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둘리지 않는 말투, 거리감 두는 말씨 - 나를 휘두르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책
Joe 지음, 이선영 옮김 / 리텍콘텐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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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고, 받는 것 없이 예쁜 사람이 있다. 나와는 친분도 없고 특별히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만 보면 기분이 나쁜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싫어할 만한 안 좋은 소문을 들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아침 출근길에서라도 우연히 마주친다면 평생 재수 옴 붙을 것만 같고, 승강기 내에서 말이라도 걸어온다면 절로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은 것이다. 뭐라 콕 집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 사람의 외모도, 스타일도, 심지어 목소리나 말하는 톤조차 느끼하고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싫어하는 대상은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매일 마주쳐야 하는 직장 상사나 동료 직원일 수도 있다. 이처럼 싫어하는 대상과 업무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일의 성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도 역시 증가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와 반대되는 유형의 사람들만 쏙쏙 골라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테지만 말이다.

 

"당신의 매력은 보여주지 않은 부분을 얼마나 늘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은 종종 빛보다 그림자 부분에 마음이 끌리기 마련입니다. 보여주지 않은 부분이 늘어나면 주위 사람들은 거기에 뭔가 매력을 느낍니다. 그중에는 그 보여주지 않은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당신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특정 누군가와 거리가 좁혀졌을 때 쌓아 올리는 관계는 지금까지 휘둘리기 쉬웠던 갑을 관계와는 다를 것입니다."  (p.226)

 

직장 내 괴롭힘 대책 상담사로서 개인 상담과 각지에서 강연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는 Joe의 저서 <휘둘리지 않는 말투 X 거리감 두는 말씨>는 인간관계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마음 컨트롤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43가지의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마음과 행동을 분리하고,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기술은 당신의 인간관계를 편안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자신하면서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남에게 휘둘리기 쉬운 인간 유형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인간관계에서는 언제나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항상 왠지 모르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며, 사람을 만나고 오면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너무 활짝 열어 놓고 있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실 직장 내 분위기도 예전에 비해 많이 변했고, 꾸준히 변하고 있다고 말해지기는 하지만 연공서열이 확실한 대한민국의 직장 분위기는 서양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어서 직장 내 분위기를 개선하려는 노력만으로는 한계를 보이게 된다. 말하자면 금세 바닥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달라진 게 없다'는 한결같은 불만이 터져 나오게 마련이다. 노골적인 갑질이나 강압적인 권위를 내세울 수는 없지만 무언중에 흐르는 눈치보기 문화마저 완전히 없앤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원래 타인의 마음을 간파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은 단지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서 추측하고 있을 뿐이므로, 당신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마음과 분리하여 말과 행동을 선택하면 상대는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없게 됩니다.

•마음을 꿰뚫지 못하면 그 사람은 당연히 당신을 휘두를 수 없고, 오히려 지금까지보다 당신을 존중하게 됩니다."  (p.19)

 

1장 '좋은 인간관계는 적당한 거리감이 유지되어야 한다', 2장 '누구도 파고들 수 없는 베이스를 만들어라', 3장 '미움받지 않는 '거절쟁이'가 되어라', 4장 '보이지 않는 무게감으로 상대를 사로잡아라', 5장 '사람을 끄는 매력적인 인간이 되는 법'의 총 5장에 담은 내용은 단순히 인간관계의 비법만을 명시한 것은 아니다. 그와 더불어 어쩌면 끊고 맺음에 있어 명확하지 못했던 당신의 처신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당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이로운 관계 설정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묵묵히 참아오던 당신이 갑자기 반기를 들면 상대가 놀라 당신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거나 조종의 강도를 더욱 높이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거절하려고 한다면 무조건 빨리 말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정말로 한계에 달하기 전에 "무리입니다."라고 말하세요."  (p.96)

 

직장, 가족, 모임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상대방에 의해 휘둘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독재 권력에 기생하여 알아서 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들은 간혹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거처럼 굴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이 넘쳐나곤 한다. 자신이 마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성자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남이 알지 못하는 고민이 있을 테지만 달리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발적으로 휘둘림을 당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어쩔 수 없이 휘둘림을 당하던 자의 고민을 다룰 뿐 기꺼운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 자의 고민을 말하지는 않는다. 당선인이 직접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기꺼운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손을 비비는 기자와 검찰, 그들에게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은 욕구가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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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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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당시의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씨는 신년사에서 '우리는 지난해 위기 속에서 미래로 뻗어 갈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냈습니다. 어둠 속에서 새로운 밝음을 찾아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예언이 적중하기라도 한 듯 그해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남서쪽 1.8km 떨어진 해상의 어둠 속에서 천안함의 폭발로 인한 새로운 밝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로 뻗어 갈 새로운 기회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고 하는 게 더 옳을 듯하다. 천안함 생존자들에게는 패잔병이라는 낙인과 함께 PTSD 환자라는 불명예를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진영논리를 더욱 격화시키는 하나의 단가 되었을 뿐이다.


"2010년 3월 26일 저녁 폭침의 순간에, 함미에 있던 장병들은 사망하고 함수에 있던 장병들은 살아남았습니다. 폭침이 발생한 9시 22분, 한 배에서 같은 경계 근무를 하던 이들은 그 시간에 어디 있었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렸습니다. 사망한 46명의 장병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으며 숭고한 희생을 한 존재가 되었지만, 살아남은 58명의 장병은 패잔병이라는 부당한 낙인과 싸워야 했고 폭침 이후 얻은 PTSD로 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서 국가유공자가 되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p.149~p.150)


이 책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의 저자인 김승섭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보건학자로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연구한다고 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트라우마 생존자의 이야기를 광범위하게 다룸으로써 혹시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들이 지금과 같은 사회적 냉대도 받지 않고 진영논리의 도구로 이용되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의 참상 혹은 있는 그대로의 희생으로 우리 사회가 인식하고 희생자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책이 구상된 듯하다.


"트라우마의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답해주고 그 고통을 비하하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싸워주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생존자의 몸속에서 고통의 에너지로 머물던 사건은 언어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p.259)


언제나 그렇듯 사회적 참사는 그것을 이용하려는 자와 진실을 파헤치고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대신 아파하려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적 참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이제나저제나 목을 빼고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참사가 발발하면 희생자들이나 유가족의 아픔은 전혀 돌보지 않은 채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무자비하게 달려든다. 그런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며 그들을 조롱하던 인간성 상실의 철부지들과 천안함 생존자들과 희생자 유가족들의 아픔은 도외시한 채 사고 경위에만 몰두하던 사람들. "너는 어느 편이냐"는 물음이 마치 누군가의 정체성을 인증하는 통과 의례로 자리 잡은 듯한 21세기의 대한민국. 그 냉정함의 끝을 잡고 우리는 삶의 온기를 향한 먼 시선을 던지고 있다.


"용맹한 영웅신화에 갇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이들은 한국의 참전 군인만이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은 소설 『전쟁의 슬픔』을 통해 전쟁이 남긴 상처와 살아남은 사람들의 슬픔과 상실감을 이야기합니다."  (p.212)


사실 이 책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피해자가 등장한다. 피우진 전 보훈처장과 고인이 된 변희수 하사,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피해 근로자들, 공상 신청을 하지 못하는 소방공무원 등은 피해자인 동시에 그들이 속한 조직에서 배척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렇게 조직의 존립을 우선시하고, 자본의 논리를 철저히 따르고 배운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자신의 재해에 안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는 유예된 참사 피해자인 동시에 조직으로부터 언제든 배척될 수 있는 소외 가능자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삶의 기적은 항상 좋은 쪽으로만 발생하지 않기에. 먼 시선으로 딱하게 바라보던 내 이웃이 언젠가 나로 대체될 수 있음을 우리는 가슴에 깊이 담아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이 정치적 선동으로 인한 공허한 충돌이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현실에 뿌리박은 갈등이기를 바란다'는 저자. 그런 진통을 겪지 않고 생겨나는 대안은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는 저자. 저자의 주장은 진보나 보수로 흐르는 게 아니라 피해자의 아픔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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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인물편 - 벗겼다, 세상을 바꾼 사람들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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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피해도 나날이 늘고 있다. 전쟁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내란과 같은 소규모 국지전은 꾸준히 있어 왔지만 러시아와 같은 군사 대국이 직접 병력을 이동하여 타국을 침략하는 행위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인의 시선은 우크라이나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를 벗어나기 위한 피난 행렬과 결사 항전을 다짐하며 총을 들고 나서는 사람들. 미사일 포격과 맞대응으로 늘어만 가는 사상자들. 공습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무너지는 민간인 시설들. 아비규환의 현장을 앞다투어 보도하는 기자들. 이 모든 게 마치 한 편의 전쟁 영화 속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충분히 예측 가능했음에도 전쟁 시나리오의 버튼을 과감히 누른 당사자는 러시아의 통수권자인 푸틴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격동의 21세기를 살아가며 소용돌이 속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격변의 세계사를 현실에서 바라보고 잇는 것이다.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세계사의 변혁을 이끌어온 인물은 일반 대중이 아닌 몇몇의 인물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한두 사람의 결정에 의해 원하지도 않던 전쟁에 휩쓸리게도 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기도 하며, 참혹한 현장에 대한 트라우마를 평생 간직한 채 과거의 기억에서 풀려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위대한 몇몇 사람의 헌신 덕분에 세계인이 누리는 삶의 질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콜럼버스의 발견과 교환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절멸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넣었고, 그 후의 아메리카는 유럽인들이 새롭게 만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유럽의 기술적. 군사적 우위가 아메리카 정복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는 불가피한 역사의 흐름이었다고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정복자인 유럽 중심의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해서 모두 다른 지역으로 건너가 그곳에 사는 이들을 정복하고 파괴하는 침략에 나서느냐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p.176)


교보문고에서 펴낸 <벌거벗은 세계사: 인물편>을 읽게 된 것도 어쩌면 우연에 의한 필연적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뉴스를 통해 보게 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마치 이웃집에서 일어난 가벼운 강도 사건인 양 인식하는 우리의 양심을 나는 역사 속의 인물을 통해 확인해보기로 한 것이다. 책에서는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를 비롯하여 진시황제, 네로 황제, 칭기스 칸, 엘리자베스 1세, 루이 14세,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레옹, 링컨 등 1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우리가 생각했던 인물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의외의 인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 여인들의 공통적인 결말은 무엇일까요? 모두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경계, 즉 남성의 영역에 침범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당시 혁명을 주도했던 이들은 새로운 사회 질서 건설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중심으로 어머니와 여성을 공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부터 분리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새로운 정치적 조직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p.304~p.305)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저서인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개정판에서 '나는 역사의 발전을 예전처럼 확신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에 대한 변론도 길게 풀어쓰면서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구하고 있다. 나는 애시당초 역사의 발전을 믿지 않았다. 지금의 세계가 과거보다 조금 나아진 게 있다면 그건 순전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벌거벗은 세계사: 인물편>은 김대보, 김봉중, 김장구, 김헌, 박구병, 윤영휘, 임승휘, 조관희, 조한욱 등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쓰인 다양한 시각의 인물론인 까닭에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 속 인물의 실체에 대해 반론을 펼 수도 있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설마? 하는 의심의 여지를 아주 감출 수는 없겠지만 보편적 상식에서의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혐오'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 존재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고 차별하는 이들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 문제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링컨이 그랬던 것처럼 차별하거나 편견을 가진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욱 많으며,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p.387)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을 뽑는 지난 선거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조롱과 비난과 악에 바친 저주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이를 부추긴 정치권의 인사들은 한마디 사과조차 없다. 둘로 갈라져 치열하게 더 싸워보라는 얘기인지 아니면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을 못 하냐?'는 의미인지 그들의 침묵을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의미의 '국민 통합'은 이제 앵무새와 같은 언론의 습관성 단어가 된 느낌이다. 죽기 직전까지 혹평과 가짜 뉴스에 시달리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우리 사회의 지나친 혐오는 분풀이용 희생양을 꾸준히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모두 정치인들의 죄과이다. 통합의 가면을 쓴 혐오의 화신들이 오늘도 대한민국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나는 역사의 발전을 결코 확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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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전3권 + 다이어리 1종 세트 (다이어리 3종 중 1종 랜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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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울적하거나 뭔가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한 느낌일 때는 고전을 읽는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그렇게 하는 편이다. 음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클래식 음악을 무작정 듣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기분이 나아지고 삶에 대한 의욕이 솟구치는 것처럼 고전 문학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다른 곳에 마음이 가 있는 상태에서 책을 잡았으니 한동안 집중을 할 수 없는 건 자명할 터, 도입부에서는 언제나 길을 잃고 헤매게 마련이다.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기도 하고, 낯선 인물의 출현에 당혹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 순간 평화의 시간이 찾아오곤 한다. 세상의 소음이나 잡다한 고민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듯한 느낌. 그렇게 나는 투명 유리관 속으로 깊이 침잠하여 세상과 결별한다.


"순진한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이 소년은 두 사람이 알면서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일로부터 그들이 얼마나 벗어났는지 가리키는 나침반과도 같았다."  (1권-p.420)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인생 자체의 덧없음과 의미를 깨닫게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달리 불행하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장대한 서사는 작가의 화려한 문체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세밀한 묘사와 빠른 전개로 인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깊이 빠져들게 한다. 고민거리가 많지 않았던 학창 시절에는 쉬는 시간 틈틈이,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밤늦도록 읽어 단 이틀 만에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톨스토이가 주도하는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나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키티는 이 모든 것을 말로 알게 된 게 아니었다. 슈탈 부인은 키티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마치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듯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넋을 잃고 키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모든 인간의 괴로움을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직 사랑과 신앙뿐이며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하찮은 슬픔은 없다고 단 한 번 언급했을 뿐, 그것도 곧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1권-p.504))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의 오빠인 스테판이 가정교사와 바람이 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사실을 스테판의 아내인 돌리가 알게 되자 부부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오빠의 가정을 되돌리고 차갑게 돌아선 돌리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안나가 나서게 되는데, 결국 안나의 간절하고 진정 어린 설득으로 돌리로부터 용서를 받게 되는 스테판. 목적을 달성한 안나는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총각이었던 브론스키는 안나와의 첫 만남에서 한눈에 반하고 마는데 유부녀였던 안나는 크게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한편, 돌리의 여동생인 키티가 브론스키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스테판의 친구인 레빈 역시 키티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결국 키티는 레빈의 청혼을 거절하고 낙심한 레빈은 시골로 낙향한다.


"레빈은 자기가 요즈음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말한 것이었다. 그는 모든 곳에서 오직 죽음, 혹은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만을 보았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에게는 모든 게 암흑으로 뒤덮여 있는 듯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둠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일이 그 어둠 속에서 자기를 이끌어 줄 유일한 끈이라고 느꼈고, 온힘을 다해 그것을 붙잡고 그것에 매달렸다."  (2권-p.252)


꺼져가는 애정의 불꽃이 되살아난 것은 한 무도회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무도회에서 브론스키는 키티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안나에게 끊임없는 애정공세를 펼친다. 안나는 열정적인 브론스키의 애정공세를 몇 번 거절하다가 결국 넘어가고 만다. 위험한 밀회를 지속하던 안나는 남편인 알렉세이와 아들을 등지고 브론스키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안나는 알렉세이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완벽주의자였던 알렉세이는 자신의 이력에 이혼 경력이 남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한편, 레빈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뒤늦게 깨달은 키티는 그와 결혼한다. 시간이 흘러 브론스키의 아이를 갖게 된 안나는 자신의 처지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남편과의 이혼도 성사되지 않았고, 아들 알료사를 보고 싶었지만 만날 수도 없었으며, 설상가상 브론스키의 사랑도 점점 식어가는 듯 의심하게 되었다.


"그녀는 물에 들어가려고 준비하다가 막상 물속에 들어갈 때와 흡사한 감정에 사로잡혀 성호를 그었다. 그러자 성호를 긋는 익숙한 동작은 그녀의 마음속에 잇던 처녀 시절과 어린 시절으 온갖 기억을 끌어냈다. 그리고 갑자기 온통 그녀를 뒤덮고 있던 암흑이 흩어지더니, 한순간 삶이 온갖 밝은 과거의 기쁨과 함께 그녀의 눈앞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다가오고 있는 두 번째 차량의 바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3권-p.478)


안타깝게도 안나는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에 몸을 던져 비참하게 삶을 마감한다. 브론스키의 마음이 변했다고 판단한 안나는 그의 변심에 대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응징하려 한 것이다. 그렇게 끝날 것처럼 보였던 소설은 레빈과 키티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덤처럼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대선이 끝난 대한민국의 국민들 중 절반은 서로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또 다른 절반은 서로 비슷한 이유로 불행하다. 그리고 안나 카레니나가 살았던 그 시절의 러시아는 지금 전쟁이라는 끝없는 절망으로 불행하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레빈과 키티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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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 - 읽고 쓰기에 대한 다정한 귓속말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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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그저 읽기만 하던 사람이 글을 쓰는 차원으로 진전시킨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몇 시간째 붓방아만 찧으며 글짓기 숙제를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들 앞에서 "나도 소싯적에는 글발깨나 날렸다."며 과장된 몸짓으로 허풍을 떠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이겠습니다만, 막상 펜을 들고 형식에 맞춰 문장을 쓰고 기, 승, 전, 결의 구성을 갖춰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창 시절 이후로도 꾸준히 독서를 하고 일기와 같은 짧은 글일망정 간간이 글을 써오던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또 현실을 기억할 때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일은 절대 없어요. 기쁜 일은 크게 확대하고 슬픈 일은 조그맣게 축소하는 등, 자기 마음의 형태에 맞게 변형해서 기억합니다. 현실을 이야기로서 자긴 안에 쌓아가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람은 살아 있는 한 누구나 이야기를 필요로 하며, 이야기의 도움으로 현실과 그럭저럭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작가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 누구든 나날의 일상생활 속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언어를 통해 의식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 자신의 역할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p.28)


오가와 요코의 에세이집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은 '이야기'에 대한 세 번의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강연을 '활자로 남길 예정이 아니었고, 그 자리에서 한 번으로 끝나는 얘기였'지만 최종적으로 출판을 결심하게 된 것은 '이 책을 보신 분들이 이야기의 매력을 다시금 확인하고 이야기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해서, '책을 읽는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 하고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밝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작가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쓰기를 권하기보다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부 '이야기의 역할'에서는 개개인의 삶에서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말하면서 독서의 유용성을 논했다면, 3부 '이야기와 나'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자신의 독서 이력을 하나씩 들춰 보고 돌아보면서 어떤 책이 자신의 인생관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들려준다. 그리고 2부 '이야기가 태어나는 현장'에서는 20여 년 전 대학에서 문예과에 입학하여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던 작가가 이제는 소설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되기까지 그 과정을 술회하고 있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저 자신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어요.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소설을 썼습니다. 20년 정도 쓰다 보니 점차 제 자신이 그렇게 물고 늘어질 만큼 대단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일단 저 자신을 떠나, 전에는 상상도 예상도 하지 못했던 넓은 장소에 서서 세계를 관찰하는 자세를 지니자, 살아 있는 인간도 죽은 인간도, 저 자신도 타인도, 동물도 풀도 꽃도 모두, 온갖 것이 고루 평등하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매몰되지 않는 자세로 쓰자고 생각하게 된 것이 불과 1, 2년 전의 일입니다."  (p.103)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잘 알려져 있고, 세계 평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소설가 오가와 요코. 그러나 지금의 위치에 오른 그녀도 책을 좋아하고 소설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 터, 자신의 인생관에 영향을 미쳤던 두 권의 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파브르 곤충기》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입니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으면서는 드넓고 위대한 세상에서 자신이 작디작은 일부라는 생각을 하였고,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를 통해서는 자신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이야기라면, 역시 너무 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지요. 너, 이 길로 가면 안 되지, 네가 갈 길은 이쪽이잖아, 하면서 읽는 이를 억지로 끌어당기는 이야기는 이야기의 진정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읽는 이가 피로해질 뿐이죠. 읽는 이가 이야기의 견고한 윤곽에 맞추는 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어떤 사람의 마음에도 다가갈 수 있으리만큼 넉넉하고 유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도착 지점을 명기하지 않고, 방황하는 독자와 함께 이리저리 헤매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군요."  (p.149)


우리는 종종 읽는 이와 쓰는 사람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습관적으로 책을 읽고 리뷰든 일기든 쓰는 일에는 마냥 게으르기만 한 나와 같은 일차원의 독서가에게 오가와 요코의 성실함과 겸손함, 그리고 읽고 쓰기의 즐거움을 담은 책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일상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책에서 발견하곤 합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다지만 읽고 때로 발견하면 그 또한 즐거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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