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만 안녕
황경신 지음, 김원 사진 / 지식의숲(넥서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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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독서편력이 심한 편은 아니지만 어떤 작가에 대한 호불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껏 내가 읽었던 책의 권수도 그리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 작가의 수도 제한되는 까닭에 굳이 호불호를 나눌 필요도, 그럴 만한 이유도 찾지 못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기본 자료의 부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일 뿐 나의 취향이나 선호가 전무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 그렇지만 형편없는 나의 독서 이력과 미미한 자료에 근거해서, 말하자면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거해서 글을 잘 쓴다고 인정되는 작가가 몇몇 존재하기는 한다. 멀게는 박경리 작가나 박완서 작가에서부터 조금 가깝게는 김소연 작가나 황경신 작가를 들 수 있겠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김훈 작가를 거의 일 순위로 꼽았지만, <허송세월>을 읽고 크게 실망했던 바, 더이상 김훈 작가를 거론하지는 않기로 했다. 물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내가 감히 언급할 수조차 없는, 나의 평가 수준을 벗어난, 저세상 클래스의 작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황경신 작가와의 인연은 그녀의 에세이 <생각이 나서>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이 나서>를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그녀는 '타고난 글쟁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생각이 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 자신만의 문체로 완성한, 황경신 체의 에세이인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탁월하고 독특한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 자주 있을 수는 없는 법, 작가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천명관 체로 완성한 <고래>가 그렇고, 오쿠다 히데오 체로 완성한 <공중그네>가 그렇고, 김훈 체로 완성한 <자전거 여행>이 그랬다. 과거에 자신이 쓴 작품 수준을 능가하는 새로운 작품을 세상에 다시 내놓을 수 없는 작가의 심정은 오죽 답답할까마는 이를 대하는 독자의 태도 또한 혹한기의 그것처럼 냉담하구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누군가의 영혼을 영원히 사랑하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유한의 존재인 나는, 무한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수용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영원이란, 우리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언젠가의 시간 속에서만 영원히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것, 그것만이 영원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p.123 '슬프지만 안녕' 중에서)


<슬프지만 안녕>은 17편의 짧은 소설을 모아서 엮은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슬프지만 안녕'을 비롯하여 '녹턴', '꽃 피우는 아이', '한밤의 티파티',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1990년대 풍의 고전적인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책을 메우고 있다. 작가의 실제 체험과 허구가 교묘하게 섞여 있다고는 하지만, 체험담이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더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작가의 글재주가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황경신 작가를 아끼는 열혈 독자인 나의 입장에서 판단해보자면 소설은 왠지 어색하기만 한 게 사실이다. 작가에게는 여전히 에세이스트로서의 자유분방함이나 사색의 순수함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여전히 유교적 토양에서 자란, 관습화한 고정 관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 에르노와 같은 사실적 묘사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는 듯하다.


"남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희미한 얼룩 같은 눈들이 공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돌아갈 생각이 없는 듯, 혹은 어딘가 먼 곳을 향해 가듯, 남자는 여기저기 발자국을 남기며 나무 사이를 걷고 있다. 물이 오르지 않은 나무들, 아직 겨울 속에 있는 듯한 나무들이다. 그러나 나무 속에는, 땅속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바쁜 마음으로 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p.255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중에서)


작가에게는 특화된 한 분야의 재주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하나의 재주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 시대를 사는 동시대인의 마음을 관통하는 시대정신과 일치해야 한다. 말하자면 작가의 재주를 인정하고 높이 살 만한 동시대의 독자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나이에 상관없이 그가 쓰는 글은 언제나 탄력이 있고 힘이 넘쳐야 한다.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네, 하고 고백하는 순간 작가로서의 수명은 이미 끝난 것이다. 내가 김훈 작가의 글을 더이상 읽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의연함과 초연함이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있어야 한다. 글에서 풍기는 원숙함이나 노련함은 작가의 나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작가가 기울인 노력의 산물일 뿐이다. 우리는 종종 작가의 노쇠함을 원숙함으로 포장하곤 한다. <슬프지만 안녕>은 황경신 작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통속적이고 구태의연한 느낌이 드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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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려했던 일이 막상 현실로 나타났을 때, 생각보다 약한 결과에 저으기 안심할 때가 더러 있다. 그것은 마치 약하게 고소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번지 점프대에 올라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느꼈던 극한의 공포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뛰어내리고 나면 '에이, 별것도 아니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는 이렇듯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과도한 걱정과 근심을 안은 채 전전긍긍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이와 같은 경험을 얼마나 많이 겪게 되는 것일까. 우리 앞에 어차피 닥칠 불행이라면 그 결과를 미리 걱정하고 고민할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충실하게 즐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손에 떠밀려 번지 점프를 하게 될 테고 공중에 매달린 채 별것 아니라며 안심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수능을 치른 학생들의 홀가분한 표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자신의 마음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조정하거나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결과로 인해 밤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과 근심에 싸여 있다면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한 치 앞의 일도 미리 알 수 없는 청맹과니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우리가 이렇게 무식하고, 무례하고, 건방지기 짝이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으리라고 누가 예측이나 했을까. 그러나 결과는 그렇게 되고 말았고, 그를 찍었던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자괴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게 되지 않았던가. 그러려니 하면서 말이다.


하물며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은 어떠한가. 절제가 불가능한 망나니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다시 뽑지 않았던가. 이렇듯 세상에는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일은 다시 또 반복적으로 일어나고야 말 테니까 말이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명 박사나 천공의 예지력 덕분이려니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속 편할지도 모른다. 장은진의 장편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가 문득 떠오르는 금요일 오후. 다음주부터 기온이 떨어진다는데 걱정...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주말은 주말처럼 즐겨야 하지 않을까.


"거리를 걷다 문득, 나는 이게 우리의 마지막 축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광란의 축제도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다. 시끌벅적한 축제 뒤에 남는 건 쓸쓸함과 허전함이다. 축제가 끝나면 마술처럼 풀렸던 금기는 마술처럼 다시 시작될 것이다. 어쩌면 축제의 뒤끝을 감당하지 못한 광기 들린 자에 의해 금기의 벌이 내려질지도 모른다. 광란의 밤이 어떤 자를 광란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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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11-15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이 참 요지경입니다.

꼼쥐 2024-11-16 14:57   좋아요 0 | URL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는 요지경이지요. 점점 그 임계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작가살이
애니 딜러드 지음, 이미선 옮김 / 공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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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유명 작가를 제외하면 '작가'라는 직업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사실이 그렇다기보다 나의 인식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와 같은 인식의 출발점이 어디일까?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지금은 그런 말이 사라졌을까 몰라도 내가 어렸을 적에는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작가는 밥 빌어먹기도 힘들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었다. 그런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반복적으로 듣고 자랐던 나는 '작가'라는 직업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 공포에 가까운 거부반응을 갖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게다가 집안 형편마저 팍팍했던 나로서는 직업 선택 목록에도 오르지 않은 '작가'를 평생 직업으로 갖게 된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의 명함에 '작가'라는 두 글자가 이름 앞에 놓일라치면 '이 사람은 과연 제 때에 밥은 밥은 먹고 다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곤 한다.


선진국을 자처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설마 굶어 죽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있었다. 2011년 30대 초반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 모 씨는 자신이 살았던 월세방 현관문에 '그동안 너무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쪽지를 남긴 채 사망했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지병이 있었고, 직접적인 사망 원인도 지병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그와 같은 글귀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비정함은 충분히 드러난다고 하겠다. 이렇듯 작가는 되기도 어렵지만 평생 직업으로 선택하기에도 꽤나 어려운 직업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영토 내에서는 말이다.


"글쓰기는 한 줄의 단어를 펼쳐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줄은 광부의 곡괭이이고 목각사의 끌이며 의사의 탐침이다. 글 쓰는 이가 휘두르는 대로 그 줄은 그에게 길을 파서 내준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땅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막다를 골목일까, 아니면 진짜 주제를 찾아낸 것일까? 그 답은 내일 나타날 수도 있고 내년 이맘때쯤 나타날 수도 있다."  (p.11)


미국 작가 애니 딜러드가 쓴 <작가살이(The writing life)>의 첫 대목은 그렇게 시작된다. 1장 '글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2장 '나는 어디에서 글을 쓰는가?', 3장 '누가 내게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가?', 4장 '글 쓰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5장 '어떻게 나만의 글을 써낼 수 있을까?', 6장 '나의 글쓰기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7장 '글의 영감은 어디서 오는가?'의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장의 소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용 자체는 무척이나 평이하고 쉽게 쓰인 듯 여겨지지만 실제로 책을 읽는 독자는 여러 생각할 거리가 넘치는 까닭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책에 머무는 그 시간만큼은 꽤나 즐거울 거라는 사실이다.


"작가는 세상이 아니라 문학을 공부한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그는 세상을 놓칠 수가 없다. 햄버거를 사거나 비행기를 타면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보고한다. 그는 자신이 읽을 책을 주의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그가 쓸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배울 것을 조심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자신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112)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는 길이 예전보다 넓어진 게 사실이다. 일인 출판이 늘고,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책으로 내놓고 있다. 말하자면 유입되는 작가의 수가 전에 비해 획기적으로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책에 대한 수요는 나날이 감소한다. 전에도 그랬지만 출판계는 그야말로 지독한 레드오션으로 변해가는 셈이다. 이런 마당에 작가를 꿈꾼다는 건 자살 행위와 진배없다. 물려받을 유산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럼에도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더러 있다. 우리는 그들의 용기 덕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문화강국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누릴 수 있고, 작금의 혼란을 잊을 수 있을 만큼의 재미있고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현실일 터, 우리는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글 쓰는 것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매번 즉시 그것을 모두 써 버리고, 뿜어내고, 이용하고, 없애 버리라. 책의 나중 부분이나 다른 책을 위해 좋아 보이는 것을 남겨두지 말라. 나중에 더 좋은 곳을 위해 뭔가를 남겨두려는 충동은 그것을 지금 다 써먹으라는 신호이다. 나중에는 더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들은 샘물처럼 뒤에서부터, 아래로부터 가득 차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알게 된 것을 혼자만 간직하려는 충동은 수치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인 일이기도 하다 아낌없이 공짜로 푹푹 나눠주지 않으면 결국 본인에게도 손해이다."  (p.129)


'작가'가 되겠노라 호언장담하는 이를 나는 존경한다. 그들의 용기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일개 무명의 독자로서 고통 속에서 대작이 나온다는 것을 역사적 기록으로부터 배워왔기 때문이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고통의 경험을 독자들에게 가감 없이 생생하게 전달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작가'를 꿈꾸는 당신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구비한 셈이다. 나는 기꺼이 당신의 독자가 될 것임을 약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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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전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던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지지율 20%를 밑도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도 있었다. 겨울 모드로 변한 날씨의 변화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이와 같은 굵직굵직한 뉴스 때문인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들떴던 문학계의 열기는 다소 누그러진 분위기였다. 이런 어수선함 속에서 2024년 한 해도 저물고 있다.


군에 입대한 아들이 휴가를 나왔었고, 남자들에게 첫 휴가가 늘 그렇듯 집에서 잔 날보다 친구 혹은 선배의 자취방에서 자고 들어오겠다는 연락을 몇 번인가 받았고, 취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서둘러 제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명태에 붙은 균의 소식이 서결이와 거니의 소식보다 더 빠르게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다들 말을 잊은 채 혀만 끌끌 찼고, 한 나라가 이렇게도 망할 수 있구나, 하는 탄식이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왔다.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니라는 건 세 살배기 어린애도 알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바닷가의 루시>를 읽고 있다. 나는 이미 작가의 소설 몇 권을 읽어보았는데, 그녀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다른 세상에 떨어진 느낌이 들곤 했다. 내가 속한 현실과 유리되어 작가가 꾸며 놓은 조용한 세상에 뚝 떨어진 듯한 느낌은 책의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들었던 것이다. 7살 소녀 앨리스가 토끼굴을 타고 떨어져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는 것처럼. 독자들이 스트라우트 소설에 매료되는 까닭은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속한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한 발 물러설 수 있다는 점.


"좋은 날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훌륭한 생활은 하기 힘들다. 감각으로만 경험한 좋은 날들로 이루어진 삶은 충분하지 않다. 감각의 삶은 탐욕의 삶이다. 감각의 삶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반면에 영혼의 삶은 더 적은 것을 요구한다. 시간은 풍요롭고 그 흐름은 달콤하다. 책을 읽으면서 보내는 하루를 좋은 날이라고 부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보내는 삶은 훌륭한 삶이다. 십 년, 이십 년 동안 과거의 다른 날과 거의 똑같은 날은 결코 좋은 날이 아니다."  (애니 딜러드의 '작가살이' 중에서)


주중에 잠시 쌀쌀했던 날이 있었지만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동화처럼 이어지고 있다. 다음 주에는 수능일이 있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잔잔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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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가 있는 국경
김인자 지음 / 푸른영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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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를 읽는 게 여행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행에 대한 욕구나 갈망을 한 바구니 키울 뿐이다. 그렇다고 여행 에세이가 여행을 부추기는 광고 서적은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따금 여행 에세이를 읽고, 풍선처럼 부푼 여행 욕구를 안은 채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리고 여행지로부터 지금 막 돌아왔을 때의 노곤한 피로와 예상을 뛰어넘은 여행 경비에 골머리를 앓곤 한다. 어느 여성 잡지의 연말 부록처럼 '이제 내가 여행을 또 떠나면 성을 갈겠다'는 여행 결별 선언이 짐을 정리하는 내내 이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긴장감을 날려버리기엔 파파야나 망고향기가 있는 국경도 멋지지 않을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나는 그런 국경을 본 적이 없다. 하여 마음 속 국경에 사과나무를 심기로 했으니 훗날 나무가 자라 붉은 사과가 주렁주렁 열리면 누구든 와서 따 드시라. 그리고 전해주시라. 지상 어딘가 사과나무가 있는 매우 멋진 국경이 있노라고. 그곳에 가면 당신은 그리운 이에게 사과나무가 있어 등지고 싶은 세상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노라는 편지를 쓰게 될 거라고."  (p.141)


김인자 시인의 여행 에세이 <사과나무가 있는 국경>은 어쩌면 작가의 여행 결산서와도 같은 책이다. 작가가 여행했던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그곳에서의 특별한 에피소드를 주제로 쓴 것도 아닌, 여행자로 살았던 20년의 여행기록을 묶은 책이기 때문이다. 풍경보다 만났던 사람들의 인물사진을 우선순위에 두고 순수한 인간애를 책에 담으려 했다는 작가의 서문은 꽤나 인상적이어서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과정을 여행하는 초보 여행자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나와 직업군이 다른 어느 개인이 아닌, 삶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난 '여행 메이트'쯤으로 여겨질지도...


"죽음과 슬픔으로 가득한 도시를 떠나 당도한 서쪽 바다, 밀항을 꿈꾼 건 아니었다 네비게이션을 무시한 채 달렸고 걸었다. 딴엔 죽음이 나를 앞지르거나 따라오지 못하도록 없는 지도를 만들고 숨은 길을 찾느라 몇 번인가 바퀴가 빠질 뻔했다. 죽음이 멀미처럼 아련해질 무렵 바람이 일러준 대로 작은 포구에 도착했고 울기 좋은 방 하나를 얻어 짐을 풀었다."  (p.330)


1부 '사하라 사막에서 히말라야까지', 2부 '트럭여행과 크루즈와 캠퍼밴', 3부 '삶과 죽음, 나로부터의 결별', 4부 '섬, 천년의 기다림'으로 구성된 이 책은 차라리 한 줄 아름다운 '구도(求道)의 서(書)'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가의 유려한 문체와 웅숭깊은 사색의 결과물이 결합되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독서의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나는 한 권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내처 읽다가 마지막 장을 덮음으로써 독서를 갈무리하는 일반적인 독서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어떤 문장 앞에서 그 뜻과 의미를 오래 음미하다가 다시 책을 읽는 식으로 독서, 음미, 쉼, 독서, 음미 등 불규칙적인 독서를 이어갔다.


"욕망을 긍정한다고 타락이나 방종을 허락하는 건 아니지만 살면서 행복대신 일등이나 부자가 되려는 욕심에 눈이 멀어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준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여행은 그런 나를 반성하게 했다. 고통과 시련은 집 밖을 그리워 한 죄의 대가로 달게 받겠다. 그리고 깊고 따스하고 흔들림 없는 영혼을 만날 때마다 심장이 터질 듯 좋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아니오'라고 말해준 모든 이들에게도 같은 인사를 대신하고 싶다."  (p.364)


어제오늘 날씨가 초가을처럼 따사로웠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날씨처럼 밝았다. 그러나 우리가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 곳곳에서는 모르는 이의 불행이 우후죽순처럼 발발할 터, 우리가 그들의 눈물마저 닦아줄 수는 없겠지만 너무 티 나게 웃고 있지는 말자. 다만 언제, 어느 곳에서도 행복과 불행은 늘 함께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 나의 행복보다 너의 불행을 우선순위로 생각한다는 원칙을 지켜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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