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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페터 빅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를 통해서였다. '시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페터 빅셀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무작정 기다리고, 바라보고, 때로는 이야기 하는 원형질의 삶을 중시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글은 다소 시니컬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세상에 대해 한발 물러선 듯한 그의 태도로 인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어느 작가의 전작(全作)을 다 읽지 않아도 그 작가에 대한 모든 것을 알 것만 같은 그런 작가가 있다. 페터 빅셀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 책 <책상은 책상이다>에는 어른들을 위한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원제가 <아이들 이야기>임에도 말이다. 어쩌면 작가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맘에 드는 유형을 분류하여 이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 지구가 정말 둥근지 확인해 보려고 길을 떠나는 남자, 사물의 이름을 바꿔 부르는 사람, 전혀 웃기지 않는 광대,수십 년 동안 세상을 등지고 혼자 발명에 전념하다가 자기가 천신만고 끝에 발명에 성공한 물건이 어느새 이미 세상에 다 보급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 발명가, 요도크 아저씨 이야기를 한없이 되풀이하다가 마침내 세상 모든 사물을 요도크라고 부르는 할아버지, 열차 시간표를 모조리 외우고 다니면서도 결코 기차를 타지 않으며 남들이 기차 타는 것까지 방해하는 남자, 아무것도 더 이상 알지 않고 살려고 애쓰다가 결국 중국어까지 배우게 되는 남자 등 작가가 내세운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편집증 환자처럼 보일 수도 있는 특이한 인물들이다.
"코뿔소는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언제나 신이 나서 앞으로 달려나가지만, 우리 안을 두어 바퀴 돌고 나서는 방금 떠오른 생각을 잊어버리고 다시 오래오래 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았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너무 일찍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 코뿔소에게는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코뿔소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제 너무 늦은 것 같군."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집에 돌아와 그는 자기 코뿔소를 생각했다. 그리고 오로지 코뿔소 얘기만 했다. "내 코뿔소는 생각은 너무 느리고 돌진하는 건 너무 빠르지. 그건 정말 그래." 그러면서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알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알려고 했던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자기 삶을 꾸려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았던 남자' 중에서)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물들만 골라 이야기로 꾸며 놓은 듯했다. 만약 우리와 가까운 이웃 중에 또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중에 이런 인물들이 있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내 짐작으로는 다들 그 사람의 행동 반경이 미치는 범위 바깥으로 슬금슬금 도망쳤지 싶다. 그런데 왜 작가는 이런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웠을까? 누구도 가까이 하기를 꺼려하고 골치 아픈 사람쯤으로 취급할 이런 사람들을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되짚어 생각해 보면 작가가 보여준 이런 종류의 집착이나 편향을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이런 집착이나 편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 누구나 한두 가지의 집착이나 편향이 있을 터,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피하고 외면할 뿐 그들을 이해하고 가까이 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손가락질하는 격이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언어와 소통'의 문제는 타인에게 쏠린 시선을 거두어 자신의 내면을 바라봄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 규정짓기보다는 그에 앞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