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점심 약속이 있어서 인근 유원지에 외출을 했었다. 날씨는 쾌청했고, 사람들은 많았다. 화요일까지 길게 이어지는 연휴. 나들이를 나온 연인들과 가족 단위 행락객의 얼굴 표정은 여유가 넘쳐나는 듯했다. 과분한 햇살에 다소 더위를 느낄 수도 있었지만 호수 저편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휴일 오후의 느긋함과 낭만을 한껏 부풀게 했다. 청국장에 해물파전을 곁들여 푸진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캔 음료를 하나씩 들고 호수 옆 벤치에 앉았다. 자리를 옮겨가며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다른 듯 닮아 있었다.
나른한 햇살을 밟으며 30여 분 걸었다. '귀차니즘'이 어깨를 짓누르는 걸 억지로 참았다. 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의 주제는 80%가 건강이다. 그러나 사실 일상에서 '귀차니즘'과 멀어질 수만 있다면 건강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런데 말이 쉽지 '귀차니즘'과 거리를 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귀차니즘'에 넘어갔을 때 우리가 느끼는 안온함과 푸근함은 다른 어떤 유혹보다 강하다. 결국 우리는 중독성 강한 '귀차니즘'에 GG를 선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귀찮지만 지금 청소를 하자'라거나 '귀찮지만 지금 설거지를 하자'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귀차니즘'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건강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틀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점심을 함께 했던 일행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은 절대 안 된다며 동의를 구하는 듯 다른 이의 표정을 살폈다. 가급적 정치 얘기를 삼가는 식사 모임의 기본 금도를 깬 그 사람의 직업은 변호사. 그는 자신의 주장에 합리적 논거를 덧붙이기 위해 듣기 싫은 말을 한참이나 중언부언 이어나갔다. "각자 알아서 하면 될 일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설득할 일은 아니잖아요?" 하고 누군가 한 사람이 타박을 주자 그제야 본인도 머쓱한 듯 말을 그쳤다.
대선 국면에서 그 실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소위 엘리트 기득권층이 갖는 욕심과 기득권 유지를 위한 노력은 정말 집요하다. 그들 개인의 욕심 앞에서 국가 공동체의 발전은 눈곱만큼도 작동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들 개인의 욕심을 나라의 안녕이나 발전으로 잘 포장해 온 게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윤석열의 내란으로 인해 그와 같은 거짓 포장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불행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윤석열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거짓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윤석열의 승리가 필요할 뿐이다. 그래야 그 모든 행위가 다 국가를 위한 작은 희생이었다고 선전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떤 순간에도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국가도, 국민 전체의 행복도 모두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기득권층의 행복은 국가 이익에 우선한다. 그것이 그들의 행동 양식일 뿐이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자신들만 행복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