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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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지난 시절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마치 그게 사실인 양 믿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예인의 경우가 그렇고, 정치인도 그렇고...  물론 작가라고 예외일 리가 없다.  그런 상상이 오래도록 지속되면 자신은 그게 사실이라고 굳게 믿곤 한다.  이러한 주관적 추리, 또는 허무맹랑한 상상은 막을 방법도 없고, 당사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어느 날 자신의 생각과는 완전 딴판인 사실과 직면할 때 그 당혹스러움이란...  

은희경 작가가 그런 경우이다.
소설로 데뷔하여 줄곧 소설만 써왔던 작가의 이름이 독자들 뇌리에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도 족히 15년 이상은 되었음직한데 그녀의 사생활이 공개된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언젠가 어떤 수필집에서 읽었던 <아버지의 추억>과 동네 병원의 대기실에 비치된 잡지에서 우연히 읽었던 인터뷰 기사가 전부였으니 작가의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은 수많은 독자의 상상으로 변질되었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할 것인가 아니면 철저히 숨길 것인가 하는 문제는 건물 3층의 높이만큼이나 애매한 것인지도 모른다.  1층으로 내려가고자 할 때 1층에 멈춰져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것인가 하는 고민처럼 말이다.

  은희경의 소설에 대한 평론 중 2002년 작고한 문학평론가 이성욱의 글은 인간 은희경이 아닌 소설가 은희경의 평으로 적당하다.  2001년 발표한 장편 『마이너리그』에 붙은 해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날씬한 여검객을 연상시키는 은희경의 냉소적인 시선은 얼핏 농담이나 유연한 풋워크처럼 보이지만 시종 급소를 찍어 누른다. 급소는 인물들의 허위의식, 자기합리화, 통념, 편안함에의 들척지근한 욕망 같은 것들이다. 그의 검은 찌르되 깊게 찌르지는 않는다. 핏방울이 돋아나는 정도. 여기저기 돋아난 핏방울이 만드는 문양은 허위의식의 지도 같은 것이다. 지도의 독법을 익힐 때쯤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바로 우리의 허위의식의 지도이기에.’

소설가 은희경은 빈틈이 없고, 다소 냉소적이며 시니컬하다.  그런 모습으로만 본다면 그녀는 사회에 대한 저항처럼 이혼을 한두 번쯤 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제물로 바칠 수도 있겠다는 결심을 굳힌 여전사의 모습이어야 옳았다.  언제든 전투모드로 전환할 수 있도록 날카로운 손톱을 숨긴 채 말이다.  그러나 두 아이의 어머니로, "시사저널"의 기자인 남편과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사실을 접한 독자들은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상상이 무참히 짓밟힌 듯한 허무감.

이 책은 <소년을 위로해줘>를 연재하면서 짧게짧게 남긴 메모나 트윗 글을 엮어서 만든 책이다.  인터넷 연재하며 팬들과 댓글 놀이 하며 나눴던 얘기, 뒤늦게 트위터의 매력에 홀딱 빠져 거기서 주고받았던 길지 않은 말들, 장편을 탈고한 뒤 나른한 몸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적은 글 등 대부분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시작해 경기 일산의 작업실, 강원 원주 토지문학관, 미국 시애틀을 전전하며 쓴 것들이라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은희경이 영혼을 자유롭게 놀렸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긴 시간 창작의 산고에 시달리는 소설가의 마음을 슬쩍 엿볼 수 있는 경험 또한 재미난 덤이다.

"오래전 썼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화려한 비탄이라도 남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남루한 일상을 남길 뿐이라고.  나,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여전히 간절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여전히 새들은 노래하고 빛난다는 걸 안다.  <The End of the World>란 그런 것."  (P.289)

문득 '사랑'이 간절해질 때면, 우리는 지나온 세월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맘 먹곤 한다.
소설가는 소설을 씀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듯, 독자는 작가가 남긴 작품으로 행복을 맛본다.  작가와 독자의 간극이 너무나 멀어 설혹 닿을 수 없는 거리라 하더라도 작품을 잉태하는 산고의 고통까지 독자가 공감할 필요가 있을까?  작가는 조금은 신비로운 채, 독자는 작가의 사생활을 오직 자신의 상상의 세계에만 가둬두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은희경의 작품은 그런 면에서 실패작이다.  소설가는 소설가로 남았을 때 가장 찬란하다.  비록 그것이 내가 꾸며낸 상상이라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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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5 16: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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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8 1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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