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전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던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지지율 20%를 밑도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도 있었다. 겨울 모드로 변한 날씨의 변화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이와 같은 굵직굵직한 뉴스 때문인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들떴던 문학계의 열기는 다소 누그러진 분위기였다. 이런 어수선함 속에서 2024년 한 해도 저물고 있다.
군에 입대한 아들이 휴가를 나왔었고, 남자들에게 첫 휴가가 늘 그렇듯 집에서 잔 날보다 친구 혹은 선배의 자취방에서 자고 들어오겠다는 연락을 몇 번인가 받았고, 취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서둘러 제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명태에 붙은 균의 소식이 서결이와 거니의 소식보다 더 빠르게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다들 말을 잊은 채 혀만 끌끌 찼고, 한 나라가 이렇게도 망할 수 있구나, 하는 탄식이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왔다.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니라는 건 세 살배기 어린애도 알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바닷가의 루시>를 읽고 있다. 나는 이미 작가의 소설 몇 권을 읽어보았는데, 그녀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다른 세상에 떨어진 느낌이 들곤 했다. 내가 속한 현실과 유리되어 작가가 꾸며 놓은 조용한 세상에 뚝 떨어진 듯한 느낌은 책의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들었던 것이다. 7살 소녀 앨리스가 토끼굴을 타고 떨어져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는 것처럼. 독자들이 스트라우트 소설에 매료되는 까닭은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속한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한 발 물러설 수 있다는 점.
"좋은 날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훌륭한 생활은 하기 힘들다. 감각으로만 경험한 좋은 날들로 이루어진 삶은 충분하지 않다. 감각의 삶은 탐욕의 삶이다. 감각의 삶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반면에 영혼의 삶은 더 적은 것을 요구한다. 시간은 풍요롭고 그 흐름은 달콤하다. 책을 읽으면서 보내는 하루를 좋은 날이라고 부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보내는 삶은 훌륭한 삶이다. 십 년, 이십 년 동안 과거의 다른 날과 거의 똑같은 날은 결코 좋은 날이 아니다." (애니 딜러드의 '작가살이' 중에서)
주중에 잠시 쌀쌀했던 날이 있었지만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동화처럼 이어지고 있다. 다음 주에는 수능일이 있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잔잔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