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
조한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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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중동의 봄'으로 평가되는 反월가 시위가 한달 이상 지속되고 있다.
9월 17일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는 대서양을 넘어 영국 런던 등 유럽을 지나 마침내 전 세계적으로 폭발했다.  10월 15일에는 최근 재정 위기로 신용등급 하락을 겪은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무려 10만명이 모였고, 일본 도쿄, 브라질,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전 세계 1500여 도시서 금융탐욕에 분노하는 시위가 이어졌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반월가시위가 열렸다.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여의도를 점령하라-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라는 이름으로 국제 연대 집회가 열렸고, 오후 6시에는 이와 별도로 ‘99% 공동행동준비회의’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서울을 점거하라 국제 공동 행동의 날’ 집회가 열렸었다.

들불처럼 번지는 이번 시위가 과연 언제쯤, 어떤 모습으로 끝나게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쉽게 사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이번 시위의 이면에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한 레이거노믹스가 그 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을 반대하고 시장의 자유로운 흐름을 중요시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탐욕을 극대화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치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개개인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에 내동댕이쳐진 것과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되었다.  AP통신이 미 의회예산국이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만 보아도 미국의 상위 1% 부자들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이 지난 30년간 갑절로 늘었다고 한다.  혹자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부자들만이 아니며 사회 구성원 모두에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에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무자비한 탐욕은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억제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책은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2010년 11월부터 『한겨레신문』에 ‘조한욱과 서양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칼럼들에 살을 붙여 펴낸 것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서양 역사 속의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여러 사건을 반추하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총 7장이며 제1장 탐욕, 제2장 위선과 기만, 제3장 강압, 제4장 차별, 제5장 배신, 제6장 몽매, 제7장 분노가 각 장의 소제목이다.

개인이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품게 되는 소망, 열정, 소명의식 등의 가치가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고난을 꿋꿋이 참아내게 하듯이,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은 소용돌이 속에서도 바다를 향한 그리움을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일 개인을 좌절하게 하는 것은 그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멍들게 하고 사회 전체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의 사건으로 촉발된 집단지성의 발현은 인류의 역사를 다시 흐르게 하지 않던가.  그런 확고한 신념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인류를 구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물꼬를 틀 것이라 믿는다.  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결국 진보를 향한 인류의 발걸음이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탐욕에 찬 쥐는 결국 덫에 걸려 죽지 않던가!

"우리가 말뿐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실제로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살려는 것을 꿈꾼다면, 우리의 세계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겐 그렇게 만들 능력이 있다.  바로 그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상식을 갖춘 사람들에게 우리의 세계를 위탁할  표를 우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투표소로 나가야 하고, 엄정하게 참정권을 행사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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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에서 사랑하다
쓰지 히토나리 외 지음, 양억관 외 옮김 / 동방미디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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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휴게소나 기타의 공공장소에서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체험은 낙서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원시인에 의해 그려진 동굴벽화도 낙서의 일종이고 화장실 뿐만 아니라 유명 관광지의 곳곳에도 낙서의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화장실의 낙서는 유독 눈길을 끈다.  통계에 의하면 여자들의 경우 감정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룬 반면, 남자들은 성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가령 여자화장실의 경우,
A: 여자친구 있는 남자를 뺏어서 사귀고 있어요. 저 나쁜 사람인가요? 그렇지만, 정말 너무 사랑한걸요…
B: 응, 너 나쁜 애야.
이와 같은 화장실 낙서로만 인간의 본성을 파악한다면 '성욕'과 '분노'라 말할 수도 있겠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어쩌면 이것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화장실은 가정집이 되었든, 공중화장실이 되었든 개인의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동시에 가장 솔직한 자아를 만나는 은밀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익명성'과 '해방성'을 만끽할 수 있는 제한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까닭에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화장실 낙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내밀한 공간에서의 낙서이다 보니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세계 각국의 낙서는 유사한 공통점을 보인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발표한 화장실 낙서에 관한 논문에 따르면 여성의 경우 가장 많은 화장실 낙서는 섹스,피임,임신중절,여성권리가 주를 이루는 반면 남성의 경우는 55%가 정치문제이며 파괴적이고 증오에 가득 찬 낙서들이었다고 한다.

이 책의 내용과는 하등 관련도 없는 화장실 낙서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펼쳐놓는 이유는 이 책에서 다루는 '연애'는 그 표출하는 방식만 다를 뿐, 개인의 내밀한 욕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화장실 낙서와 연애는 그 밑바탕에 깔린 기저심리가 유사하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 책은 <냉정과 열정 사이>의 저자인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연애 담론이다.  동일한 주제에 대해 츠지 히토나리가 운을 떼면 에쿠니 가오리가 자신의 의견을 더하고 새로운 주장을 내세우기도 하는 보기 드문 형식의 산문집이다.  글의 처음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절대적인 형태가 존재할 수 없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남의 집 정원을 엿보는 듯한 가벼운 기분으로 읽어줄 것을 저자는 주문하고 있다.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여 다시 복학을 하였을 때 가깝게 지내던 초등학교 여자 친구가 결혼을 했었다.  서로가 이성적으로 가까웠던 관계는 아니고 심심할 때면 부담없이 전화하고 차 한 잔을 나누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그런 동성과 같은 친구였다.  그 친구가 결혼하고 몇 개월이 흘렀을 무렵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신혼의 단꿈에 흠뻑 취해있을 시기인데 만나자는 전갈은 의외였다.  어찌어찌 약속을 잡고 어느 커피숍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던 듯하다.

그녀가 내게 들려준 이야긴즉슨, 자신의 남편이 얼마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는지라 다른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남는 시간에 운전면허나 따라고 학원에 등록을 시켰었단다.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고 다음날부터 남편은 교통비와 약간의 용돈을 받아 매일 학원으로 출근했고, 그렇게 하기를 여러 날이 지났을 무렵 남편의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단다.  그녀가 주는 용돈으로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보낼 수 있는 넉넉한 금액이 아니었기에 그 궁금증은 더해갔다고 했다.  가뜩이나 신혼이 아니었던가!  남편이 그 학원에 다니는 여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당시 결혼도 하지 않았던 내게 어찌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감정적 끌림'과 '사랑'은 분명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길을 가다가 멋진 이성을 만났을 때 자기도 모르게 눈길이 머물렀던 경험, 결혼식 이후의 피로연 자리에서 만났던 이성과의 짧은 만남 등등을 모두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너도 그런 경험이 한번쯤은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다만 지속되는 시간이 상당 기간 지속된다면 그때는 사랑으로 깊어질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설령 가벼운 만남이 사랑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막을 방법은 딱히 없지 않겠냐며 섯부른 판단으로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연애시절 친구의 결혼식 뒷풀이에서 만났던 한 남자로 인해 1주일여를 가슴앓이 했던 경험을 내게 들려주며 남편을 믿고 조금 더 기다려 보겠노라고 하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사랑을 하고 불꽃같은 연애를 경험하게 된다.  사람을 잘 믿지 않아 소설가가 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츠지 히토나리와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기도 한 에쿠니 가오리의 솔직 담백한 연애 담론은 도덕적 정당성을 다루는 정통 사랑학이 아닌 누구나 겪는 현재 진행형의 연애를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건설적이지 않은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죠.  연애는 개념의 파괴니까.  인생을 건설적으로 뒷받침하는 사랑과는 다른 것이죠.  그 점이 재미있지 않나요.  연애에 빠지면 옷깃을 여미고 끝까지 빠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랑을 지나 죽고 싶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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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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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지난 시절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마치 그게 사실인 양 믿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예인의 경우가 그렇고, 정치인도 그렇고...  물론 작가라고 예외일 리가 없다.  그런 상상이 오래도록 지속되면 자신은 그게 사실이라고 굳게 믿곤 한다.  이러한 주관적 추리, 또는 허무맹랑한 상상은 막을 방법도 없고, 당사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어느 날 자신의 생각과는 완전 딴판인 사실과 직면할 때 그 당혹스러움이란...  

은희경 작가가 그런 경우이다.
소설로 데뷔하여 줄곧 소설만 써왔던 작가의 이름이 독자들 뇌리에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도 족히 15년 이상은 되었음직한데 그녀의 사생활이 공개된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언젠가 어떤 수필집에서 읽었던 <아버지의 추억>과 동네 병원의 대기실에 비치된 잡지에서 우연히 읽었던 인터뷰 기사가 전부였으니 작가의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은 수많은 독자의 상상으로 변질되었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할 것인가 아니면 철저히 숨길 것인가 하는 문제는 건물 3층의 높이만큼이나 애매한 것인지도 모른다.  1층으로 내려가고자 할 때 1층에 멈춰져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것인가 하는 고민처럼 말이다.

  은희경의 소설에 대한 평론 중 2002년 작고한 문학평론가 이성욱의 글은 인간 은희경이 아닌 소설가 은희경의 평으로 적당하다.  2001년 발표한 장편 『마이너리그』에 붙은 해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날씬한 여검객을 연상시키는 은희경의 냉소적인 시선은 얼핏 농담이나 유연한 풋워크처럼 보이지만 시종 급소를 찍어 누른다. 급소는 인물들의 허위의식, 자기합리화, 통념, 편안함에의 들척지근한 욕망 같은 것들이다. 그의 검은 찌르되 깊게 찌르지는 않는다. 핏방울이 돋아나는 정도. 여기저기 돋아난 핏방울이 만드는 문양은 허위의식의 지도 같은 것이다. 지도의 독법을 익힐 때쯤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바로 우리의 허위의식의 지도이기에.’

소설가 은희경은 빈틈이 없고, 다소 냉소적이며 시니컬하다.  그런 모습으로만 본다면 그녀는 사회에 대한 저항처럼 이혼을 한두 번쯤 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제물로 바칠 수도 있겠다는 결심을 굳힌 여전사의 모습이어야 옳았다.  언제든 전투모드로 전환할 수 있도록 날카로운 손톱을 숨긴 채 말이다.  그러나 두 아이의 어머니로, "시사저널"의 기자인 남편과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사실을 접한 독자들은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상상이 무참히 짓밟힌 듯한 허무감.

이 책은 <소년을 위로해줘>를 연재하면서 짧게짧게 남긴 메모나 트윗 글을 엮어서 만든 책이다.  인터넷 연재하며 팬들과 댓글 놀이 하며 나눴던 얘기, 뒤늦게 트위터의 매력에 홀딱 빠져 거기서 주고받았던 길지 않은 말들, 장편을 탈고한 뒤 나른한 몸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적은 글 등 대부분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시작해 경기 일산의 작업실, 강원 원주 토지문학관, 미국 시애틀을 전전하며 쓴 것들이라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은희경이 영혼을 자유롭게 놀렸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긴 시간 창작의 산고에 시달리는 소설가의 마음을 슬쩍 엿볼 수 있는 경험 또한 재미난 덤이다.

"오래전 썼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화려한 비탄이라도 남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남루한 일상을 남길 뿐이라고.  나,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여전히 간절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여전히 새들은 노래하고 빛난다는 걸 안다.  <The End of the World>란 그런 것."  (P.289)

문득 '사랑'이 간절해질 때면, 우리는 지나온 세월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맘 먹곤 한다.
소설가는 소설을 씀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듯, 독자는 작가가 남긴 작품으로 행복을 맛본다.  작가와 독자의 간극이 너무나 멀어 설혹 닿을 수 없는 거리라 하더라도 작품을 잉태하는 산고의 고통까지 독자가 공감할 필요가 있을까?  작가는 조금은 신비로운 채, 독자는 작가의 사생활을 오직 자신의 상상의 세계에만 가둬두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은희경의 작품은 그런 면에서 실패작이다.  소설가는 소설가로 남았을 때 가장 찬란하다.  비록 그것이 내가 꾸며낸 상상이라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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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5 16: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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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8 1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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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남자들 - 이 시대 대한민국 남자들의 자화상
서재순 외 지음 / 아침나라(둥지)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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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린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올해는 여름 내내 비를 맞았건만 가을비의 느낌은 새롭다.
조금은 쓸쓸하고 때로는 감상에 젖게 한다.  한동안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이 지속되었는데 오늘 내리는 비는 그동안 들떠있던 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루가 다르게 계절은 점점 가을빛으로 물들어 간다.

회사에서 짬짬이 책을 읽었다.
책장을 넘기는 표정이 자못 비장했던지 직장 후배가 묻는다.
"뭔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으세요?  재밌는 책이면 제게도 좀 권해주세요."
하기에 읽던 책을 덮어 표지를 보여주었다.  표지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큼지막한 제목. <울고 싶은 남자들>.  제목을 읽은 후배의 표정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요즘 고민 있으세요?  책 제목이 심상치 않은데요."
"고민?  고민 많지.  세계 평화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그리고..."
"왜 그러세요.  그런 거 말구요."

KBS에서 방송작가로 근무하는 세 명의 여성 작가가 쓴 이 책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중년의 우울한 자화상을 여과없이 담백하게 보여주자는 의도로 출발했다고 한다.  이 기획의 출발은 "동아일보"에 연재된 시리즈 '울고 싶은 남자들-가정의 외딴 섬,가장'에서 비롯되었고, 예상과는 달리 젊은 세대가 더 많이 공감했단다.  방송국에 접수된 사연과 취재를 통하여 모은 다양한 일화들이 짤막짤막하게 소개되고 있는 이 책은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중장년의 가장들이 겪는 아픔과 소외를 다루고 있다.

후배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책의 한 부분을 펼쳐 정신없이 읽고 있었다.
"남 얘기 같지 않네요."
"그러니까 가족들한테 잘 해.  더 늦기 전에.  자신을 돈 버는 기계처럼 다루면 안 돼.  가끔씩 주변도 둘러보면서 세월을 느껴야 해."
"저야 잘하고 싶죠.  그런데 어디 여유가 있어야죠.  시간도 그렇고."
"젊어서는 가족들이 내게 바라는 것은 오직 돈이라고 생각하고 죽을 둥 살 둥 모른 채 돈,돈,돈 하며 살지.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런데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가족들과 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 돼.  그때는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고."

남자들이 겪는 소외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 시대의 가장은 가족 구성원에게 오직 돈만 충족시켰기 때문에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을 때 그 효용은 이미 다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항변하고 싶은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을 그 지경까지 몰고간 것이 전적으로 본인들의 탓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가치관과 그 가치관에 편승한 가족들 모두의 공동책임은 아니었을까?  경제적 효용이 다한 중장년의 남성들이 겪는 인간소외나 고독은 사회보장제도가 부족한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는 피할 수 없는 질병일지도 모른다.

"아내한테 이 책을 선물로 사다줘 볼까요?"
후배의 순진한 웃음에 나도 그만 웃고 말았다.
"돈,돈 하는 아내의 잔소리에 귀를 막고 자네는 오직 사랑, 사랑만 외치고 살아.  그러면 이 책 속의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늙지는 않을 거야.  그게 제일 어렵지만 말이야."

가을비는 하염없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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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오후 2시 - 낯선 곳에서 시작한 두 번째 삶 이야기
김미경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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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들을 만나 인생상담 겸 연애상담을 할 때가 가끔 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카사노바와 같은 청춘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할 수도 있겠다.  게디기 한발 더 나간다면 장동건 뺨치는 빼어난 외모에 모든 여자들을 뿅가게 하는 뛰어난 언변을 갖춘, 거기에 돈도 넘치도록 풍족하여 말 한마디 걸지 않았는데도도 여자들이 줄줄 따라 붙는, 시쳇말로 엄친아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은 정 반대였다.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본 내가 연애상담이라니...
그러나 어느 곳에서든 예외는 있는 법.  장기도 직접 두는 사람보다는 옆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이 정세를 더 잘보지 않던가.  지금도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어디서 뵌 분 같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그만큼 나는 남의 시선에 띄지 않는 평범한 외모를 지녔음이리라.  그래서인지 내 주위에는 의외로 여자들이 많았다.  아무도 눈독을 들이지 않는 외모이니 여자들 입장에서 나와 만난다고 추문이 날 것도 아니요, 성격도 소심한지라 죽네 사네 하면서 달려들 것도 아니니 이성 문제로 고민하는 뭇여성들에게 있어 나보다 더 적합한 상담자를 찾기는 어려웠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유머가 풍부한 남성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무엇보다 만남은 즐거워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의 진면목을 숨긴 채 만날 수밖에 없는 연애 초반의 탐색전에서는 그 어색한 시간을 채워줄 유머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연애기간이 길어질수록 유머가 때로는 남녀 사이에 벽을 만든다는 걸 남자들은 알지 못한다.  만나면 늘 깔깔대고 웃는 연인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비칠지언정 당사자들에게는 독과 같다.  유머는 더할 수 없이 가까운 관계를 지속하게 하면서도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든다.  남녀 사이의 진전은 8할의 유머에 더하여 2할의 진지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결국은 파국으로 끝나는 것이 남녀 사이다.

행복과 슬픔이 교차하지 않는 삶은 지루하고 밋밋하듯이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부부를 만나면 나는 그들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곤 한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애정이 없거나 공통의 관심사를 갖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서로의 속내를 시시콜콜 밝히는 관계에서 어찌 갈등이 없을 수 있겠는가.  성인군자끼리의 결합도 아닌데 말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 책은 <인터넷 한겨레> 뉴스부장을 지낸 뒤 <허스토리> 편집장을 지냈던 작가가 2005년 뉴욕으로 옮겨 한국 문화원에서 근무하며 자신의 딸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를 가볍고 경쾌한 필체로 그린 산문집이다.  2007년 친구들과 함께 만든 웹 매거진 <선주스쿨>에 '브루클린 이야기'로 연재하던 것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혼녀로 사는 자신과 딸의 이야기이다.  미국 문화에 동화된 딸과 자신의 이력과는 상관없이 제2의 인생을 사는 저자의 이야기는 슬픔이나 고뇌의 그림자라곤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단 한줄도 보이지 않는다.

19금을 넘나들듯한 아슬아슬한 표현과 과하다 싶을 정도의 유쾌, 통쾌한 이야기들은 동양적 사고에 반평생이 절어 흐물흐물 생기를 잃은 나의 뇌세포에 짜르르한 전기를 보내는 듯하다.  그래도 뭔가 허전한 것은 진지함이 묻어나는 감동의 글이 없다는 것이다.  기자로서, 더구나 '석사 아내와 고졸 남편'으로 유명했던 저자가 자신을 지켜주던 그런 꼬리표를 모두 떼고 지금처럼 한없이 가볍게 살아가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세월이 흘렀으리라.

책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한 귀절을 옮긴다.  저자와  그녀의 딸 마린의 대화다.
"엄마, 엄마는 언제 섹스했어?"
"음...... 대학교 1학년 때 첫 애인이랑."
"어휴, 그러면 스무 살 될 때까지 섹스 한 번도 안 했단 말이야?"
"그때는 다들 그랬어.  엄마는 그래도 빨리 한 셈일걸?"  
"그래? 왜 다들 그렇게 살았대?"
"글쎄, 섹스 너무 빨리 하면 그거 생각하느라 공부도 못하고 그럴까봐 그랬겠지."
"나는 스무 살 때까지 참을 수 없어."
"하고 싶어서 못 살겠다 싶으면 해야지 뭐......"
  <"키스하고 섹스하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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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lat 2011-09-24 14:01   좋아요 0 | URL
유머가 벽을 만들 수도 있다니....
ㅎㅎ그런데 그럴 듯도 합니다.
오랜 연애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깊이 공감은 못하겠지만요. ㅎㅎ

평생 안 싸우다가 요즘 몰아서 싸우고 있는 울부부는 그나마 다행인 걸까요?
힘들어요~~ㅠㅠ

꼼쥐 2011-09-25 20:13   좋아요 0 | URL
저는 직장 내에서도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에게는 주야장천 농담만 한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가까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벽이 생기죠. 가끔 싸우고 또 화해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