의 의욕을 불태우게 할 좋은 책이자 계기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파스칼 사후 1670년 출간된 초역 『팡세(Pensées)』라는 원문에서 현대인에게 인생의 지침 및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67개의 대표 구절을 선택하여 "인간은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더 성숙해질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다", "인간 불행의 대부분은 혼자 있지 못하는 데서 왔다", "인간의 마음에는 타인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4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팡세』의 불어 원문과 함께 인간의 심리를 해부할 수 있는 쉬운 해설을 덧붙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연 설명이 필요한 꼭지에 대해서는 "사례" 형태로 서두에 설명을 추가하였습니다."  (p.9 '프롤로그' 중에서)


저자가 선별한 67개의 대표 구절만 하더라도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저자의 설명과 사례 덕분에 이해도 하지 못한 채 넘기는 경우는 없거나 매우 드물 듯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책을 읽을 때 하나 유념해야 할 것은 눈으로만 읽어서는 독서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구나 잠언 등은 사실 한두 문장은 쉽게 외워 기억에 오래 남길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되면 시간의 경과와 함께 쉬이 잊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므로 독서와 함께 필사가 병행되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책에 손글씨로 꾹꾹 눌러쓰다 보면 그 구절의 의미도 명확해지지만 문장도 기억 속에 오래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선정한 대표 구절 중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모든 인류의 문제는 사람들이 혼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와 같은 문장을 썼을 때의 파스칼 역시 인간의 분주함과 맹목적인 관계를 지적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살피게 된다. 그러나 그 살핌의 대상이 주로 외적인 것, 이를테면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상황 등 제 또래의 지인들과 비교할 수 있는 어떤 것들에 국한된다. 그것만으로는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통하여 나를 찾는 게 아니라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은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깊은 통찰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이러한 시간을 갖지 못하면, 하루가 멀게 쏟아져 들어오는 외부 자극에 노출되어 타인에게 휘둘리고, 스스로와 마주할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p.129)


이 책에는 없지만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문장 중에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 있다. 문체에 관한 파스칼의 생각을 정리한 문장이다. '자연스러운 문체를 만날 때 우리는 매우 놀라고 기뻐한다. 왜냐하면 한 작가를 본다고 기대했는데 한 인간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책을 보면서 인간을 발견한다고 믿다가 작가를 발견하여 매우 놀란다.'는 문장이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 '한강'이라는 작가를 만나는 게 아니라 소년 동호와 정대를 통하여 국가 공권력의 폭력 앞에 선 나약한 인간 군상을 발견하는 것이다.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더 높은 존재로서 존경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사유하며,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각하고, 깨달음을 얻고, 자아를 찾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특별한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p.222)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전 세계의 지성인들이 한강 작가를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고,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우리가 400여 년 전에 살았던 프랑스의 위대한 영혼 블레즈 파스칼을 기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한강 작가의 작품을 폄훼하고 깎아내리려는 불쌍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파스칼이 살아 있었더라면 아마도 '저 불쌍한 영혼들을 버리지 마실지어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39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던 파스칼이 남긴 마지막 말은 '신은 영원히 저를 버리지 마실지어다'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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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우리가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였다. 오래전부터 한강 작가의 팬이었던 나는 초기작부터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작품을 다 읽어보았지만 나는 사실 작가의 시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지금도 여전히 즐겨 읽는 시집 중 한 권이다.


우리가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을 다루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대해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을 다루는 첫 번째 방법은 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직접 접촉하거나 뭐가 문제인지 묻고 간섭하려 들지 않은 채, 그 고통의 실상을 그저 많은 대중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예컨대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방식이 대표적이다. 말하자면 당신이 겪는 아픔은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당신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으니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봅시다, 하고 응원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방식은 아픔을 겪는 당사자와 직접적으로 접촉하여 전후 사정을 듣고 상대방에게 지속적으로 공감을 표시하는 것은 물론 해결 방안까지 제시하는 방식이다. 심리 상담가나 정치인(독재자나 권위주의 정권이 대부분이지만) 혹은 대부분의 종교가 취하는 방식이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속담도 있는 것처럼 고통에 처한 인간은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크나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당신의 고통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오직 나만이 당신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입함으로써 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심리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세뇌일 수도 있는 이 방식은 알게 모르게 인간의 자유의지를 꺾고, 고통의 당사자로 하여금 삶의 많은 부분을 지배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도록 강요된다. 잊을 만하면 신문에 보도되는 어느 교회의 목사의 성폭행 범죄나 정신과 의사에 의한 범죄 혹은 일반인의 가스라이팅 범죄 등은 모두 이에 해당한다.


사실 문학이나 영화, 종교나 심리 상담 등은 모두 타인의 고통을 소비함으로써 성장한다. 그 방법은 서로 판이하게 다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문학이나 영화 등은 고통을 겪는 당사자와 접촉하지 않는 까닭에 피해가 전혀 없지만, 종교나 정치 등은 개인의 고통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그 내막을 공유하게 되는 까닭에 종교인이나 정치인은 그들의 도덕성이 매우 중요해진다. 예컨대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힌 IS 무장대원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자살 폭탄 테러에 나서거나 이스라엘 병사가 민간인을 향해 총을 난사하거나 어느 교회의 목사처럼 자신의 여성 신도에게 수십 년 동안 성폭행을 가하는 행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타인의 고통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자는 그 고통을 매개로 타인을 지배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나는 한강 작가의 팬 중 한 사람으로서 작가가 교회의 목사나 심리 치료사가 되지 않은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한다. 작가처럼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어느 교회의 목사가 되어 혹여라도 나쁜 마음을 먹고 신도들을 홀린다면 그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었을 듯하기 때문이다. 심리 치료사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종교란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는 얄팍한 신념 체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에 종속되는 순간 개인의 자유의지는 반쯤 날아가고 그의 삶은 이전의 삶과 180도 달라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나 문학과 같은 예술 분야에서 인간의 고통을 다루는 방식은 얼마나 건전한가. 나약함을 인지한 인간 군상이 서로 어깨를 곁고 '으쌰으쌰' 앞으로 나아가자고 독려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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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로 대박나고 싶어요 - 성공적인 출간 데뷔를 위한 웹소설 작법 입문서
한윤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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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치고는 다소 촌스럽고 원색적이다. 잭팟을 터뜨리고 싶은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면 웹소설을 써서 성공하고 싶은 저자의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막 웹소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일반 독자를 부추기는 선동 구호 같기도 하다. 말하자면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성공 스토리를 웹소설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두 여기 여기 모이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책을 읽기만 해도 성공에 반쯤 발을 걸친 듯한 환상에 빠져들게도 한다. 내가 그렇게 읽었다면 제목을 선정한 출판사나 저자의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웹소설이란 게 바로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인간의 욕망이나 정서를 소설이라는 가상 세계를 통해 구현하는 게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난 첫 출간 당시 '억대 수익을 찍는 거 아니야?'라며 설렜었다. 작가가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출간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하지만 내 첫 출간작은 억대 연봉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경험을 발판 삼아 다음 작품을 준비했고 지금은 몇 년째 억대 연봉을 버는 웹소설 전업 작가가 되었다."  (p.6 'Prologue' 중에서)


'성공적인 출간 데뷔를 위한 웹소설 작법 입문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현직 웹소설 작가인 한윤설이 들려주는 웹소설 작가 입문자를 위한 A to Z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웹소설을 읽는 독자가 주변에서 많아진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변변한 웹소설 작법서 한 권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무척이나 반갑다. 현직에 있는 웹소설 작가가 웹소설 작가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를 세상에 내어 놓았기 때문이다. 1장 '독자를 부르는 웹소설의 시작', 2장 '성공을 부르는 웹소설을 쓰자', 3장 '출간을 부르는 웹소설을 기획하자', 4장 '돈을 부르는 웹소설을 출간하자', 5장 '평생 웹소설 작가로 생존하기', 마지막 '당신의 시작', 부록 '웹소설의 모든 용어를 모았다!'로 구성된 이 책은 웹소설 작가 입문자가 아니더라도 웹소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캐릭터의 성격을 잘 설정하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건 캐릭터의 서사다. 캐릭터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보려면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보게 되고 그걸 이해시키려면 서사, 즉 캐릭터가 살아온 삶이 필요하다. 캐릭터의 서사와 함께 성격을 설정해 보도록 하자. 캐릭터의 서사는 구체적일 필요는 없지만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시간을 겪었는지에 따라 현재의 성격이 나타나게 되니, 한 문장으로라도 정리해 두는 편이 좋다."  (p.97)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웹소설을 단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어쩌다가 인기를 끌었던 웹소설이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다면 혹시 읽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마트폰을 통해 웹브라우저로 소설을 읽어 본 적은 없다는 얘기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던 데는 까닭이 있다. 여전히 생명을 유지하는 개체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나이기에 현재 유행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하나의 의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마트폰 속에는 흥미로운 영상이나 사진 등 독자를 유혹하는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는데 그런 여타의 유혹을 뿌리치고 웹소설, 즉 문자 텍스트를 읽는 독자가 존재한다는 건 나로서도 꽤나 흥미로운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웹소설 작가를 굉장히 쉽게 생각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직업에는 그만한 고충이 있다. 학교 다닐 때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이 있다. 전단지만 붙이면 돈을 준다고 하니 소위 요즘 말하는 '꿀알바'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함께 신이 나서 달려갔지만, 결국 한 시간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돌아섰다. 쉬운 일이라는 건 없었다. 내가 쉽게 얕잡아 본 일만 있을 뿐이었다."  (p.268)


한여름 뙤약볕에도 없던 모기가 요 며칠 비가 내리면서 활동이 왕성해졌다.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난 지도 한참인 것 같은데, 아침저녁으로 소소리바람이 부는 요즘 모기 입이 비뚤어지기는커녕 더없이 쌩쌩하기만 한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 모기를 주인공으로 하는 웹소설을 쓴다면 대박일까? 아니면 쪽박일까? 모르긴 몰라도 후자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 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작가가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나 우리의 편견이나 선입관을 뒤엎는 반전 드라마를 쓰게 될지... 언제 어디서나 반전 드라마는 있게 마련이니까. 그날을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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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가을은 시간 시간이 아쉽다. 아쉬움은 때로 단풍으로 물든다. 지천에 널린 아쉬움과 그리움이 메마른 햇살에 슬몃 거둬들여질 무렵이면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 그제야 우리는 짧은 가을이 왔다 갔음을 실감한다. 누렇던 마가목의 열매가 유혹하듯 빨갛게 익어가던 어느 가을날의 석양. 그 기억을 가슴에 품는 날 우리는 아쉬움의 흔적을 탈탈 털어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하얗게 퍼지는 겨울 입김 속으로 허전함도 함께 펼쳐 보는 것이다. 해마다 속으면서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 나아지겠지, 헛된 희망을 저마다의 가슴에 한껏 품어 보는 것도 어쩌면 날씨가 추워서이거나 희망을 품는 데는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는지도...


어제는 '2024 서울 세계 불꽃 축제'가 있었다. 축제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가 107만여 명이라고 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우리가 이렇게 짧은 가을 동안 웃고 즐기는 사이 중동의 한 나라에선 4만1천82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일이다. 이중 신원이 확인된 3만 4천344명 중 약 3분의 1에 달하는 1만 1천355명이 어린이였으며, 여성은 6천297명, 노인은 2천955명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대개 숫자에 굼뜬 면이 있어서 사망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한 그 비참함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 아우슈비츠를 직접 방문해보지 못한 사람은 끔찍했던 당시의 상황을 피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정치권, 네타냐후를 비롯한 극우 시오니스트들은 인종 말살 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 국민 전체가 그토록 잔인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 전체가 그럴 리도 없고 말이다. 다만 네타냐후를 비롯한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잔인함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말 인간도 아니다. 감정이 없는 자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학살할 수 있을까.


지지율 20%의 우리나라 대통령도 해외 순방을 떠났다. 대한민국 국민의 공적이 된 그 여인도 함께 말이다. 30조 이상의 천문학적인 액수의 세수 부족을 초래한 이 정부에서 해외 순방은 정말 뻔질나게 다니고 있다. 방문하는 국가의 언론에서 그렇게 비아냥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안면에 철판을 깔았는지 전혀 부끄러움을 모른다. 하기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해외여행 한 번 가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 현직에 있을 때 열심히 다니는 게 본인으로서는 남는 일일 게다. 순방국에서 받는 그와 같은 융숭한 대접도 대접이려니와 여행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가을을 시샘하는 탓인지 하늘은 종일 흐려 있다. 바람은 선선하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선율은 아련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기에 김인자 작가의 포토 에세이 <사과나무가 있는 국경>을 읽고 있다. 시를 쓰다가 '여자가 뭘?' 하는 소리에 발끈하여 20년간 100여 개국을 여행했다는 책날개에 적힌 작가의 소개글이 눈에 띈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니 그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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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생활자
황보름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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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관계의 정리가 필수적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유로 타인에 의해 지배되거나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관계의 밑바탕에는 영리적인 목적도 있을 수 있고, 친밀감이나 애정이 근본 이유일 수도 있다. 물론 둘 다인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까닭에 오랫동안 유지되던 타인과의 관계를 일거에 정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제부터 내 삶을 내 마음대로 살아야겠다' 굳게 다짐을 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자연인이 되어 산속 깊숙이 숨어들지 않는 한 얽히고설킨 관계를 정리한다는 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관계에 미련을 두지 않은 채 그저 방에 틀어박혀 행복에 겨워하는 작가들의 이런 글을 읽을 때면, 나도 관계에 대한 고민과 감정에서 벗어나 나를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나도 그저 집에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는 게 좋은 사람일 뿐이라고. 단지 그것뿐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도 가벼워지고 생각도 정리됐다. 좋아하는 일이나 계속 좋아하면 되겠다고."  (p.43~p.44)


보름의 에세이 <단순 생활자>를 읽는 독자들 중 상당수는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보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볼 필요도 없이 유유자적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삶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막상 그와 같은 환경에 처한다면 현실적인 고민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단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단순한 삶에 적응하지 못할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언제나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근시안적 사고의 한 개체일 뿐이다.


"나는 미래에 외로워질 걸 걱정하나. 콩알만큼 걱정하긴 하겠지만, 삶의 방식을 바꿀 만큼 걱정하진 않는다. 심각하게 걱정해본 적 없다는 이다. 이건 마치 배우자가 있는 누군가가 다양한 형태의 이별 후에 올 외로움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 누군가가 눈앞의 배우자와 충만한 오늘과 내일을 누리려 노력하듯, 나 역시 내게 주어진 것들로 충만한 오늘과 내일을 도모하고 있다. 더더군다나 미래를 미리부터 걱정해서 뭐하나, 하면서 산 지 오래됐다. 걱정에 대해서 만큼은 근시안적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p202~p.203)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생활을 다룬 이와 같은 에세이를 읽었을 때의 좋은 점은 멀게만 느껴지던 작가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황보름 작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었을 때는 그렇고 그런 소설가 중 한 사람쯤으로 여겼었는데,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는 사실도, LG전자에서 개발자로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다는 사실도, 언니네 집에서 얹혀살다가 독립하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작가의 이웃이 된 느낌이었다.


"내게 휴식은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건, 시간 속에 나만 들어가 있는 걸 말한다. 시간 안으로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한다. 사회적 시선, 압박,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말들. 지치지 않고 찾아오는 불안, 걱정, 두려움도."  (p.234)


나이도 일정한 크기로 소분하여 냉동실에 꽁꽁 얼려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람의 나이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허투루 쓰는 시간 없이 흐르는 시간을 알뜰하게 쓸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황보름 작가처럼 '다른 삶들을 흘긋거리며' 꾸준히 살펴보다가 '저렇게 살고 싶은 삶'을 만나야 한다. '가슴이 반응하고 시선이 멈추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삶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서 과감히 고개를 돌'려야 한다. 오늘은 토요일. 딱히 할 일도 없는 하루였지만 단순 생활자 황보름 씨로부터 한 수 배운 느낌이 든다. 단순한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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