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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안녕
황경신 지음, 김원 사진 / 지식의숲(넥서스)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편력이 심한 편은 아니지만 어떤 작가에 대한 호불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껏 내가 읽었던 책의 권수도 그리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 작가의 수도 제한되는 까닭에 굳이 호불호를 나눌 필요도, 그럴 만한 이유도 찾지 못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기본 자료의 부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일 뿐 나의 취향이나 선호가 전무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 그렇지만 형편없는 나의 독서 이력과 미미한 자료에 근거해서, 말하자면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거해서 글을 잘 쓴다고 인정되는 작가가 몇몇 존재하기는 한다. 멀게는 박경리 작가나 박완서 작가에서부터 조금 가깝게는 김소연 작가나 황경신 작가를 들 수 있겠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김훈 작가를 거의 일 순위로 꼽았지만, <허송세월>을 읽고 크게 실망했던 바, 더이상 김훈 작가를 거론하지는 않기로 했다. 물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내가 감히 언급할 수조차 없는, 나의 평가 수준을 벗어난, 저세상 클래스의 작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황경신 작가와의 인연은 그녀의 에세이 <생각이 나서>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이 나서>를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그녀는 '타고난 글쟁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생각이 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 자신만의 문체로 완성한, 황경신 체의 에세이인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탁월하고 독특한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 자주 있을 수는 없는 법, 작가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천명관 체로 완성한 <고래>가 그렇고, 오쿠다 히데오 체로 완성한 <공중그네>가 그렇고, 김훈 체로 완성한 <자전거 여행>이 그랬다. 과거에 자신이 쓴 작품 수준을 능가하는 새로운 작품을 세상에 다시 내놓을 수 없는 작가의 심정은 오죽 답답할까마는 이를 대하는 독자의 태도 또한 혹한기의 그것처럼 냉담하구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누군가의 영혼을 영원히 사랑하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유한의 존재인 나는, 무한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수용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영원이란, 우리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언젠가의 시간 속에서만 영원히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것, 그것만이 영원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p.123 '슬프지만 안녕' 중에서)
<슬프지만 안녕>은 17편의 짧은 소설을 모아서 엮은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슬프지만 안녕'을 비롯하여 '녹턴', '꽃 피우는 아이', '한밤의 티파티',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1990년대 풍의 고전적인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책을 메우고 있다. 작가의 실제 체험과 허구가 교묘하게 섞여 있다고는 하지만, 체험담이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더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작가의 글재주가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황경신 작가를 아끼는 열혈 독자인 나의 입장에서 판단해보자면 소설은 왠지 어색하기만 한 게 사실이다. 작가에게는 여전히 에세이스트로서의 자유분방함이나 사색의 순수함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여전히 유교적 토양에서 자란, 관습화한 고정 관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 에르노와 같은 사실적 묘사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는 듯하다.
"남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희미한 얼룩 같은 눈들이 공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돌아갈 생각이 없는 듯, 혹은 어딘가 먼 곳을 향해 가듯, 남자는 여기저기 발자국을 남기며 나무 사이를 걷고 있다. 물이 오르지 않은 나무들, 아직 겨울 속에 있는 듯한 나무들이다. 그러나 나무 속에는, 땅속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바쁜 마음으로 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p.255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중에서)
작가에게는 특화된 한 분야의 재주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하나의 재주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 시대를 사는 동시대인의 마음을 관통하는 시대정신과 일치해야 한다. 말하자면 작가의 재주를 인정하고 높이 살 만한 동시대의 독자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나이에 상관없이 그가 쓰는 글은 언제나 탄력이 있고 힘이 넘쳐야 한다.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네, 하고 고백하는 순간 작가로서의 수명은 이미 끝난 것이다. 내가 김훈 작가의 글을 더이상 읽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의연함과 초연함이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있어야 한다. 글에서 풍기는 원숙함이나 노련함은 작가의 나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작가가 기울인 노력의 산물일 뿐이다. 우리는 종종 작가의 노쇠함을 원숙함으로 포장하곤 한다. <슬프지만 안녕>은 황경신 작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통속적이고 구태의연한 느낌이 드는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