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정치를 말하다 - 보수와 진보의 뿌리는 무엇인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손대오 옮김 / 김영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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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정치를 말하다』는 보수와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를 개인적 정체성의 치우침 없이 기술하고 있지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적는다) 

 

사진은 1966년 9월 22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당시 김두한 의원이 국회에 오물을 투척한 사건이다. <김두한이 똥물을 끼얹은 심정을 알겠다>고 외치는 사람들, 그리고 국회의원들도 있었다(물론 이것은 한참 나중의 일). 이런 일은 언제 일어나도 뜨악할 일이고 한편으로는 통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 통쾌한 감정은 왜 생기는 건가. 

조지 레이코프의 『도덕, 정치를 말하다』가 출간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 what's the right thing to do?』에서의 무대를 확대한 개념이라 봐야 할까, 아니면 단지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에 관한 인문서라 봐야 할까. 처음엔 전자라는 생각으로 보게 되지만 차츰 읽어나가게 되면서 보수와 진보의 핵심 가치의 차이와, 현실 정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볼 수 있게 되는 하나의 방법론에 다가가게 된다. 선거 때 우리 스스로는 서민이라고 칭하면서도, 대기업(혹은 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할 가능성이 농후한) 보수정당에 한 표를 던지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반대로 진보정당을 지지하면서도 그들의 이념과 정책성 방향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그런데 우리나라에 100% 보수와 100% 진보가 존재할까?). 

저자는 <엄한 아버지 도덕>과 <자애로운 부모 도덕>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본다. 보수는 진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진보 또한 보수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 그럼 우리는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또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1992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댄 퀘일dan quayle이 수락연설 중 누진소득세에 반발하며 <왜 좋은 사람들이 벌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자신이 진보성향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왜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저자 또한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며 한때는 보수주의자들을 천박하고, 감정이 메마르거나 이기적이며, 혹은 철저한 파시스트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수주의를 잘 이해하게 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보수주의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고,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에 대한 이해는 자신을 더 진보적이 되도록 해주었다고 적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나 또한 <보수와 진보의 이해>를 통해 더욱 더 그들을 알고, 그들의 이념과 신념을 이해하게 되었다 ㅡ 그러나 이것은 텍스트 그대로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말하는 것이며 <한국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는 반드시 단일적이지 않다. 두 가지 모두 매우 다양한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세계관을 제공한다. 멀리서 보면 이것저것 뒤섞여있는 수프처럼 어지럽게 보이는 매우 넓은 범위의 다양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엄청나게 많은 체계적인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다. ㅡ 본문 p.387  

과거 김두한 의원의 인분 사건은 보수와 진보를 가르기 전에, 우리는 평소에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국회의원들은 보잘것없는 사안에만 열을 올리는 부패한 인간들>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ㅡ 그런데 그가 인분을 투척한 것은 보수에 대해서였을까, 진보에 대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였을까? 단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상충되는 점이 많았기 때문에(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일까? 다른 논점으로, 보수정당이 환경단체에는 인색하면서도 낙태문제에는 반대표를 던지는 까닭, 진보정당이 대기업이 추진하는 대규모 사업에는 반대하면서 그것이 가져올 일자리 창출은 인식하지 못하는 까닭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있는가(빈약한 비유라는 것을 나도 안다). 

저자가 말하는 <엄한 아버지 도덕>과 <자애로운 부모 도덕>을 얘기해 보자. 저자는 <엄한 아버지 도덕>을 보수주의, <자애로운 부모 도덕>을 진보주의에 빗대어 설명한다. <엄한 아버지> 모델은 세상은 기본적으로 위험한 곳이며 삶 또한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도덕에 순종하면 보상을 불순종하면 징벌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한 아버지> 모델은 권위를 실행하고 모든 것은 도덕 시스템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교의 학자금 대출을 예로 들어보자(실제로 저자도 이것으로 비유해 설명했다). 진보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엄청나게 도덕적인 프로그램이고, 대학에의 접근을 공정하게 해주며, 사람들을 돕는 행동이다. 그러나 보수주의적 시각으로는 아니다. 이것은 비도덕적이고, 학생들이 대부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부에 의존하게 되어 자립할 수 없으며, 모든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공정한 것이 된다(사실 이건 그리 흥미로운 사례는 되지 못한다)). 낙태 반대 또한 보수주의자들의 눈으로는, 미혼모는 애초에 자신의 몸을 아끼고 ㅡ 피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ㅡ 자제하며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때문에 그들은 낙오자이며 그들을 모두 껴안는 것은 타인에 대한 불공정한 처사이다. 

<자애로운 부모 도덕>은 이렇다. 아이에게(국민에게) 양육을 불어 넣어주면 그 아이는 결국 자기양육적인 성인이 되고, 아울러 다른 사람들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즉, <엄한 아버지> 모델에서의 보상과 징벌이 아니라 사랑으로 충만한 애착을 말한다. 그들에게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정부가 국민들을 돕는 것이고, 가난한 공동체 내에 일자리를 창출하게 되는 지극히 도덕적인 일이다. 이것을 보수주의의 시각으로 보자. 이것은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사람들을 응석받이로 만들고, 자립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며, 도덕적으로 약하게 만드는 일이다. 왜냐하면 <엄한 아버지 도덕>에서는 도덕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며, 그렇지 못한 것은 비도덕으로 간주해 결국 <도덕적 약함>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 정치를 말하다』에서는 우리가 의아하게 보았던 수많은 논쟁거리(각종 사례)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명확하게 인식하려는 노력으로서의 출발점일 뿐이고, 진짜는 보수와 진보의 핵심적 가치를 알아보자는 거다(그리고 <중립> 또는 <온건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도덕>이 끼어든다. 보수와 진보는 그들 나름대로의 도덕이 존재하고, 나아가 그에 따른 이념적 관점이 존재한다. 결국 『도덕, 정치를 말하다』는 진보와 보수를 설명하는 것에 더해 그들을 바라보는,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덕, 정치를 말하다』는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일어나는 정치 현상을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으며, 절대 단발적이거나 단순한 평론이 아니다. 대체 어떻게 이리도 정견이 다를 수가 있는가. 대체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도덕과 그 가치란 무엇인가. 이것들은 시대가 지나가도 분명 흥미로운 명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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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키시』 :  발표 후 평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톨스타야의 첫 장편. 국내외 일부 비평가들은 "러시아 삶의 백과사전", "러시아 문학의 걸출한 작품"이라고 했다. 러시아가 핵폭발로 멸망한 후, 고대 러시아의 원시적인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상황을 그린다. 톨스타야가 제시한 미래와 가상의 존재들을 통해 현대의 문제를 인지해 볼 수 있으며, 러시아 언어와 문화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달려라, 토끼』 :  '20세기 미국문학의 아버지' 존 업다이크의 장편소설. 업다이크는 전미 도서상, 퓰리처상을 여러 차례 받은 영미권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다. <달려라, 토끼>는 업다이크를 동시대 최고 작가의 자리에 올려놓은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고등학교 시절 유명한 농구선수였지만 졸업 후 평범한 세일즈맨이 된 해리 앵스트롬(래빗)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하는 과정을 그린다. 

『일곱 도시 이야기』 :  삼국지에 비할만한 현대의 신 고전을 창조했다는 극찬과 함께, 일본에서만 무려 1500만 부, 국내에서도 10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은하영웅전설>. <일곱 도시 이야기>는 작가 다나카 요시키가 <은하영웅전설> 시리즈의 마지막 부분을 집필하던 1986년부터 1990년 사이에 집필한 장편소설로, 일본 독자들 사이에서는 다나카 요시키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뽑고 있는 작품. 

『비숍 살인 사건』 : 추리 소설의 황금시대를 장식한 S. S. 밴 다인의 대표작. '마더 구스의 노래'라고 하는 전래 동요를 따라 광기 어린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밴 다인이 앞서 발표한 세 편의 추리 소설 <벤슨 살인 사건The Benson Murder Case>, <카나리아 살인 사건The Canary Murder Case>, <그린 살인 사건The Greene Murder Case>의 잇단 성공에 마지막 정점을 찍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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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백인신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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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온전히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그 어떤 현실못지 않다. 현재로써 쉬이 이해되지 않는 리틀 울프의 제안과 요구는 자못 무모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나는 너희에게 동화되고 섞여 살아나가겠다는 의지와 절박함이 있다(그에 반해 목사들은 위안을 주면서 동시에 문제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주인공 메이는 그런 리틀 울프의 제안으로써 마음 속에 평안을 얻게 된다. 물론 위기의 순간들도 있지만 그것은 백인과 인디언의 차이에서라기보다는 나와 타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즉 인디언의 아픔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문명의 이기보다는 문명의 슬픔인 거다. 문화와 문명의 충돌, 나와 타자의 충돌, 인간과 인간의 충돌. 동화와 흡수가 아니라 자연스런 어울림이야말로 인간관계의 정상위가 아닐까. 인간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자연에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천 명의 백인 신부』가 주지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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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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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표지 디자인은 『플라스틱 피플』과 묘하게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면 마그리트든가) 한 두 번으로 끝났으면 참 좋았을 만연체. 너무 질기다. 한국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라고 하기엔 좀 무리도 있어 보이고 말이다. 그러나 '기발함'으로 치자면... 일단 아이디어는 기발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지나쳐가는 그 순간들을 캐치해서 하나의 글로 풀어내는 걸 보면. 그리고 전체적으로 리듬감이 살아있다는 것이 좋았다. 역시 아무리 감각적이어도 '만연체가 만연'하다보니 질리는 감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작품들 전체를 관통하는 감각적 이미지들을 잘 살려냈다고 보는 게 적절할 듯싶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독특하다못해 특이하기까지 하다는 것. 자칫 허공에 떠버릴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조차 깊은 현실을 반영해 붕 뜨지 않았다는 것에 박수를 주고 싶다. 나는 문학평론가는 아니지만 지극히 현실에 기반한, 그 현실(만)이 두렵다는 것을 잘 녹여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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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낯선 길을 헤매고 있는 너에게 - 현실은 막막하고 미래는 불안한 서툰 청춘에게 보내는 희망의 편지
엘린 스프라긴스 지음, 박지니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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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는 길고 긴 흥미로운 게임이다. 아무리 옆집 아저씨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에게 죽는다고 해도, 인생은 정말이지 길고 낯선 여정이다. 요즘 텔레비전을 켜면 어느 광고에 이런 카피도 나오더라. 신은 나에게 남보다 조금 부족한 환경, 실력, 시간을 주었지만 남들과 똑같은 가능성 또한 주었다고. 그러므로 역시 인생도 마찬가지로 남의 것은 곱빼기인데 나만 보통의 크기를 쥐고 있을 리 없다. 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만, 예술이 오래 가려면 <잘> 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무수히 많은 오타를 기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은 이렇다. 그 오타들을 얼마나 줄이느냐보다, 그것들을 빼놓지 않고 확실히 발견해내는 것이 인생의 맛이라고 말이다.  

 

 

 

여기 『인생의 낯선 길을 헤매고 있는 너에게』에 등장하는 우리의 인생 선배들은 모두 여자들 뿐이다. 그러나 꼭 그들이 비단 여자들에게만 이 메시지를 주고 있지는 않다. 실로 여자가 가진 수천 가지 얼굴은 때때로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되는가(그럼에도 나는 여자의 무표정이 가장 무섭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여성들은 각각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이 편지란 것, 키보드를 딸깍 하고 누르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이렇게도 본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물론 사람은 하고 싶은 것만을 하며 살 수는 없다. 하지만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도 좋다. 왜? 왼쪽 내리막길, 뒤로 나 있는 샛길처럼 우리에게 인생의 길이란 건 정말 많으니까. 『인생의 낯선……』은 그런 책이다. 성공을 파는 목적으로 성공한 것이 아닌, 먼저 넘어지기도 해보고 막막한 길에도 서 봤던 사람들의 이야기. 전기선이 꼽힌 모니터에서의 지식검색도 좋지만, 때로는 이 책으로 지혜검색을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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