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새로 지어진 건물의 입구에는 대형 회전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찌나 신기했던지 아이들은 그 육중한 회전문을 밀고 몇 번씩이나 들락거리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간편하고 편리한 자동문이 대세라면 대세다.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볼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가 지인이 근무하는 건물로 들어서려는 순간,

한 여학생이 자동문 안쪽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자동문 근처에 이르자

"우~~씨!" 하는 표정으로 입술을 둥글게 말아

길게 빼고는 오른손을 어깨 높이로 드는 코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 순간 자동문도 스르르 열리는 게 아닌가!

 

그 여학생은 문이 열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문을 통과하여 가던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어찌나 우습던지 여학생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한참을 웃었다.

 

여학생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

건물을 나오는 사람들이 자동문 앞에서 어찌 하는지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대개 표정이 없는 얼굴로 잠시 멈칫하거나

초조한 얼굴로 위를 쳐다보거나

조금이라도 빨리 지나치려고 한 발을 들어 문 가까이 아슬아슬하게 들고 있거나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행동은 아무 표정도 없이

자동문 앞에 멈칫 서는 행동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절로 짜증이 나는 요즘

자동문 앞에서 그 여학생이 보여주었던 생활 개그는 나를 즐겁게 했다.

 

여러분도 자동문 앞에서 한 번 해보시죠.

"우~~~씨!"

입을 둥글게 말아 길게 뽑고 오른손은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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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자기 소개서'를 쓸 일이 정말 많아졌다.

주최측의 입장에서 보면(그것이 기업이든, 학교든, 공공기관이든, 아니면 여타의 다른 곳이든) 어떻게 하면 지원자를 만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덜 할까 하는 심산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지원자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딱히 내보일 만한 특기나 장점도 없는데 말이다.  어느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내가 나를 알겠느냐'하는 불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요즘 내가 예전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던 학생들로부터 '자기 소개서'를 쓰는 데 도와주십사 하는 청을 자주 받곤 한다.  입시철이 가까워 온 까닭이다.  그런데 그 양식을 보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나 사설학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이야 익히 아는 사실이겠지만 올해부터는 그 지원 양식이 통일되어서 까다롭기 그지없다.  우선 1000자 이내의 성장과정과, 나눔, 배려,리더십,협력,갈등관리를 주제로 1000자 이내, 지원 동기, 진로 노력을 주제로 1500자 이내, 대학 입학 후 학업 계획과 향후 진로 계획에 대하여 1000자 이내로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도합 4500자의 글을 써야 하는 셈이다.(학교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가히 논문 수준 아니가!  가뜩이나 글쓰기에 취약한 학생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지 않을까?  

 

대개의 지원자들은 성장과정에서 롤 모델이나 감명깊었던 책을 언급하게 마련이다.  어떤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했던 어느 누구(가령 간디나 슈바이처, 고흐, 베토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를 언급하는가 하면 자신의 부모님 중 한 분(다른 모든 위인들은 자신의 부모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듯도 하고, 그만큼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표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다 같은 인간이 아닌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벽한 지성체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우리가 그들의 약점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사실 누군가의 단점을 보고 배우는 경우가 많다.  커다랗게 부각되는 장점은 너무 높아 보여서 넘을 수 없는 산쯤으로 여기게 된다.

 

지원동기에서도 그렇다.  엄밀히 따지자면 대부분의 학생들은(또는 지원자들은) 자신의 성적에 맞춰서, 어쩔 수 없이 지원했을 것이다.(물론 그렇지 않은 일부분의 학생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사실 그대로, 단 한 줄의 말로 지원동기를 썼다가는 세균이 득실거리는 쓰레기통 속으로 자신이 제출한 서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기에 도리질을 치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앉아 없는 얘기를 지어내려고 머리를 싸맬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글을 대필할 정도로 글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니요, 많은 학생들의 경험을 두루 겪어본 것도 아니기에 대부분의 요청을 거절하곤 한다.  그것만큼 곤혹스러운 일도 드물다.  내가 마치 찔러서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무정한 사람처럼 비춰지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세상 사는 일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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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 '딴짓'을 하고 있나요 아니면 '딴일'을 하고 있나요?

 

언제부턴가 저는 '딴짓'과 '띤일'을 구분하여 사용합니다.

같은 의미라구요?  그럴 리가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이들이 '딴짓'을 하면 천재가 되지만,

'딴일'을 많이 하면 바보가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이런 것이죠.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는 연인이 멀리서도 서로를 그리워 하고 있다면

그들은 여전히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몸이 멀어진 것과 함께 마음도 멀어졌다면

그들은 이미 사랑과도 멀어진 것이겠지요.

 

눈치채셨나요?

네, 그렇습니다.

'딴짓'은 우리가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생각은 그 문제에 그대로 둔 채 몸만 움직이는 것이죠.

그러나 '딴일'은 경우가 아주 다르죠.

이미 우리의 관심은 그 문제에 있지 않고 새로운 일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천재들의 경우 '딴짓'은 일상적인 행위였습니다.

문제가 안 풀릴 땐 언제나 '딴짓'을 했었죠.

그러나 대부분의 요즘 아이들은 언제나 '딴일'을 합니다.

 

삶은 수많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시로 '딴짓'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다 해결할 때까지 '딴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딴짓'을 하고 있나요 아니면 '딴일'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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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8-13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잘 배우고 갑니다.

전 딴짓을 하고 있네요.ㅋㅋㅋ

꼼쥐 2013-08-14 20:33   좋아요 0 | URL
딴짓을 하고 있는 하늘별님은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이겠죠. ^^
 

알라딘 서재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마치 제 생일처럼 기쁘군요. 알라딘 서재에는 워낙 쟁쟁한 분들이 많아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곤 합니다. 이렇게 알찬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알라딘 관계자들께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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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에는 집과 가까운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책을 읽었다.

폭염을 피해 떠밀려온 피난민처럼 그 시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습습한 바람이 턱밑을 문지르며 지나갈 때에도 시원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어느 곳으로 숨어든다 한들 이 더위를 피하기는 아마 어려우리라는 답답한 생각이 거듭거듭 밀려올 뿐이었다.

 

피난민 행렬과 같은 그들 무리에 섞여 도서관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이 흐르는 땀을 식히기에는 조금 힘겨운 듯 보였지만 자리를 잡고 앉아 책에 빠져들 즈음에는 그럭저럭 땀도 잦아들고 있었다.  어쩌면 도시에서의 도서관은 더위나 추위를 피해 달아날 수 있는 섬과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도서관 로비에는 가족인 듯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물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더위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었을 터, 턱까지 차오른 더위를 간신히 밀어내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서글픔이 몰려왔다.

 

집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나른한 휴식을 취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더 컸다.  주말부부로 사는 내가 혼자뿐인 집에 에어컨을 틀어 도시의 열기를 더한다는 것은 내 알량한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이따금 홀로 있는 집에 전등을 환하게 밝히는 것조차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왠지 미안하다.

 

정유정의 <마법의 시간>을 다 읽고 일어설 즈음, 도서관도 때마침 문을 닫을 시간이었던지 사람들은 도서관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늦은 시각에도 후끈한 열기가 얼굴에 훅 끼쳤다.

밤을 잊은 말매미 소리가 비듬처럼 하얗게 일었고, 피난처를 잃은 사람들이 공원 분수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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