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인생공부 - 인간의 마음을 해부한, 67가지 철학수업
김태현 지음, 블레즈 파스칼 원작 / PASCAL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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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팡세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지만 그들 중 책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책의 두께도 상당하지만 경구와 같은 그의 문장이 마치 성경을 본뜬 것처럼 빼곡하게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61-95 정의. 유행이 매력을 만드는 것처럼 정의도 만들어 낸다.'는 식으로 그의 생각이 숫자와 함께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문장이 비록 짧다고는 하나 문장에 담긴 확실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깊은 사유와 철학적 사고가 필요한 까닭에 책을 끝까지 읽고 그 대강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난관 때문인지 과감하게 책을 펼쳤던 사람들도 완독은커녕 책의 반도 채 읽지 못하고 GG를 선언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인문학자 김태현이 쓴 <파스칼 인생 공부>와 같은 책은 『팡세를 완독하지 못한, 혹은 완독을 목전에 두고 GG를 선언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재도전의 의욕을 불태우게 할 좋은 책이자 계기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파스칼 사후 1670년 출간된 초역 『팡세(Pensées)』라는 원문에서 현대인에게 인생의 지침 및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67개의 대표 구절을 선택하여 "인간은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더 성숙해질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다", "인간 불행의 대부분은 혼자 있지 못하는 데서 왔다", "인간의 마음에는 타인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4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팡세』의 불어 원문과 함께 인간의 심리를 해부할 수 있는 쉬운 해설을 덧붙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연 설명이 필요한 꼭지에 대해서는 "사례" 형태로 서두에 설명을 추가하였습니다."  (p.9 '프롤로그' 중에서)


저자가 선별한 67개의 대표 구절만 하더라도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저자의 설명과 사례 덕분에 이해도 하지 못한 채 넘기는 경우는 없거나 매우 드물 듯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책을 읽을 때 하나 유념해야 할 것은 눈으로만 읽어서는 독서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구나 잠언 등은 사실 한두 문장은 쉽게 외워 기억에 오래 남길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되면 시간의 경과와 함께 쉬이 잊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므로 독서와 함께 필사가 병행되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책에 손글씨로 꾹꾹 눌러쓰다 보면 그 구절의 의미도 명확해지지만 문장도 기억 속에 오래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선정한 대표 구절 중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모든 인류의 문제는 사람들이 혼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와 같은 문장을 썼을 때의 파스칼 역시 인간의 분주함과 맹목적인 관계를 지적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살피게 된다. 그러나 그 살핌의 대상이 주로 외적인 것, 이를테면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상황 등 제 또래의 지인들과 비교할 수 있는 어떤 것들에 국한된다. 그것만으로는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통하여 나를 찾는 게 아니라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은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깊은 통찰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이러한 시간을 갖지 못하면, 하루가 멀게 쏟아져 들어오는 외부 자극에 노출되어 타인에게 휘둘리고, 스스로와 마주할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p.129)


이 책에는 없지만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문장 중에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 있다. 문체에 관한 파스칼의 생각을 정리한 문장이다. '자연스러운 문체를 만날 때 우리는 매우 놀라고 기뻐한다. 왜냐하면 한 작가를 본다고 기대했는데 한 인간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책을 보면서 인간을 발견한다고 믿다가 작가를 발견하여 매우 놀란다.'는 문장이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 '한강'이라는 작가를 만나는 게 아니라 소년 동호와 정대를 통하여 국가 공권력의 폭력 앞에 선 나약한 인간 군상을 발견하는 것이다.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더 높은 존재로서 존경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사유하며,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각하고, 깨달음을 얻고, 자아를 찾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특별한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p.222)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전 세계의 지성인들이 한강 작가를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고,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우리가 400여 년 전에 살았던 프랑스의 위대한 영혼 블레즈 파스칼을 기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한강 작가의 작품을 폄훼하고 깎아내리려는 불쌍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파스칼이 살아 있었더라면 아마도 '저 불쌍한 영혼들을 버리지 마실지어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39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던 파스칼이 남긴 마지막 말은 '신은 영원히 저를 버리지 마실지어다'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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