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느껴지는 봄바람에 비해 햇살은 무척이나 따사로운 하루였습니다. 매화나무의 꽃망울이 부풀기 시작하고 옛 애인의 편지처럼 국토의 끝 멀리 남쪽에서 싱그러운 꽃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봄바람을 타고 그 향기마저 전해지는 듯하여 가슴은 둥실 날아갈 듯 들뜨는 요즘입니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던 휴일 오후에도 베란다 창 너머 아련한 상념의 세계를 향해 나도 모르게 손을 뻗고 닿을 수 없는 그리움에 한동안 넋을 놓았던...
3월을 준비하던 2월 하순은 참으로 바쁜 날들이었습니다. 개강 준비를 하는 아들을 도와 대학가 주변에 세를 얻은 방으로 이삿짐을 날랐었고, 매년 이맘때면 준비해야 하는 사무실의 여러 서류와 준비물들, 이런저런 상담과 각종 모임 등으로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른 채 정신없이 흘려보냈던 것입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더러 "그래도 바쁜 게 좋지." 인사치레의 말들을 던지곤 합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어제는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이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나 나중에 여러 언론을 통해 전해 듣게 되는 사람들이나 대통령의 기념사는 주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을 듯합니다. 그런 까닭에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듯 보였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로부터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라고 했던 대통령의 말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강자는 언제나 약소국을 침범해도 된다는 뜻이겠지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범하는 것도, 히틀러가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침범하여 온갖 악행을 저지른 것도 모두 용서가 되는 일이며, 약소국의 국민들은 그 모든 게 자신들의 불찰일 뿐이며 침략자인 그들을 원망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일 것입니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라는 대목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우리의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일본을 향한 끝없는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그들은 요지부동 달라진 게 없는데 대통령 혼자 그렇게 믿고 있는 듯하여 딱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날짜마저 흐릿해져 가는 날이 있습니다. 8월 29일! 1910년 8월 29일 을사오적 중 한 명이었던 이완용과 일제의 데라우치 통감 사이에 조인되어 발표되었던 경술국치. 우리는 주권을 잃고 일제의 식민지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 대통령의 논리라면 멀지 않은 미래에 경술국치일 또한 국가 기념일로 변해야 마땅할 듯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부끄러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