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생활자
황보름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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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관계의 정리가 필수적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유로 타인에 의해 지배되거나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관계의 밑바탕에는 영리적인 목적도 있을 수 있고, 친밀감이나 애정이 근본 이유일 수도 있다. 물론 둘 다인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까닭에 오랫동안 유지되던 타인과의 관계를 일거에 정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제부터 내 삶을 내 마음대로 살아야겠다' 굳게 다짐을 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자연인이 되어 산속 깊숙이 숨어들지 않는 한 얽히고설킨 관계를 정리한다는 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관계에 미련을 두지 않은 채 그저 방에 틀어박혀 행복에 겨워하는 작가들의 이런 글을 읽을 때면, 나도 관계에 대한 고민과 감정에서 벗어나 나를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나도 그저 집에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는 게 좋은 사람일 뿐이라고. 단지 그것뿐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도 가벼워지고 생각도 정리됐다. 좋아하는 일이나 계속 좋아하면 되겠다고."  (p.43~p.44)


보름의 에세이 <단순 생활자>를 읽는 독자들 중 상당수는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보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볼 필요도 없이 유유자적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삶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막상 그와 같은 환경에 처한다면 현실적인 고민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단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단순한 삶에 적응하지 못할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언제나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근시안적 사고의 한 개체일 뿐이다.


"나는 미래에 외로워질 걸 걱정하나. 콩알만큼 걱정하긴 하겠지만, 삶의 방식을 바꿀 만큼 걱정하진 않는다. 심각하게 걱정해본 적 없다는 이다. 이건 마치 배우자가 있는 누군가가 다양한 형태의 이별 후에 올 외로움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 누군가가 눈앞의 배우자와 충만한 오늘과 내일을 누리려 노력하듯, 나 역시 내게 주어진 것들로 충만한 오늘과 내일을 도모하고 있다. 더더군다나 미래를 미리부터 걱정해서 뭐하나, 하면서 산 지 오래됐다. 걱정에 대해서 만큼은 근시안적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p202~p.203)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생활을 다룬 이와 같은 에세이를 읽었을 때의 좋은 점은 멀게만 느껴지던 작가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황보름 작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었을 때는 그렇고 그런 소설가 중 한 사람쯤으로 여겼었는데,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는 사실도, LG전자에서 개발자로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다는 사실도, 언니네 집에서 얹혀살다가 독립하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작가의 이웃이 된 느낌이었다.


"내게 휴식은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건, 시간 속에 나만 들어가 있는 걸 말한다. 시간 안으로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한다. 사회적 시선, 압박,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말들. 지치지 않고 찾아오는 불안, 걱정, 두려움도."  (p.234)


나이도 일정한 크기로 소분하여 냉동실에 꽁꽁 얼려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람의 나이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허투루 쓰는 시간 없이 흐르는 시간을 알뜰하게 쓸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황보름 작가처럼 '다른 삶들을 흘긋거리며' 꾸준히 살펴보다가 '저렇게 살고 싶은 삶'을 만나야 한다. '가슴이 반응하고 시선이 멈추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삶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서 과감히 고개를 돌'려야 한다. 오늘은 토요일. 딱히 할 일도 없는 하루였지만 단순 생활자 황보름 씨로부터 한 수 배운 느낌이 든다. 단순한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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