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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옥 해방일지 - 집안일에 인생을 다 쓰기 전에 시작하는 미니멀라이프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평점 :

무더운 여름의 시작이었던 7월 중순의 어느 날, 2008년 11월생이었던 나의 냉장고가 이별을 고했다. 냉장고 사망 소식을 알리기 위해 온 기사님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나만은 아닌 것 같았다. 냉장고가 기사님이 오자 전구가 깜빡이더니 꺼져버렸다. 워낙 노후한 냉장고라 부속품을 구한다고 해도 새로 구매하는 것을 권한다며 의자가 사망 선고를 하듯 냉장고의 출생 연도를 말하며 플러그를 뽑았다.
냉장고가 사망할 당시 하필 삼성에서 무슨 세일 행사를 했는지 삼성 냉장고는 배송 기간이 느렸고 결국 빠르게 올 수 있는 냉장고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것도 삼일이나 걸린다고 하니 냉동고에서 녹아내리는 음식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어찌되었건 우선 주문을 하고 냉장고가 오길 기다리며 살려 낼 수 있는 음식들을 구해야 했다. 이것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더 악 조건 같았다. 냉동고에 있는 음식들을 꺼내서 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굽고 찌고 삶고 볶았다. 800리터나 되는 냉장고에 정말로 많은 음식이 있었다. 냉동고에서 꺼내지는 음식들은 정말이지 화수분 같았다. 꺼내고 꺼내도 계속 나왔다. 회복 불가능한 음식들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졌다. 그걸 보면서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됐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서 열심히 이렇게 버리고 있는 나의 삶이 어찌나 후회가 되던지. 그때 알게 된 <살림지옥 해방일지>를 읽으면서 늘 내 발밑에서 시작하자고 조르는 미니멀리즘을 다시 떠 올리게 되었다.
저자가 책을 냈다는 것은 미니멀리즘을 하고 있는 어떤 유투브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미 내가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몇 년 전 SBS 스페셜에서 본 사람이었다. 50에 아사히신문사를 그만두고 죽을 때까지 회사에 들어가기 않고 죽을 때까지 살아보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는 얘기에 그 단호한 결심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정말 미니멀한 생활에 당황스러웠었다. 집에는 전기만 들어오고 가스를 신청하지 않아서 야외용 버너를 사용하고 있었다. 텔레비전도 없고 냉장고, 세탁기도 없다. 손빨래를 하고 냉장고에 넣을 음식을 만들지 않고 무를 잘라 말리며 살고 있는 50세의 여성. 큰일이나 밖을 나가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한 달 정도는 너끈하게 버틸 만큼의 식량이 냉장고에 있는 나와는 너무 다른 삶이다.
미니멀 하게 사는 혼자의 삶이지만 그녀에게도 집안일은 있는 것이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주변 정리를 하는 것은 모두 집안일이며 노동이다. 그런 집안일에서 해방하고자 하는 그녀의 삶에서 말하는 집안일은 고된 노동이나 나쁜 것은 아니었다.
“집안일이란 인생에서 돌고 도는 악몽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접대’라는 것을. 집안일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 자신을 소중히 하는 것,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자신만큼은 스스로를 분명히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P29
나를 위해서, 내가 있는 곳을 인정하며 말끔하게 살아가는 삶이니 그 집안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다는 그녀의 말에, 그동안 미뤄두었던 몇몇 개의 집안일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면 분명 그것들은 처리 되었어야 하는 것들이었는데 나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공개 했었는데, 그건 일을 다니지 않는 그녀라서 가능한 일정이다. 아침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피아노 연습을 하며 근처 카페에 가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다시 다른 카페로 가서 일을 하고 오후 다섯 시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식사 후 벗어 놓은 옷들을 손빨래를 하고 10시에 잠을 자는 일상이다. 직장이 없기에 가능한 그녀의 하루가 한번은 부러운 순간이긴 했다.
그녀가 이렇게 단조로워 보이는 일상에서 집안일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오후 일정에 있는 빨래 밖에 없어 보였다. 그녀가 말하는 나를 맞이하는 집안일이 이렇게 없어도 되는 것일까?
“우선은 뭐니 뭐니 해도 이거다.
집안일이 편해지면 생활비가 놀라울 정도로 줄어든다!“ P96
"간소한 살림은 사실 궁극의 노후대책이기도 하다.“ P103
나의 냉장고를 생각해 보자. 나의 냉장고에는 정말 많은 냉동 음식이 들어 있었고 언제 먹을지 모르는 고기들이 소분되어 있었고 버터도 소분 되어 있었고, 언제 받았는지 알 수 없는 떡과 빵들도 들어 있었다. 이 음식들을 사느라 많은 돈이 들었지만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먹어 치울 것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것들을 사지 않았다면 나는 세 시간이나 걸려서 냉장고 정리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소비를 줄이는 법, 그것은 집안일도 줄여주는 일이며 나의 노후 통장에 일정 금액을 차곡차곡 쌓아 놓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저자는 50세에 퇴사를 하며 비싼 월세를 내는 집을 떠나 도시와 떨어진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많은 것들을 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미니멀 라이프가 그녀의 삶을 다시 바꿨다고 했다. 저축하는 삶보다 쓰지 않는 삶을 선택한것, 그것이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했다. 물건이 적어지면 청소도 쉽고, 집안일의 노동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어떤 이가 집안에 물건이 많으면 머릿속에서도 수많은 물건들을 떠 올리기 때문에 물건이 없을수록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으며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인생을 다시 살아보고 싶다면 주변 정리, 즉 물건을 버리고 간소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새로운 삶을 살기엔 참, 많은 변화가 필요할 만큼의 살림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주방 용품도 많이 버리고 심지어 화장품들도 많이 버렸지만 그녀는 그 비싼 화장품들을 사용하지 않아도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얘기에 웃음이 났었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지고 싶다는 생각에 바르게 된 많은 크림과 세럼들이 사실 필요 없는 물건 중에 하나가 아닐까. 늙으면 늙는 대로 나이를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 그런 것에 투자하며 살아가지 말자고 하지만 역시 그 부분은 좀 나와는 다른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예뻐지고 싶다.
“물건이 가져올지 모르는 가능성을 버림으로써 자기 안의 새로운 가능성을 불러온다. 그것이 다시 태어나는 체험이다. 막다른 곳처럼 보여도 세계에 분명히 바람구멍을 열고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행위다.” P239
살림지옥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물건 버리기에 있지만, 그녀는 가장 버리기 힘들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변기 솔이었다. 손으로 닦아내야 하는 변기 청소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내 몸에서 나왔던 것을 씻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는 부분이 나는 제일 인상 깊었다. 사실 나도 끝까지 버리지 못할 것이 아마도 변기 솔이지 않을까 싶다.
매일해도 티가 나지 않는 살림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많은 부분은 와 닿지 않는 것들도 있었지만, 물건을 줄여나가는 방법이나 소비를 줄이는 것들에 관련한 부분은 많은 도움이 됐다. 아마 나의 냉장고와 이별이 없었다면 나의 소비가 어떻게 진행 되고 있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을 테고, 고민 없이 냉장고는 다시 포화 상태가 되었을 것 같다. 지금 나의 냉장고는 아주 날씬한 속을 가지고 있다. 그 상태로 오랫동안 유지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렇게 나도 일정부분의 살림지옥에서 벗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