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지옥 해방일지 - 집안일에 인생을 다 쓰기 전에 시작하는 미니멀라이프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더운 여름의 시작이었던 7월 중순의 어느 날, 2008년 11월생이었던 나의 냉장고가 이별을 고했다. 냉장고 사망 소식을 알리기 위해 온 기사님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나만은 아닌 것 같았다. 냉장고가 기사님이 오자 전구가 깜빡이더니 꺼져버렸다. 워낙 노후한 냉장고라 부속품을 구한다고 해도 새로 구매하는 것을 권한다며 의자가 사망 선고를 하듯 냉장고의 출생 연도를 말하며 플러그를 뽑았다.

​

​

냉장고가 사망할 당시 하필 삼성에서 무슨 세일 행사를 했는지 삼성 냉장고는 배송 기간이 느렸고 결국 빠르게 올 수 있는 냉장고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것도 삼일이나 걸린다고 하니 냉동고에서 녹아내리는 음식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어찌되었건 우선 주문을 하고 냉장고가 오길 기다리며 살려 낼 수 있는 음식들을 구해야 했다. 이것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더 악 조건 같았다. 냉동고에 있는 음식들을 꺼내서 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굽고 찌고 삶고 볶았다. 800리터나 되는 냉장고에 정말로 많은 음식이 있었다. 냉동고에서 꺼내지는 음식들은 정말이지 화수분 같았다. 꺼내고 꺼내도 계속 나왔다. 회복 불가능한 음식들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졌다. 그걸 보면서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됐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서 열심히 이렇게 버리고 있는 나의 삶이 어찌나 후회가 되던지. 그때 알게 된 <살림지옥 해방일지>를 읽으면서 늘 내 발밑에서 시작하자고 조르는 미니멀리즘을 다시 떠 올리게 되었다.

​

​

저자가 책을 냈다는 것은 미니멀리즘을 하고 있는 어떤 유투브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미 내가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몇 년 전 SBS 스페셜에서 본 사람이었다. 50에 아사히신문사를 그만두고 죽을 때까지 회사에 들어가기 않고 죽을 때까지 살아보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는 얘기에 그 단호한 결심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정말 미니멀한 생활에 당황스러웠었다. 집에는 전기만 들어오고 가스를 신청하지 않아서 야외용 버너를 사용하고 있었다. 텔레비전도 없고 냉장고, 세탁기도 없다. 손빨래를 하고 냉장고에 넣을 음식을 만들지 않고 무를 잘라 말리며 살고 있는 50세의 여성. 큰일이나 밖을 나가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한 달 정도는 너끈하게 버틸 만큼의 식량이 냉장고에 있는 나와는 너무 다른 삶이다.

​

미니멀 하게 사는 혼자의 삶이지만 그녀에게도 집안일은 있는 것이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주변 정리를 하는 것은 모두 집안일이며 노동이다. 그런 집안일에서 해방하고자 하는 그녀의 삶에서 말하는 집안일은 고된 노동이나 나쁜 것은 아니었다.

​

​

“집안일이란 인생에서 돌고 도는 악몽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접대’라는 것을. 집안일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 자신을 소중히 하는 것,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자신만큼은 스스로를 분명히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P29

​

​

나를 위해서, 내가 있는 곳을 인정하며 말끔하게 살아가는 삶이니 그 집안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다는 그녀의 말에, 그동안 미뤄두었던 몇몇 개의 집안일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면 분명 그것들은 처리 되었어야 하는 것들이었는데 나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공개 했었는데, 그건 일을 다니지 않는 그녀라서 가능한 일정이다. 아침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피아노 연습을 하며 근처 카페에 가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다시 다른 카페로 가서 일을 하고 오후 다섯 시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식사 후 벗어 놓은 옷들을 손빨래를 하고 10시에 잠을 자는 일상이다. 직장이 없기에 가능한 그녀의 하루가 한번은 부러운 순간이긴 했다.

그녀가 이렇게 단조로워 보이는 일상에서 집안일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오후 일정에 있는 빨래 밖에 없어 보였다. 그녀가 말하는 나를 맞이하는 집안일이 이렇게 없어도 되는 것일까?

​

​

“우선은 뭐니 뭐니 해도 이거다.

집안일이 편해지면 생활비가 놀라울 정도로 줄어든다!“ P96

"간소한 살림은 사실 궁극의 노후대책이기도 하다.“ P103

​

​

나의 냉장고를 생각해 보자. 나의 냉장고에는 정말 많은 냉동 음식이 들어 있었고 언제 먹을지 모르는 고기들이 소분되어 있었고 버터도 소분 되어 있었고, 언제 받았는지 알 수 없는 떡과 빵들도 들어 있었다. 이 음식들을 사느라 많은 돈이 들었지만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먹어 치울 것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것들을 사지 않았다면 나는 세 시간이나 걸려서 냉장고 정리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소비를 줄이는 법, 그것은 집안일도 줄여주는 일이며 나의 노후 통장에 일정 금액을 차곡차곡 쌓아 놓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저자는 50세에 퇴사를 하며 비싼 월세를 내는 집을 떠나 도시와 떨어진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많은 것들을 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미니멀 라이프가 그녀의 삶을 다시 바꿨다고 했다. 저축하는 삶보다 쓰지 않는 삶을 선택한것, 그것이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했다. 물건이 적어지면 청소도 쉽고, 집안일의 노동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어떤 이가 집안에 물건이 많으면 머릿속에서도 수많은 물건들을 떠 올리기 때문에 물건이 없을수록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으며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인생을 다시 살아보고 싶다면 주변 정리, 즉 물건을 버리고 간소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새로운 삶을 살기엔 참, 많은 변화가 필요할 만큼의 살림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

주방 용품도 많이 버리고 심지어 화장품들도 많이 버렸지만 그녀는 그 비싼 화장품들을 사용하지 않아도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얘기에 웃음이 났었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지고 싶다는 생각에 바르게 된 많은 크림과 세럼들이 사실 필요 없는 물건 중에 하나가 아닐까. 늙으면 늙는 대로 나이를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 그런 것에 투자하며 살아가지 말자고 하지만 역시 그 부분은 좀 나와는 다른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예뻐지고 싶다.

​

​

“물건이 가져올지 모르는 가능성을 버림으로써 자기 안의 새로운 가능성을 불러온다. 그것이 다시 태어나는 체험이다. 막다른 곳처럼 보여도 세계에 분명히 바람구멍을 열고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행위다.” P239

​

​

살림지옥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물건 버리기에 있지만, 그녀는 가장 버리기 힘들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변기 솔이었다. 손으로 닦아내야 하는 변기 청소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내 몸에서 나왔던 것을 씻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는 부분이 나는 제일 인상 깊었다. 사실 나도 끝까지 버리지 못할 것이 아마도 변기 솔이지 않을까 싶다.

​

매일해도 티가 나지 않는 살림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많은 부분은 와 닿지 않는 것들도 있었지만, 물건을 줄여나가는 방법이나 소비를 줄이는 것들에 관련한 부분은 많은 도움이 됐다. 아마 나의 냉장고와 이별이 없었다면 나의 소비가 어떻게 진행 되고 있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을 테고, 고민 없이 냉장고는 다시 포화 상태가 되었을 것 같다. 지금 나의 냉장고는 아주 날씬한 속을 가지고 있다. 그 상태로 오랫동안 유지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렇게 나도 일정부분의 살림지옥에서 벗어나고 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불교에 진심 - 삶에서 미끄러져도 그곳이 부처님 손바닥 위라면 ㅣ 진심 시리즈 2
박사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이 진심이든 그 순간은 다 옳았다 [불교의 진심_ 박사]

​

​

​

한때 좋아했던 아이돌에 빠져 많은 굿즈들을 샀던 적이 있었다. 나란 인간은 중독에 쉽게 빠지기 때문에 한번 뭔가 좋아지면 적당히가 없다. 하지만 나름 냉철하게 그 중독에서 멈춤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쉽게 흥미를 잃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진심으로 대했지만 그것이 진심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불교에 진심으로 빠진 저자의 얘기에 내가 좋아 했던 것들은 정말로 진심이 아니라 그저 흥미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말하는 그 빠짐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다고 했다.

​

​

“ 누군가 말했다. 최애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와서 심장을 때리며 ‘오늘부터 내가 네 최애다’라고 하는 것이라고. 덕통 사고는 말 그대로 ‘사고’다. 장르를 스스로 선택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 P7

​

​

​

이런 심장을 아프게 했던 덕질을 아이돌 스티커를 모으는 것 따위로 나도 해 봤다고 말하기 민망한 일이다. 덕질을 하기 시작하면서 저자가 불상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에서 나의 덕질이 하찮아졌다. 저자의 물욕이 넘치는 그 순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부분은 불상을 모으는 부분이었다. 정말 불교에 진심이시구나. 물론 우리가 아는 그 커다란 불상은 아니었지만 집안에 불상을 들이는 일은 대부분 절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저자가 덕질하게 된 불교에 나도 다소 덕질을 했던 부분이 있다. 가끔 지방 여행을 가서 사찰을 찾게 되면 꼭 삼배 절을 하고 온다. 그 고즈넉한 고요가 정말 좋은 곳은 사찰의 만이 주는 미덕이 아닐까 생각된다. 템플스테이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지만 사찰만 가면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지곤 한다. 그리곤 가끔 띠별로 있는 염주를 사오기도 한다. 어찌 보면 나도 불교에 나름 덕질을 하고 있었던것 같다. 물론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저자의 사소한 이야기가 한동안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런 귀여운 덕질 인생이라니 참 즐거운 삶이 아닐까.

​

​

​

대부분의 취미 생활은 덕질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일이 참 좋아서 시작한 것들이 내게는 취미 생활이 되었고 덕질이 되었다. 한때 나는 재봉틀로 뭐든 만들고 싶었다. 처음 작은 소품을 만들면서 이후 옷을 만들게 되었다. 애정 하는 옷인데 낡아서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티셔츠를 모두 해체하고 옷본을 떠 봤다. 그리고 그 옷본을 시작으로 셔츠, 원피스, 티셔츠를 만들었고 입고 다녔다. 지인들에게 내가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기성품으로 알고 있었다.

​

​

옷을 만드는 일은 돈이 적게 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취미로 시작한 재봉틀은 원단과 부자재를 사게 되고 그 부자재를 사용하려면 기구가 필요했다. 단추를 사게 되면 한 가지만 사지 못하고 원단에 맞춰 여러 개를 맞춰야 했고, 원단에 맞춰 색깔별로 재봉실도 필요했다. 원단을 박을 재봉틀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단 마감을 해줄 오버로크 기계도 필요했다. 그렇게 서재 절반을 차지하게 된 나의 덕질 인생의 마지막은 아마도 그 재봉일 것 같지만 아니다. 나의 덕질 인생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책 사는 일이다. 덕질에 진심을 쏟는 일은 아마도 없어지지 않을것만 같다. 저자의 불교에 진심을 낳아 시작한 덕질 인생이 행복해 보인다. 책을 사는 나의 덕질도 나쁘지 않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님아, 그 책을 다 가져가지 마오.



이사를 몇 번 하면서 견적을 보러 오신 분들은 나의 서재를 보면서 늘 같은 질문을 하셨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지금은 이사 오기 전, 천 오백권 정도의 책을 처분했고, 이사 와서도 오백권 정도의 책을 처분했지만 여전히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다. (소장하는 것이 맞다. 못 읽거나 안 읽은 책들이 절반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심정) 완전 유명한 파워 블로거는 아니었지만 네이버 블로그를 활발하게 할 동안 출판사에서 보내는 책이 일 년에 150권이 넘었다. 그렇게 쌓이고 사들인 책들이 삼면을 다 채우고도 넘쳐나는 책들이니 집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나 견적을 보러 오신들은 깜짝 놀라곤 하신다. 그러면서 물어보셨던 그 질문들. 뭐 하시는 분이세요?



책들이 너무 많기는 하죠...애매한 대답을 하니 견적 오신분들은 무거운 양장본의 동화책들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좀 가벼운 편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내시고는 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인들이 내게 너무 쉽게 하는 말이 있다.


“다 버리고 가”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애지중지 모아 놓은 컬렉션을 볼 때마다 흐뭇한 나의 모습을 모르고 있는 이들은 이런 얘기를 쉽게 하는 것 같다. 내 책장에 책 한 권 선물하지 않은 이들이 쏟아 놓는 얘기에 가끔 무례한 말들이라는 생각이 들고 화가 날 때가 있다.



맥시멀 라이프에서 미니멀을 꿈꾸었지만 포기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책들 때문이었다. 책들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집에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것도 아님에도 나는 진열하고 있는 이 책들을 버릴 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사 놓고 읽지 못하고 쌓아 놓은 책들이 많다는 것도 있었다. 물건을 쌓아 놓고 버리지 못하는 호더는 아니지만 가끔은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할때도 있었다. 그러다 많은 책들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들을 읽으면서 위로 받았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는 이번생에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방치된 책들은 이사와 함께 다시 고민꺼리가 되었다.

서재가 꼭 있어야 한다며 나는 세 개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고 부동산 사장님은 조건에 맞게 집을 찾아주다가 집에 물건이 많냐고 물으셨고 책이 얼만큼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똑같은 말을 하셨다.



“아휴, 다 버리고 오세요”



때로는 아껴 읽으며 쌓아 놓은 책도 있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을 시리즈로 모아 놓고 장식하고 바닥에 누워 책장에 제목들을 읽으면서 좋았던 내용들도 떠 올리고 가끔은 소식이 뜸한 작가의 후작들을 기다리며 전작을 다시 읽어 갈때도 있었던 나의 책들이었다. 큰 의미 없는 책들을 골라내고 중고로 팔거나 더 이상 팔지 못하는 책들은 분리수거함에 넣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나의 선택이고 나의 결심이고 나의 결단인 것이다. 타인이 나의 무지막지한 책들에 대하 팔거나 버리라고 말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제발 내 책들은 내가 알아서 할 권한을 줬으면 좋겠다.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는 책들에게 나도 안경을 고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낳았던 그 책!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yamoo 2026-08-31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얘기인줄 알았어요...^^;;

오후즈음 2026-08-31 21:37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에 계신 분들 대부분 저랑 비슷하실것 같아요 ㅎㅎ
 

그렇게 쉽게 핸드폰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시 이사 갈 일이 생겼다. 각자의 집에서 살고 있었던 엄마와 나는 이번에 전세금 인상을 통해 집을 합치기로 했다. 그동안 전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7호선 라인으로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전 직장이 없어졌기에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이유가 없어졌다. 나는 인프라 좋은 이곳을 옮기고 싶지는 않지만, 친구와 직장이 있는 엄마가 이동 할 수 없으니 내가 거주지를 옮기기로 합의를 한 후 집을 보러 전철에 올랐다. (작년에 자동차를 폐차 한 후 아직 자동차를 사지 않고 있어 2시간 30분 거리를 지하철로 달려야 한다)



상봉역에서 경춘선까지 환승 후 출발까지 15분 남았다는 것을 확인 했다. 또 먼 길을 달려간다는 생각에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 그날 유독 많은 짐이 있었다. 조카들에게 줄 물건들을 잔뜩 가져가느라 분주했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화장실 선반에 잠시 올려놓았고 나는 그걸 잊고 나왔다. 정말 30초 밖에 안됐다. 커피를 한잔 들고 타야겠다고 생각했고 주문을 하려다 보니 핸드폰이 없다는 생각에 화장실로 다시 달려갔다. 그 순간이 정말 30초에 불과 했다. 내가 썼던 칸의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문을 두드려 핸드폰의 유무를 물었는데 안에 계신 아주머니는 핸드폰이 없다고 했다. 혹시 나의 기억이 틀린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봐도 나의 핸드폰은 없었다.



춘천행이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부동산 사장님과의 약속 시간 때문에 지하철에 올랐다. 허망한 마음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앉아 있는데 현실 같지 않는 나의 시간이 와 닿지 않는 순간이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핸드폰의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 나도, 나의 핸드폰이 있었다면 그것을 보며 즐겁게 있었을 텐데. 이런 때를 대비해서 가방에 넣어 온 책을 꺼냈다. 단 한글자도 읽혀지지 않았다. 젠장. 이 책을 가방에 넣지 않았다면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을 것이고 또 그렇다면 핸드폰은 잃어버리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가방에 책을 넣어 다니는 행위는 앞으로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지하철에서 내렸다.




동생네 집에 도착 후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얘기했다. 3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동생 핸드폰으로 우선 분실 신고를 한 후 집을 보러 다니는데 멘탈이 나가 있는 상태라 집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핸드폰을 잃어버린 후, 많은 연락처들, 사진들, 일정들-특히 병원 일정 기록들, 그리고 오늘 전세계약을 한다면 바로 입금할 돈이 들어 있는 은행 어플등등 눈앞에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머릿속이 온통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께서 말씀해 주신 총 4곳의 집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동생 집으로 돌아가 소파에 누워 조카들 핸드폰을 돌아가며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엄마까지 오셔서 전화를 돌아가며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 한견에 쌓인 결정의 순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연락처는 핸드폰 바꾸기 전의 연락처를 이동시킨다. 핸드폰에서 결제 될 수 있는 것들은 모두....정지 한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다시 전화를 걸어 본 시간은 오후 6시였다.



전화를 받았다.


나의 전화기는 오전 11시에 나와 헤어져 오후 6시에 구리 역무실에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30분의 시간이 지옥 같았다가 환희를 줬다가 왜 구리에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가 그렇게 나와 다시 만났다. 어디 하나 깨진 것 없이 탁자에 있는 핸드폰을 손에 쥔 순간 아, 이게 뭐라고 참...한숨이 나왔다가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며 알게 되었다. 분실신고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핸드폰은 데이터를 그 어떤 순간에도 허락하지 않는다는것....카톡도 전송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무료 사용인 와이파이에서는 그 어떤 것도 다 수용하여 모든 어플을 열어 준다는 것.



이제는 핸드폰이 내 손에 들어 왔지만 와이파이 없는 곳에서는 유투브도 틀어지지 않으니 이제는 무겁게 가방에 넣어 온 책을 꺼내 읽기로 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가슴 한편이 모두 검게 칠해져 있었다. 가방속을 무겁게 만들었던 그 책은 일주일이나 걸려 다 읽을 수 있었다. 마음 한켠이 무거우니 이토록 뭘 읽는 다는 것이 힘들었다.



 
















  이 책을 다 읽기가 이토록 어려줬던 이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망고 2026-08-24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핸드폰 찾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도 내내 가슴 졸였어요 핸드폰 꼭 찾아야 할텐데 하면서요🤣 액땜하셨으니 이사하면 좋은 일만 가득하실 겁니다😄

오후즈음 2026-08-25 00: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ㅜㅜ 정말 너무너무 힘든 7시간이었습니다. 액댐했으니 좋은일은 많아 지겠죠? 그랬음 좋겠습니다.

cyrus 2026-08-25 0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폰 찾아서 다행입니다. 저는 술 마시고 새벽에 택시를 타서 집에 가다가 폰을 분실한 적이 있어요. 겉옷 주머니 안에 있는 폰이 택시 뒷좌석에 떨어진 것 같은데, 전화를 몇 번 했는데도 안 받았어요. 결국 찾지 못해서 폰을 새로 샀어요. 폰 없어진 사실을 알았을 때 술이 확 깼습니다. 하필 폰이 없어진 그날이 새해 첫날이라서 시작이 좋지 않았어요.. ㅎㅎㅎ

오후즈음 2026-08-25 09:20   좋아요 0 | URL
이런 ㅠ.ㅠ 저는 택시타고 버버리 코트에서 지갑이 빠져 잃어버린적이 있었습니다. 그 지갑은 저의 첫 명품 까르띠에 지갑이었습니다. 흑흑....심지어 그때 돈도 50만원 이상 들어 있어서 정말 한달을 울었던 기억.
사이러스님은 새해 첫날 잃어버려서 아마도 그해의 모든 액댐을 하신것 아니실지요...그쵸? ㅎㅎ

잠자냥 2026-08-25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조마조마 끝 다행입니다!

오후즈음 2026-08-30 19:2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넵 찾아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ㅜㅜ

자목련 2026-08-26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사히 찾아서 다행이네요. 이사도 잘 하시길 바라요!

오후즈음 2026-08-30 19:26   좋아요 0 | URL
감사해여~~ 정말 파란만장한 8월이었습니다
 
모두의 연수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3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만의 연수가 되길 [모두의 연수- 김려령]

​

​

​

열다섯의 연수는 명도단의 유명한 아이다. 어린 시절 부모 밑이 아닌 이모에게 키워진 아이. 한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연수는 그렇게 키워졌다. 이모의 시댁, 그러니까 사돈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슈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몫을 잘 챙기며 살아가고 있다. 연수를 그렇게 만든 것은 모두 자상한 어른들의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나는 한동안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고민이 된 적이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누군가를 위해 애써 주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미로 같은 명도단의 골목에서 길을 한 번도 잃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연수가 길을 잘 찾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연수를 잘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나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유, 자신을 낳다가 죽은 엄마를 대신해서 키워준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을 위해서 연수는 모두의 연수가 되었고 그렇게 열다섯이 되었다.

​

​

문득 나의 열다섯은 어떤 삶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정말로 까마득한 옛날이라 생각이 잘 나진 않지만 나의 열다섯은 암흑기 같은 시간이었다. 자신의 생부를 알 수 없었던 연수가 느꼈던 그 불안과 공포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 깊이가 서로 달랐을 뿐. 연수의 친구들도 그랬다. 모두 자시만의 우물에 깊은 비밀 하나쯤은 던져 놓고 살고 있었다.

​

나에게는 그때 시작된 첫사랑의 열병에 엄청 힘들었던 시기였었다. 나와 사귀었던 남친이 나도 모르게 본인만 겨울 캠프를 신청하고 그곳에서 바람이 났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건 어느 유투브에서 나오는 그런 내용일까 싶지만 2000년도도 아닌 90년도에도 있었던 상투적 사랑싸움이 한창이었다. 남친은 캠프서 여자 친구가 있음에도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와서는 한 달 후 환승 이별을 선택했다. 그때가 중1, 열 네 살 때의 겨울이 그렇게 쓸쓸 할 줄 몰랐다. 남녀 공학이었던 나는 2학년 때 남친을 다시 같은 반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 바람피우고 환승 연애한 여자애도 나랑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학급 반장이 되었고 남친이 부반장이 되었다. 남친의 환승 연애 한 여자애는 체육부장이 되었다. 학급 회의때가 제일 힘들었다.

​


나는 환승 이별을 선택한 남친과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별을 고할 때도 그냥 알겠다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열다섯, 2학년이 되었고 같은 반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과의 관계를 다른 친구에게 듣고 나서도 전남친을 따로 불러 큰 소리 내며 싸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학급회의 때는 반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정말로 호랑이처럼 굴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매일 펑펑 울었었다. 왜 내가 아닌 저 여자애였을까를 일 년 동안 고민하다가 나의 사랑의 대상이 바뀌었다. 그렇게 나의 열다섯의 시련이 사라졌고 그때 나는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으로 이렇게 사람이 유치해 질 수 있다는 것, 사랑 때문에 이렇게 옹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비록 환승 이별로 나를 더 슬프게 했지만 두 사람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한번 정도 이별을 했다가 다시 만나서 결혼 했다는 얘기를 동창회에서 들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둘에게는 그 열다섯의 처음 맞았던 겨울이 첫 사랑이 아니었을까. 나의 열다섯은 이런 일들로 힘겨웠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해 놓고선 막상 그해의 날들을 떠 올려보니 30년 전의 과거가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이 다시 나다니.

​

​

​

나는 김려령의 작품을 좋아한다. 소소한 즐거움을 좋아한다. 때로는 상투적 내용이라도 그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읽어 나갔다. 그런데 처음 <완득이>로 나를 홀리게 했던 김려령의 소설들을 그동안 읽으면서 안타까운 것은 두 번째로 꼽히는 것이 더 없다는 것이다. <모두의 연수> 또한 그랬다. 나의 흑역사인 열다섯을 기억해 내고 말았지만 열다섯 연수가 조금 특수한 상황에 있다고 해도 전혀 불해해 보이지 않는다. 연수를 지켜줄 친구들도 있고 그들의 응원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연수가 부러웠다. 모두에게 사랑 받는 연수가 나만의 연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나는 그토록 좋아하는 그녀의 두 번째로 빛나게 될 소설을 또 기다려 본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