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가을은 시간 시간이 아쉽다. 아쉬움은 때로 단풍으로 물든다. 지천에 널린 아쉬움과 그리움이 메마른 햇살에 슬몃 거둬들여질 무렵이면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 그제야 우리는 짧은 가을이 왔다 갔음을 실감한다. 누렇던 마가목의 열매가 유혹하듯 빨갛게 익어가던 어느 가을날의 석양. 그 기억을 가슴에 품는 날 우리는 아쉬움의 흔적을 탈탈 털어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하얗게 퍼지는 겨울 입김 속으로 허전함도 함께 펼쳐 보는 것이다. 해마다 속으면서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 나아지겠지, 헛된 희망을 저마다의 가슴에 한껏 품어 보는 것도 어쩌면 날씨가 추워서이거나 희망을 품는 데는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는지도...


어제는 '2024 서울 세계 불꽃 축제'가 있었다. 축제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가 107만여 명이라고 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우리가 이렇게 짧은 가을 동안 웃고 즐기는 사이 중동의 한 나라에선 4만1천82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일이다. 이중 신원이 확인된 3만 4천344명 중 약 3분의 1에 달하는 1만 1천355명이 어린이였으며, 여성은 6천297명, 노인은 2천955명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대개 숫자에 굼뜬 면이 있어서 사망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한 그 비참함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 아우슈비츠를 직접 방문해보지 못한 사람은 끔찍했던 당시의 상황을 피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정치권, 네타냐후를 비롯한 극우 시오니스트들은 인종 말살 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 국민 전체가 그토록 잔인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 전체가 그럴 리도 없고 말이다. 다만 네타냐후를 비롯한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잔인함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말 인간도 아니다. 감정이 없는 자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학살할 수 있을까.


지지율 20%의 우리나라 대통령도 해외 순방을 떠났다. 대한민국 국민의 공적이 된 그 여인도 함께 말이다. 30조 이상의 천문학적인 액수의 세수 부족을 초래한 이 정부에서 해외 순방은 정말 뻔질나게 다니고 있다. 방문하는 국가의 언론에서 그렇게 비아냥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안면에 철판을 깔았는지 전혀 부끄러움을 모른다. 하기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해외여행 한 번 가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 현직에 있을 때 열심히 다니는 게 본인으로서는 남는 일일 게다. 순방국에서 받는 그와 같은 융숭한 대접도 대접이려니와 여행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가을을 시샘하는 탓인지 하늘은 종일 흐려 있다. 바람은 선선하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선율은 아련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기에 김인자 작가의 포토 에세이 <사과나무가 있는 국경>을 읽고 있다. 시를 쓰다가 '여자가 뭘?' 하는 소리에 발끈하여 20년간 100여 개국을 여행했다는 책날개에 적힌 작가의 소개글이 눈에 띈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니 그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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