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살이
애니 딜러드 지음, 이미선 옮김 / 공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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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유명 작가를 제외하면 '작가'라는 직업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사실이 그렇다기보다 나의 인식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와 같은 인식의 출발점이 어디일까?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지금은 그런 말이 사라졌을까 몰라도 내가 어렸을 적에는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작가는 밥 빌어먹기도 힘들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었다. 그런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반복적으로 듣고 자랐던 나는 '작가'라는 직업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 공포에 가까운 거부반응을 갖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게다가 집안 형편마저 팍팍했던 나로서는 직업 선택 목록에도 오르지 않은 '작가'를 평생 직업으로 갖게 된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의 명함에 '작가'라는 두 글자가 이름 앞에 놓일라치면 '이 사람은 과연 제 때에 밥은 밥은 먹고 다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곤 한다.


선진국을 자처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설마 굶어 죽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있었다. 2011년 30대 초반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 모 씨는 자신이 살았던 월세방 현관문에 '그동안 너무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쪽지를 남긴 채 사망했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지병이 있었고, 직접적인 사망 원인도 지병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그와 같은 글귀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비정함은 충분히 드러난다고 하겠다. 이렇듯 작가는 되기도 어렵지만 평생 직업으로 선택하기에도 꽤나 어려운 직업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영토 내에서는 말이다.


"글쓰기는 한 줄의 단어를 펼쳐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줄은 광부의 곡괭이이고 목각사의 끌이며 의사의 탐침이다. 글 쓰는 이가 휘두르는 대로 그 줄은 그에게 길을 파서 내준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땅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막다를 골목일까, 아니면 진짜 주제를 찾아낸 것일까? 그 답은 내일 나타날 수도 있고 내년 이맘때쯤 나타날 수도 있다."  (p.11)


미국 작가 애니 딜러드가 쓴 <작가살이(The writing life)>의 첫 대목은 그렇게 시작된다. 1장 '글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2장 '나는 어디에서 글을 쓰는가?', 3장 '누가 내게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가?', 4장 '글 쓰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5장 '어떻게 나만의 글을 써낼 수 있을까?', 6장 '나의 글쓰기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7장 '글의 영감은 어디서 오는가?'의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장의 소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용 자체는 무척이나 평이하고 쉽게 쓰인 듯 여겨지지만 실제로 책을 읽는 독자는 여러 생각할 거리가 넘치는 까닭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책에 머무는 그 시간만큼은 꽤나 즐거울 거라는 사실이다.


"작가는 세상이 아니라 문학을 공부한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그는 세상을 놓칠 수가 없다. 햄버거를 사거나 비행기를 타면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보고한다. 그는 자신이 읽을 책을 주의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그가 쓸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배울 것을 조심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자신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112)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는 길이 예전보다 넓어진 게 사실이다. 일인 출판이 늘고,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책으로 내놓고 있다. 말하자면 유입되는 작가의 수가 전에 비해 획기적으로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책에 대한 수요는 나날이 감소한다. 전에도 그랬지만 출판계는 그야말로 지독한 레드오션으로 변해가는 셈이다. 이런 마당에 작가를 꿈꾼다는 건 자살 행위와 진배없다. 물려받을 유산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럼에도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더러 있다. 우리는 그들의 용기 덕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문화강국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누릴 수 있고, 작금의 혼란을 잊을 수 있을 만큼의 재미있고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현실일 터, 우리는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글 쓰는 것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매번 즉시 그것을 모두 써 버리고, 뿜어내고, 이용하고, 없애 버리라. 책의 나중 부분이나 다른 책을 위해 좋아 보이는 것을 남겨두지 말라. 나중에 더 좋은 곳을 위해 뭔가를 남겨두려는 충동은 그것을 지금 다 써먹으라는 신호이다. 나중에는 더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들은 샘물처럼 뒤에서부터, 아래로부터 가득 차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알게 된 것을 혼자만 간직하려는 충동은 수치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인 일이기도 하다 아낌없이 공짜로 푹푹 나눠주지 않으면 결국 본인에게도 손해이다."  (p.129)


'작가'가 되겠노라 호언장담하는 이를 나는 존경한다. 그들의 용기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일개 무명의 독자로서 고통 속에서 대작이 나온다는 것을 역사적 기록으로부터 배워왔기 때문이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고통의 경험을 독자들에게 가감 없이 생생하게 전달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작가'를 꿈꾸는 당신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구비한 셈이다. 나는 기꺼이 당신의 독자가 될 것임을 약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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