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인물편 - 벗겼다, 세상을 바꾼 사람들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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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피해도 나날이 늘고 있다. 전쟁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내란과 같은 소규모 국지전은 꾸준히 있어 왔지만 러시아와 같은 군사 대국이 직접 병력을 이동하여 타국을 침략하는 행위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인의 시선은 우크라이나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를 벗어나기 위한 피난 행렬과 결사 항전을 다짐하며 총을 들고 나서는 사람들. 미사일 포격과 맞대응으로 늘어만 가는 사상자들. 공습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무너지는 민간인 시설들. 아비규환의 현장을 앞다투어 보도하는 기자들. 이 모든 게 마치 한 편의 전쟁 영화 속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충분히 예측 가능했음에도 전쟁 시나리오의 버튼을 과감히 누른 당사자는 러시아의 통수권자인 푸틴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격동의 21세기를 살아가며 소용돌이 속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격변의 세계사를 현실에서 바라보고 잇는 것이다.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세계사의 변혁을 이끌어온 인물은 일반 대중이 아닌 몇몇의 인물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한두 사람의 결정에 의해 원하지도 않던 전쟁에 휩쓸리게도 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기도 하며, 참혹한 현장에 대한 트라우마를 평생 간직한 채 과거의 기억에서 풀려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위대한 몇몇 사람의 헌신 덕분에 세계인이 누리는 삶의 질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콜럼버스의 발견과 교환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절멸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넣었고, 그 후의 아메리카는 유럽인들이 새롭게 만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유럽의 기술적. 군사적 우위가 아메리카 정복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는 불가피한 역사의 흐름이었다고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정복자인 유럽 중심의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해서 모두 다른 지역으로 건너가 그곳에 사는 이들을 정복하고 파괴하는 침략에 나서느냐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p.176)


교보문고에서 펴낸 <벌거벗은 세계사: 인물편>을 읽게 된 것도 어쩌면 우연에 의한 필연적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뉴스를 통해 보게 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마치 이웃집에서 일어난 가벼운 강도 사건인 양 인식하는 우리의 양심을 나는 역사 속의 인물을 통해 확인해보기로 한 것이다. 책에서는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를 비롯하여 진시황제, 네로 황제, 칭기스 칸, 엘리자베스 1세, 루이 14세,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레옹, 링컨 등 1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우리가 생각했던 인물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의외의 인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 여인들의 공통적인 결말은 무엇일까요? 모두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경계, 즉 남성의 영역에 침범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당시 혁명을 주도했던 이들은 새로운 사회 질서 건설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중심으로 어머니와 여성을 공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부터 분리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새로운 정치적 조직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p.304~p.305)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저서인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개정판에서 '나는 역사의 발전을 예전처럼 확신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에 대한 변론도 길게 풀어쓰면서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구하고 있다. 나는 애시당초 역사의 발전을 믿지 않았다. 지금의 세계가 과거보다 조금 나아진 게 있다면 그건 순전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벌거벗은 세계사: 인물편>은 김대보, 김봉중, 김장구, 김헌, 박구병, 윤영휘, 임승휘, 조관희, 조한욱 등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쓰인 다양한 시각의 인물론인 까닭에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 속 인물의 실체에 대해 반론을 펼 수도 있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설마? 하는 의심의 여지를 아주 감출 수는 없겠지만 보편적 상식에서의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혐오'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 존재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고 차별하는 이들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 문제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링컨이 그랬던 것처럼 차별하거나 편견을 가진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욱 많으며,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p.387)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을 뽑는 지난 선거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조롱과 비난과 악에 바친 저주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이를 부추긴 정치권의 인사들은 한마디 사과조차 없다. 둘로 갈라져 치열하게 더 싸워보라는 얘기인지 아니면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을 못 하냐?'는 의미인지 그들의 침묵을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의미의 '국민 통합'은 이제 앵무새와 같은 언론의 습관성 단어가 된 느낌이다. 죽기 직전까지 혹평과 가짜 뉴스에 시달리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우리 사회의 지나친 혐오는 분풀이용 희생양을 꾸준히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모두 정치인들의 죄과이다. 통합의 가면을 쓴 혐오의 화신들이 오늘도 대한민국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나는 역사의 발전을 결코 확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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