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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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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학에는 극단값이론(extreme value theory)이라는 게 있다. 통계학에서 가장 유명한 이론이 정규분포이론이라면, 극단값이론은 반대로 특이한 이상현상(보통 분포상 outlier라고 불리는)의 발생패턴을 연구한다. 몇 년 전에 출간되었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은 이 이론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극단값이란 결국 과거의 경험으로는 그 존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대 영역 바깥에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존재할 가능성을 과거의 경험으로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실재하는 관측값이라고 할지라도 특이값이 존재하는 경우 모집단의 성향을 왜곡시킬 수 있으므로 보정평균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가구별 평균 소득을 추정하기 위한 표본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가장 가난한 누군가를 포함시켰다면 그 평균값은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예는 실생활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물가지수와 내가 느끼는 체감지수도 그런 것 중에 하나이다.  결국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표본을 설정한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를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이나 인문학에서 통계학을 이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남자의 심리에 대하여 작가는 '극단의 왕국((Extrimistan)'에서나 존재할 법한 어떤 남성을 관찰함으로써 세계의 모든 남성이 그런 것인 양 추정하고 있지나 않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책의 전체 내용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프로이트와 자끄 라캉의 이론을 설명할 때에는 작가의 경험이나 작가 자신이 읽었던 책을 인용함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끌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생각이나 추측 혹은 인용에서 비롯된 '세계 모든 남성이 다 이렇다'는 일반화의 오류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었다.  저자도 물론 독자의(특히 남성 독자의) 이와 같은 불편한 심기를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남자들의 심리에 대한 책을 쓰는 일은 주저되었다.  몇 가지 편견 때문이었다.  남자들은 심리의 시옷 자도 듣기 싫어한다는 게 첫번째 편견이었다.  심리 이야기를 쓰게 되면 남자들의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 밑에 숨겨둔 아프고, 슬프고, 찌질한 이야기들을 들추게 될 텐데, 그 점에 불편을 느낀 남자들이 책을 집어던질 것이라는 게 두번째 편견이었다.  세번째 편견은 남자들이 결국 분노하여, 내가 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p.4~p.5) 

 

나도 한때 여자들의 심리를 몹시 궁금해 했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도 교양과목으로 국문학과 과목이었던 문예비평론을 들었을 때였다.  취업과 안정된 미래를 꿈꾸며 웬만해서는 한눈을 팔지 않는 경제학과 학생들과는 달리 무척이나 한가롭고 자유로워 보였던, (때에 따라서는)방탕해 보이기까지 한 국문과 학생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그때 아주 잠깐 소설을 쓰는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그러나 공부 외에는 이렇다 할 경험이 전무했던 나였기에 '여자들은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할까?'하는 물음 앞에서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자들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그 후로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은 접었지만 여자들의 심리가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남자들의 심리가 대학시절의 나처럼 단순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오히려 나는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의 시각은 다소 편협되고 공격적인, 이를 테면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기술되었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내 생각과는 크게 벗어난 대목에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에 있어 지적 소양을 갖추지도 못한 내가 저자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저자의 경험이나 일부 도서를 바탕으로 전 세계 남성으로까지 일반화시킨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태초로부터 이질적인 성격의 두 집단인 남성과 여성이 같은 사회에서 상호 신뢰 및 배려를 기반으로 협력하여 살라는 의무를 부여받았으니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저자는 분명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앎'으로써 더 많이 이해하고 협력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서로에 대하여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한다 할지라도 이성의 한계는 감정의 굴레에 쉽게 굴복되고 만다는 점이다.  결국 인간은(남자든 여자든) 겪으면서 체득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얘기다.  죽을 때까지 지겹게 싸우고 지지고 볶아도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적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서로에 대하여 증오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남녀가 사이좋게 지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처음부터 남녀는 필요한 부분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불편한 것들을 투사해왔으므로, 그래도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 보인다.  개인들이 사적인 관계에서 잘 지내는 길에는 명백히 검증된 방법이 있다.  그 방식을 더 큰 단위로 확장시켜 적용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또 순진한 환상을 꽃피워본다."    (p.326~p.327)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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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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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골똘히 생각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중심 키워드는 뭘까?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마땅한 단어는 종래 떠오르지 않았다.  좋은 책일수록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는 듯해도 결국에는 하나의 주제로 집결되며, 하나의 흐름으로 쉽게 정의될 듯하면서도 끝내 잡히지 않는다.  인생을 단 한 마디의 말로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는 그런 책이었다.  각기 다른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듯하면서도 하나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작가 자신의 생각을 아주 손쉽게 이해할 수 있으려니 생각하면서도 끝내 잡을 수 없는...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각해 봐야 하는 여덟 개의 키워드로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을 꼽고 있다.  제시한 단어들을 제대로 느낄 수만 있다면 어느 누구나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도 물론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깨닫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 불꽃처럼 확연해지는 하나의 깨달음은 수백, 수천의 이해와 지식의 결합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것은 결국 내 삶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의 총합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우리의 어지러운 시선을 갈무리하여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나의 삶을 존중하고, 사물을 대할 때에도 본질을 꿰뚫어 바르게 볼 것이며, 소통에 있어서도 상대방에게 정성을 다하고, 현재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에 현혹되어 자신의 삶을 허비하고 원망과 회한으로 평생을 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얼핏 이기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주체는 오직 자신뿐,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결국 나에게 집중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배려요, 인생에 대한 지극한 예절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묵묵히 자기를 존중하면서, 클래식을 궁금해 하면서, 본질을 추구하고 권위에 도전하고, 현재를 가치있게 여기고, 깊이 봐가면서, 지헤롭게 소통하면서 각자의 전인미답의 길을 가자.  이건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었던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모든 것이었습니다."    (p.237)

 

나는 매일 아침 산을 오른다.  여러 번의 이사로 내가 오르는 산은 그때그때 달라졌지만 산을 오를 때의 마음만큼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존중하고, 나 또한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지금도 나는 산을 오를 때마다 마음속으로 인사를 한다.  나무들에게, 바람에게, 먼저 간 영혼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생명들에게.

 

잘 살아야 한다.  누구나 그래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한숨 소리로 넘쳐난다.  나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각자의 마음은 그 각각의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건만 자신의 마음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또 하나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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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 터키편, End of Pacific Series
오소희 지음 / 에이지21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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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파트 공터에서는 키 작은 꼬마 아이가 얼음 조각을 차며 놀고 있다.  신선한 풍경이다.  아이는 그 짧은 다리로 잘 보이지도 않는 얼음 조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걷어차고는 간혹 균형을 잃고 풀썩 넘어지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몇 센티쯤 옮겨간 얼음 조각을 보며 깔깔대며 웃는다.  아이는 마치 얼음 조각을 옮기는 것이 제게 맡겨진 커다란 소임인 양 이내 일어나 또다시 집중한다.  이번에는 아이의 발이 허공을 가른다.  두꺼운 코트때문인지 이번에도 풀썩 주저앉았다.  헛발질이 무안했는지 아이는 울지도 않고 일어난다.  주차되었던 차 한 대가 그곁을 무심히 지나간다.  아이에게서 조심성이라곤 도통 찾아볼 수 없다.  세상은 어찌 되어도 좋다는 투다.  아이에게는 지금 얼음 조각이 세상의 전부다.

 

그렇게 혼자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넋이 나간 듯 지켜보았다.  나이에 비례하여 열정이 식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열정만 식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도 잃어간다.  나는 한동안 이름도 모르는 동네 꼬마를 지켜보며 오소희 작가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를 읽었다.  세 돌 된 아들과 함께 터키를 여행하고자 했던 작가의 결단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 여행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많은 생각들이 오갔으리라.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한 뒤로 나는 아이에게도 혼자 걷기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자 무척 노력했다.  어떤 엄마들에게는 가베나 오르다 같은 것이 중요한 교육적 선택이 되는 시기에, 나는 아이를 부단히 데리고 다니며 걷게 했다.  열이 오를 때에도 졸음이 쏟아질 때에도 아이는 더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제 힘으로 걸었다."    (p.126)

 

여행에 무슨 기술이 필요할까마는 여행의 동반자를 선택하는 일은 내가 원했던 여행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때에 따라서는 여행의 동반자가 짐보다 더한 천덕꾸러기가 될 수도 있고, 더없이 믿음직한 친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 경험이 전무한 여행초보자라고 할지라도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꼬마를 여행의 동반자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의 시각과 보조에 맞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오히려 말없는 짐짝만도 못한 훼방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길 사람이 대부분일 이지 않을까?  그러나 작가는 용감(?)하게도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터키행을 감행했다.

 

"처음에 나는 아이를 이곳에 데려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이가 오래전부터 이곳에 올 예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에게 가방을 들게 하고, 자신의 힘으로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이의 첫 걸음마, 첫 번째 열감기, 처음 내지른 일성, 이 모든 것들은 매일매일 또 다른 '오늘'을 위해 성실히 축조된 밑계단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는 내가 끌고 가는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열린 마음이 닿는 곳까지 가는 것이다.  이 아이의 인생은 오롯이 이 아이의 것이다.  내가 주관할 수 있는 것은 가방을 들어주는 정도의 일일 것이다."    (p.170)

 

그렇게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던 중빈이는 올해 중학생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무려 25개국에 발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아장아장 걷다가도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의 행렬에 자신의 온 시선이 빼앗기곤 하던 아이는 이제 자란 키만큼이나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인 오소희 작가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어렸던 시절의 중빈이를 그리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여행이란 아이의 시선으로 즐기지 않으면 고통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여행자가 아이의 보조에 맞출 자신만 있다면 아이는 여행에 있어 최상의 파트너가 아닐 수 없다.  초원의 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만한 어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내가 있던 자리를 보는 일이다.  나는 터키 여행을 통해 아이의 자리와 나의 자리를 보았다.  샴쌍둥이처럼 붙어 지내던 시기를 마감하고, 둘 사이의 적정한 간격을 보았다.  그러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더 잘 보였다.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고 싶은 것만이 분명해졌다.  나는 더 떠돌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다."    (p.301)

 

여행기는 쓰는 사람에 따라 그 경계가 뚜렷하다.  사진과 경로를 곁들여 단순히 여행지의 소개에 그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정과 작은 깨달음을 위주로 쓰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물론 후자를 즐겨 읽는다.  그렇다고 여행기를 그닥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들 녀석과 단 둘이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이해하려고 한 적도 없다.  나는 언제나 바빴고, 나는 언제나 피곤했다.  '언젠가'하고 게획했던 일들이 이제는 '다시는'이라는 메아리로서 존재할 뿐이다.  아들에게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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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 개정신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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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둔하며 감싸주기에는 내게 다가올 비난과 조롱이 두려웠던 그런 사랑을 보았습니다.  내 가슴을 면도날처럼 베며 지나갈 차가운 시선을 감당하기에는 내 용기가 참으로 부족했던 시절이었지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리는 누군가의 눈물이 내 발치에서 시작하여 무릎으로, 가슴으로, 결국에는 머리 끝까지 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이후로 다만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깨닫게 될 어떤 것들이 차마 그 시절에는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으로 한껏 뒤로 물러서게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피할 수 없는 밤의 어둠처럼 누군가의 아픔이 언젠가는 동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공지영의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떠올릴 때면 책을 펼치기도 전에 눈시울부터 붉어집니다.  모든 인생에는 전성기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라면 공지영 작가의 전성기는 그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시(詩)에 깃든 자신의 경험과 아픈 과거를 헤아리고 있습니다. 책 속에는 무려 40편에 가까운 시가 소개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겠지요. 학창 시절에는 시인이 되기를 꿈꿨었기에 작가는 여전히 수많은 시인들을 흠모하고 그들의 시를 읽으며 안식을 찾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이토록, 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과, 그런 것들을 기꺼이 버텨낸 사람으로 한 번 더 나뉘어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이든 이성이든 가여운 이들이든 혹은 강아지든, 사람은 사랑 없이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사랑하지 않으면 죽어 있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글쓰기가 이토록 사랑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살아 움직이며, 끊임없이 상처받고 치유하고 있는 영혼을 질료로 삼는다는 걸 알았다는 말입니다."    (p.80)

 

수없이 되뇐 시구가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의 인생으로 되돌려진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것이 꼭 공지영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도 저 이름 없는 풀처럼, 그저 바람처럼 그렇게 살다간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한 편의 시처럼, 한 편의 영화처럼 말이지요.  이 책은 산문이면서 'J'라는 익명의 존재에게 쓴 서간체 형식의 글입니다.  ‘J'가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작가에게 있어 중요한 어떤 사람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상처와 비밀스러운 속내를 ‘J’에게 털어놓는가 하면 ‘J’를 통해 치유를 받습니다.

 

"J,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릴케를 인용하며 당신은 말씀하셨지요.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며 헌신하여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과 미완성인 사람 그리고 무원칙한 사람과

    의 만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이란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세계를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가는 숭고한 계기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이끄는 용기입니다.

당신의 마지막 구절이 제 마음의 어떤 구석을 건드리고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했을까요? 하는 구절 말이지요."    (p.99) 

세 아이의 엄마로, 그 이전에 대한민국의 한 여성으로 작가 공지영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찬찬히 훑어보노라면 어느 순간 책장을 넘기는 내 손가락에 흥건한 슬픔이 묻어날 것만 같습니다.  기억하시나요?  1997년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영국 내 우울증 환자의 수가 절반으로 급감했다는 사실을 말이죠.  작가가 기록한 일상의 이야기들은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듯 독자의 마음을 두들깁니다.  세상으로부터, 삶과 사람으로부터 상처받고 아파하는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자신의 고통을 봉헌하는 듯합니다.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아픔이라는 듯 말이죠.

 

"지금 저는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서재는 깨끗하고 스탠드도 따뜻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학교로 갔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렇습니다.  이런 시간에 결국 저는 이런 질문을 하고 맙니다.  모든 타인들이 떠나고 모든 소유들이 흩어진 후에도 남아 있는 나는 누구인가.  저는 처음으로 일기장에 그렇게 썼습니다.  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그러니 눈을 감지 말고, 책장을 덮지도 말고, 멈추지 말고 앞으로 간다...... 앞으로 가는 길이 아파도 간다......너는 소설가이고 그래서 고맙다, 지영아, 하고."    (p.129)

 

의미도 모른 채 불렀던 어린 시절의 한 줄 노랫자락이 어느 순간 확연한 의미와 함께 나의 가슴을 포근히 감싸듯 한 줄의 시구가 때로는 나를 울리고 그 울음으로 인해 나는 치유됩니다.  아마 작가도 그랬겠지요.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라는 책의 제목은 이라크의 저항시인 압둘 와합 알바야티의 〈외로움〉이라는 시에서 인용한 문구라고 합니다.  작가가 인용한 시는 다양합니다.  D.H. 로렌스의 <겨울 이야기>, 기형도의 〈빈 집〉, 김남주의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존 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등.

 

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기다리는 이맘때쯤이면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아픕니다.  삶은 그렇게 아픈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아픔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아픈 존재인가 봅니다.  그래서 더욱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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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3-12-30 13:41   좋아요 0 | URL
예전에 읽은 책인데, 참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2013년 서재의 달인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꼼쥐 2013-12-31 11:51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두 번째 읽었는데 전에는 어떻게 느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다시 읽어보니 좋은 책이다 싶기도 하구요. 물론 작가는 한창 어려운 시기를 넘던 순간이었겠지만 말이죠.

이렇게 축하해 주시니 부끄럽네요. 감사합니다. ^^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 갤리온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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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 중에 <꽃보다 누나>가 있다.  세간에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인지라 어제는 우정 시간을 내어 방송을 보았다.  짐꾼 이승기와 더불어 배우 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이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는 좌충우돌 단체 여행기이다.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도 하고, 크고 작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유명 연예인의 속내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어느덧 회갑을 넘긴 윤여정과 김자옥의 가슴 뭉클한 우정과 결혼 17년차라는 김희애의 연애담 등 예능으로서의 재미도 쏠쏠했다.

 

어제의 방송분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맏언니 윤여정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윤여정은 그것을 "쓸쓸하고 씁쓸하다"고 말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일반인이 아닌 여배우로서, 또는 배우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 나이 든다는 것은 슬프고도 덧없는 느낌일 것이다.  세월이 흐르며 연기력은 높아질 수 있지만, 잡을 수 없는 나이의 흔적에 대해 슬퍼하고 있었다. 윤여정은 “물론 배우로서는 나아갈 수 있지만, 외모는 흉해진다. 점점 흉해지는 내 꼴이 나도 싫은데…”라며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속내를 담담히 전했다.  그 장면에서 나도 일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누구도 흐르는 세월을 피할 수 없고 언젠가는 죽음과 함께 그의 삶도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문득문득 아연해질 때가 있다.  죽음만큼 더한 진리는 없다.  젊어서는 애써 외면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 진리로 인해, 차츰 나이가 들면서 재판관 앞에 선 피고처럼 가슴 한켠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노년의 삶은 두려움으로 시작되는가 보다.  아직은 새파랗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내 나이에도 나이 든다는 것이 이렇게 무겁게 다가오는 걸 보면.

 

이근후 박사의 저서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노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살아라'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고 말함으로써 인생의 후배이자 그의 저서를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나는 많은 부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뜰 때마다 신기하다. 주위에는 밤에 자다가 세상을 떠난 동창이나 선후배가 많다. 나 또한 내일이 반드시 예약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와! 눈떴구나! 하하하!' 하고 쾌재가 터져 나온다. 그 순간의 찰나적인 신비감이라니!"    (p.21) 

 

50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76세의 나이에 최고령이자 수석으로 사이버 대학을 졸업하고, 삼 대 열세 가족과 한집에서 대가족을 이루어 사는 등 누구보다 즐겁고 재미있는 노년을 보내고 있는 노학자라고 한다.  언제였는지 기억엔 없지만 저자의 대가족이 사는 '예띠의 집'을 TV에서 보았던 적이 있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도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 원장으로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을 펼치고 있고, 매년 의료 봉사를 위해 네팔을 방문하며, 시 낭송 모임과 영화 동아리 세미나에 참석하고, 청탁 원고를 쓰고 있다고 한다.  큰아들이 결혼한 뒤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는 저자는 삶의 매 순간을 정말 낙관적으로 사는 분인 듯했다.

 

"언젠가 선배 교수가 연구소를 찾아왔을 때 일이다. 나와 한담을 나누던 중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며느리가 시어머니, 그러니까 내 아내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아마도 아내가 무슨 일을 부탁하는 것 같았다. 며느리는 "예? 그럼 언제까지 하면 되나요?"라고 묻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머니, 그건 안 되겠는데요." 며느리가 자리를 비우자 선배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내가 듣기에는 자네 며느리가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 같아. 며느리 교육 한번 제대로 시켰구먼." 선배의 눈에는 시어머니의 부탁을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단박에 거절하는 며느리가 마뜩찮았던가 보다. 정작 시아버지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선배 교수 말대로 며느리 교육은 내가 '제대로' 시켰다. 큰아들이 결혼한 뒤 나는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p.42~43)

 

이 책은 모두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53가지의 귀중한 가르침이 실려 있다.  그렇다고 이 책에 실린 가르침이 '이렇게 살아라'하고 말하는 나이 든 사람의 준엄한 지침이라고 짐작한다면 큰 오산이다.   '재미있는 일만 골라 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들을 재미있는 쪽으로 만들어 갔을 따름'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10년 전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당뇨, 고혈압, 통풍, 허리디스크, 관상동맥협착, 담석 등 일곱 가지 병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자동차와 손목시계, 휴대전화가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원시인 취급한다. 자식들은 내가 이기적이라고까지 한다.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내는 필요할 때 바로 통화를 할 수 없어 답답하고, 자식들은 내가 외출할 때 자동차로 모셔다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전용 자가용 '택시'가 있으니 절대 눈치 보거나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p.298)

 

몇 년 전부터 아내와 떨어져 살고 있는 나는 같이 살았던 때보다 아내와 아들녀석에 대하여 궁금한 게 배는 많아졌다.  아내도 그런 모양이다.  지난 크리스마스날에도 아내는 내게 물었다.  내가 아내에게 말하지 않은 어떤 것이 있느냐고.  그렇게 물었던 이유인 즉, 그 전보다 내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생각해도 나는 많은 면에서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 중 하나는 집착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돈에 대해서도, 명예나 체면에 대해서도, 심지어 미래에 대해서도 나는 예전의 생각에서 많이 멀어져 있다.  대신에 나는 지금 당장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고 있음이다.  책의 제목처럼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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