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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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터 빅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를 통해서였다.  '시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페터 빅셀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무작정 기다리고, 바라보고, 때로는 이야기 하는 원형질의 삶을 중시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글은 다소 시니컬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세상에 대해 한발 물러선 듯한 그의 태도로 인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어느 작가의 전작(全作)을 다 읽지 않아도 그 작가에 대한 모든 것을 알 것만 같은 그런 작가가 있다.  페터 빅셀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 책 <책상은 책상이다>에는 어른들을 위한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원제가 <아이들 이야기>임에도 말이다.  어쩌면 작가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맘에 드는 유형을 분류하여 이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  지구가 정말 둥근지 확인해 보려고 길을 떠나는 남자, 사물의 이름을 바꿔 부르는 사람, 전혀 웃기지 않는 광대,수십 년 동안 세상을 등지고 혼자 발명에 전념하다가 자기가 천신만고 끝에 발명에 성공한 물건이 어느새 이미 세상에 다 보급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 발명가, 요도크 아저씨 이야기를 한없이 되풀이하다가 마침내 세상 모든 사물을 요도크라고 부르는 할아버지, 열차 시간표를 모조리 외우고 다니면서도 결코 기차를 타지 않으며 남들이 기차 타는 것까지 방해하는 남자, 아무것도 더 이상 알지 않고 살려고 애쓰다가 결국 중국어까지 배우게 되는 남자 등 작가가 내세운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편집증 환자처럼 보일 수도 있는 특이한 인물들이다.

 

"코뿔소는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언제나 신이 나서 앞으로 달려나가지만, 우리 안을 두어 바퀴 돌고 나서는 방금 떠오른 생각을 잊어버리고 다시 오래오래 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았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너무 일찍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 코뿔소에게는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코뿔소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제 너무 늦은 것 같군."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집에 돌아와 그는 자기 코뿔소를 생각했다.  그리고 오로지 코뿔소 얘기만 했다.  "내 코뿔소는 생각은 너무 느리고 돌진하는 건 너무 빠르지.  그건 정말 그래."  그러면서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알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알려고 했던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자기 삶을 꾸려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았던 남자' 중에서)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물들만 골라 이야기로 꾸며 놓은 듯했다.  만약 우리와 가까운 이웃 중에 또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중에 이런 인물들이 있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내 짐작으로는 다들 그 사람의 행동 반경이 미치는 범위 바깥으로 슬금슬금 도망쳤지 싶다.  그런데 왜 작가는 이런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웠을까?  누구도 가까이 하기를 꺼려하고 골치 아픈 사람쯤으로 취급할 이런 사람들을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되짚어 생각해 보면 작가가 보여준 이런 종류의 집착이나 편향을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이런 집착이나 편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 누구나 한두 가지의 집착이나 편향이 있을 터,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피하고 외면할 뿐 그들을 이해하고 가까이 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손가락질하는 격이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언어와 소통'의 문제는 타인에게 쏠린 시선을 거두어 자신의 내면을 바라봄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 규정짓기보다는 그에 앞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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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길을 잃어도 괜찮아 - 카투니스트 동범의 네팔 스케치 포엠
김동범 지음 / 예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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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나는 딱히 뛰어난 병사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고문관'에 가까운 눈치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닥 띄지 않는(그런 사병이 있었나 싶은) 평범한 군인이었는지도 모른다.  대대 군수과의 행정병으로 근무했던 나는 늘 타자기를 안고 살았다.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책상마다 4벌식 타자기가 한 대씩 놓여 있었다.  그 타자기를 이용하여 보고서를 쓰고 타 부대에 보낼 공문도 썼었다.

 

입대한 지 6개월이 지나야만 일병으로 승급할 수 있었던 그 당시에 일병은 내무반에서 고참을 수발하는 일 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도 고참의 업무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니 일병은 언제나 바빴고 야간업무로 밤을 새우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래도 한 가지 좋았던 점은 야간업무를 다 마치고 나서도 서둘러 내무반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시간만큼 잠자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사무실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던 새벽녘의 그 시간을 좋아했다.

 

나는 새벽녘의 그 시간 동안 제대를 앞둔 고참의 연애 스토리를 글로 옮기곤 했다.  전역을 하는 고참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어서였다.  고요한 새벽에 '타닥타닥' 울리던 타자기 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그리운 장면이다.  마땅히 줄 게 없어서 재미삼아 써주었던 글을 고참들은 기쁘게 받았다.  그리고 추자도에 살던 한 고참은 내가 쓴 글을 자신의 이름으로 응모하여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의 학보에 실리게 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왔다.  내가 휴가를 나가면 술 한 잔 사겠다는 말과 함께.

 

단순히 제목만 보고 골랐던 이 책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카투니스트로 소개된 저자의 글은 오히려 신선했다.  그래서인지 네팔을 여행하며 기록한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과 짤막짤막한 글들로 빼곡하다.  때로는 현지의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한끼의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그림을 통하여 수줍은 남자의 사랑을 대신 전하기도 하는 장면들이 내 지나간 군대 시절을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단한 작전을 부여받은 스파이처럼 그녀에게 다가가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고 하고는, 그녀를 볼 수 있는 앞쪽에 풀썩 앉아서 그림 그릴 자세를 잡았다.  어리둥절한 그녀에게 괜찮다, 라는 미소를 지어주고는 이내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다.  다른 사람을 그리는 것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왜일까?  멀리서 네팔 동생과 그의 동료들이 수군대며 눈치를 보고 있다.  다 그린 그림을 찢어 동생을 쳐다본다.  '너에게 줄까?' '어떻게 할까?'란 동작을 취하자 동생 놈이 슬그머니 발을 뺀다.  그 행동이 귀여워 웃음이 났지만, 사뭇 진지한 척하며 그녀에게 그림을 주었다.  "저 녀석이 당신을 그려달래서 그렸어요.  저 녀석이 당신을 많이 좋아한대요."  그림을 받아든 여자는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흘깃흘깃 동생을 확인한다."    (p.304-305)

 

어쩌면 '길을 잃는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단순히 자신의 목적지를 에둘러서 갈 뿐, 그래서 조금 늦게 도착할 뿐 길을 잃었다고는 할 수 없다.  삶에서도 그런 게 아닐까?  어차피 삶을 완전히 이탈할 것도 아닌데 쉬엄쉬엄 둘러 간들 어떠리.  작가는 다시 한국에 돌아왔고, 그렇게 조금은 다른 겨울을 겪고 난 뒤 겨울이라는 계절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작가.

 

"혹, 이 책을 읽으시고 네팔에/가실 분들은 제 부탁 하나 들어주세요./저기, 히말라야에 가시거든/제 이야기 하나 전해주세요.// 멀리 떨어져 있지만/너를 잊지 않았다고./언제일지 모르지만/다시/너에 품에 안길 거라고.//"    (p.320)     

 

  

언젠가 신문 기사에서 화성거주프로젝트(The Mars Homestead™ Project)를 읽은 적이 있다.  기사에는 화성에 거주할 지원자 4명을 모집하는데 400명이나 몰렸다는 내용이었다.  화성까지는 기껏해야 10개월 정도 걸려서 도착하지만 사실상 귀환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다. 그 중 한명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삶을 살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지원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굳이 화성까지 가지 않아도 똑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같은 지구 안에서 길을 잃을 염려도,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이탈하지 않는 한 자신의 삶에서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다만 조금 늦게 도착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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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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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사물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는 듯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어떤 사물이든 넋이 빠져 바라보곤 했었다.  급한 게 없었으니까.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언제나 바빴다.  그래서 보이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그런 줄 알았다.  이런 습관이 한동안 이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바쁜 건 매한가지였다.  오히려 더 바빠졌는지도 모른다.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은 아주 잠깐씩 스쳐갔을 뿐 삶에는 도통 아는 게 없었던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이것이다'하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잖은가.  차를 운전할 줄은 알아도 막상 차가 멈추었을 때 왜 멈추었는지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딱 그런 식이었다.

 

몇 년 전 여름의 어느 날 아침, 나는 참으로 묘한 경험을 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뒷편으로는 소나무가 나란히 심어진 짧은 산책로가 있는데 그 초입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잠깐 쉬었다 가는 작은 바위가 있다.  그날 아침에 몸이 가냘프고 등이 활처럼 휜 할머니 한 분이 그 바위 위에 앉아 먼 시선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안개 탓이었는지 내 눈에 비친 할머니는 정형외과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해골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아주 어렸을 때 천진난만하게 뛰어놀던 모습도 겹쳐 보였다.  나는 그때 '아, 그렇구나.'하고 느꼈다.  깨달음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뭉클한 느낌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 뒤로 사물을 볼 때,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현재의 모습보다는 그 대상의 오래 전 모습과 먼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면 다음 순간 내가 집착했던 모든 것들이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음을 깨닫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이후로 깊은 허무주의에 빠진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전보다 욕심이 1/3쯤 줄었다고나 할까.    『On the Road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을 읽는데 문득 그때의 순간이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2005년 EBS <열린 다큐멘터리>에서 방영되어 큰 호응을 얻었던『On the Road』는 이후 장기 배낭여행자들에 관한 인터뷰 형식의 책으로 엮여졌다.  배낭여행자들에게 있어 여행의 시작과 끝이라는 '카오산 로드',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여행자들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이라는 찬사를 듣는 카오산에서 작가는 여행자들의 내면 속으로 여행을 떠난 듯하다.

 

"카오산에는 독특한 패션이 있다.  삼륜차 택시인 '툭툭'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손님 한 사람에 네 사람이 달라붙어 여러 색깔의 실과 머리카락을 섞어 땋는 레게 머리가 그것이다.  젊은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거리인 탓에 마오쩌뚱이나 체 게바라, 짐 모리슨이나 지미 핸드릭스의 얼굴이 크게 프린트 된 티셔츠를 입는 것도 카오산의 변치 않는 유행이다.  짧고 검은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 교복을 입은 늘씬한 태국 여대생을 쳐다보는 것도 눈이 즐겁다.  황색 조끼를 입은 오토바이 택시 기사가 인도 전통의상을 입은 여자를 태우고 휭하니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p.20)
  

젊을수록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을 좋아한다.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보이는 한여름의 해수욕장이나 인기 가수의 대규모 공연이 펼쳐지는 광장, 그에 더하여 누구도 자신을 주목하지 않는 외국의 어느 지역이라면 그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 체면과 의무로부터 멀어진 곳에서 오히려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삶의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인 동시에 여행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낯선 길 위에서 느끼는 일탈의 자유와 해방감, 행복했던 순간들, 전에는 감히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 사랑, 그리고 긴 여행에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한 자들만이 얻는 자기 발견의 시간.  저자가 만난 길 위의 여행자들은 그래서 더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는 이유가 있어?

여행은 아침 기도를 빼면 내 삶에 가장 커다란 충만감을 주고 있어.  나의 교만을 버리게 만들었고 내가 누구인지도 생각하게 했어.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거든.  특히 자기 삶,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사는 많은 사람을 보는 건 정말 좋아.  라오스나 중국, 베트남, 태국은 자메이카의 시골을 떠오르게 해.  그들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살고 있지.  작은 방에서 침대 하나, 부엌, 몸을 씻을 공간, 그 뿐이야.  그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대답해.  그들보다 많은 것을 가진 우리들은 과연 행복한가?"    (p.260) 

저자가 만났던 많은 배낭여행자들.  그들이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각기 달랐지만 여행지에서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서로 다른 듯 닮아 있었다.  우리는 때로 삶에서의 일부분일 수 있는 여행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아까운 시간쯤으로 인식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삶을 운전하는 초보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삶이라는 거대한 틀을 수선하고 정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우리가 부딪히는 일상에서가 아닌 여행의 짧은 시간 속에서였음을 깨닫게 된다.

 

사물을 바라 보는 올바른 방식을 나는 조금 늦은 나이에 배운 듯하다.  '카오산 로드'에서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어린 사람들인데 그렇게 성숙할 수 있다니...  지금 내 눈에 비친 모든 사물은 시간의 경과 속에서 아주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무(無)'요 신기루와 같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시간의 경과를 통하여 사물의 과거와 먼 미래를 바라 보는 시각은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일상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순간순간의 긴장감 속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듯한 여행지의 낯선 곳에서 다른 대상에 대한 깊은 관찰은 동시에 나에 대한 깊은 생각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삶을 정비하고 수선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면 여행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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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한 권의 책 - 나는 그 책을 끝까지 읽고 싶다
이해욱.김성심 지음 / 두베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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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마련이지만, 어떤 일은 시작애 앞서 자신이 예측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끝을 맺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로는 쉽게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흐지부지 되는 수도 있고, 도저히 끝을 볼 수 없는 일인 듯 싶어 하다가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일이 오히려 끝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마치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일을 끝내게 되었을 때의 어리둥절함이란...

 

이럴 때 우리는 '내 그럴 줄 알았지'하는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고, '와! 정말 대단하다'는 칭찬의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평가가 다소 억울할 수도 있고 '이게 이렇게까지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인가?'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  돌이켜 보면 나도 '보통사람'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지라 그런 일들을 수도 없이 겪었다.  예컨대 내가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 것이라던가, 틈만 나면 책을 읽는 것이라던가 하는 일들은 괜한 칭찬을 듣는가 하면 담배를 끊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백기를 들고는 쏟아지는 비아냥을 감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까닭에 나는 누군가의 성취에 대해 크게 부러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실패에 대해 크게 비난하지도 않는다.(내가 너무 인색한가?  아니면 무덤덤하거나)  가령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에베레스트 14좌 완등릉 했을 때에도 그저 무덤덤했었다.  어쩌면 그도 처음에는 다 오를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저 다 올랐을 뿐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렇더라도 그가 이룬 엄청난 성취가 저평가되거나 가치 절하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해욱, 김성심 부부가 쓴세계는 한 권의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약간의 부러움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 이들도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 엄청난 일을 해냈겠구나'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부부는 은퇴 하면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약속을 했고, 은퇴한 지 3개월 만에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났다고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별것이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아무나 못하는 일이라고?  그럴 수도...)  유럽에 이어 중남미 지역의 모든 나라를 돌았고, 해외여행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부부는 전 세계를 돌아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태평양의 많은 섬국가를 부부가 함께 여행하였고, 자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해욱(남편)은 단신으로 아프리카의 오지 국가와 중남미의 가이아나를 다녀옴으로써 전 세계 모든 독립국가 여행을 마쳤다고 한다. 

 

정부가 여행을 금지했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를 제외한 189개국과 UN 가입국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 인정한 3개국(바티칸시국, 코소보, 팔레스타인)을 여행함으로써 192개국의 여행을 마쳤고 그는 한국기록원으로부터 '세계 모든 나라 땅 밟은 첫 한국인'으로 인증도 받았다고 한다.  '은퇴 생활의 롤 모델' 1위에 뽑히기도 했다는 이해욱,김성심 부부의 여행기가 바로 이 책 <세계는 한 권의 책-나는 그 책을 끝까지 읽고 싶다>이다.

 

"외국을 이웃집 드나들 듯하는 오늘날이지만 그럼에도 세계여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꿈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간혹 장기 계획으로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젊고 진취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니 일선에서 물러선 은퇴자들에게 세계여행은 정말 꿈같은 일일 수밖에 없다.  은퇴 3개월 후 나는 아내와 함께 생애 첫 배낭여행에 나섰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 세계 독립국가 여행이라는 목표를 이뤄냈다.  이것은 평생 간직하고 살았던 여행의 꿈 그리고 나와 같은 꿈을 꾸며 평생 함께한 아내 덕분이다."    (p.9)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일들이 더러 있다.  구체적인 게획을 세워 끝까지 밀어부쳐야만 이뤄지는 일들도 있고, 운이 좋아서(정말로 운이 좋아서) 생각지도 않게 이뤄지는 일들도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 세상을 살다 갔다는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그나저나 이제 휴가철도 멀지 않았는데 환율이 올라 해외여행은 비용이 많이 들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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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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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으레 '그럴듯한 거짓말을 씀으로써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니 어찌 보면 거짓말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유일한 직업군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럴듯한'이 조금 더 발전되면 '진짜'로 착각하는 독자가 나오게 마련이다.  소설가야 그보다 더한 영광이 없겠지만 '진짜'라고 굳게 믿는 독자는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렇게 믿는 사람이 잘못이라고?  그러니까 소설가에게는 땡전 한 푼의 책임도 없다?)  아무튼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의 글솜씨라면 그런 걱정을 아니 할래야 아니 할 수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를 읽은 것은 얼마 전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 이어 두번째이다.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타이틀로 출간된 3부작의 에세이 중 제2권부터 읽은 셈인데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잡지 -[앙앙]에 쓴 연재 에세이를 모은 것이니 만큼 일상의 가벼운 주제를 감각적이고도 트렌디한 문체로 쓰고 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외수 작가를 떠올리게 된다.  두 분 모두 소설가라는 것과 요즘 들어 젊은이의 취향에 맞는 에세이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무척이나 많아 보인다. 

 

사실 이런 에세이를 읽고 리뷰를 쓸 때에는 여간 고민스러운 게 아니다.  만화처럼 별 고민 없이 술술 읽히기는 하지만 다 읽고난 후가 문제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도 이렇다 저렇다 하고 써야 할 말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에세이는 소설처럼 한 권으로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므로 어떠어떠한 면이 매력이 있다던가 어떤 캐릭터가 맘에 들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리뷰를 길게 풀어 쓸 수가 없다.  사실 우리가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소설 속에 감추어진 소설가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인데 현란한 글솜씨 때문인지 포인트를 정확히 잡아 리뷰를 쓴다는 것이 도무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하여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책을 읽으면서 맘에 들었던 한 부분을 빼놓지 않고 다시 옮겨 고스란히 보여주는 수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겠다는 것이었다.  (독수리 타법의 내가 그만한 인내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설가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날마다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회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없는 것만으로 인생의 시간은 대폭 절약된다.  세상에는 통근과 회의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당신도 아마 그렇지 않죠?

한 가지 더 소설가가 된 기쁨을 절실히 느낄 때는 솔직하게 "모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다.  예를 들면 "장래 일본 산업 구조를 세련화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라든가,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정신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하고 누군가 질문해도, "죄송합니다.  그런 건 난 모릅니다"한마디로 끝낸다.

만약 내가 텔레비전 방송 패널이나 대학교수였다면, 그렇게 간단히 "모릅니다"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을 물어도 일단은 그럴듯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입장이 난처해진다.  그러나 소설가에게 - 뭐, 나같은 소설가에게라는 말이지만 - 무지는 특별히 부끄러운 게 아니다.  아무것도 몰라도 소설만 재미있게 쓰면 그걸로 그만이다.  심지어 "그런 것 하아아나도 몰라요"하고 자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자세가 통하는 직업은 아마 좀처럼 없지 않을까?

이건 뭐랄까, 정말로 좋다.  내가 모르는 것을 까놓고 "모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만큼 편한 일도 없다.  그것만으로 수명이 오 년 반 정도 늘어날 것 같다.

---------------중략(내 인내력의 한계다)---------------

분명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일 터, 그런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등을 밀어주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잘 풀리면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모르는 것을 '자랑'하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  인생이란 꽤 복잡하다."    ('모릅니다, 알지 못합니다' 중에서)

 

이 리뷰를 쓰기 전에 다른 블로거들의 리뷰를 십여 편 읽었었다.(혹시 베낄 만한 내용이 있을까 해서 -저작권법에 걸릴려나?)  놀라운 것은 긍정적인 리뷰의 대부분이 그 이유로 하루키의 대화체 문장과 솔직함을 꼽았다.  더구나 공감했던 내용 또한 서로 비슷비슷했다.  이럴수가.  각기 다른 리뷰어들이 비슷한 리뷰를 쓰는 경우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이 정도면 하루키 신드롬을 넘어 '하루키류(流)'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루키의 책은 왜 이토록 인기가 많은 걸까?(물론 하루키를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루키의 글은 솔직함을 넘어 도발적이라고 해야 옳다.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글로 가감없이 옮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의 이런 자신감은 그가 소설가로서 얻은 명성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닌 듯 보인다.  오히려 싫은 것은 싫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그의 고집과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그의 인생관이 천편일률적으로 닮아 있는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지 않았나 싶다. '아, 이런 놈(?)도 있구나'하고 말이다.

 

'어떤 식으로 글을 쓸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대충 같다'고 말한 대목에서도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고집과 인생관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그는 '비슷함'이 판치는 세상에서 '다름'을 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다름'이 시대를 잘 만나서 대접받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그렇다면 그는 분명 운이 좋은 사람이다)  동물원의 원숭이꼴이 되기 싫어서 텔레비전 인터뷰에는 절대 응하지 않는다는 그의 고집은 유명세를 좋아하는 일반인들과 분명 달라 보인다.  그의 인기는 그의 인생관을 팔기 때문이다.  남과는 구별되는 그만의 인생관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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