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의 기술 53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 갤리온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TV 프로그램 중에 <꽃보다 누나>가 있다.  세간에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인지라 어제는 우정 시간을 내어 방송을 보았다.  짐꾼 이승기와 더불어 배우 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이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는 좌충우돌 단체 여행기이다.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도 하고, 크고 작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유명 연예인의 속내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어느덧 회갑을 넘긴 윤여정과 김자옥의 가슴 뭉클한 우정과 결혼 17년차라는 김희애의 연애담 등 예능으로서의 재미도 쏠쏠했다.

 

어제의 방송분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맏언니 윤여정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윤여정은 그것을 "쓸쓸하고 씁쓸하다"고 말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일반인이 아닌 여배우로서, 또는 배우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 나이 든다는 것은 슬프고도 덧없는 느낌일 것이다.  세월이 흐르며 연기력은 높아질 수 있지만, 잡을 수 없는 나이의 흔적에 대해 슬퍼하고 있었다. 윤여정은 “물론 배우로서는 나아갈 수 있지만, 외모는 흉해진다. 점점 흉해지는 내 꼴이 나도 싫은데…”라며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속내를 담담히 전했다.  그 장면에서 나도 일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누구도 흐르는 세월을 피할 수 없고 언젠가는 죽음과 함께 그의 삶도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문득문득 아연해질 때가 있다.  죽음만큼 더한 진리는 없다.  젊어서는 애써 외면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 진리로 인해, 차츰 나이가 들면서 재판관 앞에 선 피고처럼 가슴 한켠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노년의 삶은 두려움으로 시작되는가 보다.  아직은 새파랗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내 나이에도 나이 든다는 것이 이렇게 무겁게 다가오는 걸 보면.

 

이근후 박사의 저서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노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살아라'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고 말함으로써 인생의 후배이자 그의 저서를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나는 많은 부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뜰 때마다 신기하다. 주위에는 밤에 자다가 세상을 떠난 동창이나 선후배가 많다. 나 또한 내일이 반드시 예약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와! 눈떴구나! 하하하!' 하고 쾌재가 터져 나온다. 그 순간의 찰나적인 신비감이라니!"    (p.21) 

 

50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76세의 나이에 최고령이자 수석으로 사이버 대학을 졸업하고, 삼 대 열세 가족과 한집에서 대가족을 이루어 사는 등 누구보다 즐겁고 재미있는 노년을 보내고 있는 노학자라고 한다.  언제였는지 기억엔 없지만 저자의 대가족이 사는 '예띠의 집'을 TV에서 보았던 적이 있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도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 원장으로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을 펼치고 있고, 매년 의료 봉사를 위해 네팔을 방문하며, 시 낭송 모임과 영화 동아리 세미나에 참석하고, 청탁 원고를 쓰고 있다고 한다.  큰아들이 결혼한 뒤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는 저자는 삶의 매 순간을 정말 낙관적으로 사는 분인 듯했다.

 

"언젠가 선배 교수가 연구소를 찾아왔을 때 일이다. 나와 한담을 나누던 중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며느리가 시어머니, 그러니까 내 아내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아마도 아내가 무슨 일을 부탁하는 것 같았다. 며느리는 "예? 그럼 언제까지 하면 되나요?"라고 묻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머니, 그건 안 되겠는데요." 며느리가 자리를 비우자 선배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내가 듣기에는 자네 며느리가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 같아. 며느리 교육 한번 제대로 시켰구먼." 선배의 눈에는 시어머니의 부탁을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단박에 거절하는 며느리가 마뜩찮았던가 보다. 정작 시아버지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선배 교수 말대로 며느리 교육은 내가 '제대로' 시켰다. 큰아들이 결혼한 뒤 나는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p.42~43)

 

이 책은 모두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53가지의 귀중한 가르침이 실려 있다.  그렇다고 이 책에 실린 가르침이 '이렇게 살아라'하고 말하는 나이 든 사람의 준엄한 지침이라고 짐작한다면 큰 오산이다.   '재미있는 일만 골라 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들을 재미있는 쪽으로 만들어 갔을 따름'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10년 전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당뇨, 고혈압, 통풍, 허리디스크, 관상동맥협착, 담석 등 일곱 가지 병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자동차와 손목시계, 휴대전화가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원시인 취급한다. 자식들은 내가 이기적이라고까지 한다.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내는 필요할 때 바로 통화를 할 수 없어 답답하고, 자식들은 내가 외출할 때 자동차로 모셔다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전용 자가용 '택시'가 있으니 절대 눈치 보거나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p.298)

 

몇 년 전부터 아내와 떨어져 살고 있는 나는 같이 살았던 때보다 아내와 아들녀석에 대하여 궁금한 게 배는 많아졌다.  아내도 그런 모양이다.  지난 크리스마스날에도 아내는 내게 물었다.  내가 아내에게 말하지 않은 어떤 것이 있느냐고.  그렇게 물었던 이유인 즉, 그 전보다 내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생각해도 나는 많은 면에서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 중 하나는 집착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돈에 대해서도, 명예나 체면에 대해서도, 심지어 미래에 대해서도 나는 예전의 생각에서 많이 멀어져 있다.  대신에 나는 지금 당장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고 있음이다.  책의 제목처럼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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