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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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당시의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씨는 신년사에서 '우리는 지난해 위기 속에서 미래로 뻗어 갈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냈습니다. 어둠 속에서 새로운 밝음을 찾아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예언이 적중하기라도 한 듯 그해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남서쪽 1.8km 떨어진 해상의 어둠 속에서 천안함의 폭발로 인한 새로운 밝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로 뻗어 갈 새로운 기회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고 하는 게 더 옳을 듯하다. 천안함 생존자들에게는 패잔병이라는 낙인과 함께 PTSD 환자라는 불명예를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진영논리를 더욱 격화시키는 하나의 단가 되었을 뿐이다.


"2010년 3월 26일 저녁 폭침의 순간에, 함미에 있던 장병들은 사망하고 함수에 있던 장병들은 살아남았습니다. 폭침이 발생한 9시 22분, 한 배에서 같은 경계 근무를 하던 이들은 그 시간에 어디 있었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렸습니다. 사망한 46명의 장병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으며 숭고한 희생을 한 존재가 되었지만, 살아남은 58명의 장병은 패잔병이라는 부당한 낙인과 싸워야 했고 폭침 이후 얻은 PTSD로 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서 국가유공자가 되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p.149~p.150)


이 책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의 저자인 김승섭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보건학자로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연구한다고 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트라우마 생존자의 이야기를 광범위하게 다룸으로써 혹시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들이 지금과 같은 사회적 냉대도 받지 않고 진영논리의 도구로 이용되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의 참상 혹은 있는 그대로의 희생으로 우리 사회가 인식하고 희생자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책이 구상된 듯하다.


"트라우마의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답해주고 그 고통을 비하하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싸워주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생존자의 몸속에서 고통의 에너지로 머물던 사건은 언어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p.259)


언제나 그렇듯 사회적 참사는 그것을 이용하려는 자와 진실을 파헤치고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대신 아파하려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적 참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이제나저제나 목을 빼고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참사가 발발하면 희생자들이나 유가족의 아픔은 전혀 돌보지 않은 채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무자비하게 달려든다. 그런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며 그들을 조롱하던 인간성 상실의 철부지들과 천안함 생존자들과 희생자 유가족들의 아픔은 도외시한 채 사고 경위에만 몰두하던 사람들. "너는 어느 편이냐"는 물음이 마치 누군가의 정체성을 인증하는 통과 의례로 자리 잡은 듯한 21세기의 대한민국. 그 냉정함의 끝을 잡고 우리는 삶의 온기를 향한 먼 시선을 던지고 있다.


"용맹한 영웅신화에 갇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이들은 한국의 참전 군인만이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은 소설 『전쟁의 슬픔』을 통해 전쟁이 남긴 상처와 살아남은 사람들의 슬픔과 상실감을 이야기합니다."  (p.212)


사실 이 책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피해자가 등장한다. 피우진 전 보훈처장과 고인이 된 변희수 하사,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피해 근로자들, 공상 신청을 하지 못하는 소방공무원 등은 피해자인 동시에 그들이 속한 조직에서 배척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렇게 조직의 존립을 우선시하고, 자본의 논리를 철저히 따르고 배운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자신의 재해에 안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는 유예된 참사 피해자인 동시에 조직으로부터 언제든 배척될 수 있는 소외 가능자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삶의 기적은 항상 좋은 쪽으로만 발생하지 않기에. 먼 시선으로 딱하게 바라보던 내 이웃이 언젠가 나로 대체될 수 있음을 우리는 가슴에 깊이 담아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이 정치적 선동으로 인한 공허한 충돌이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현실에 뿌리박은 갈등이기를 바란다'는 저자. 그런 진통을 겪지 않고 생겨나는 대안은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는 저자. 저자의 주장은 진보나 보수로 흐르는 게 아니라 피해자의 아픔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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