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풍경은 꽤나 을씨년스럽습니다. 바람이 몰아치고 이따금 빗방울이 흩날립니다. 부쩍 낮아진 기온 탓에 사람도, 식물도 한껏 움츠러든 모습입니다. 봄 날씨는 으레 변덕스러운 것이지만 만개했던 벚꽃이 지고 4월도 중순인데 이런 살풍경한 날씨는 좀체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바람 탓인지 우산도 쓰지 않은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치며 거리를 지나갑니다.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가 내려진 후 조바심을 치던 사람들은 다들 안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가슴을 졸이지 않고 일상을 다시 살아갈 수 있겠구나, 마음을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자가 관저에서 머무르며 지인이나 가까운 여당의 정치인들을 불러 면담을 하는 등 우리가 낸 아까운 세금을 축내고 말았습니다. 재임 기간으로도 모자라 파면 후에도 자신의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한 까닭입니다. 국민이 낸 세금이 마치 자신의 쌈짓돈인 양 펑펑 써대면서도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윤석열의 절친이었던 이완규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으로 지명한 한덕수의 행태는 국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짓이었습니다. 내란은 여전히 종식되지 않은 채 내란에 가담했거나 동조했던 자들의 비호 속에서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말의 퇴근 시간을 골라 관저를 빠져나왔던 내란 수괴 윤석열의 퍼포먼스는 가히 가관이었습니다. 얼빠진 어린 학생들을 도로변에 도열시키고 자신이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그들과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는 모습, 아크로비스타 사저에 도착한 후에도 주민들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꼴을 보면서 '도대체 저 인간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가? 인간으로서 갖는 생각이라는 것을 저 인간도 하기는 하는 걸까? 하도 술을 많이 먹어서 이제는 생각마저 할 수 없는 인간으로 전락한 것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파면 선고 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야당과 여당의 정치인들은 이제 본격적인 대선 체제로 들어섰습니다. 진즉부터 궂은 날씨가 예보된 까닭에 나는 가급적 외출을 자제한 채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대건의 장편소설 <급류>를 읽고 있는데 생각처럼 빠르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정치에 한눈을 파느라 책을 멀리했던 시간이 독서 습관마저 형편없이 망쳐놓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구름이 질러 가는 하늘에선 이따금 빗방울이 흩날리고, 바람은 여전히 싱싱 소리를 내며 거칠게 스쳐갑니다. 학교 운동장에선 어린 학생들이 몇 시간째 공을 차고 있습니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