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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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切創 절창

벤상처(-傷處). 칼이나 유리(琉璃) 조각 따위의 예리(銳利)한 날에 베인 상처(傷處)]

<아가미>때부터 구병모가 좋았던 것 같다. 파과를 읽으면서 더 좋아졌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다 읽고 역시, 소설이 더 좋았다며 파과를 세 번 읽었다. 그렇게 구병모에게 빠졌었다.이후 읽지 못했던 책들을 구매하며 아끼며 읽다가 만난 구병모의 신작 <절창>은 내가 처음구병모에게 빠졌던 <아가미>를 떠 올렸다. 아가미를 갖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 그 판타지적서사에 놓여 있는 인간애에 대한 이야기가 절창으로 가는 걸음이 조금 힘들었다. 읽어도 읽

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문장. 수식어 위에 수식어가 또 있어서 그 앞에 말한 내용은누구인가 다시 생각해 봐야 했던 초반을 지나야 내가 좋아 했던 구병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보육원에서 자란 소녀는 어느 행사장에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마주하게 된다. 어느날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능력, 상대방의 상처를 만지면 머릿속의 생각들이 언어들로 자신에게 전달된다는 것. 그 능력이 그날 또 발현되고 말았다. 그날 그곳에서 소녀는 오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말했지만 오언은 달랐다. 18살이 넘어 시설을 나온 소녀가 오언을 다시 만나기까지의 날들은 평탄치 않았다. 마치 너는 오언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일한 곳에서 무시를 당하고 착취당하며 시련을 겪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정도 시련쯤 견뎌야 오언이 주는 호의가 싫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녀의 도착지는 오언 말고는 없다는 듯. 오언을 만나자 소녀는 그녀가 되었고 아가씨가 되었다. 마치 <파과>에서 조각이 이름을 갖게 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참 길고 힘들었다. 소녀가 깊은 상처에 손을 닿아야 상대방의 이야기를 알아낼 수 있는 것처럼 나도 구병모의 이 <절창>을 공감해 나가는 것에 깊은 상처가 필요해 보였다. 이것은 책을 읽기 전의 작가가 권고한 내용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도 있다.

“무언가를 읽을 때는, 읽음의 행위 끝에 도출한 결론이 틀렸을 가능성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물며 무언가가 아닌 누군가를 읽을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P14

그녀의 특별한 능력을 통해 오언은 사업이 계속 번창했지만 부가 쌓일수록 그녀는 더욱 강압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통제 받고 감시당했다. 그녀의 능력은 오로지 오언만을 위해 쓰였다. 작은 상처에도 읽어 내는 능력을 가졌던 것이 어느 날부터는 더 깊은 상처가 필요했다. 늘 피투성이가 되는 손바닥을 지녀야 했던 그녀가 탈출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안 들겠는가. 결국 탈출하려 했지만 늘 잡혀 왔고 그럴 때마다 오언에게 깊은 증오와 혐오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어느 날 기타를 치고 싶어 했다. 그녀가 공부 하고 싶은 분야에 선생님을 모시고와 공부 할 수 있게 한 것처럼 기타도 그녀에게 적당하게 가르칠 선생님이 왔지만 그만 둔다는 인사도 없이 떠나고 말았다. 이 부분까지 와서야 독서 지도사로 온 그녀가 아가씨와 번갈아 가면 나눈 이야기의 갈래가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답답하고 지루했던 앞의 서사가 조금씩 와 닿기 시작한다.

오언에게 그녀는 질문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지극한, 가장 어려운 질문.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오언에게 그녀는 정말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자신에게 많은 부를 더 쌓을 수 있게 한 사람으로만 치부되지 않았을 사람이었을 것이다. 절대로 오언의 마음은 읽지 않겠다고 한 그녀는 마지막 오언의 마음을 어떻게 읽었을까. 어떤 내용으로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내었을까.

소설에서 오언을 빼고 대부분은 이름이 없다. 독서 지도교사, 기타 선생님, 강실장...그리고 그녀. 오언이 신분세탁을 하며 만들어 준 새로운 이름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태어나 갖게 된 이름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 어떤 흔적도 없다. 마치 그녀와 독서 지도교사가 주고받았던 이야기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내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가진 절창 속, 상처들로 만들어진 세상 밖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농담이 얼마나 흥하는지는 말하는 사람의 혓바다닥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귀에 달려 있지.” P117 듣는 사람들이 선택해서 만들어 놓은 어떤 신비한 소녀의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도 마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짜인 마지막 씬 같다는 생각. 그래서 어쩌면 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꾸며낸 이야기의 마지막 같다.

“상처 없는 관계라는 게 일찍이 존재나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며, 이제 나는 상처를 원경으로 삼지 않은 사랑이라는 걸 더는 알지 못하게 되었다.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지만, 어쩌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봄으로 인해, 상처를 만짐으로 인해,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P344

올해 나는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눠진 인간관계를 모두 단절했다. 첫 번째도 두 번째 그룹도 세 번째도 모두 상처 받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 상처 받음 마음을 다른 대상에게 위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국 첫 번째 받은 상처는 두 번째 그룹에서 더 확장이 되었고 이후 세 번째는 두 번째 그룹과 연결 되어 모든 관계가 망치고 말했다. 모두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그들을 떠나기로 했다. 내게는 절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알아줄 아가씨도 없으니 그저 스스로 치유해나가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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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살구클럽
한로로 (HANRORO) 지음 / 어센틱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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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티켓은 나에게 줬으면 (자몽 살구 클럽_ 한로로)



이 모든 것은 다 박정민 때문이다. 청룡 영화상, 청룡 시리즈 어워즈 축하 공연을 하던 화사에게 그 멜로 눈깔만 안했다면 나는 박정민의 말을 무시했을 것이다. 화사의 뮤직 비디오와 축하 공연 영상을 일주일 동안 무한 반복으로 보았더니 유튜브의 모든 카테고리들은 박정민으로 도배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추천했다던 이 책, <자몽 살구 클럽>에 대한 단편적인 추천사로 꼼꼼하게 알아보지도 않고 바로 주문을 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장바구니에 담지도 않고 구매를 눌렀던 것이다. 그때는 박정민의 추천작으로 꼽힌 책들은 대부분 예약을 해서 받아 봐야 할 정도로 구매 폭주였다. <자몽 살구 클럽>도 며칠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책을 받아보고 탄식이 쏟아 졌다. 뭐야. 손바닥만 한 책.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책을 받아 들었을 때의 분노가 떠올랐다. 출판사에게 저주를 쏟아 냈었다. 심지어 내용도 없어서 더 화가 났던 책이었는데, 두 번째 분노의 탄식을 쏟아낸 책이 <자몽 살구 클럽>이었다. 이것은 다 박정민 때문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국문학과를 나왔기에 책 한권을 내보고 싶다는 가수의 책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손바닥만 한 책이라 외투 주머니에도 들어가서 출 퇴근하며 하루 만에 다 읽었다. 그 정도로 내용이 짧고 정말로 작은 책이었다는 것이다.




퇴근길의 전철은 빼곡한 닭장 같다는 상투적 표현밖에 생각이 안 되는 곳이다. 마지막 장을 읽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는 동안 전철은 깜깜한 한강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반짝이는 불빛들이 달리는 창에 비추지 않았더라면 아주 살짝 스쳤던 눈물을 빠르게 닦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작디작은 책 속에 있던 네 명의 소녀들을 떠 올리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인공 소하는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붙은 광고지 한 장을 보게 됐다. 그것은 <자몽 살구 클럽>이라는 동아리였고 회원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 죽고 싶지만 (힝 ㅜㅜ) 실은 살구 (아자~)

싶은 자들의 비밀스러운 모임

당신은 무엇 때문에 죽고 싶나요?

그 이유가 명확한 당신! 우리와 함께 합시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나요?

그 무엇을 모르는 당신! 우리가 필요합니다

가입을 원할 시, 뒷면의 “티켓”을 갖고

“내일 오후 5시 음악실로” 오세요”





본인도 모르게 빠른 손놀림으로 티켓을 가지게 된 소하는 떨리는 마음으로 음악실을 가게 됐다. 그리고 <자몽 살구 클럽>의 멤버들과 만나게 됐다. 원래는 5명이어야 동아리 인정을 받는다는데, 소하가 가도 4명밖에 없는 사라질 동아리였다. 소하, 유민, 태수, 보현이는 자살이라는 말이 늘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해도 가슴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었다. 모두가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어느 순간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살고 싶은 아이들이었다. 살고 싶으면서 죽고 싶기도 하고, 죽고 싶으면서 살고 싶기도 한 청소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몽 살구 클럽>의 규칙은 아주 간단했다. 순서를 정하고 돌아가는 순번대로 D-Day -20을 정하고 죽지 않게 서로가 지켜주는 것. 첫 번째로 지켜줘야 할 사람은 보현이었다. 당사자는 왜 죽고 싶은지 이유를 말해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보현이가 왜 죽고 싶은지 사연을 듣게 됐다. 죽고 싶은 보현이를 위해 세 명은 애를 썼고 보현이를 지켜냈다. 죽고 싶은 시간을 흘려보낸 보현이는 죽지 않고 시간을 견뎠다는 것을 느끼며 죽는 것보다 살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더 컸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폐암에 걸린 엄마와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던 보현이는 살려 냈지만 학업과 강압된 부모님 밑에서 고통 받았던 태수는 지켜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태수를 그리워하는 유민이. 가정 폭력에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맞아도 누구하나 도와 줄 사람이 없는 소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소하가 선택 할 수밖에 없었던 그 행동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왜 소하를 도와줄 어른은 아무도 없었을까. 태수를 위로 할 어른은 없었을까. 마치 나는 <자몽 살구 클럽>의 회원이 된 것처럼 네명의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다음 장을 넘길 때마다 위태로운 마음이었다. 정말, 너희들 모두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한번쯤 마음에 담기도 했었던 그 단어. 살자의 반대말. 하지만 그 누구보다 살고 싶다고 말했던 이들이지만 그 어떤 것으로 소하의 마지막 행동을 이해하기엔 너무 가슴이 아프다. 소하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끝내기 위해선 그 방법 밖에 없었던 것일까. 더 위태로웠던 태수를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문득 어른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어른으로 이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것일까.



태수가 불렀던 “걸의 아스피린”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끔찍한 일이 될 거야. 달링 어른이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내게는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은 고통일거야.” 끝내 어른이 되지 못했던 태수에게는 더 이상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안식을 얻었으니 다행인건가.


첫 소설집을 낸 한로로의 노래를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어 몇 곡 찾아 들었다. 달달한 그녀의 목소리로 아이들을 위로하는 것 같은 이 책이 별점에 비해 나는 나쁘지 않았다. 그냥, 나도 태수 같은 멋진 언니가, 따뜻한 보현이 같은 언니가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있어도 좋은 유민이 같은 언니가 필요했기에. 그녀의 위로의 글들에 나도 위로 받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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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3-3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딸 때문에 한로로 가수를 알게 되었는데 노래를 자꾸 듣다 보니까 좋아지게 되더군요. 그러다 요즘 한로로가 영상에 나오면 무조건 멈추고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을 냈다곤 하던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는데 내용은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와는 좀 상반되는 느낌이네요.

오후즈음 2026-04-09 20:04   좋아요 0 | URL
저는 요 책을 통해 한로로를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음악도 찾아보고 그랬는데 또 이렇게 가수를 한명 알아가는 구나 싶더라구요. 저는 인디 믐악 하는 밍기뉴를 더 좋아해서 그녀의 음악을 더 많이 듣습니다~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유시민.김세라 지음 / 은빛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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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좋은 것들이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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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길에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몇 달 만에 동창을 만났다. 그녀는 나의 유일한 고등학교 동창이며 친구다. 모든 지인들과 정리를 했지만 그녀만큼은 하지 않았던 이유는 오로지, 그녀의 부지런함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오는 연락이 훨씬 많았던 탓에 우리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잊을 만 하면 그녀에게서 날아오는 카톡으로 서로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게 아직 이런 친구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앞에서도 말했듯이 다 그녀의 부지런함에서 오는 인맥 관리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가 부지런 한 것은 이런 인맥 관리뿐만이 아니라 자기 관리에서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나기 5미터전, 얼굴을 보자 나는 빵 터졌다.


면접이라도 보러 오는 사람처럼 차려 입은 그녀가 내 앞에 섰다.



​"나 만나고 어디 가냐?"

"어딜가, 요즘 체력이 떨어지니 약속 하나 있음 바로 집으로 간다."

"그런데, 왜? 이런 차림이지? 너를 보니 내가 뭔가 잘못 한 느낌이랄까"


​면접보다는 맞선이 맞을 것 같은 차림으로 온 친구에게 미안한 차림으로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다 헤어졌다. 그리고 식사를 하며 친구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왜 늘 한결같이 이런 모습으로 나오는지, 집 앞 마트에 갈 때도 이렇게 나간다고 하던데, 왜 그러는지 물었다. 친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나 있잖아. 이런 경험 딱 한번 뿐이긴 했어. 주말에도 아침에 일어나 씻고, 가벼운 화장하고 살았던 내가 그날은 정말 너무 정신이 없었던 거지. 둘째가 좀 느려. 걔는 뭐든 느려. 지 아빠 닮아서. 정말 속이 터져. 그날도 그랬어. 둘째가 그날은 더 늦는 거야. 밥도 한 숟가락을 10분 먹더라고. 애를 거의 보쌈 하듯 데리고 나왔어. 나는 하필 그날 아무것도 쳐 바르지도 못한 거야. 그렇게 나와서 애들 유치원 버스 태워 보내고 한시름 놓고 나를 보는데 슬리퍼도 짝짝이로 신고 나왔더라. 그런데 건너편에 어떤 남자가 나를 한 참 보기에 안경 닦으며 나도 봤어."

"누구였어?"

"너 알지, K대 다녔던 그 S말이야..."

"아, 네 첫사랑? 알지. 건너편 남자가 걔였어?

"응.... 나 그때부터 밖에 나올 때마다 매일 면접 보는 느낌으로 산다."




​어디서든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늘 한결 같은 모습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일까. 나는 그런 마음보다는 20대에 만났던 그때의 사람들이 마흔을 넘어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간을 살고 있는 모습이 궁금하다. 너도 나처럼 흰머리가 늘고 얼굴에 주름이 늘고, 열심히 운동해도 줄지 않는 체지방을 간직하고 있는지. 부지런해도 늘 한결 같다고 생각하는 나의 외형적인 모습은 이럴지라도 다른 부분은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무엇보다 나는 길을 가다가 여태 단 한 번도 사귀었던 남자들을 다시 마주친 적이 없다. 어쩜 나와 같은 경우의 수가 현실적인 수치가 아닐까.



​그녀가 여전히 예쁜 얼굴로, 단단하게 자리 잡은 날씬한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늘 존경스럽지만, 나는 그렇게 못 살 것 같다. 내 첫사랑이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도 나처럼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집에서 뒹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매일 늘어나는 흰 머리가 신경 쓰이지만, 염색 따위 귀찮아서 하지 않고, 늘어나는 체지방이 걱정 되지만 그만큼의 인격과 인성이 단단해 지길 바라며 독서를 더 많이 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으로도 반갑게 만나면 인사하고 싶다. 너도,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었구나...그런 마음으로.


하지만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젊은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다는 이 아이러니한 마음속의 결말은 뭘까.





언젠가 유투브 알고리즘이 보내온 이 영상을 보고 길을 걷다가 한참을 울었다. 30년이 지난 어느 가수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첫사랑을 만난 기분이었다. 젊은 시절의 모습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오로지 백발이 된 그의 나이든 모습만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친구가 말하는 그 첫사랑을 길에서 만나게 되는 그런 기분이 이런 것일까. 뭔가 어른답게 늙어 있는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위해 헬스클럽 회원 등록을 하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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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리커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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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찾아 오는 늙음의 나날들
아름답게 마무리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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